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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1분 거리에 남편을 고문한 경찰이 산다

[피해자 구술, 수상한 섬 수상한 이야기 7] 반성 없는 가해자

등록 2020.12.05 11:44수정 2020.12.0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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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강의 구술 = "하루는 고문을 받고 지쳐 나가떨어져 있는데, 수사관 한 놈이 그래. '우리도 당신이 억울한 점이 있다는 걸 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일단 시인하고 살아나가서 법원에 가서 억울하다고 하면 판사님이 다 살펴봐 주실 거다. 그러니 여기(경찰)에서 시키는 대로 일단 시인해라'라고 말이야."

여전히 우리는 법과 실체적 진실에 대한 판단을 법원에 기대고 있다. 개인 간의 민·형사상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제도에 대한 판단, 즉 예를 들어 방역과 집회의 자유 사이에 대립된 광화문 집회와 같은 집시법의 문제, 낙태와 관련한 자기 결정권에 대한 판단 그리고 대통령 탄핵까지 우리 사회가 갈등으로 여겨지는 많은 것을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법원이 인권과 민주주의 제도의 마지막 보루라는 인식과 법관의 양심과 공정, 정의로움에 대한 신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정권 시절,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법원도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총칼로 무장한 공안 권력 앞에서 자신의 책무와 기능을 상실했다. 권력 앞에 무력했고 정권 앞에 순응했다.

김평강씨의 경우 재판에서 판사에게  '억울하다, 모든 것이 조작되었다'라고 주장했으나 판사는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저 멀리 일본에서 달려온 재일 교포들의 증언도 줄을 이었지만 판사는 그것마저 외면했다.

판사는 둘째치고 자신을 고문했던 수사관들이 방청석 곳곳에 앉아 있는 광경을 보았을 때 김평강씨는 절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예상할 수 있었다. 간첩이라는 덫에서 헤어날 수 없음을.

애매하지만 사형에 처해달라는 검찰
 

자신의 고문피해를 이야기하는 김용담씨(맨 오른쪽). 그는 하반신이 마비되고 대장암을 앓고 있어 건강이 매우 나쁘다. ⓒ 한톨

   
김용담의 구술 = "이젠 제주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데 법정에서 판사, 검사가 공소사실을 묻길래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부인을 했어. 다 거짓말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거기 보안대 놈이 재판 끝나고 나를 불러. 너 사실대로 시인만 하면 한 3년 살면 나올 건데 그렇게 부인 하느냐고. 내가 다른 거 같으면 시인을 하지만 이 일만큼은 절대 내가 뒤집어쓸 수 없다고 했지.

교도소에서 재판받으러 가려고 하면 전날 보안대에서 찾아와. 농고 1년 후배인 보안대 수사관이라. 임00이라고. 와서는 나보고 그래. 보안대에서 말한 것처럼 재판에서 말하면 기껏해야 3년 받는다고. 그래서 내가 난 거짓말이고 안 한 걸 안 했다고 하는데 뭘 시인하느냐고 했지. 자꾸 그렇게 할 거면 알아서 쓰고 알아서 도장 찍으라고 막 뭐라 했지.

그런데 내가 제주법원에서 전부 부인을 했더니 정말 7년 형을 받은 거야. 그때는 변호사 사 봐야 필요 없어. 재판정에서 변호사는 변호고 뭐고 말 한마디도 못 해. 변호를 못 해. 항소해서 광주로 올라가 재판받는데 여기서 증인이 하나 갔어. 그때가 이후락이가 정보부장 할 때지. 보안대에서 증인 하나를 데리고 재판에 왔는데 보안대에서 왔으니까 보안대 사람들이 시킨 대로 증언할 거 아냐. 그러니 나에게 전부 불리한 진술만 하는 거라. 오죽했으면 듣고 있던 재판장이 나보고 '증인하고 초등학교 때 무슨 원수진 일 있냐'고 묻는 거야. 그런 사실 없다고. 증인은 보안대에서 와서 사실대로 얘기할 수 없는 거야. 그게 재판이라."


공정한 재판이 이뤄져야 할 법정은 무법천지였다. 방청석에는 자신을 가두고 고문했던 수사관이 떡하니 버티고 앉아 있었다. 법정에 들어서던 피해자들은 자신을 고문했던 수사관이 방청석에 앉아 있는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을 고문했던 수사관과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은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고문 피해자들은 방청석에 앉아있던 수사관들을 보자마자 몸이 굳어버렸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재판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재판장은 양심과 정의를 저버리고 권력의 눈치를 보며 왜곡된 판결을 했다. 사법부 역시 조작 간첩 피해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피해자에게 힘이 되어 준 것은 방청석의 수사관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힘내라며 응원해 준 지인들이었다. 만약 그 응원마저도 없었다면 피해자는 법정에서 한마디도 입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응원의 기세에 눌려 검사도 모든 것이 애매하다고 했지만 결국 판사는 '모든 것이 애매'한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김평강의 구술= "재판받을 때도 조사관들이 배석하고 있으니 증인이고, 변호사고 말을 못 해. 그런데 일본에서 온 재일 교포들이 비행기 타고 법정에 찾아와서 '간바레(がんばれ), 간바레' 하면서 막 응원을 했지. 김평강은 그럴 (간첩할) 사람 아니다. 심지어 일본 민단 단장이 증인으로 와서 김평강은 절대 간첩할 사람이 아니라고 판사 앞에서 막 이야기했지. 뭐 그런데도 판사는 사형! 판사가 검사에게 재판할 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더라고. 검사는 이리저리 눈치를 보더니 '모든 게 애매하지만 사형에 처해달라'라고. 그러니까 판사가 꼼짝 못 하지. 어떻게 그런 판결이 있을 수 있어? 모든 게 애매한 사람을 어떻게 사형에 처하게 할 수 있어. 그런데도 판사는 사형!"
  

