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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의 '부지런한 사랑'을 보며, 떠올린 한 사람

[에디터만 아는 TMI] 이주영 기자가 시민기자에게 쓴 '에디터스 레터'를 권하며

등록 2020.11.04 18:25수정 2020.11.0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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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만 아는 시민기자의, 시민기자에 의한, 시민기자를 위한 뉴스를 알려드립니다.[편집자말]
책 <부지런한 사랑>을 다 읽고 생각했다. 정말 잘 지은 제목이라고. 제목 그대로 '부지런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글들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스물셋의 나이에 글쓰기 선생을 자처했지만, 가르쳐 주는 것보다 배우는 게 더 많다고 말하는 이슬아 작가. 그랬기에 지금까지 가르치고 글을 쓸 수 있었다는 작가다. 아니 쓰기 위해서라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작가다. 

그가 글을 가르친 여수 아이들에게 '사랑을 담아' 쓴 편지는 그저 읽고 넘어가기엔 아까울 정도였다. 매일 하나씩 읽으려고 그 챕터는 일부러 남겨뒀다. 아이들에 대한 부지런한 사랑과 정성 없이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문장들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이 글에서 아이들과 글에 대한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이슬아 지음 <부지런한 사랑> 중 일부 ⓒ 최은경

 
그런데 가만 있자... 어쩐지 이 '부지런한 사랑'이 익숙했다. 낯설지가 않았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떠오른 게 있었으니, 바로 이주영 편집기자다. 그가 2019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쓴 연재기사 '에디터스 레터'에서 내가 받은 느낌이 딱 이랬다. 누군가에게 정성을 다하는 마음.


이슬아 작가에게 글방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에게는 시민기자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 이게 전혀 근거 없는 말이 아닌 이유를 지금부터 하나씩 짚어볼까 한다. 

누군가에게 정성을 담아 칭찬하는 일
 

이주영 편집기자가 연재한 에디터스 레터. ⓒ 최은경

 
이주영 편집기자는 '어떻게 해야 사는이야기 기사를 잘 쓸 수 있나요?'라는 시민기자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해 난감했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게는 (기사를 잘 쓸 수 있는) 답이 없지만 시민기자 글에서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시작한 게 '에디터스 레터'였다. 

☞ 연재기사 에디터스 레터 보러가기 
 
시민기자들의 기사를 읽다가 '좋다' '잘 쓰셨다'는 느낌이 들면 메모해뒀다가 격주 화요일마다 시민기자들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왜 이 기사가 좋았는지, 어떤 지점이 돋보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으려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에디터로서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유익한 기사란 무엇인가 깊이 고민했고, 시민기자들의 기사 속에서 그것들을 배워갔습니다.

근 1년간 쓴 22개의 편지는 그런 마음으로 시민기자들에게 보내졌다. 내게는 그것이 이슬아 작가가 여수 아이들에게 '사랑을 담아' 쓴 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을 때를 회고하며 이슬아 작가는 "다음 일요일에도 찾아올 언니들을 위해 나는 칭찬의 말을 열심히 준비하고 싶었다. 최대한 정확한 칭찬을 해드리고 싶었다. 그들보다 덜 살아서, 그리고 덜 알아서 열심히 읽는 수밖에 없었다"라고 썼다. 

'최대한 정확히 칭찬하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과 '왜 이 기사가 좋았는지, 어떤 지점이 돋보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으려 노력했다'는 이주영 편집기자의 문장이 내게는 하나의 마음으로 읽혔다.
 

이주영 편집기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시민기자의 글들이 책으로 나왔다. ⓒ 최은경

  

신소영 시민기자의 책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 프롤로그 중에서 ⓒ 최은경

 
그 칭찬의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올해 책을 낸 시민기자 책 중에 '이주영 편집기자'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내용이 빠지지 않았다. 내가 편집기자 일을 하는 동안 거의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었다. 연재를 시작할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하고, 끝까지 쓸 수 있도록 격려하는 모습에 시민기자들은 감동했다. 단언컨대 이주영 기자 때문에 쓸 수 있었다고 서슴지 않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일하는 태도에서 내가 본 백미는 '시민기자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검증된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줄 수 없는 무엇이 시민기자의 글에는 있었다. 서툴지만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 좋은 기사를 쓰고 싶다는 간절한 의지. 청년의 사기를 북돋우는 공익 광고에서나 볼 법한 '열정'이란 두 글자가 그들의 문장에서 느껴졌다. 삶의 우여곡절을 다 겪어냈지만, 여전히 뜨거운 어른들. 무엇이 그들을 쓰게 만들었을까. 먹고 살기도 바쁜 와중에 쉼 없이 글쓰기에 도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 물음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쓰는가'라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 연재기사 나는 왜 쓰는가 보러가기 


