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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이 여성이 벌인 일

[책줍일기] 사회활동가 궈징 지음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등록 2020.11.14 20:44수정 2020.12.0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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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더미 속에서 사심을 담아 알리고 싶은 책, 그냥 지나치긴 아까운 책을 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가 골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2019년 12월 30일, 중국의 한 안과의사가 '사스 확진 환자 7명이 발생했다'는 요지의 병원 보고서를 입수한다(훗날 코로나19(COVID-19)로 명명). 그는 곧바로 의대 동급생들이 속해있는 위챗(중국의 모바일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이 내용을 올린다. 

신종바이러스의 확산을 민감하게 감지해낸 그에게 돌아온 건 '탄압'이었다. 이 글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자, 경찰은 '유언비어를 퍼트린다'는 명목으로 그를 소환, 훈계서까지 받아낸다. 이후 여러 고초를 겪으면서도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던 그는 자신도 코로나19에 감염돼 지난 2월 7일 사망한다. 중국의 '코로나 영웅'으로 잘 알려진 리원량의 이야기다. 


리원량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밤 9시, 그의 헌신을 누구보다 가깝게 지켜본 중국 사람들은 온 집안의 불을 끄고 약 5분 동안 창밖으로 불빛을 비췄다. 또 누군가는 '내부고발'을 의미하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한 네티즌이 리원량을 추모하자며 제안한 일이었다. 이는, 고립 속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하나의 신호이기도 했다. 모두 함께 이 재난 속에서 살아남자는 연대의 마음을 공유하는 의식이었다.
 
내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물은 평소 빛이 드문드문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9시가 되니, 건물 귀퉁이에서 미약한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었다. 그건 봉쇄를 뚫는 빛이었다. p. 140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지역 자체를 봉쇄해야만 했던 우한에서도 그 희미한 빛을 확인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의 저자 궈징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리원량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날, 통탄함을 느끼면서도 이렇게 다짐한다. 
 
...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일종의 투쟁이다. p. 135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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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 원더박스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는 페미니스트이자 사회활동가 궈징이 2020년 1월 23일부터 3월 1일까지, 봉쇄된 우한에서 써내려간 일기를 담은 책이다. 한국 언론이나 뉴욕타임스, BBC 등 외신에서 단편적으로 소개되기도 했던 그 글들이 하나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 

광저우에서 살던 궈징이 우한에 이사 온 것은 2019년 11월. '팬데믹 진앙지'라는 오명이 도시 이름 앞에 붙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할 시기였다. 하지만 그가 삶의 터전을 옮긴 지 두 달 만에, 우한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1월 23일엔 도시 자체가 봉쇄되기 이른다. 내륙의 중심지이자, 총면적이 8000여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 도시가 일순간 멈추게 된 것이다. 

일상이 무너진 상황에서 그가 택한 건 매일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궈징은 위챗 모멘트(중국판 카카오스토리)에 봉쇄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당시 우한은 코로나19로 아비규환인 상황이었지만, 그 심각성에 비해 사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설명은 부족했다.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죽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도 많았다. 봉쇄된 도시에 살고 있는 당사자이자 사회활동가인 궈징에게 글쓰기란 "사회에 공헌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늘 자신이 있는 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다. 대학교 때는 교내 남녀 화장실 비율에 문제를 제기해 기어코 그 다음 해 여자 화장실을 늘리는 성과를 얻어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할 땐 '이 직무엔 남자만 채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보인 한 직장(무려 학교였다!)에 소송을 걸기도 했다.

중국 첫 채용 성차별 소송에서 승소를 이끌어낸 주인공이 된 그는, 이후 동료들과 함께 직장여성법률핫라인을 운영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봉쇄 일기를 쓰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궈징은, "우연 뒤에 어떤 필연이 자리"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궈징은 일기와 함께 자신의 위챗 QR 코드를 공개해, 물품 기증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연락해 오면 자원봉사자와 연결해주기도 하고, 가정폭력 상담이 들어오면 본업을 살려 동료들과 해결책을 모색한다. 또, 개개인이 가정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하나의 백신이 되어 보자는 취지의 '가정폭력 반대 미니 백신' 캠페인을 벌이거나 실시간 온라인 강좌를 연다. 그의 위챗은 단순한 계정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나의 기지이자 연결점이었다. 