자신의 재판과정을 이야기하는 김평강씨. 김평강씨 역시 암투병 중이다. ⓒ 한톨

 
1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김평강의 아내는 남편의 사형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아내는 남편의 무죄를 입증해 줄 유능한 변호사를 사기 위해 재산을 팔기 시작했다. 1심에서 말 한번 제대로 떼지 못하는 재판을 보며 본격적으로 남편의 구명을 위해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편이 광주교도소로 이감되자 무등산 아래 절에 부탁해 그곳에서 숙식하며 매일 같이 면회를 가 영치금을 넣어주며 남편의 건강을 챙겼다. 죽으면 무죄도 받을 수 없고 다 소용없다며 꼭 살아남으라고 했다. 그렇게 면회가 끝나면 변호사를 찾아가 재판에 어떻게 임할지 상의하고 제주와 일본의 증인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타지에서 몇 개월을 보낸 아내다.

"아내가 고생 많이 했어. 나 누명 벗긴다고. 아내가 광주에 나와 있으니까 아이들도 고생 많이 했지. 지금도 전두환이 TV에 나오는 거 보면 화가 많이 나."

아내의 노력 덕이었을까.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평강은 2심에서 7년 형으로 감형되었다. 그래도 아내는 성이 차지 않았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억울하게 7년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법원에 상고까지 해봤지만 결국 남편의 억울함을 풀지는 못했다. 그렇게 남편은 광주교도소에서 7년 감옥살이를 시작했다.

고문 수사관 만나 따졌지만 
 

김평강을 고문했던 김아무개 수사관의 자택. '웃음꽃'이라는 벽화가 살풍경스럽다. ⓒ 변상철

   
하루아침에 억울한 간첩 누명을 쓰고 수년간 옥살이를 하고 간첩 전과자가 된 그에게 억울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억울하다고 했다. 그러나 김평강은 정작 출소 후 자신을 고문한 수사관을 찾아가지 않았다. 자신을 고문했던 수사관이 집에서 걸어서 1분 정도면 닿는 거리에 살고 있었지만 정작 찾아가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자주 찾아가 싸웠다고 한다. 버스에서 수사관을 만나면 달려들어 싸우고, 길을 가다 만나도 싸웠다고 한다. 왜 죄 없는 남편을 고문했느냐고, 사과하라고 했지만 수사관은 절대 사과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7월 김평강의 아내는 남편을 고문했던 김 아무개 수사관을 다시 찾았다. 남편이 재심에서 무죄까지 받았는데도 수사관은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괘씸했다고 한다. 아내는 김 수사관의 집에 들어가 그를 보자마자 따졌다. 그러나 그는 고문한 사실을 부인했다.

김평강의 아내(이하 아내) = 왜 몰라, 고문 시켜놨는데도 몰라?

김아무개 수사관(이하 김)= 고문은 무슨... 그런 건 없고, 아저씨가 저 양심적으로 이야기 했수다게. 그때 이야기 한 것뿐이고. 단지 우리가 좀 미안하게 생각하는 거는 그 당시는 그저 수사 기간이 좀 길어주게.

아내 = 너무 길었어. 너무 길었어. 58일 동안.

김 = 58일은 아니고요. 한 20일인가?

아내 = 무시거(무슨) 20일?

김 = 그때는 저 사회적 분위기가 공안 사범인 경우는 대부분 다 수사 기간이 좀 오래 걸렸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미안하게 생각해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는 사실 그런 거 몰랐고. 지금 와서는 그때 수사 기간이 좀 오래 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고문한 거는 없고.

아내 = 아니 고춧가루 담가 불고, 물 갖다 지쳐 불고, 물고문하고 다 죽다 살아났수게. 이거 법정에서도 이야기했잖아.

김 = 아니, 아니. 아 근데 언제 재심해놔수까. 난 그것도 모르겠는데?

아내 = 아이고, 이거(재심) 세상 사람 다 알암주게. 벌써 몇 년 됐어요.

김 = 몇 년 됐어?

아내 = (김씨 아내를 보며) 간첩 각시 왔수게. 간첩 각시 왔어. 이 아저씨 우리 아방 고문 시켜 낸 다 병신 됐어. 우리.

김 수사관의 아내 = 무슨 말씀인가.

아내 = 무슨 말씀은 무슨 말씀. 아침 6시에 우리 아방을 내의 바람에 실어 간 사람이라 이 사람이.

김 = 아니라. 무슨...

아내 = 내의 바람에 집어 갔잖아. 그때. 신도 고무 쓰레빠 신을 양 잡아갔어.

김 = 싸우고 싶지 않아요. 그냥 갑서.

아내 = 싸우고 싶지 않다고? 

- 지난 7월 10일 수사관 집을 방문한 김평강의 아내가 수사관과 나눈 대화의 일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김평강이었지만, 김평강을 수사했던 담당 수사관은 사과하지 않았다. 단지 오랫동안 불법 감금했던 부분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지만 그것 역시 당시의 관행이라고 말했다. 아침 6시에 내의에 슬리퍼 바람으로 끌고 간 것을 말하자 오히려 그는 싸우고 싶지 않다며 자리를 피했다.

김 수사관은 사죄와 화해를 싸움의 대상, 논쟁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전혀 사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자신의 수사가 범죄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고, 수사 과정에서 불법이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는데도 그는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 김평강은 위암 수술을 받고 나서 점점 기억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김 수사관으로부터 사과받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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