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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참전했는데 한국이 항복?" 유명희 진퇴 결정 못한 정부

청와대·부처간 회의 거듭했으나 결론 못 내려... 미 대선 향방 지켜볼 듯

등록 2020.11.02 12:06수정 2020.11.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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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기구(WTO) 차기 사무총장 선거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한국의 유명희 후보와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 ⓒ AFP=연합뉴스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에서 열세에 놓인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거취를 여전히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주와 주말을 거쳐 청와대를 비롯한 관련 부처간 회의를 거듭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내심 유 본부장의 사퇴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WTO가 지난주 회원국간의 투표에서 나이지리아 후보의 우세를 선언하고 사실상 유 후보의 사퇴를 압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미 다수가 상대국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공표된 마당에 막판 뒤집기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뒤늦게 선거전에 뛰어든 미국이 유 본부장 지지를 '사수'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졌다. 뒷짐을 지고 있던 미국은 선거 막판이 되어서야 모든 재외공관에 주재국 정부로 하여금 유 후보를 지지하도록 '점잖게' 주문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가, 투표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고서야 나이지리아 후보에 대한 반대를 선언하고 나섰다.

WTO 사무총장 선거는 표의 많고 적음이 아니고 회원국들간 컨센서스 방식(전원합의제)이라서 한 나라만 반대하면 당선자를 뽑을 수 없다. 게다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반대하는 상황이라서 WTO는 대혼란에 빠졌다.

'아름다운 사퇴'와 '끝까지 버티기' 사이에서 고민

정부 내에서는 유 본부장의 거취를 두고 '깨끗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래도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퇴해야 한다는 쪽은 어차피 막판 뒤집기가 불가한 상황에서 미국의 힘만 믿고 버티다가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공연한 떼'를 쓰다가 코로나19의 성공적인 대처로 전에 없이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자칫 큰 손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설사 끝까지 버티다가 미국의 힘으로 당선된다 해도 과연 난제가 산적한 WTO 총장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겠냐는 문제가 생긴다.

지켜봐야 한다는 쪽은, 좀 무리하지만 그래도 동맹인 미국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한 관계자는 "지금 사퇴해버리면 한반도에 전쟁이 나서 미국이 참전했는데 한국이 바로 항복해버린 꼴 아니냐"며 미국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WTO 사무총장 선거는 하루 뒤로 다가온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전문가나 외신들은 미 대선에서 다자주의 무역 질서를 존중하는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미국의 강경한 입장이 누그러져 유 본부장의 조용한 후퇴가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그러나 설사 그렇더라도 트럼프 정권의 임기는 내년 1월 20일까지이고, 그 때까지는 새 사무총장 자리가 공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WTO #유명희 #오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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