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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도 벌벌 떠는 수능 지침, 꼭 이래야 하나

[전대원의 교육이야기] 과유불급 수능 지침이 가져오는 폐해들

등록 2020.11.09 08:02수정 2020.11.0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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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30일 앞둔 3일 오전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2020.11.3 ⓒ 연합뉴스

 
교사로서 교육 이야기를 연재하는 목적 중 하나는 색다른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볼 기회를 독자에게 제공하고자 함이다. 인간이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눈을 감고 코끼리를 만져가면서 인식하는 것과 비슷하다. 꼬리와 다리를 만질 때 가지는 느낌은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리도 만지고, 코도 만져보고, 꼬리도 만져야 코끼리 전체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지금 연재는 대한민국 교육이란 코끼리처럼 큰 분야를 바라볼 때, 다른 시선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를 거치고 수요자 중심 교육론이 대세가 되면서 한국 교육은 꾸준히 그쪽으로 변화를 거쳐 왔다. 학생의 관점이라고 하면 그래도 뭔가 한국 교육의 민주화에 도움을 많이 주었을 터인데, 묘하게 시선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학생이 아닌 학부모 중심론이 많아졌다. 이게 학교 교육의 파편화를 가져오고 제도적 민주화의 완성에도 불구하고 입시 위주의 교육이 해결되지 않은 기제로 작용한다. 교육의 공공성을 외면하면 수요자 중심은 자칫 좋은 대학 보내기로 교육의 목적을 변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자 중심론에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긴 했다. 일단 말죽거리 잔혹사로 대표되는 학교의 폭력성을 순화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다. 교육 관료제의 병폐도 많이 완화시켰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들이 커지고, 운영위원회 등 학교 내 민주적 질서가 많이 들어온 것도 수요자 중심 교육론의 긍정적 영향 중 하나일 것이다.

수능 감독관

이번 글에서는 지난 번 수능 출제 시스템에 대한 검토에 이어서 관리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수험생 입장에서 보는 시선을 출제자의 입장으로 옮겨봤듯이, 이번에는 관리 감독자의 입장에서 수능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수능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일환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이 세상의 어떤 의견도 단 한 톨의 진실 정도는 갖고 있는 법이라서 말이다.

수능 당일만 되면 사건과 사고가 없기를 모두가 바란다. 그러나 50만 수험생이 응시하는 전국 단위 시험에서 단 한 건의 문제도 없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물론 수험생 개인의 입장에서는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에 자기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억울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점차로 그 정도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매년 수능 철이 다가오면 감독 교사 구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필자가 교직에 처음 입문했을 때만 해도 1년 동안 수고한 고3 담임은 수능 당일 감독 교사에서 제외해주는 문화가 있었다. 지금은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는 고3 담임도 감독관 업무에 차출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감독과 관련하여 온갖 민원 제기가 다량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교사 중에서 수능 감독에 숙련된 인력이 누구일까? 당연히 고3 담임들이다. 수능 감독의 최고의 에이스를 빼고 감독관을 모집하는 것이 교육 행정 관료들에게는 너무나 아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안 그래도 여러 업무 부담으로 기피하는 고3 담임 업무를 맡은 사람에게 그나마 주어졌던 특혜 하나가 사라져버렸다.

작년에 교사들이 수능 감독을 기피하면서 하루 종일 서서 감독하는 게 힘들다고 하자, 포털 뉴스 댓글 창에는 그깟 시험 감독 대학원생들에게 알바 시키면 차고 넘친다는 댓글이 많았다.

대학원생 알바는 과연 가능한 일일까? 대우나 처우, 노동 강도의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도록 하고, 수능 감독 업무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먼저 짚어보자.

학교에서 정기고사 감독을 늘 하는 교사도 수능 시험장만 가면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깨알처럼 쓰인 감독관 행동 지침을 보면 바로 기가 질려버린다. 밑줄 그으며 공부하는 것에는 이골이 난 대한민국의 교사들도 밑줄 치고 형광펜 그어가며 공부하지만 당일 날 그 많은 지침을 기억하지 못한다.

시험지와 답안지 뭉치를 들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밑줄 긋고 형광펜 색칠한 책자를 들고 공부에 공부를 거듭한다. 만약 지침을 숙지하지 못하였을 경우에 돌아올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소에 경험이 없는 대학원생에게 이 일을 맡겼다간 곳곳에서 사달이 날 거란 걸, 그 누구보다 교육 관료들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고학력자인 대학원생 알바가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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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30일 앞둔 3일 오전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2020.11.3 ⓒ 연합뉴스

 
너무 많은 수능 지침

가끔 학력고사를 보신 분들 중에 '라떼는 말야'를 시전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필자도 선지원 학력고사 시절에 시험을 봤다. 대학생들의 커닝페이퍼가 잔뜩 쓰인 대학 강의실 비좁은 책상에 문제지와 OMR 답안지를 올려놓고 불편한 줄 모르고 시험을 쳤다. 지금 그런 식으로 수능 관리를 했다가는 난리가 날 것이다. 지금도 코로나19로 투명 가림막을 설치한다고 하니 그 큰 시험지를 놓고 어떻게 시험 치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과거에는 중학교 선생님들 차출이 많지 않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대책으로 시험 감독관이 더 많이 필요해서 중학교 선생님들도 감독관 업무를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이유는 건강 상태가 안 좋은 교사들이 제외되면서이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이게 업무 강도가 세다는 것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시험 보는 애들이 힘들지 감독하는 사람이 뭐가 힘들겠냐는 정서가 만연해 있다. 그래서 감독관에게 키높이 의자를 배치하자는 의견을 교육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키높이 의자를 배치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국민정서'였다. 그깟 하루 봉사하는 심정으로 있으라는 건데, 이게 정서와 인식의 간극을 보여준다.

