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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안중근 의사의 장엄한 발자취를 그대로 뒤쫓다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4부 작가 및 시민 기자생활 (12)

등록 2020.12.16 10:42수정 2020.12.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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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순감옥에 수감 중인 안중근 의사 모습 ⓒ 눈빛출판사

 
한 출판인의 제의
 
2008년 이른 봄,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가 승용차에다 안중근 의사 관련 도서 및 참고자료를 한 박스 싣고 안흥 내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2009년 10월 26일은 안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일이요, 다음해 3월 26일은 순국100주년이니, 그때를 맞춰 나에게 안중근 평전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얼떨결에 승낙하고는 이 대표가 두고간 여러 자료들을 두루 살폈다. 그 문헌들을 보면서 역사학자도 아닌 내가 안중근 의사의 평전을 쓰기에는 부담이 갔다. 1909년 10월 16일, 68세의 이토 히로부미는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조선에 이어 드넓은 만주조차도 삼키고 싶은 야욕으로 일본 모즈 항을 떠났다. 그는 중국 다롄 항으로 상륙하여, 뤼순을 거쳐 10월 25일 창춘에서 밤 열차를 타고 북만주 하얼빈으로 달렸다.
 
같은 시기 30세의 청년 안중근은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문을 듣고 당신 손으로 처단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그런 뒤 1909년 10월 21일, 브라우닝 권총을 가슴에 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 행 열차에 올랐다. 마주 보고 달리는 두 열차는 서로 피할 수 없는 단선이었다. 그들은 끝내 하얼빈에서 일대 충돌하여 두 사람 모두 당신 나라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 생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이런 두 인물의 장렬한 마지막 행장을 강원 오지 산골에서 자료만 뒤척이며 그린다면 이미 출판된 책들의 또 하나 아류작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평전 대신에 나만 쓸 수 있는 형식의 역사 현장답사기로 방향을 바꿨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우선 현실적으로 갈 수 없는 안중근의 고향인 북한지역은 제외하더라도 연해주 일대와 다롄, 뤼순도 나는 그제까지 미처 가보지 못한 곳이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역 ⓒ 박도

 
안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일에 출국하다
 
특히 연해주는 러시아 땅으로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요, 아는 이도 전혀 없었다. 마침 안동문화방송국에 공동제작 의사를 타진하자 좋은 기획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제작진과 만나 세부 계획을 세웠다. 내 계획을 알고 있던 의병선양회 조세현 부회장이 안중근의사기념관 김호일 관장을 소개시켜 줬다. 나는 그분을 찾아뵙고 안 의사 유적답사 여정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당신은 안 의사의 마지막 발자취를 곧이곧대로 따라 답사하면서 쓴 책은 국내외에 여태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하면서 매우 좋은 기획이라고 말했다.
 
그 참에 길안내를 간청하자 어렵게 동행을 허락해 주셨다. 하지만 방송국 측 사정으로 그 계획이 무산돼 망연자실했다.
 
그런 나에게 김호일 관장은 마침 '2009 청년 안중근 유적답사 대학생 해외탐방단'에 합류 동행을 권유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그 탐방단에 참여키로 했다. 2009년 7월 12일 출국을 기다리는데 일주일 전 갑자기 내 심장에 바늘을 찌르는 듯 심한 통증이 왔다.
 
횡성의 한 병원에 갔더니 큰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아무래도 대학생 해외탐방단 동참은 일행에게 피해를 끼칠 것 같아 최종확인 단계에서 불참을 통보했다. 그런 뒤 서울에 있는 한 대학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하고 통원 치료를 하였더니 다행히 심장의 통증은 씻은 듯이 멎었다.
 
하지만 대학생 해외탐방단은 이미 출국한 뒤라 다른 작품 집필에 매달렸다. 9월 하순 그 작품이 탈고되자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발자취를 뒤쫓고 싶은 충동이 불같이 일어났다. 나는 10월 중순쯤 출국하여 2009년 10월 26일 안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일 그 시각을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 맞고 싶었다.
  

