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언니들의 이야기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을 읽고

등록 2020.10.30 08:37수정 2020.10.3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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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노는 언니>라는 예능이 방송된다. 각 분야에서 최고였던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모여서 운동하면서 놀지 못한 한을 푸는 세컨드 라이프 프로그램이다. 배나온 아저씨들이 공 차는 것만 보다 언니들이 노는 걸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생기다니 눈물이 찔끔 나올 뻔 했다. 강호동, 서장훈, 안정환처럼 스포츠 스타의 이력을 발판으로 우리의 리치 언니(박세리)도 여자 스포츠 스타 1호 방송인을 노려 볼 만하다.

의리로 보는 예능 프로 '노는 언니'처럼 우리가 몰랐던 언니들의 이야기가 또 있다. 근현대사에 실재했지만 가시화 되지 않는 이야기. 드러나지 않아 사실이 아니라고 왜곡되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 세월을 고스란히 겪어온 한 언니가 증언해 주었다. '혼혈아, 성매매, 미군 범죄'라는 두루뭉술한 말로만 알고 있었고, 역사 교과서에도 사회 교과서에도 신문에서도 볼 수 없었던 미군 위안부 기지촌 이야기를 <미군 위안부 기지촌여성 최초의 증언록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기지촌 여성들의 충격적인 실태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반양장) - 미군위안부 기지촌여성의 첫 번째 증언록, 김현선(엮은이), 김정자, 새움터(기획) ⓒ 한울(한울아카데미)

 
김정자는 자신을 성폭행한 새아버지와 의붓형제들을 피해 집을 나와 고향 친구를 따라 서울에 왔다. 방직공장에 데려다 준다고 해서 친구를 따라갔는데, 친구는 김정자를 포주에게 팔고 도망갔다.

김정자가 고향 친구에게 속아 팔려간 곳은 용주골이었다. 이틀인가 3일 있다가 여자 하나가 도망가라고 해서 도망가다 골목길도 못 벗어나고 잡힌 김정자는 구타와 폭행에 죽을 뻔했다. 얼굴을 제외한 다른 곳을 발로 짓이기고 폭행하는 일은 기지촌에서 흔했다. 구타와 폭행에 누가 죽어나가도 몰랐다.
 
"되지게 맞고 한 3일을 못 일어났었어, 그때부텀 세코날[진정, 수면제]을 주기 시작한 거지, 그때부텀 세코날을 먹고... 난 숫기가 없어서 술도 못 먹고, 숫기가 업어서 못 저거했다 하니까 포주가 먹으라구. 기분 좋게 해주는 거래. 그래서 하나 먹으면 그 다음에 두 개 먹고, 두 개 먹으면 세 개를 먹어야 하고...그렇게 중독이 된 거지. 인제 그거 없으면 안 되는 거지."
 
약을 먹고 취한 김에 미군을 받고 그렇게 중독이 된 기지촌 여성들은 포주의 노예로 살았다. 포주는 식대, 방세, 침구비 명목으로 기지촌 여성들에게 외상을 주고 3할에서 5할까지 높은 이자를 받았다. 화대를 포주와 반반씩 나눈 뒤 빚을 갚고 방세, 밥값을 치러도 기지촌 여성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빚뿐이었다.

김정자는 용주골에서 시작해 문산, 동두천 홍콩빌리지, 평택 안정리, 대구 왜관, 부산 히야리아부대, 삼각지 기지촌, 군산까지 전국에 있는 기지촌을 여행하며 증언한다. 전국 각 지역에 기지촌이 이렇게 넓게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약 1억 5천만 달러 수입의 원천인 주둔미군의 감축설은 한국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견되지만, 이들 위안부의 비중도 과소할 수 없는 함수관계. 전국의 약 1만 3천~1만 4천으로 추계되는 이 위안부들이 해방 후 오늘날까지 벌어들인 외화는 막대한 것. 산재해 있는 위안부들은 외화 수입 면에서 큰 몫을 차지해오고 있다.(매일경제 1977년 7월 11자, 3면)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은 기지촌정화위원회 제정과 미군 기지촌들에 대한 '정화정책' 공식화를 명령했다. 막대한 기금을 쏟아 부어 각 기지촌에 성병진료소를 설치하고 미군 '위안시설'들을 재정비한 기지촌 위안부 사업은 정부가 직접 주도하고 관리한 사업이다. 국가는 성병을 관리했고 미군은 정부에 이를 요구했다. 한미 양국이 같이 불시에 성병 검사를 하기도 했다.

책 속에 드러난 미군 기지촌 위안부의 삶은 장면 장면이 충격적이었다. 규모가 컸던 것, 국가가 주도한 것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포주집과 클럽 등 당시 건물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김정자씨가 머물렀던 포주 집, 갇혀서 폭행당했던 창문이 닫힌 방, 좁다란 방들이 붙어있는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건물들이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현재는 운영되지 않는 낡은 건물도 있었고, 클럽 자리에 다른 건물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남아 있는 건물이 많았다. 방치된 건물은 기지촌 위안부를 방치하는 우리 근현대사와 정부 권력의 민낯을 보여준다.

포주의 노예가 되어 빚만 지고 세코날에 중독된 채 구타당하던 기지촌 여성들 중에는 자살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 명이 자살하면 그 골목에서 한 달 안에 두 세명이 연이어 자살했는데 김정자 씨도 세 번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질긴 목숨 죽지도 못하고 모진 풍파를 이기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를 증언해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미군 위안부 역사 정부가 인정해야

'위안부'라고 하면 일본군 성노예가 떠오른다. 기지촌 여성들이 위안부라고 하면 돈벌려고 간 양공주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김정자씨의 증언을 보아도 그렇고 얼마 되지 않은 신문이나 기록을 보아도 정부 주도하에 위안부가 공식적으로 허용되고, 위안부를 등록하고 성병 교육을 하는 등 국가가 위안부 사업을 운영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미국 위안부 제도'가 해방 후 역사에 실재했음이 분명한데 한미 양국 정부가 관련 자료들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사실로 확인되기 힘들 뿐이다.

300여 쪽에 달하는 증언록에는 기지촌 여성, 미군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허구로 읽혀지지 않고 사건이 실재했음을 증명하고 객관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신문자료와 국가 기록원 자료 등 다양한 자료가 첨부되어 있다. 국가에 이용되었지만 국가로부터 외면당한 그녀들의 이야기는 놀랍고 끔찍했다. 이러한 사실이 왜 안 알려질까? 왜 금기시 되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일본군 위안부 일은 다른 국가에 의해 이용당한 성폭력이고, 미군 위안부는 우리 정부가 자국민을 이용한 성폭력이다. 정부는 한미동맹 및 산업화를 위해 이용했더 미군 기지촌의 역사적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반양장) - 미군위안부 기지촌여성의 첫 번째 증언록

김현선 (엮은이), 김정자, 새움터 (기획),
한울(한울아카데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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