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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인민군 심문 사진... 영감이 스치다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4부 작가 및 시민 기자생활 (14)

등록 2020.12.21 14:24수정 2020.12.2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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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미8군 하사관이 가장 나이 어린 소년 인민군 포로를 신문하는 장면(가운데는 통역). ⓒ NARA / 박도

   
203고지
 
내가 뤼순감옥을 방문했을 당시(2009년), 그곳 언저리는 한창 개발 중이었다. 아파트들이 빼곡빼곡 들어서고 있었다. 머지않아 이나마 남아 있는 뤼순감옥 묘지까지도 도시개발 때문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뤼순감옥 묘지의 흙을 담아왔다. 마침 시간이 남기에 안내인 박용근 회장에게 러일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이령산 203고지 안내를 부탁드렸다.

러일전쟁은 1904~1905년에 만주와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강점할 수 있었다. 그곳은 우리 근현대사 연구에 빠트릴 수 없는 역사의 현장이다. 

다롄 안중근연구회 박용근 회장은 이령산 중턱 택시정류장에 이른 뒤 기사 핑계를 대면서 거기서 지형 설명으로 끝내려 했다. 그래서 나는 택시기사에게는 별도 대기료를 주겠으며, 박 회장도 거기서 잠깐 쉬라고 했다. 
 

뤼순 203 고지의 일본군 280 미리 유탄포. 이 포의 우세로 난공불락의 러시아 요새를 뚫을 수 있었다고 함. ⓒ 박도

 
그런 뒤 나는 그곳 안내판을 보면서 혼자 203고지로 올라갔다. 203고지 정상에 오르자 일본군 전몰자 위령탑과 러시아군 포진지, 일본군 280 미리 유탄포 전시장, 203고지 진열관 등 볼거리가 무척 많았다.

안내문이 한자인지라 대강은 읽을 수 있었다. 러일전쟁 최대 격전지 뤼순전투에서 예상을 뒤엎고 일본이 어떻게 승리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군은 적절한 지형 이용과 280mm 유탄포 등으로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러시아 요새를 뚫었다.

그곳의 안내문과 전시물로 한 눈에 그때의 전투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군은 지형이나 병력 등으로 불리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난공불락 요새를 뚫은 것은 무엇보다 전투에 임한 병사들의 강한 정신력이었다. 전투에서 승리 요인은 무기 못지 않게 정신력이었음을 이 전투가 말해 주는 듯했다.

내가 그곳 전적지 안내문을 읽으면서 카메라로 부지런히 전시물을 촬영하는데 박 회장이 헐떡이며 뒤따라 올라왔다.
  
"어르신, 산삼을 많이 드셨나 봅니다."
"그런 것 먹은 적이 없습니다. 난 육군 보병 출신이요."
"아, 네에."

 
지린성 청산리 전적지나 봉오동전적지 등과 국내 호남의병지 답사 때도 그런 일이 더러 있었다. 독립군 전적지나 의병 창의 지역은 대부분 깊은 산골 궁벽한 곳이요, 100~200년 이전의 일이라 정확한 현장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정확한 전적지를 대충 지나치지 않았고, 내 눈으로 일일이 확인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현장을 카메라에 부지런히 담았다. 이러한 내 체력은 고교시절 신문배달로 그리고 육군보병학교 시절의 훈련과 현역 보병소대장 시절에 산야를 밤낮으로 누볐기 때문일 것이다.
      

뤼순감옥 묘지 흙을 담아 와서 효창원 안중근 의사 가묘에 헌토하다 ⓒ 홍소연(전 백범기념관 자료실장)

 
안중근 가묘에 헌토하다
 
인생이란 지나고 보니까 좋은 것만 결코 좋은 게 아니었다. 악전고투한 내 지난 인생이었기에 현대사 유적지를 답사할 수 있었고, 이제까지 건강하게 살아온 것 같다. 그야말로 크고 길게 보면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는 게' 인생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세상은 한 차원 더 높은 단계에서 보면 공평한지도 모르겠다.

이즈음 우리들이 겪고있는 코로나 사태의 그 근본 원인은 그동안 편리만 추구한 인간들의 업보라고 진단하는 이도 있다. 우리가 편하게, 내 이익만 챙기면서 살아온 만큼 그에 따르는 댓가를 치르고 있는지도.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행장 유적지를 꼬박 아흐레간 답사했다. 귀국 후 여독을 푼 다음 날인 2009년 11월 6일 서울 효창원에 있는 안 의사 무덤을 찾았다. 백범기념관 홍소연 자료실장이 반갑게 영접해줬다. 나는 안중근 의사 무덤에 엎드려 고유 인사를 드린 뒤 뤼순감옥 묘지에서 가지고 온 흙을 봉분 잔디 곳곳에 골고루 헌토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에 대한 한 대한의 작가가 바치는 애틋한 정성이었다.
   

『영웅 안중근』표지 ⓒ 눈빛출판사

 
'영웅 안중근'을 펴내다.
 
20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100주년 기념일에 맞춰 마지막 행장 답사기 '영웅 안중근'이 눈빛출판사에서 발간됐다. 그날 밤 YTN 방송을 통해 신간 소개가 막 시작하는 순간, 화면 아래 자막에는 속보로 천안함 사건 소식을 전했다. 이 사건 보도에 모든 뉴스는 파묻혔고,  출판 시장조차도 꽁꽁 얼어붙었다.

아무튼 보통사람은 때를 잘 만나야 한다. 그 때를 만나는 게 운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운데 경기도 안성 미리네 유무상통 마을의 촌장 방구들장 신부님이 '영웅 안중근'을 보고 하신 말씀이다.
 