단지 동맹비 ⓒ 박도

 
단지동맹비
 
김호일 관장을 만나 연해주 일대의 아는 분을 소개받고, 또 연해주 방면 전문여행사를 소개받았다. 또 여행사 대표를 통해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양정진 영사도 소개받았다. 국제전화와 메일로 양 영사를 통해 현지 안내인을 추천받아 그분과 일정을 조정하고 중국·러시아 비자를 받는 데 열흘 이상 걸려 도저히 그 날짜에 맞출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출발일을 안 의사 의거일인 10월 26일로 정하고 속초에서 러시아 자루비노 행 동춘호에 승선했다. 안중근 의사 답사 준비과정을 지켜본 아내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비행기로 가지 그 불편한 배로 간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속초에서 출발하는 배를 탔다. 가능한 안중근 의사가 한 세기 전 고국을 떠났던 길을 그대로 답사하고자 함이었다. 그 길이 그분을 진정으로 흠모하는, 한 작가의 정성이었다.
 
20세기 초 청년 안중근은 고국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갈 때 원산에서 배를 타고 출국했다. 하지만 북한 원산은 현실적으로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2009년 10월 26일 바로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일 날 강원도 속초에서 배를 타고 연해주로 떠났다.
 
이튿날(10. 27.) 오후 1시 러시아령 자루비노 항에 이르자 동포 안내인 조경제씨가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소개로 크라스키노 남양 알로에 현지 대표인 허영문씨의 안내를 받았다.

먼저 연추하리 어귀에 세워진 단지동맹비를 현지 답사했다. 하지만 연추하리 마을은 러시아군 부대장의 허락을 받지 못해 핫산 정상에서 망원렌즈를 통해 마을을 바라보며 셔터만 눌렀다.
  

보로실로프(현, 슬라비얀카) 항 ⓒ 박도

 
하늘의 계시
 
1909년 10월 18일, 안중근은 갑자기 마음이 울적해지며 초조함을 이길 수 없어 연추마을을 떠나 보로실로프(현, 슬라비얀카) 항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

안중근은 그날 밤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렀다. 천만 뜻밖에도 그곳 꼬레아스키야(신한촌)에 사는  동포 이치권으로부터 이토 히로부미가 북만주에 온다는 뜻밖에 소식을 들었다. 안중근은 이를 하늘의 계시로 여겼다. 

그로부터 꼭 100년이 지난 2009년 10월 27일,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여 사흘을 머물면서 안중근 유적지를 샅샅이 둘러보았다. 그런 다음 2009년 10월 29일 오후,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하얼빈 행 열차에 올랐다. 그때까지는 안내인 동포 조경제씨의 도움으로 큰 불편함이 없이 답사했다. 하지만 거기서부터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 입을 꾹 다문 채로 지냈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하얼빈 행 열차는 기관차와 객차는 최신식이었지만 노선 자체는 다른 교통수단(고속버스나 항공편)의 발달로 100년 전보다 훨씬 퇴보하여 주 1회만 운행하고 있었다.
 
그것도 하얼빈까지 직행이 아니라 우수리스크, 포브라니치아, 쑤이펀 역에서 세 번이나 앞 기관차가 바뀌었다. 그런 열차 노선 정보를 전혀 몰랐던 나는 꼬박 이틀간 깜깜이 열차 여행을 해야만 했다. 우수리스크 역에서는 내가 탄 객차만 철로 위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새벽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찾아갔으나(정차 중, 객실 화장실은 사용 불가), 역구내인데도 사용료를 받았다. 게다가 꼭 루블화만 받는다는데 그 돈이 없어서 승무원에게 환전하여 다시 화장실로 뛰어가기도 했다. 나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시베리아 열차는 멋진 식당차가 객차 중간에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 내가 탄 열차에는 그런 식당 칸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이틀간 굶다시피 생수에 김우종 선생에게 선물로 미리 준비한 비스킷을 대용식으로 아주 요긴하게 먹었다. 러시아 국경을 벗어날 때와 중국 국경 역에 도착할 때는 두 차례나 소지품 검사뿐 아니라 까다로운 통관절차 및 출입국 심사까지 받았다. 내 평생 가장 긴 열차여행이었고, 힘든 여로였다. 

100년 전 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 포살 여로는 이보다 수십 배 더 힘들었을 것이다.
  

옛 하얼빈 역 ⓒ 안중근기념관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이 연재는 78화로 끝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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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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