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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 원 번다니... 배민이 말하지 않는 것들"

[나는 배달노동자 ③-3] 8년차 라이더 이성진

등록 2020.11.05 08:05수정 2020.12.1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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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 인터뷰 기획 '나는 배달노동자'는 인권재단사람 정기공모사업 '2020 인권프로젝트-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구술작가 2명이 10대~50대 라이더 5명을 인터뷰해 정리한 글을 정기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편집자말]
(*이성진씨 이야기 2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전 기사] 
"늘 버스에 치이는 꿈을 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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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으로 '2.5 단계 방역 조치'가 시행된 30일 서울의 한 도로에서 배달 라이더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2020.8.30 ⓒ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 이후 배달주문이 늘어나면서 올 상반기 이륜차 교통사고 건수는 작년보다 5.9%나 늘었다. 사망자 수 역시 13%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배달서비스 시장으로 유입된 것이 이유라는 분석이다. 배달노동자들의 사망사고는 일을 시작한 초기에 집중된다. 업무가 미숙할 때이기 때문이다. 사망사고의 증가는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배달노동자들이 늘어난 배달량을 소화하기 위해 무리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구직 사이트 들어가서 배달 대행 검색하면 월 600만 원, 월 800만 원 이런 식으로 자극적으로 글을 써놨어요. 최대한 많은 사람을 모으려고. 광고는 정말 휘황찬란하게 하거든요. 그런 글에 현혹돼서 초보자들도 너무 쉽게 진입하는 거 같아요. 그렇게 벌려면 그만큼의 위험이 따른다는 거를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라이더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뉴스에서도 그러는데 그렇게 버는 사람은 소수예요. 게다가 오토바이 리스비라든가, 기름값, 수리비, 보험료 등등 매달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해요. 그런 건 말하지 않거든요."


배민라이더스나 커넥터로 일하려면 유상운송보험이 필수다. 유상운송보험은 배달 대행이나 퀵서비스 노동자처럼 대가를 받고(유상으로) 운송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들어야 하는 보험이다. 자동차 소유주가 보험을 드는 이유는 두 가지다. 나의 책임으로 인한 사고 발생 시 상대 차량과 운전자에게 보상해주고, 내가 입은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서다. 전자까지만 가능하면 '책임보험', 후자까지 가능하면 '종합보험'이다. 그런데 이륜차(오토바이)는 종합보험에도 내가 입은 피해 보상에 대한 보장은 아예 없다. 그런데도 이륜차용 유상운송보험은 보험료가 어마어마하다. 책임보험으로만 한정해도 수백만 원이 기본이다.

"경력과 나이와 오토바이 CC에 따라 달라요. 1년에 내는 보험료가 주위에서 90만 원부터 많게는 800만 원까지 본 거 같아요. 만26세, 125CC, 남자 1년 차 기준으로 작년 9월에 600만 원 정도 하더라고요. 나이가 어릴수록 더 많아져요. 만19세, 20세는 1200만 원, 1300만 원씩 해요. 36세인가 넘어가면 그때부턴 확 줄고.

내가 사고를 안 내도 보험료가 해마다 계속 올라요. 지금도 되게 많이 오르고 있어요. 800만 원 냈던 사람이 지금 조회를 해보니까 1200만 원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작년에 170만 원 정도 낸 거 같아요. 제가 30대고, 7년 무사고라서. 그런데 얼마 전에 사고가 났었어요. 그것 때문에 다음 보험이 거절될까봐, 혹은 정말 큰 폭으로 뛸까봐 걱정하고 있어요."


높은 보험료는 라이더들의 보험 가입률을 떨어뜨린다. 들기 싫어서가 아니라 들 돈이 없는 것이다. 배달 대행 라이더는 전국적으로 십 수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유상운송보험에 가입한 라이더는 2만 명 수준이다. 보험료가 싼 출퇴근용이나 비유상운송보험을 드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보험료를 현실화하는 방안을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배달은 수평이 중요해요

이성진의 휴대폰에는 배달지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다. 복잡하고 저마다 다른 구조의 건물들을 누비며 최단 거리로 배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다. 어느 건물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왼쪽으로 가야 하고, 어느 건물의 몇 호까지는 오피스텔이라 4층까지만 갈 수 있고, 어느 아파트는 오토바이가 출입할 수 없어 걸어 들어가야 하고….

