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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살림 도맡았던 딸의 일탈... 이 소녀가 바꾸어낸 것

[리뷰[ 영화 <걸후드>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힘

20.11.05 18:12최종업데이트20.11.0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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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후드> 포스터 ⓒ ㈜영화특별시SMC

 
우리는 태어나면서 접하게 되는 주변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누군가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 지내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조금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다. 물론 환경적인 문제는 그저 배경 정도로만 적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고 성인이 될 무렵이면 자신의 배경과 환경에 대해서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된다. 환경의 좋고 나쁨의 영향과는 별개로 청소년 시절에는 모두 자신만의 혼란을 겪는다. 몸이 변하고, 목소리가 변하고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기 시작하는 그 시기엔 미래의 모습보다는 현재 자신의 모습과 친구들의 모습에 좀 더 집중하면서 그 혼란을 잠시 잊기도 한다.

자신과 잘 맞거나,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다. 특히 머릿속이 복잡한 청소년 시절에는 집을 나와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집이나 학교에서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혼란을 잊는다. 약간의 일탈을 하기도 하고 다른 친구 집단과 대결 구도를 만들어 충돌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만나면서 때론 아픈 일들을 같이 겪어 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각자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 그 길을 찾는 과정에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추억은 그 터널을 지나는 힘이 된다. 

빈민가 소녀의 성장 이야기를 다루는 <걸후드>

영화 <걸후드>는 성인이 되기 직전인 사춘기 소녀 마리엠(카리자 투레)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마리엠은 빈민가에서 살고 있고, 두 명의 여동생과 한 명의 오빠 그리고 엄마와 살고 있다. 엄마는 청소일을 하며 늘 늦은 시간까지 외부에 있기 때문에 집안일과 동생을 돌보는 일은 모두 마리엠이 도맡아 하고 있다. 오빠는 주로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데 집안일과 가족을 챙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데다, 가끔은 강압적으로 동생들을 대하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마리엠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외로워 보인다. 집에서는 동생들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바쁘고, 학교에서도 향후 진로에 대한 선택과 활동을 본인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어 혼란스러워한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표정을 보여주는 마리엠은 학교와 집의 주변 상황에 짓눌려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우연히 세 명의 낯선 친구들을 만난다. 마리엠은 레이디(아사 실라), 이디아투(린지 카라모), 필리(마리투 투레)가 함께 놀자는 권유를 받은 후 그냥 지나치지만 곧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 같이 노는 선택을 한다. 마리엠의 선택은 그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겠다는 의미다. 즉, 평소처럼 일찍 집으로 돌아가 집안 일과 동생을 돌보는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영화 속에서 마리엠 스스로 다른 길을 선택한 첫 번째 결정이다. 

그렇게 다른 길을 선택한 마리엠은 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색해 하지만 이내 곧 그들의 행위와 놀이에 서서히 빠져든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수다와 약간의 일탈은 그 친구들 속에서 마리엠도 웃음 지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레이디, 이디아투, 필리가 정신없이 수다를 쏟아낼 때, 그걸 보는 마리엠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나 고민을 할 겨를이 없다. 특히 이 네 명의 친구가 호텔 방을 빌려 밤새 수다를 떨며 노는 장면은 보는 관객들에게도 밝은 미소를 짓게 만들 정도로 따뜻하고 밝다.

어두운 환경 속에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마리엠과 친구들
 

영화 <걸후드> 장면 ⓒ ㈜영화특별시SMC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빈민가의 아이들, 특히 약간의 일탈의 길에 접어든 아이들을 보여주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둡지 않다. 마리엠과 세 친구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주변의 환경과는 완전히 대비된다. 적어도 그들이 함께 있을 때는 그들 주변에 있는 우울한 집안 환경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더 그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늘어나고 집에는 조금씩 소홀해진다. 어쩌면 이들 각자는 아직 맡아도 되지 않아도 될 가정의 짐을 지게 되면서 스스로의 길을 서서히 막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중반 이디아투, 필리는 예전에 같이 어울렸던 친구를 만난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업고 음식점에 왔다가 과거 친구들을 만나서 반가움을 쏟아낸다. 아이 보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친구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꽤 복잡해 보인다. 남들보다 빠른 나이에 아이를 낳고 누군가와 가정을 꾸린 그는 본인이 원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를 낳고 누군가에 정착하는 삶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리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리엠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첫 번째 선택을 한 후 자신의 의지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 시작한다. 다른 집단과의 일대일 싸움 대결에서 진 레이디의 복수를 하는 장면이나 집을 떠나 자신이 할 수 있고 조금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선택하는 마리엠은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모두 스스로 감당한다. 그 결정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는지, 아니면 좋지 않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선택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모두 받아내는 마리엠의 모습은 적어도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해 나가는 마리엠
 

영화 <걸후드> 장면 ⓒ ㈜영화특별시SMC

 
배우 시얼샤 로넌이 주연한 영화 <브루클린>에서 주인공 에일리스는 고향을 떠나 브루클린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산다. 그러다 다시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가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되는데 그것이 과거에 겪었던 고향의 안 좋은 점들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브루클린으로 돌아간다. 영화 <걸후드>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마리엠이 집을 나와 한동안 다른 일을 하다가 잘 되지 않아 집이 있는 마을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이 친구들과 놀았던 여러 장소를 오가다가 집으로 갈까 고민하지만 이내 발걸음을 돌린다. 그에게 집은 결코 좋은 안식처가 아니다. 또한 남자 친구와의 관계를 마리엠 스스로 결정하고, 남자 친구의 청혼을 거절하는 등 마리엠은 영화 후반부에는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해 나간다. 

영화 속 마리엠이 선택하는 것들 중엔 위험한 일들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우울하게만 그리지 않고 그 속에서 밝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 무표정한 마리엠의 표정이 영화 후반 그래도 밝아지고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빈민가이고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건 본인뿐이다. 태어난 직후 주변 상황을 스스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의 내 삶은 바꿀 수가 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마리엠은 힘든 일을 겪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리엠을 그렇게 만든 건 소녀시절에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과의 시간이다.

영화 <걸후드>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성들의 삶에 있어 그들이 가진 주체성을 잘 이야기하고 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이번 영화도 굉장히 인상적으로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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