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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흘러도 변하지 않는 문제... 검찰에 지금 필요한 건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재정비 없이 집단행동? 선후망각

등록 2020.11.02 12:47수정 2020.11.0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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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은 지난 10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대법원, 감사원, 헌법재판소, 법제처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일부 검사들이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인사권 문제나 라임사건 수사지휘권 등에 맞서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사를 그런 식으로 다룬다는 것은 마치 박근혜 정부의 최아무개씨 인사농단 느낌이 든다"(이복현 대전지검 검사), "법무부의 방침에 순응하지 않는 검사들을 감찰 등 갖은 이유를 들어 사직하도록 압박하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냐?"(최재만 춘천지검) 등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적지 않은 검사들이 이런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검찰이 돌아볼 대상은 '검찰 밖'이 아니라 '검찰 안'이다. 라임사건으로 구속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입장문에서 검찰 조직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또다시 제기됐다. 그래서 검찰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문제의 진상을 밝히고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김봉현은 10월 16일 공개된 1차 입장문에 "2019년 7월경 A변호사와 검사 3명 술접대" "청담동 소재 룸살롱 1000만 상당"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검사 1명 얼마 후 라임 수사팀 합류"라고 한 다음 "특수부 검사들로 이루어졌고, 소위 말하는 윤석열 사단-삼성 특검 등 함께 근무"라고 덧붙였다.
 
김봉현은 체포 1개월 뒤인 지난 5월 말 서울 남부지검에서 겪은 일과 관련해 "2020. 5월말 서울 남부지검 도착 - 전에 술 접대 자리에 있던 검사가 수사 책임자였음"이라고 쓴 뒤 "A변호사 수원구치소 면회 와서 서울 남부지검 가면 아는 얼굴 봐도 못 본 척 하라고 함"이라고 썼다.
 
김봉현의 입장문에 거론된 일은 검찰개혁 문제가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이후의 일들이다. 검찰개혁이 국민적 관심사가 된 상황 속에서도 검사들이 구태의연한 술접대를 받은 게 사실이라면, 검찰개혁에 대한 해당 검사들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 그들을 방치하는 검찰 조직에 대해서도 의심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검사 스폰서 사건' 이전부터... 검찰의 고질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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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8월 10일 '동아일보' 9면에 실린 '법조계 실상과 과제'(30) 기사. 판검사들이 받는 접대 문화에 대한 취재 기사다.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동아일보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술접대·성접대로 2010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검사 스폰서 사건'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알코올 중독 이상의 '술접대 중독'에서 대한민국 검찰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이 문제의 해결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보다는 덜했지만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열망이 높았던 6월항쟁 이후의 대한민국에서도 검사 술접대는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항쟁 5년 뒤에 발행된 1992년 8월 10일 치 <동아일보>에 '법조계 실상과 과제' 시리즈의 30번째로 '판검사 물주 자원 향응 공세'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서두에서 "판검사와 룸살롱과 골프"라고 한 뒤 "표현은 좀 야릇하지만 세 가지의 상관관계는 오늘날 판검사들의 공사(公私) 생활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평가한다.

기사에는 P시에서 10년 가까이 활동한 K라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K변호사는 시국사건 변론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여느 변호사에 비해 수입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변호사에게도 '술값 좀 내라'는 연락이 조직폭력배도 아닌 검사한테서 주기적으로 왔다고 한다.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평소 술을 즐겨 마시는 P검사가 검찰 정기인사 때만 되면 미안한 표정으로 '전출입하는 검사들과 회식을 해야 하는데'라며 난처한 표정을 짓곤 한다는 것. 이는 바로 술자리 스폰서가 돼 달라는 의미다. 그래서 P검사가 P시에 근무한 2년여 동안 모두 대여섯 차례 정도 고급 술집에서 술대접을 했다고 한다. 한번 접대에 든 비용은 대략 50~1백만 원 정도."
 
P검사한테만 2년여 동안 대여섯 차례 대접했고, 매회마다 50만~100만 원이 들었다. 2년여 동안 최저 250만 원에서 최고 600만 원의 술값이 들어간 것이다.
 
1980년대 후반에 공장 지대인 서울 영등포에서 '시다'로 불리는 미숙련공의 초봉은 15만 원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K가 P검사를 접대한 시기는 1980년대 초반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다. P에게 들어간 술값은 미숙련 노동자가 1년 내지 4년간 받을 봉급이다. 시국사건을 주로 맡은 K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됐을 것이다.
 
