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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만에 지킨 약속, 분단 비극 속 통일을 그리다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4부 작가 및 시민 기자생활 (15)

등록 2020.12.23 09:44수정 2020.12.2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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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주인공의 고향인 묘향산으로 작품의 배경이기도 하다. ⓒ 박도

 
소설 <약속>의 주인공은 실제 인물
 
이 작품 <약속>의 주인공 김준기는 실제인물이다. 그의 본명은 김윤기로 북한에서 중학교 5학년(현, 고2) 재학 중 어린 나이로 인민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는 낙동강 다부동전투 중에 서울 출신 한 의용군 간호사(여성)와 탈출했다가 포로로 잡혔다. 1953년 6월, 반공 포로로 석방된 뒤 국군에 입대하여 제대했다. 그는 낙동강 전선 탈출 도중 정사를 나눈 바 있는 구미 형곡동으로 간호사를 찾고자 온 뒤, 연인은 찾지 못하고 그 집 주인의 가축병원에서 조수로 일시 정착했다.
 
나는 그때 큰고모 댁에서 지냈다. 그해 겨울밤 앞 집 가축병원의 조수 김윤기 아저씨의 인생역정을 가슴 졸이며 흥미진진하게 들은 바 있었다. 나는 그때 그 이야기를 나중에 소설로 꼭 써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 뒤 대학 재학시절, 시인 조지훈(본명 조동탁) 선생은 강의시간에 이따금 자작시를 낭독했다. 그 가운데 한국전쟁 당시 포화 속에서 종군시인으로 쓴 '절망의 일기' '다부원에서' '너는 지금 38선을 넘고 있다' 등의 시 낭독은 대단히 사실적으로 감명 깊었다. 지훈 선생의 그 굵직한 목소리와 처절했던 전투 현장의 생동감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은사 조지훈 선생 ⓒ 박도

 
고인과 약속

소설가 정한숙 교수는 '창작연습' 강의시간마다 제자들을 담금질했다.

"한국인은 6·25전쟁으로 엄청난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큰 축복이다. 분단에다 골육상쟁, 이보다 더 좋은 작품 제재가 어디 있느냐? 너희들 가운데 6·25전쟁을 배경으로 대작을 쓰라."

1997년 9월, 나는 정한숙 선생의 관을 묘지로 운구하면서 관속의 고인에게 무언의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제가 6·25전쟁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겠습니다."
"내 말을 잊지 않았군. 그래, 박도! 자네가 써보게. 바둑판(원고지) 메우는 재미도 쏠쏠할 거야."
"예, 선생님!"

 
나는 2005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때 북녘동포들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남과 북 백성들 사이에는 분단의 벽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한반도를 에워싼 강대국들과 남과 북의 지도층, 일부 기득권자만이 자기들 지위나 쌓아둔 부(富)를 잃지 않으려고 분단의 벽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작품의 주인공 김준기의 고향인 북한 청천강(2005. 7. 24. 촬영). ⓒ 박도

 
그리하여 2010년 겨울부터 고향과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약속>을 집필했다. 나는 이 작품을 쓰고자 국내외에서 수년간 자료를 모았다. 내가 자료수집차 고향에 갔을 때다.
 
구미중학교 허호 선배는 낙동강 옆 임은동 왕산 허위 선생 생가가 다부동전투 당시 야전병원이었다고 증언해 주었다. 또 구미 형곡동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강구휘)는 자기 마을 일대가 다부동전투 당시 미 공군 B-29의 융단폭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생생한 증언을 해줘 집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작품을 집필하며 가장 걱정했던 주인공의 평안도 방언은 고교 때 은사 김영배 선생님(전 동국대 교수)이 도와주셨다. 그분은 우리나라 방언학의 대가로 특히 평안방언 전문가이시다. 남녀 주인공은 모두 위생병 출신인지라 의료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이 대목은 고교 동창인 삼성병원 이관세 박사와 이대부고 제자인 의료공단 송영득 박사의 자상한 자문을 받았다.
 
이 작품 전반부는 사실에 따라 썼지만 후반부는 픽션이다. 남녀 주인공들의 미국 이민생활에 관해서는 이대부고 제자인 재미동포 찰스 리의 도움을 받았다. 그 밖에도 많은 분들이 소매를 걷고 도와주셨다. 나는 그 분들 도움으로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이 작품을 썼다.
   

