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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인권 다룬 영화제, 열 사람의 한 걸음 됐으면"

[인터뷰] 서은경 경남 사천인권영화제 추진위원장

등록 2020.11.05 21:06수정 2020.11.0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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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인권영화제는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제입니다.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로 발맞춰 가려고 해요. 상영작들도 좀 더 대중적이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들로 구성했어요."

올해로 4회째 맞은 경남 사천인권영화제를 이끄는 서은경 추진위원장은 이번 영화제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서 위원장은 "코로나19로 불투명했던 시간을 지나 올 초부터 지금까지 달려왔다"며 영화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다음은 서은경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위해
 

서은경 사천인권영화제 추진위원장은 이번 행사에서 꼭 봐야할 영화로 개막작 '세상을 바꾼 변호인'과 폐막작 '소년시절의 너'를 꼽았다. ⓒ 뉴스사천


- 인권영화제가 4회를 맞았습니다. 
"2017년에 처음 여성인권영화제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어요. 올해는 더 커진 규모로 찾아오게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자리를 잡게 되지 않았나 해요. 지역사회에서 많은 분들과 인권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

- 영화제 이름이 '사천인권영화제'로 바뀌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행사를 주관하는 저희 상담소가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관이다보니, 처음에는 여성인권을 보호하고, 성평등한 사회문화를 만들자는 의도에서 자연스럽게 여성인권영화제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영화제를 이어가면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 노인, 장애인, 아동 등 다양한 관객들이 영화제를 관람하러 오시는 걸 봤죠. 그때부터 다른 소외된 인권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어요.

여성인권영화제가 여성의 인권만을 보호하자는 취지는 아니거든요. 여성인권에서 다양한 인권으로 의미를 확대해 보다 폭넓은 관객들이 오셔서 즐길 수 있도록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앞선 영화제가 '한 사람의 열 걸음'이라면 올해는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바뀐 거죠. 열 사람이 같이 걸어가면 더디긴 하지만 같이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 인권을 조명하는 매체로 영화를 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영화는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고 친숙하기 때문에 인권이란 주제를 담기에도 부담 없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란 말도 있잖아요. 인권을 굳이 어려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인권을 다룬 영화를 보고 나면 많은 관객들이 전보다 인권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 인권영화제를 이어오며,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특히 1회 영화제가 기억에 남아요. 처음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직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거든요. 두 작품을 상영했는데, 오전에 상영한 <할머니와 란제리>는 할머니들의 노후에 대해 다룬 재밌는 영화라 상영 후 관객 평도 좋고, 분위기가 훈훈했거든요.

근데 저녁에 상영된 <오버 더 힐>이 너무 파격적이었던 거죠. 이 영화가 성형을 주제로 하는 다큐영화인데, 왜 여성들이 외모를 끊임없이 성형하려고 하는지 담고 있어요. 그런데 단순히 얼굴이나 몸매 성형이 아니고 여성의 성기 성형을 다뤘거든요. 생각보다 수위가 너무 높았던 거죠.

민망하고 불편해서 나가는 남성 관객들도 있었고, 저희들도 보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식은땀이 다 났어요. 그때부터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이 보면서 공감할 수 있는 영화들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

- 영화제 준비 과정은요?
"앞선 영화제는 자체 예산으로 진행하다보니 갈증이 많았죠. 올해는 경남형 주민참여예산을 지원받게 됐는데, 정책 제안, 예산 집행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황재은 도의원이 많이 애써 주셨어요.

그렇게 지원받은 예산을 바탕으로 올해는 찾아가는 영화제, 상시 상영관 운영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보나 했는데, 코로나19가 떡하니 앞을 가로막았죠. 기존에 계획했던 많은 부분이 무산되고, 영화제 개최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었어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나' 직원들하고 머리를 싸매다가 돌파구로 찾은 게 비대면 행사였어요. 슬로건‧손글씨 등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공모전도 열고, 5월 29일부터 6월 2일까지 자동차극장도 운영했죠."     

- 영화제 슬로건이 '사람을 품다, 마음을 잇다'로 선정됐습니다.
"전국에서 200명이 넘는 분들이 공모에 참여해 주셨어요. 저희도 어떤 슬로건들이 나올까 기대가 많았거든요. 인권은 사람과 관련돼 있고, 또 서로의 마음이 이어져야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인권영화제의 뜻을 가장 잘 담아냈어요. 선정된 슬로건으로 손글씨 공모전도 진행했는데, 영화제 기간에 문화공간 담다에서 전시할 예정입니다."
 

서 위원장은 각자의 인권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사천인권영화제가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뉴스사천


- 특별전, 전시, 체험에서 '노인 인권'에 초점을 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69세>는 여성노인의 성폭력을 다뤘어요. 이 영화는 우리 사회가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편견을 담고 있어요. 노인을 무성(無性)의 존재로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우리 주변에도 노인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이들의 존엄성이 과연 잘 지켜지고 있는가? 짚어보고 싶었죠.

또 영화제가 온라인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다 보니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아 소외되는 분들이 생기더라고요. 전시나 체험도 노인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갈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앞으로도 해마다 이주민, 장애인 등 여러 인권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을 열 계획이에요."

- 꼭 봐야 할 영화를 추천한다면?
"하나만 꼽아야 하나요?(하하) 모든 상영작이 의미 있는 좋은 작품이지만, 꼽자면 개막작과 폐막작이죠. 개막작인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미국 대법관 출신 긴즈버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인데요.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영화에요. 세상을 바꾸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고, 앞선 사람들의 삶, 희생, 투쟁으로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인권이 있는 거거든요.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지향하는 바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작품이에요.

또, 폐막작 <소년시절의 너>는 학교폭력을 다룬 중국 영화인데요. 영화제가 끝나면 곧 입시잖아요. 지금 한국 학생들이 겪는 입시 경쟁, 왕따, 학교폭력, 자살 등의 사회문제도 비춰볼 수 있고요. 폐막작을 보고 관객들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등을 함께 고민했으면 해요."

인권에 도움 되는 영화제 되길

- 관객 참여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앞선 영화제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1회는 지역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생소한 행사였다면, 2회는 '인권영화도 재밌다'란 인식을 심어준 것 같아요. 3회는 재미에 감동을 더했죠. 관객들과 함께 영화제도 성장해 온 것 같아요. 영화제를 기다려 주시는 분들도 많아지고, 작년에는 자리가 없어 서서 관람한 분들도 있었거든요.

오히려 사천지역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워서, 제가 편견을 갖고 있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됐어요. 그래서 이번 영화제에서는 좀 더 겁 없이, 거침없이 본론을 꺼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인권을 좀 깊이 있게 다루고 싶거든요." 

- 사천인권영화제가 어떤 행사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전반적으로 인권이 향상된다는 것은 '살기 좋은 사회, 행복한 사회,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된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내가 사는 사회가 살기 좋고,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라고 느낀다면 우리의 인권이 존중되고 있는 거겠죠. 각자의 인권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사천인권영화제가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사천인권영화제 #인권 #영화제 #사천 #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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