P검사는 K변호사보다 돈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술값을 부담시킬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K에게 부담을 씌운 이유가 있었다. P검사는 "남들 하는 것처럼 아무나 물주로 데려가면 공짜로 술대접이야 받을 수 있겠지만, 유착될 소지가 크고 남의 이목도 신경이 쓰인다"고 K에게 털어놨다고 한다. 같은 법조인한테 얻어먹는 게 안전해서 K 당신에게 부탁하는 거라고 해명했다는 것이다.
 
P검사가 그런 '용단'을 내리게 된 것은 검찰의 부조리에 대한 나름의 경계심 때문이었다. 선배 검사들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얻어먹는 모습이 개탄스러워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에 K에게만 부담을 씌웠다는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P검사는 K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도 이따금씩 선배 검사들을 따라 고급 룸살롱에 가보면 유흥업소 주인이나 사업가 등 물주들이 끼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선배 검사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업소 사장이나 사업가들이 검사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게 거슬려서 자신은 그들이 아닌 동료 법조인에게 술값을 부담시키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검사 술접대로 인한 부조리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축적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검사 봉급이 술값 낼 정도에도 못 미쳤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술값을 스스로 내지 않고 남에게 부담시킨 것은 일부 검사들이 자기 봉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비싼 술집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비싼 술집에 가는 것이 꼭 비싼 술을 맛보기 위해서는 아니다. 옆에 앉아 술시중을 들 사람을 원하기 때문인 경우가 잦다.

술접대가 낳는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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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이 터졌다. 한 건설업체 대표가 수십명의 검사들에게 금품, 향응을 접대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사진은 2010년 4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참여연대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사진 맨 오른쪽에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인 남인순 의원이 보인다. ⓒ 유성호

 
검사에 대한 술접대는 성접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 말고도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검찰의 불법수사, 기소권 남용, 제식구 감싸기, 짜맞추기 수사, 정치 편향적 수사 같은 여타 부조리와는 결을 달리하는 또 다른 위험성이 술접대 문제에 들어 있다.
 
공직자의 일원인 검사는 고용주인 국민에게 충성해야 한다. 국민의 대리인인 정부가 검사에게 봉급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검사가 열심히 직무를 수행하는 동기 중 하나도 이 같은 금전적 대가관계에 있기도 하다.
 
그런데 검사가 국민과 정부가 아닌 제3자로부터 지속적으로 물질적 이익을 받거나 봉급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게 되면, 검사는 자연스레 제3자에게 종속될 가능성이 상당히 커진다. 국민뿐 아니라 제3자도 검사의 실질적 고용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검사 직무의 공정성을 위협할 만한 조건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술을 얻어먹었지만 종속된 쪽은 내가 아니라 술값 낸 쪽'이라고 변명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훨씬 더 부조리한 일이다. 제3자한테 지속적으로 얻어먹고도 제3자를 지배한다면, 이 관계는 갈취 관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을 우리 사회는 흔히 '조폭'이라고 부른다.
 
사실,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남한테 지속적으로 얻어먹고도 남을 지배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일부 검사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은 잘못된 느낌이기 쉽다. 자기한테 굽실거리며 술을 사고 용돈을 주는 물주를 보면서 검사는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 관계로부터 실질적 이익을 얻는 쪽은 검사가 아닌 물주인 경우가 많다. 물주는 자신이 제공하는 술값과 용돈 이상의 이익을 얻고 있을 수도 있다.
 
얼굴 인상은 사람의 살아온 길을 상당부분 반영한다. 주도(酒道) 역시 어느 정도는 그렇다. 술을 대하는 자세는 한 인간에 관한 정보를 적지 않게 알려준다.

선후망각
 
상당수의 대한민국 검사들은 바로 이 문제에서 도덕적 흠결을 노출했다. 누구와 술을 마셔야 하는지,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누가 술값을 내야 하는지 등과 관련해 지탄 받을 만한 일을 많이 했다. '주도'를 모르는 검사들이 한둘이 아니란 이야기다.

일반적인 경우, 술값은 사회적으로 좀 더 혜택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내게 된다. 상당수 검사들은 '우리가 대한민국을 이끌어간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 자부심에 걸맞은 공직자가 되려면, 술값은 자기 스스로 내는 품위를 함양할 필요가 있다. 김봉현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1000만 원짜리 술을 얻어먹는다면, 사회를 이끌어갈 만한 품위를 갖췄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김봉현 입장문으로 인해 한국 검찰의 고질적인 '품위 문제'가 또다시 불거진 이 시점에서, 검찰이 신경 써야 할 일은 사안의 진상을 국민에게 명확히 알리고,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지는 일이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 검찰은 자신들의 '주도'와 도덕성을 재정비하고 집단적인 자성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 밖을 향해 집단행동의 조짐을 보이는 것은 일의 선후를 망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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