"성격이 피곤한 스타일이라서. (웃음) 적어놓고 다른 사람들한테 공유도 할 수 있고. 남들 도와주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모든 일에는 그 일만의 전문성이 생겨난다. 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다. 라이더에게는 최단 거리를 빠르게 파악하는 것만큼이나 음식을 흐트러지지 않게 가져가는 노하우도 중요하다.

"수평이 흐트러지면 안 돼요.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게 피자. 갓 나온 피자를 꺼내면 정말 뜨거워요. 그대로 커팅하면 빵 사이로 치즈가 흘러내려요. 커팅하기 전에 치즈가 좀 굳게 살짝 식히는 작업을 해야 돼요. 그게 10초 정도 돼요. 그 10초를 안 지키면 배달 중에 치즈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거예요. 실링을 정확히 안 해줘서 오뎅국물 같은 게 다 튀는 경우도 있어요. 그걸 업장에서 다 확인하고 출발해야 해요."

회사는 배달된 음식 상태의 책임을 라이더에게 묻는다.

"배달 가던 음식이 엎어졌을 때 제가 교통사고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재조리 비용을 제가 부담하거나 음식값을 물어내는 게 대부분이에요. 한번은 떡볶이였는데 치즈를 뿌려주나 봐요. 배달 가다가 섞여서 없어진 건지 처음부터 안 넣어준 건지 모르겠는데, 그 치즈가 없다는 이유로 고객이 음식 안 먹겠다고 해서 라이더 귀책 사유로 돈 물어준 적 있어요. 되게 억울했어요. 1시간 동안 일을 안 했어요."

잘못도 없이 1만 원이 넘는 돈을 물었다.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회사의 갑질도, 고객을 상대하는 일에도 단련이 되었다 싶지만, 매번 쉽지 않다.

"여러 플랫폼을 돌려가면서 자주 시켜 드시는 분이 계세요. 저도 여러 플랫폼을 돌아가면서 일을 하다 보면 그 집이 걸릴 때가 있어요. 그 고객님은 가면 일단 짜증을 내세요. 왜 늦었느냐부터 시작해서, 조용히 올라오시지 왜 개가 짖게 만드냐는 말도 들었어요. 그래도 최대한 공손하려고 노력해요.

예전에 한번은 여름에 청담동 고급빌라촌에 배달을 하러 갔어요. 수박 두통에 물 한 묶음, 진짜 무겁거든요. 집 앞까지 가려고 했는데 오토바이는 못 들어간다고 막아요. 빌라 앞은 오르막이라 한참 밑으로 내려가서 평지에 주차하고 그걸 다 끙끙 메고 올라왔어요. 물건을 집안에 들여놓고 '결제 도와드릴게요' 했는데, '당신한테 냄새나니까 밖에 나가 있으라'라고 하더라고요. 충격받았죠. 물건 내려놓기 전에 이야기하셨으면 제가 안 들어갔을 텐데, 받을 서비스는 다 받고 그런 말을 하니까 못 참겠더라고요. 근데 또 화를 낼 수는 없고."


프로모션보다 필요한 것

이성진은 올해 라이더유니온과 하는 시위에 몇 차례 참여했다.

"시위가 있을 때마다 회사에서 돈을 많이 뿌려요. 보통은 점심시간만 프로모션을 주는데 종일 주더라고요. 시위 가지 말고 일하라는 뜻 아닐까요? 저도 좀 혹했어요. 뭐? 건당 금액이 이 정도라고? 되게 아쉬웠죠. (웃음)"

한 건이라도 더 배달해야 수입이 늘다 보니 이성진은 때로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런 그가 하루 벌이를 제쳐두고 나왔다. 이성진의 삶에선 역사적 사건이었다. 회사의 갑질도, 고객을 상대하는 일에도 그저 '버티는 게 답'인 때를 보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지기를 바란다. 성과급 체계가 아닌 적정한 배달료가 도입되고, 배달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온다면, 좀 더 안전하고 좀 덜 혹사할 수 있는 라이더의 삶도 가능하다.

이성진은 스물다섯부터 혼자 힘으로 삶을 꾸려왔다. 이제는 은퇴한 부모님께 생활비도 드린다. 가족들과 있을 때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남들 보기에 대단한 미래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이제 그런 게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안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선 자리를 조금씩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이런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30만 명 정도 된대요. 정부 부처에서 규제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은 미래를 바라보고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야 되잖아요? 지금은 삶이 팍팍하다 보니까 미래를 그리지 못해요. 노동자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정부에서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배달 #플랫폼노동 #라이더유니온 #배민라이더스 #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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