"안도마께서 부활하셨다."

그 말씀과 함께 방 신부님은 '영웅 안중근'을 1300여 권 사주셨다. 나는 안 의사에게 영세를 준 빌렘 신부님이 환생한 듯 반가웠다. 나는 그 답례로 서재에 보관 중인 뤼순 감옥 묘지에서 채취해온 뒤 안중근 가묘에 뿌려 드리고 남은 흙을 모두 유무통상 마을의 안중근 동상 기단 아래에다 묻어드렸다.
  
지난 회(제73화) 연재 기사가 나간 뒤 한 애독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분은 전 의병선양회 조세현 부회장이다. 나의 안중근 답사길에 김호일 안중근기념관장님을 연결해 주시고, 호남 의병 전적지 답사에 알뜰히 길 안내를 해주신 분이다. 그는 내게 당부의 말씀을 전했다.
 
"우리 현대사에 가장 뛰어난 영웅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서울 광화문 광장이나 시청 앞 광장에 세워야 합니다. 그분의 의탄은 일본 열도를 벌벌 떨게 했고,  우리 백성들의 10년 묵은 체증을 한 순간에  '펑'  뚫은 민족정기의 정수(精髓, 핵심 또는 골수)입니다.  또한 남과 북, 좌우 진영이 이론없이 숭배하는 인물입니다."

안중근 답사 얘기를 마치면서 그때 답사길에 노잣돈을 보태주신 우당기념관 이종찬 관장, 황영구 치과원장, 두 분에게 이 자리를 빌어 뒤늦게 감사의 말씀 올린다. 아마도 하늘에 계신 안 도마께서도 두 분에게 느꺼운 박수를 보내실 거다.
 

<일제강점기> 표지 ⓒ 눈빛출판사

 
'일제강점기'를 펴내다
 
2010년 이른 봄, 눈빛출판사 이 대표가 또 승용차에 근현대사 도서를 잔뜩 싣고 왔다. 나에게 사진으로 보는 근현대사 도서를 공동으로 펴내자고 제안했다. 사진을 곁들인 간추린 역사책으로 나는 본문을 집필하고 당신은 그동안 애써 수집한 관련 사진으로 편집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는 우리 근현대사 사진 수집 마니아로 상당량의 사진을 갈무리하고 있는 귀인이다.
 
사실 나도 근현대사 책을 보면서 불만은 한자말이 너무 많은 등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어려운 용어나 어렵고 복잡한 문장들이 많았다. 이 대표도 그런 면에 공감하면서 내게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역사 기술을 부탁했다.
 
그리하여 나는 늦깎이 역사학도로 강원 산골 '박도글방'에서 두문불출, 역사책을 섭렵해 '일제강점기'편을 탈고해 2010년 8월 29일에 펴냈다. 이 책이 나오자 책값도 고가였는데도 금세 1쇄가 매진돼 곧 2쇄를 찍었다. 곧이어 2012년 10월 12일에는 '개화기와 대한제국', 한 번 더 미 문서기록관리청을 다녀온 뒤인 2017년 11월 27일에는 '미군정 3년사'를 발간해 꽤 호평을 받았다.

이즈음에는 이들 책은 품절로 헌 책방에서는 정가보다 더 비싼 값으로 팔리는 모양이다. 
    

『약속』 표지 ⓒ 눈빛출판사


평생에 꼭 쓰고 싶었던 작품 '약속'
 
많은 작가들은 어린 시절에 보고 들은 고향 이야기를 평생토록 작품의 제재로 삼고 있다.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그의 고향 칼브를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등 여러 작품에서 그렸다. 또 영국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는 그의 고향 호워드의 황야에서 살면서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 '폭풍의 언덕'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박경리, 현기영, 김원일, 박완서 등의 작가들도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작품화했다.
 
나도 어린시절의 고향 구미를 배경으로 작품을 쓰고 싶었다. 2004년 2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수집할 때 본 한 사진 이미지가 내내 마음속에 깊이 각인돼 있었다.
 
어느 하루, 그때 나를 도와주던 재미동포 박유종(박은식 선생 손자) 선생은 예사 사진과는 달리 문서 상자에서 소년 인민군 포로 사진 한 장을 뽑아 내 앞에 놓으면서 말했다.
 

작품 배경인 묘향산 보현사 경내 ⓒ 박도

 
"박 선생님, 이 사진 좀 보세요."
 
나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인민군 포로가 무척이나 어린 데 놀랐다. 그와 동시에 번쩍 그를 작품의 제재로 삼고 싶었다.
 
"좋습니다. 박 선생님, 스캔할 테니 번역해주세요."

그러자 박유종 선생은 사진 뒤의 영문 캡션과 앞면의 사진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1950년 8월 18일, 미8군 하사관이 가장 나이 어른 북한 소년병 포로를 심문하고 있습니다. 포로의 이름은 '김해심'이고, 통역한 여비서의 이름은 '이수경'이라고 적혀 있네요. 하지만 하사관 이름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 소년 인민군 포로의 모습에서 중학교 때 큰고모 집 앞 구미가축병원 김윤기(작품에서는 '김준기') 조수가 떠올랐다. 그 아저씨는 인민군 포로 출신으로, 다부동전투에 참전했다고 한다. 그런저런 어린 시절 추억들이 상기되면서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고 싶은 충동과 함께 여러 영감이 스쳤다. 
   

6.25전쟁 초기 최대 격전지 다부동전적지에서 바라본 '유학산'이다. 당시 시산시해(시체로 산을 이루고 피로써 바다를 이루다)라 할 만큼,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 박도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이 연재는 78화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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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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