13명의 시민기자를 인터뷰한 '나는 어떻게 쓰는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슬아 작가는 인터뷰에서 "교사는 궁금해하는 사람, 질문하는 사람, 격려하는 사람. 이 세 가지인 것 같아요"라고 하고, 그중 '궁금해하는 사람을 교사의 가장 큰 능력'이라고 꼽았는데 이주영 편집기자도 꼭 그랬다.

그는 또 자신의 생각을 100% 확신하지 않았다. 편집기자로 오기 전 취재기자로 일한 경험 때문인지, 작은 거 하나라도 확인하려고 애썼다. 그 세심한 소통의 노력과 관심이 시민기자들에게 닿아 신뢰의 싹을 틔웠다고 나는 본다. 

그래서다. 시민기자라면 언제 읽어도 좋을 이주영 편집기자가 쓴 연재기사 두 편을 소개하는 것은. 시민기자라면 한 번쯤 듣고 싶은 말과 고민이 거의 이 안에 다 있다. 좀 더 나은 기사를 쓰고 싶은 시민기자라면, 편집기자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한 시민기자들이라면, 먼저 시민기자가 된 사람은 어떻게 썼는지 궁금한 시민기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시민기자가 잘 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물론 이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깊어지는 관계는 그만큼의 부담도 따르는 법이다. 이슬아 작가의 말대로 읽고 쓰는 것에 대한 부지런한 사랑 없이는 힘든 일이다. 또 사랑이 있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내가 아닌 남에게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쓰는 일은 정성이 필요하니까. 그 정성이 또 마음먹는다고 언제든 필요할 때마다 뚝딱 생기는 것도 아닐 테니까.

그래서 이 일이 어렵나 보다. 계속 어려울 수밖에 없나 보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투정 부리지 않아야겠다. 이 일은 원래 그런 거니까. 오히려 토닥여주고 싶다. 잘하고 있다고. 지금 아주 괜찮다고. 

그런데도 고민은 남는다. 이슬아 작가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안 하는 게 더 편한 일이다. 귀찮음을 극복해야 시작할 수 있다. 무엇이 아이들의 귀찮음을 무릅쓰게 만드는가. 나의 오랜 탐구주제였다"라고 썼는데, 이건 딱 내 마음 같다. 편집기자 모두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시민기자들을 쓰게 할까', '어떻게 잘 쓰게 할까'는 편집기자 일을 하는 동안 내가 풀어야 할 숙제같은 일이다. 매년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이슬아 작가는 글방에서 자신의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는 근황토크와 간식으로 글쓰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귀찮음을 정면 돌파했다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간식이라면 저도 사줄 수 있는데 말입니다, 흐흐. 혹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쪽지를 보내주세요). 

앗, 그리고 이주영 편집기자는 지금 부서를 옮겨 전국부에서 일하고 있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선별해 이슈로 만드는 일을 한다. 새로운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일에도 열심이다. 유튜브에서도 실험 중이다(☞ 오마이TV 바로가기). 글쓰기보다 영상 편집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몇 배는 더 힘들지만, 지역 선배들의 좋은 기사를 더 많이 알리고 싶기 때문에 하는 일이란다.

그의 모습은 마치 최성연 작가가 <딱 일년만 청소하겠습니다>에서 쓴 대로 '몸으로 하는 일에 마음이 함께 쓰이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일의 이유를 알고 일할 때와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모른 채 그냥 일할 때, 일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은 많이 다르다'는 문장의 실사판을 보는 것 같았다.

그가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나도 배우는 게 많았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좋은 콘텐츠를 위해 '연어' 한 마리로 빙의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그 화제의 영상을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친다.
 
#시민기자 #에디터만 아는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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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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