그를 살게 했던 '소소한 반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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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이 중국 전역으로 확산한 가운데 지난 1월 28일 중국 수도 베이징 왕징 한인촌 식당에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 연합뉴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단지(거주지를 일종의 '블록'으로 나눠 관리하는 단위)의 이동 제한이 걸리기 전까지는 직접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난다. 그의 시선은 재난 속에서 더 취약한 상황에 내몰리는 이들에게 향한다.

배달원, 환경미화원, 편의점 점원,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기 위한 병원을 짓는 데 참여했던 건설 노동자들까지. 때론 '수상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질문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써내려간다. 

흔히 '재난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그 재난을 견뎌낼 수 있는 자원과 힘엔 분명 차이가 있다. 같은 상황에서 취약한 이들의 일상은 더 빠르게 무너진다. 궈징은 그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고, 분명하게 기록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좌절감에 잠식되진 않는다.
 
... 한 행인이 (청소노동자) 아주머니에게 죽는 게 두렵지도 않느냐고 물으니 아주머니가 하는 말씀이, 죽는 게 두려워도 방법이 없다고, 더럽고 치사하면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거였다. p.85

궈징에겐 듣고 쓰는 것이 곧 "무력감과 공존하는 방법"이었다. 매일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를 마주하고 자신의 미약함과 보잘 것 없음을 인식하지만,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는 이 "일종의 소소한 반항"을 통해 "정보가 봉쇄된 상황에서 진짜 정보를 찾고, 격리된 와중에 타인과의 연결을 모색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떤 확실성을 찾아"간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의 일상을 살뜰하게 가꿔나간다. 그가 수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매일 밤 놓치지 않았던 건 친구들과의 영상 채팅이었다.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그는 매일 일기를 쓰는 동시에 밤마다 수다를 떨었다. 이른바 '밤의 채팅'이다. 

이야기의 주제는 대중없었다. 누군가는 캐러멜 밀크티를 만들거나 엄마와 춤을 춘 경험을 나누고, 한동안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어느 날엔 가정폭력의 양상과 비가시화되는 여성의 노동에 대해 논하기도 한다. 우리를 기어코 살게 하는 아주 소소하고 평범한 행복에 대해 말하면서, '생존'이 아닌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은 것이다. 
 
화면 속의 친구는 내 눈치는 아랑곳 않고 꼬치구이를 먹으며 행복해했다. 친구들이 날 개의치 않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정말이지 내 눈치를 볼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각자 자기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게 정말 중요하니까. p.42

나로서는 일관된 마음으로 일기 전체를 써 내려갈 방법이 없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터무니없음을 하나하나 기록해 나가는 것뿐이다. p.64

궈징은 반복해서 말한다. 무력해도 움직여야 한다고, 행동만이 희망을 만든다고, 우리는 연결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연결이 주는 뜨거운 감각을 함께 느끼자고.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에 실린 일기는 3월 1일부로 끝난다. 아직 우한 봉쇄 상황이 풀리기 이전이다. 책엔 미처 다 실리지 못했지만, 실제 궈징은 우한의 봉쇄가 해제되던 4월 8일까지 계속 일기 쓰기를 이어간다.

약 한 달간의 기록이 텅 비어있지만, 궈징은 아마 이 책에 다 담지 못한 그 일기에서도 코로나19가 불러온 불평등한 죽음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무력감과 좌절감에 휩싸이지 않고 움직인 기록 또한 남겼을 것이다. 동시에, 그날의 식사 메뉴를 꼬박꼬박 적고 시시껄렁하고도 묵직한 이야기들이 오간 '밤의 채팅'에 대해 말했을 것이다.

이 일관되지 않은 기록은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아슬아슬하게 일상과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우리에게, 미약하지만 분명 저 멀리 빛이 보인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 시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 시기에 일어난 일을 이 시기에 만난 사람을 다른 이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가 사스를, 원촨 지진을 이야기 하듯이. 우리는 앞으로도 이 시기의 기억을 품은 채 살아갈 것이다. p.140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 어느 페미니스트의 우한 생존기

궈징 (지은이), 우디 (옮긴이), 정희진 (해제),
원더박스, 2020


#우한 #코로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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