작품 배경인 묘향산 보현사(2005. 7. 촬영) ⓒ 박도

 
혼신의 힘을 다하여 집필하다
 
이 작품에 나오는 지리적 배경은 일일이 답사했다. 국내는 빠짐없이, 어떤 곳은 두세 번 답사했다. 의정부 '곧은골'에 있었던 미 제2사단은 다행히 작품을 쓸 당시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미 제2사단 부대 앞 녹슨 철길에서는 그때까지도 '양공주'들의 껌 씹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북한은 아내와 함께 금강산을 두 차례 여행한 것과 2005년 남북작가대회에 방북한 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 작품 배경인 미국은 2004년 백범 김구 선생 암살배후 진상규명을 위한 방미와 한국전쟁 사진을 수집코자 2005년과 2007년 2~3차에 걸쳐 방미한 눈썰미로 메울 수 있었다.
   
나는 작품 기필 2년만인 2012년 연말에 초고를 탈고했다. 마땅한 출판사가 나서지 않아 오마이뉴스 상근기자(김미선)에게 연재를 상의했다.

"글쎄요? 여러 작가들이 소설을 연재했으나 중도에서 그만둔 분이 많았어요. 아마도 소설 연재는 성공하기가 매우 힘드나 봐요."
 
그의 부정적인 답변에도 2013년 6월 24일부터 <어떤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첫 회 조회가 무려 9천여 회였다. 그 이후 매회 평균 1만 명 이상의 독자들이 내 작품을 읽어주고 열성 독자들은 원고료까지 보내줬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어떤 약속>을 썼다.
 
그리하여 그해 연말인 2013년 12월 12일 98회로 마무리한 다음, 99회는 작품 뒷이야기로 "340만여 글자 한 자에도 정성을 다 바쳐 썼다"라는 기사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러자 그해 연말 오마이뉴스 측에서 문학 분야 특별상을 주었다.
 

백두산 천지 ⓒ 박도

 
한 가족의 작은 통일을 그리다
 
사람이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김준기와 최순희, 그리고 준기와 그의 어머니 간의 굳은 약속은 총알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전장에서도 지켜졌다. 나는 그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약속을 지키는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그렸다.
 
그런 소망을 이 작품에 오롯이 담았다. 무엇보다 10대 소년이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약속을 늘 빚으로 남겨 두다가 일흔의 나이에 실천했기에 더욱 기뻤다.

나는 이 작품 <어떤 약속>을 통해 아직도 분단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엽고 불쌍한 남과 북, 그리고 해외 동포의 눈물을 닦아주는 동시에 그분들에게 위안과 함께 조국 통일의 소망을 담았다.

분단 70년이 넘은 이즈음에도 통일의 길은 보이지 않고 있다. 나는 이 작품으로 우선 실현이 가능한 한 가족의 통일을 그려보았다.
 
이 작품 <어떤 약속> 연재가 마무리되자 이번에도 눈빛출판사에서 '어떤'이라는 말을 뺀 <약속>이란 제목으로 예쁜 소설집을 엮어주었다. 문학 평론가 염무웅 선생은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주셨다.  
   

작품 배경의 하나인 북한 묘향산을 찾은 기자 ⓒ 박도

   
공정한 시선의 작가정신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가까운데도 통일의 꿈은 멀고,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60년이 넘었는데도 평화는 요원하다. 오늘도 현실은 지뢰밭을 걷는 듯한 불안에 싸여 있다. 대체 왜 우리는 악몽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박도 선생의 장편소설 『약속』은 이 무거운 주제를 뿌리에서부터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나에게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런 문제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38선 이북 강원도 어촌에서 태어나 경상도 산골에서 6.25를 겪은 나 같은 사람의 가슴에는 늘 '피난민'의 정서가 깔려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약속』 주인공의 기구한 삶의 역정은 단지 소설적 허구로만 읽히지 않는 것이다.

주인공 김준기는 시인 김소월이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이라고 노래했던 그 평안도 영변 출신으로서, 중학생 때 6.25전쟁이 발발하자 말단 위생병으로 낙동강전선에 투입된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 한복판임에도 분홍빛 사랑을 만나고, 그 인연으로 도망병이 되었다가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긴 끝에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다.

그가 도망병으로, 또 이북 출신 외톨이로 수십 년 겪어야 했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헤어진 여자를 만나며, 미국 시민권자로서 고향 어머니를 찾아가 마침내 감격의 상봉을 한다.

이 작품의 훌륭한 점은 그런 상투적인 성공 스토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념적 편향에 사로잡히지 않는 공정한 시선을 통해 전쟁의 실상에 더 가까이 접근하고자 시도한 것, 그럼으로써 남북 정치체제의 모순을 더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체제의 논리를 넘어선 민족통일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증언한 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진정한 미덕이다.
  

소설 <약속> 표지 ⓒ 박도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이 연재는 78화로 끝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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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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