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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끌어모아 산 아파트, 남자는 '쓰리잡'을 시작했다

[어느 가장의 고단한 삶] 매일 버티며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

등록 2020.11.15 17:06수정 2020.11.1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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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들의 고단한 삶을 소개합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 상병수당, 전국민 고용보험 등'의 사회보장제도와 관련한 논의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글을 올립니다. 기사의 내용 중 인터뷰 부분은 필자가 운영했던 팟캐스트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기자말]

그는 일분 일초를 아껴 산다. ⓒ Pixabay


그는 느긋하게 걷는 법이 없다. 그가 내 옆을 지나가면 '휙' 하고 바람이 이는 느낌이다. 그의 손도 발만큼이나 빨랐다. '피자박스'를 순식간에 접어 탑처럼 쌓아 올린다. 그러다 주문이 들어오면 부리나케 주문서와 피자 가방을 챙겨 스쿠터를 타고 나간다.


그의 움직임은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전광석화 같다. 물론, 그게 문제가 되기도 한다. 빠르면서 꼼꼼할 확률은 사실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쌓아 올린 박스가 가끔 무너지거나 그가 일했던 자리는 뭔가 어수선했다.

잠시 일이 뜸해져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면 그의 얼굴은 스마트폰에 고정된다. 전후 사정 모르는 누군가 본다면 다 큰 어른이 '카톡질'이나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 그 모습은 카톡으로 본업인 유통회사의 업무(거래처의 주문과 요청사항 처리)를 처리하는 거였다. 한마디로 그는 단 한 순간도 쉼이 없다.

식자재 유통, 배달, 사회... 그가 끊임없이 일하는 이유 

삼십 대, 아직 어린 두 자녀를 둔 가장으로 그의 본업은 식자재 유통회사의 물류 기사였다. 그는 하루의 일과를 오전 5시에 시작한다고 했다. 씻자마자 바로 물류 차에 탑승, 회사에 도착하여 식자재를 싣고 목적지로 출발한다. 그렇게 멀리는 천안까지 내려갔다가 돌아와 투잡인 '피자가게'에 출근하면 오후 6시, 이때부터 위에 쓴 일과를 오후 10시까지 수행한다. 

새벽에 일어나 돌아다니다 보면 아침 식사는커녕 가끔 점심도 거른다고 했다. 정 배고플 때는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와 우유로 시장기를 달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가게에 출근하면 직원 식사용으로 제공하는 냉동 볶음밥을 잽싸게 오븐에 넣어 조리한 후 딱 5분 만에 먹는다.


시쳇말로 폭풍 흡입 하는 모습에 오늘도 한 끼를 못 먹었냐고 물어보면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일까. 185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옛말로 기골이 장대한 체형이었지만 얼굴은 뱀파이어처럼 창백하고 몸은 말라 있었다.

그렇게 오후 10시가 되면 그는 두 번째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간다. 집에 도착하면 오후 11시, 아까 먹은 냉동 볶음밥은 허기를 채우기에는 조금, 아니 많이 부족했기에 라면이나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한숨 돌리면 12시가 넘는다고 한다. 이미 아이들은 곤하게 잠든 상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졸린 눈을 비비며 또 새벽에 나가야 하니 빨리 자라고 재촉한다. 그는 주로 가족의 자는 모습을 본다고 했다. 

그의 말투는 행동만큼 항상 쫓기는 듯했다. 대화하면 '지금 잘 알아듣고 있으니 염려 말라'는 것처럼 "네네"를 붙여 대화를 빠르게 마무리했고, 그의 목과 어깨는 언제 어디서나 조건반사적으로 인사할 태세로 조금 숙어져 있었다. 그는 주말에는 쓰리잡으로 이벤트 사회자로 일한다고 했다. 도대체 언제 쉬냐는 내 말에 그는 "그게 쉬는 건데요..."라고 답했다. 서서 떠들기만 하니 그게 쉬는 게 아니냐며 여전히 쑥스러운 미소로 나에게 항변(?)했다. 

언젠가 잠시 주어진 쉬는 시간에 나는 그를 포함한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의 쓰리잡을 주제로 시시덕거린 적이 있었다. 같이 배달기사로 이 가게에서 알바를 뛰는 동료들 대부분은 본업이 따로 있는 투잡인들이었다. 투잡도 고단한 일인데 쓰리잡을 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정말 경이로운 모습이었다.

계산해보니 그의 평일 근무시간은 평균 16~17시간이었다. 새삼스러운 그의 엄청난 근무시간에 우리는 그에게 '사람이야?'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라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며 위로했다. 언젠가 나는 그에게 '도대체 이렇게나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결혼을 일찍 했다. 이십 대 초반에 결혼한 그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가진 재산은커녕 고정적인 수입도 적었지만, 열심히 생활하면 알콩달콩 살아갈 것만 같았던 그 어린 부부에게 갈등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반지하는 언제나 어두웠고 곰팡이가 뿜어대는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이 열악한 환경은 그들의 영혼까지 야금야금 시들게 했다. 다툼은 잦아졌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야 했던 그는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집값 대부분을 대출 받아 아파트를 산 것이다.
 

집은 목표이며 고난이다. ⓒ Pixabay

   
그랬다. 집값 2억여 원을 모기지로 대출받은 그는 본업에 투잡을, 그것도 모자라 쓰리잡을 했다.

요즘 부모들의 아동학대 등 끔찍한 사건 사고가 뉴스를 장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음에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묵묵히 두 아이와 아내를 부양하며 고군분투 했다. 그의 사연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내가 그처럼 어린 나이에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지금의 그와 같이 살 수 있었을까? 고개가 저어졌다.

매일을 버티며 살아가는 그들은 언제 쉴 수 있을까

작년, 당시 그는 쓰리잡을 조금씩 버거워했다. 하루도 쉬지를 못했기에 가족과 같이 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일'이 함께 할 수 없는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쓰리잡을 줄이고, 주에 하루라도 쉴 수 있는 일을 찾고자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 하던 유통기사, 가게 배달기사, 이벤트 진행자 세 가지 직업을 정리하고 배달대행 전문 기사로 올인했다.

도로는 넓고 그 도로를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신기하게도 그와 가끔 마주쳤다. 내가 동네에서 주말 알바를 할 때 물론, 평일 직장 업무를 보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도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그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신호 대기를 하는 잠시의 시간 동안 그의 시선은 오토바이에 장착된 스마트폰 배달대행 앱 화면에 고정되어 바로 옆에 다가가도 모를 정도였다. 잠깐의 대화에서 그는 이전보다 하루 노동 시간이 조금 줄긴 했지만, 자신이 목표하는 수입을 위해 여전히 최소 12~13시간 이상 장시간 일하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그의 모습을 도로에서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삶의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날, 그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 - 그는 여전히 스마트폰의 배달대행 앱 화면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 좁게 좌회전하던 덤프트럭 뒷바퀴에 발이 치여 뼈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얼마 전 퇴원해 현재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내 뇌리에 불현듯 '경철씨'가 떠올랐다. 어깨 위에 짊어진 삶의 무게를 불평 한번 없이 묵묵히 견디던 그의 인생 여정은 경철씨(이전 기사 : 투잡, 스리잡... 직장 다닐 때는 본 적 없는 가장들)와 정말 놀랍게 닮아 있었다. 오늘도 비슷한 얼굴을 한 수많은 가장들이 도로라는 일터로 나간다. 매일을 버티며 살아가는 그들이, 언젠가 평온한 일상을 보낼 날이 올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로도 발행될 예정입니다.
#투잡 #쓰리잡 #알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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