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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버스에 치이는 꿈을 꿔요"

[나는 배달노동자 ③-2] 8년차 라이더 이성진

등록 2020.11.05 08:05수정 2020.12.1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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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 인터뷰 기획 '나는 배달노동자'는 인권재단사람 정기공모사업 '2020 인권프로젝트-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구술작가 2명이 10대~50대 라이더 5명을 인터뷰해 정리한 글을 정기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편집자말]
(*이성진씨 이야기 1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전 기사] "너, 강남 가면 잘하겠다"... 라이더에게 일어난 불행 


배달플랫폼 기업의 전횡은 사실 예상된 것이었다. 지난해 12월 13일, 한국 사회에는 놀라운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배달주문 앱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한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합병한 것이다. 배달주문 앱 시장의 98.7%를 점유한 초거대 기업의 탄생이다.

우월적 지위는 횡포를 낳기 마련이다. 올해 4월 불거진 배달의민족 가맹점 수수료 인상 사건이 그 예다. 배달의민족은 여론이 악화하자 며칠 만에 사과하고 수수료체계를 되돌렸다. 배달의민족과 요기요의 기업결합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심사 중이어서 몸을 사렸다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자칫 대박의 꿈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맹점에 대한 횡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눈치를 봤지만, 라이더에 대해서는 어떠했을까.

배민의 갑작스러운 근로시간 제한은 작은 예에 불과하다. 기업결합 이전에도 사측은 라이더의 근무 조건을 자주 바꿨다. 의견수렴이나 합의 과정은 없었다. 눈치 볼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과 라이더의 관계가 전통적인 사용자-노동자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라이더들은 개인사업자며, 플랫폼은 상점과 라이더의 단순 중개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인지 아닌지는,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실제 노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기를 보고 판단한다.

기업이 무법지대를 내달릴 때, 제동을 거는 목소리는 노동자들에게서 나온다. 작년 11월 5일, 배달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라이더도 '노동자'라는 판단이 처음 나왔다. '요기요플러스' 소속의 라이더 5명이 고용노동부 서울북부지청에 진정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화들짝 놀란 플랫폼 기업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업무지시와 감독의 흔적을 지우고자 애썼다. 라이더에게 업무지시를 내리던 메신저 방을 삭제했고, 계약서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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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 '라이더 안전보장법 제정하라'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 10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라이더안전보장법' 촉구 집중행동 돌입 기자회견에서 관련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의민족과 요기요의 합병이 발표된 뒤, 배달의민족에게 단체교섭을 요청했다. (단체교섭은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권리보장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활동이다. 교섭의 결과로 맺어진 노사 간 협약은 구속력을 갖는다.) 배달 대행 플랫폼이 생긴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성진은 이 소식을 보도한 기사로 라이더유니온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히 교섭 때문에, 나 한 명이지만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조합에 가입했어요. 그리고 라이더유니온이 주관하는 활동을 몇 번 해봤는데, 다른 사람들의 말속에서 저의 과거를 보는 거 같았어요. 내가 겪었던 부당한 일을 남들도 겪고 있었구나. 지금도 겪고 있구나."

이성진은 살면서 거리에 나와 무엇을 주장해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마음에 질문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돈 버니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이 특수고용직 라이더라는 게 언제부터 생겼는지, 나라에서 관리 감독은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많이 들더라고요. 일은 하는데 노동자가 아니다? 이게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살아야겠다는 생각 뿐

이성진은 스물다섯에 오토바이 배달을 시작했다. 전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부모에게서 독립했기 때문이다. 머물 곳부터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진짜' 독립이었다. 이성진은 첫 급여를 받을 때까지 찜질방에서 잠을 잤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성인이 되었으니 자기 삶을 살아야 할 뿐이었다. 이성진의 부모는 남다른 교육관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성진이 일찌감치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했을 때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었다. 다만 오토바이를 타는 데 드는 비용은 스스로 해결하게 했다. 결정도 책임도 자기 몫으로 가르쳤다.

이성진은 어린 시절 엄마의 손에 이끌려 판소리를 시작했다. 변성기가 오기 전까지는 소리꾼이 될 미래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목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날이 계속되자, 한 가닥 의문이 피어올랐다. '이게 정말 내 길이 맞나?'

정체성과 미래에 관한 물음은 가슴 속에 질풍과 노도를 만들었다. 악기로 전공을 바꿔봤으나 답이 아니었다. 인생을 사는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사실 이성진의 독립은 그때부터였다. 부모님의 집에서 머무르긴 했지만, 자기 삶을 책임졌다. 농수산물도매시장의 직원으로 시작해 다양한 일을 거쳤다.

이성진에게 배달 대행은 '평등한' 직종이었다. 학력도 경력도 배경도 내세울 필요 없었다. 좋아하는 오토바이를 타면서 돈을 번다는 점도 끌렸다. 이 일이 내 '평생직장'이 될 수 있길 바랐다. 8년 차가 된 지금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위험'이다.

"저희는 공업용 마스크가 필수예요. 도로 위에서 매일 매연을 마시니까요. 미세먼지 나쁠 때 도로 위는 더 나쁨. 처음에 뭣도 모르고 버스 뒤에 서 있다가 출발할 때 배기가스를 들이마시고 이틀 동안 앓아누웠던 적이 있어요."

오토바이에 몸을 싣는 라이더들은 날씨에 민감하게 영향받는다.

