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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줄이랬더니, 노동시간 속인 운수회사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 운수 노동자의 과로와 교통안전

등록 2020.10.30 09:54수정 2020.10.3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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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아이리스 여행사 소속 관광 버스가 타이베이 동부의 5번 고속도로와 3번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경사로에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33명이 사망하고, 운전사를 포함한 11명이 부상당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해당 운전자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 13시간 이상 일을 했다. 그의 가족은 그가 단 하루도 쉬지 못 하고, 16일 연속 운전했다고 밝혔다. 우리는 운전자가 사고 전에 기진맥진한 상태였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운전 노동자가 과로를 하는 것이 대만 버스 회사에서 일반적인 관행이었고, 이런 끔찍한 사고가 한 번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8년 4 월, 고속도로 교통 경찰관 두 명과 그들에게 교통 위반 혐의로 끌려온 트럭 운전자가 고속도로에서 다른 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이후 조사에 따르면 사고를 낸 운전자는, 사고 전 12시간째 운전 중이었다. 운전 시작 전에도 딱 1시간 쉬었을 뿐이었다. 또 회사에서 지급하는 출석 보너스(만근수당)를 받기 위해서 한 달에 28 일씩 일해야 했다. 교통 사고 이전에 그는 22일 연속으로 일했다. 그 22일 중 7일은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다. 사고를 낸 기사에게는 휴식이 너무 부족했고, 피로로 인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 운전 기사는 2020년 7월 과실치사로 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19년 6월에는, 알로하 운수 회사의 운수 노동자가 창화 지역 고속도로에서 운전 도중 잠드는 사고가 발생했다. 버스가 도로에서 굴러 떨어져, 3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다쳤다. 2020년 5월에는 타이베이 시내 버스 운전 노동자가 피로로 인해, 버스 정류장에서 다른 버스에 부딪쳤다. 이 사고로 3명이 다쳤다. 

대만에서 최근 몇 년 사이 발생한 이 사고들은, 장시간 노동과 부족한 휴식 시간 때문에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과로는 운전 노동자의 건강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공공의 안전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과로 고위험군' 운수 노동자
 

타오위엔 버스 회사는 버스 운전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을 허위로 기록하게 했다. ⓒ wikipedia

 
장시간, 연장 노동을 하던 버스 운전사와 관련된 치명적인 사고가 연달아 발생한 후, 운수 노동자의 과로 문제는 지난 몇 년 사이, 대만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버스 운전자는 운전을 시작할 때 근무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버스에 USB 드라이브를 삽입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8월 타오위엔 버스 회사에서, 운전자의 과로를 숨기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USB를 2개 사용하도록 요구한 것이 드러났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회사의 많은 운전자들이 하루에 13~16 시간 일하고 있다. 이 회사 운전 노동자들은, 10시간 미만의 휴식을 취하고, 다음 날 아침 5~6시에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현지 언론이 이러한 비리를 폭로한 후, 타오위엔시 교통당국은 해당 버스 회사를 두 차례 조사했지만, 부정행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중에 신주시 교통당국이 동일한 회사를 다시 조사하니, 245건의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타오위엔시 교통 당국의 조사가 철저하지 못 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만 노동보험국에서 제공하는 통계에 따르면, 운수 및 창고업 노동자들은 업무관련 뇌심혈관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다. 2011년부터 2019년 사이 총 679명이 업무관련 뇌심혈관질환으로 산재 보상을 받았다. 이 중 104명이 운수 및 창고업 노동자들이다. 운수 및 창고업은 서비스업과 제조업에 이어 업무관련 뇌심혈관질환 발생이 세 번째로 높은 업종이다. 

운수 및 창고업 노동자들은 대만 전체 노동자 중 4%밖에 안 된다. 그런데, 심장질환이나 뇌혈관질환으로 산재 보상을 받은 사람 중 15%가 이 업종 노동자다. 운수 및 창고업 노동자들이 업무로 인한 뇌심혈관질환으로 고통 받을 위험이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만보건연구원 산하의 대만환경건강과학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Environmental Health Science)의 연구자 우웨이테(吳威德)의 연구 결과를 보자. 그는 2005년부터 2012년 사이에 1650명의 버스 운전 노동자를 대상으로, 사회심리적 업무 환경이 심혈관계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연구를 시행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상 버스 운전 노동자의 42%가 '과몰입(overcommitment)'을 보였다. '과몰입'은 퇴근 이후에도 계속해서 업무 관련한 생각을 하거나, 업무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를 뜻한다. 이렇게 '과몰입'을 보이는 노동자는 그렇지 않은 노동자에 비해 심장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7.36배 높았다. 허혈성심장질환으로 좁혀서 보면, 그 위험이 더 높아졌다. '과몰입'을 보인 노동자는 그렇지 않은 노동자에 비해 허혈성심장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11.57배 높았다. 

같은 연구에 따르면, 40% 넘는 노동자가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와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킬 개인적 시간이 부족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 노동자들은 '업무'에만 자신의 모든 주의를 기울였고, 이렇게 해서 '과몰입' 상태가 되었다. 업무에 과몰입한다는 것은, 불안정한 교대근무 때문에, 자주 장시간 노동을 한다는 뜻이다. 과몰입하는 노동자들은 수면의 질도 낮은 경향이 있었고, 장시간 노동이나 수면의 질이 나빠지는 것은 모두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운수 노동자의 과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만에서는 버스 운전 노동자가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직전, 승객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버스를 가까스로 길가에 세웠다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언론은 운수 노동자의 이런 숭고한 행위를 칭찬한다. 하지만 우리는 운수 노동자들이 영웅심을 발휘할 것을 바라지 않는다. 반대로, 운수 노동자들이 과로와 소진 때문에 교통사고를 일으켜, 비난받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유사한 교통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버스 회사들과 정부가 공동으로 책임지고, 버스 운전 노동자들에게 안전한 노동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대만의 시민단체 OSHLink의 활동가 황이링 님이 작성하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번역했습니다. 이 기사는 동아시아과로사감시 홈페이지(https://sites.google.com/view/kwea)에 영어로 올라와 있습니다.
#과로사 #운전 #대만 #버스_기사 #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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