학생이 시험보다 쓰러지면 안타까운 반응들이 언론에 보도 되고, 보건실 같은 곳에서 무사히 시험을 마쳤다고 하면 이곳저곳에서 응원의 메시지가 들려온다. 그런데 감독관도 곳곳에서 쓰러진다. 정신적 긴장과 신체적 무리가 동반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건강에 이상이 있거나 60세 언저리의 고령 교사는 감독관에서 제외해야 한다. 노동 강도가 세서 평소 건강에 문제가 없는 사람도 녹초가 될 정도다. 때문에 미리 건강상 위험 요인이 있는 교사는 감독관에서 제외해야 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이러다 보니 감독 교사 부족 사태가 나타났고, 결국 고3 담임도 감독관으로 나가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건강에 문제가 없는 교사를 고3 담임으로 임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능 감독관에 가장 적절한 인력이 어떤 면에서 접근해도 고3 담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잠시 딴 이야기인데, 교사가 차출되는 업무는 수능 감독만 있는 건 아니다. 임용고사와 공무원 시험, 그리고 각종 선거 관련 업무에도 나가게 된다. 수능은 그래도 어떻게든 교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합의라도 있어서 광범위한 감독 차출이 가능한데, 그 외 분야는 교사들도 기피한다. 정치적 중립성과 관료적 효율성을 체득한 집단이라 중립 행정이 강조되는 분야에 교사들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업무를 좋아할 리는 없다.

필자는 사회 교사라 학생들에게 해줄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차원에서 선거 관련 업무에 가끔 자원할 때가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투개표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민주주의 교육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능이라는 하루 평가로 인생을 결정한다는 문화적 합의는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지난 번 포항 지진으로 인해 그 취약성이 드러났고,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도 확진자마저 응시를 허용하는 것만 봐도 이게 얼마나 강행군으로 이뤄지는 시험인가를 알게 해준다. 문제는 확진자 수험장에도 누군가는 감독을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감독관들의 불만이 누적되고 팬데믹으로 인한 감염 위험도 높은 상황에서 교육부는 개선안을 내놓았다. 감독관용 의자 배치와 민원에 대비한 보험 가입 등이 그것이다. 확진자나 유증상자 수험장 감독관에 대해서는 감독비도 더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배려가 조금 더 일찍 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팬데믹 상황에서 누가 봐도 위험을 감수하게 만든다는 상황이 되어서야 감독관에 대한 배려가 정책적으로 나온 것이다. 올해는 감독관 지원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해서 다들 걱정하였지만, 교육부가 '간곡히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일선 교육청을 통해 내려 보내서 평소보다 지원율이 높아진 학교도 있다. 그래도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해 가야 한다는 사명감들이 수능 시험을 무사히 치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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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수학능력시험을 한 달 앞둔 3일 오후 대구 중구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성모당 앞에 수험생과 학부모 등이 켜놓은 초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2020.11.3 ⓒ 연합뉴스

 
애매한 기준, 겁주는 관료들

수능 감독관 교육을 가면 관료제적으로 겁을 주는 관리자들이 있다. 사고가 나면 민원 제기에 여러 인사상 불이익이 생길 수 있으니 알아서 잘 하라고 고압적으로 나오는 사람들이다. 자기도 겁이 나니깐 그러는 거겠지만, 봉사하는 심정으로 나온 감독관에게 관료제적으로 고압적 태도를 보이는 게 눈꼴사나운 것은 사실이다.

수능이 우리나라 교육 문화에서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과거 학력고사 시절만큼 절대적이지는 않다. 수능의 절대적 영향력은 줄어왔는데, 출제와 감독에 부과되는 부담감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해 왔다.

가장 큰 문제는 엄격한 입증책임을 감독관에게 부과함으로써 공정한 수능 관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일 게다. 수험장에서 자의적 판단을 제어한다는 명분하에 감독 교사를 로봇으로 만드는 바람에 부정행위 적발 자체가 어렵게 되었다. 만약 부정행위를 적발하더라도 수사권이나 증거 수집 능력이 없는 교사에게 입증을 강하게 요구함으로써 모든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이래서 나타난 문제가 형식주의이다. 부모님 외투를 입고 왔다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려서 수능 빵점 처리를 당한 가슴 아픈 사연이 속출하는 것도 이런 문화적 배경이 있다. 부정행위를 막기 위하여 부정이 아닌 것이 명백함에도 부정으로 간주하는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부정행위 적발이 어려우니 기계적인 적용이 가능한 규칙이 무한대로 늘어나고, 이것이 두터워진 감독관 지침으로 나타나고, 다시 이것이 감독관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한다.

그러니 어디서 고사 감독에 문제가 생기면 지침을 들여다보고 왜 그 지침대로 안 했냐는 문제부터 제기된다. 하지만 그 지침을 머리에 다 집어넣기에는 지침이 너무 많다. 휴대 금지 물품과 휴대하면 안 되지만 휴대한다고 해서 빵점은 아닌 물품, 휴대는 허용되나 감독관이 점검해야 하는 물품들은 매년 지침을 읽어봐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스톱워치는 되는 걸까, 안 되는 걸까? 스톱워치만 되고 나머지 기능만 없으면 되는 건가? 필통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건 되는 건가, 아닌 건가? 등등.

사고 없이 넘어가면 다행이지만, 뭔가 하나라도 꼬투리가 잡히면 그날로 교사는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날 시험을 망친 건 감독관이 지침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비화되기 때문이다.

과유불급.
수능 감독의 지침이 너무 과해지고 있다. 이제 그 과해지는 속도를 멈추고 돌아볼 때가 되었다. 우리가 정말 이렇게까지 수능에 매달려야 하는 것인가를 말이다.
#수능 #수능감독관 #수능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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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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