"여름에는 노면에 지글지글 올라오는 아지랑이가 진짜 어마어마해요. 작년에 뉴스에서 봤는데 아스팔트 온도가 75도인가까지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일하는 동안 쉬지 않고 물을 마셨어요. 하루에 8, 9리터는 먹은 거 같아요. 그렇게 먹었는데 화장실을 한 번도 안 가요. 다 땀으로 나와서. 헬멧은 통풍이 안 되고, 조끼 같은 건 자주 빨지 못하니까 냄새도 많이 나고.

그래도 저는 겨울이 더 힘든 거 같아요. 그때는 그냥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엔 안 들거든요. 일하면서 가장 추웠을 때가 마이너스 18도였어요. 체감온도는 30도 가까이 된 거 같아요. 군생활을 강원도에서 했는데, 진짜 강원도만큼 추운 거예요. 야간에 일할 때인데 눈물 같은 게 흐르다가 얼어버려요. 2시간쯤 일했는데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욕 안 먹으려면 빨리 가야 해  

미세먼지, 혹한과 혹서가 몸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비 오는 날은 사고위험이 커진다. 물 고인 맨홀, 페인트가 발린 과속방지턱과 횡단보도 위를 지나칠 때 아찔한 순간이 찾아온다. 미끄러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오토바이는 강풍에도 취약하다.

"8차선대로였어요. 1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려고 했는데 돌풍이 불어서 우회전을 해야만 했어요. 그대로 갔다가는 넘어갈 거 같더라고요. 너무 놀라서 잠깐 쉬었던 경험이 있어요. 옆에 보니 다른 오토바이들은 다 넘어가 있더라고요. 그렇게 넘어가면 수리해야 해요. 다 돈이죠."

올해 8월, 전국이 태풍 '바비'의 영향권에 들 것으로 예상된 날 '쿠팡이츠'는 소속 라이더들에게 프로모션(성과급)을 내걸었다. 오후 5시부터 마감 때까지 15건 이상 배달을 하면 5만 원의 가산금을 주겠다는 예고였다. 악천후에 저녁 시간이면, 주문량이 폭증하는 때다. 라이더가 더 많이 필요하므로 성과급을 내거는 것이다. 그런데 악천후에 저녁 시간이면, 라이더의 사고위험 또한 급격히 커진다. 라이더의 안전 따위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에는 "호우경보나 대설경보 등이 발령되면 배달을 금지하고 강수량별 배달 거리를 1~1.5㎞ 이내로 제한하라"고 '권고'만 할 뿐이다. 기업이 지키지 않으면 그뿐이다. 강풍에 관한 규정은 아예 빠져있다. 규제가 느슨하면 노동자의 안전이 무너진다. 기업은 법 앞에서만 착해진다.

논란이 되자 쿠팡이츠는 프로모션을 축소해 진행했다. 배민과 요기요는 올해 태풍이 왔을 때 배달 범위를 축소하거나 잠시 중단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프로모션 제도 자체다. 기본급을 낮게 두고 성과급을 제공하는 방식의 급여체계가 라이더의 안전엔 가장 큰 위험요소다. 프로모션이 없을 때도, 있을 때도 위험을 무릅쓰고 질주하게 만든다.

"흘러가는 시간이 다 돈인 거예요."

이성진은 매일 도로에서 아찔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무서워요. 되게 무섭죠. 푹 잠들기 전까지는 항상 사고 나는 상상을 해요. 버스에 치이는 꿈. 트럭에 치이는 꿈… 사고 났던 게 그대로 재현되기도 하고… 사실 배달을 하루에 200킬로씩 하면서 사고 안 나는 게 이상한 거죠. 주위에서 그런 케이스를 많이 보기도 하고.

한번은 1차선에서 신호를 받고 정차해있는데, 맞은 편에서 오던 오토바이가 사고 나는 걸 본 적도 있어요. 제 바로 앞에서. 근데 그때는 별로 와닿지는 않더라고요. 요즘 영화에 특수효과가 잘 되어 있어서 그런가. '안타깝다. 근데 나 빨리 가야 해.' 약간 이런 느낌…

일이 밀려 있을 때였거든요. 돈을 벌겠다기보다는 늦게 가면 욕 먹어, 욕 안 먹으려면 빨리 가야 해, 그게 가장 컸어요. 압박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압박감이 감정을 얼어붙게 했다. 공포는 꿈으로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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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점심시간 서울 시내에서 배달하는 라이더 뒤로 햄버거를 포장한 시민이 가게를 나서고 있다. 2020.9.10 ⓒ 연합뉴스


배민라이더스는 전투콜 방식에서 인공지능(AI)이 배차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배차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고리즘에 대해 노동자는 알 수 없다. 또 하나 문제는 AI 배차가 배달지까지의 거리를 '직선거리'로만 잡는다는 점이다. 하늘을 날아가지 않는 이상 라이더가 직선으로 이동할 재주는 없다. 라이더들은 늘 시간에 쫓긴다. 배달 시간에 불만을 가진 고객은 주문을 취소하거나 라이더에게 분풀이를 한다. 쿠팡이츠의 경우 최근 배달 시간 제한은 없앴지만, 평점제도를 운영해 라이더를 압박한다.

"저희도 사람이잖아요. 어떤 상황이 있을 줄 모르는 거잖아요. 차가 막히는 곳도 있고요. 배달 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안 와서 늦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점심시간에 회사건물 같은 데 잘못 배달 가면은 정말 25층부터 걸어서 내려와야 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해요. 오다가 넘어질 수도 있고요. 저는 로봇이 아니거든요."

(*이성진씨 이야기 3편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기사] "600만 원 번다니... 배민이 말하지 않는 것들"
#라이더유니온 #라이더 인터뷰 #배달 #플랫폼노동 #배민라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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