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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장터 물려받은 청년들... "서로 바리바리 싸줘요"

[지리산활동백과] 산청 지리산 목화장터 청년기획팀(은영, 재영, 종혁)을 만나다

등록 2020.11.15 14:27수정 2020.11.1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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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지리산권 지역에 필요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과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민간 지원단체로,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소 3년차를 맞아 지리산권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 모임, 공간, 네트워크를 소개하는 글을 싣습니다.[편집자말]

좌측부터 목화장터 청년기획팀의 재영, 은영, 종혁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언제부턴가 도심 한복판에, 혹은 지역 명소나 관광지를 배경으로 '프리마켓'이 들어서며 유행하기 시작했고, 그중 몇몇은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한번 가본 적은 없어도 마르쉐@, 문호리버마켓, 벨롱장, 마켓움 등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어느새 관광상품이 된 이런 마켓들에 비하면 거의 무명에 가까울 테지만, 지리산권에도 전통 오일장과는 별개로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장이 있다. 이름부터가 '시골스러운' 목화장, 살래장, 문놀장, 콩장이 바로 그것. 

이 중 경남 산청군 신안면 원지 소공원에서 달마다 두 번씩 열리는 목화장터는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전부 자원봉사자에 의해 돌아갈" 만큼 참여자들 간의 결속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장터의 온라인 채널로 운영되는 밴드는 '소통'이라는 제 기능과 역할을 백 퍼센트 이상 해내고 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그냥 둬도 이처럼 잘만 돌아가는데 올해 들어 새롭게 '청년기획팀'이 꾸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른바 목화장터의 '젊은 피'라 불리는 세 명의 청년(은영, 재영, 종혁)은 어떤 변화를 상상하고 있을까? 가을볕 아래 들판도 사람도 곱게 익어가던 어느 날, 그들을 만나기 위해 98회 장이 열리고 있는 원지 소공원을 찾았다.  

장터에 '진심'인 사람들의 세대교체 

"목화장은 그동안 성경모 선생님과 김명철 선생님, 그리고 그분들을 지원하는 나눔회라는 모임에 의해 굴러왔어요. 그런데 작년 말쯤 성경모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청년들한테 목화장을 맡겨보면 어떨까? 그땐 아무 생각 없이 괜찮을 거 같다고 했어요. 설마 그 청년들에 제가 포함돼 있을 줄은 몰랐던 거죠(웃음)." - 은영

"저도 비슷해요. 알고 보니 성경모 선생님이 우리 셋을 다 따로 만나 작업을 하셨더라고요.(웃음) 그때 제가 느끼기로는 성경모 샘이 지금쯤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어요. 청년들이 우선 2년 정도 맡아보면 어떻겠냐고 하시기에 좋다고 했지요." - 종혁


위에서도 드러나듯 목화장터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성경모, 김명철 두 사람이다. 지역에서 뭔가 재미난 일을 벌여보고 싶었던 두 사람은 산청군 중 유일하게 신안면에만 오일장이 없다는 점에 주목해, 2014년 한 해 동안 인근 지역의 프리마켓을 둘러보는 등의 준비를 거쳐 이듬해 3월에 '산청 지리산 목화장터'란 이름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한다.

나눔회는 그때부터 이 두 사람의 활동을 응원하고 지원해온 사람들의 모임으로 지난 5년간 묵묵히 앞뒤와 양옆을 두루두루 살피며 내조를 해왔다고. 요즘 말로 장터에 '진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두 사람과 나눔회 회원들이 마치 어머니가 제 자식을 마주하듯 애틋한 시선으로 목화장터를 바라본다면, 청년기획팀에게는 무엇보다 고마움이 앞선다. 타지에서 들어온 이주자들이 대개 그러하듯 이들에게도 고단한 시절이 있었고, 그럴 때 손 내밀고 품어준 목화장터의 기억이 여전히 삶을 덥히는 온기로 남아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기꺼이 장터 운영을 떠안은 세 청년의 마음 또한 진심일 수밖에.  

"누구에게라도 비빌 언덕이 되어주죠" 
 

목화장터의 돗자리 가판에서 옷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산청에 들어온 지 십 년 됐고, (목화장터에서는) 처음엔 아버지 농장의 유정란을 팔다가 지금은 독립해서 제 유정란을 팔고 있어요. 귀농하면서부터 내 걸 장에 내고 싶다는 생각이 컸는데 그걸 목화장에서 이룬 거죠. 또 여기 나오면 나처럼 농사를 본업으로 하면서 관심사나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그게 좋더라고요." - 재영

"저는 십일 년 전에 와서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 관련한 일들을 해왔어요. 활동하면서 어떤 학부모로부터 '빨갱이'라는 말까지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좀 다르더라고요. 적어도 남을 비난하거나 질타하지는 않거든요. 의견이 달라도 '음, 네 생각은 그렇구나, 나랑은 다르네?' 이러지 '넌 틀렸어, 그건 안 돼'라고 쳐내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한마디로 목화장은 누구에게라도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곳이죠." - 은영

재영, 은영과는 달리 종혁은 산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다만 고등학생 때부터 타지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해 이후에도 학업과 직장 관계로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다가 올해로 귀향한 지 4년째. 부모님이 일궈온 딸기 농사를 함께 짓고 있으니 남들보다 안정된 기반 위에서 시작한 것은 맞다. 그렇다고 흔히들 생각하듯 토박이라 해서 뭐든 쉽기만 한 건 아님을, 그는 새삼 일깨운다.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래서 독서 모임을 만들고 농민회도 나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를 많이 했지요. 사람 만나려고요. 그 과정에서 저는 목화장과 특히 밴드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게 없었다면 뭘 해보고 싶다든지, 누굴 만나야겠다든지 그런 생각 자체를 못 하고 그냥 좌절했을 거 같아요." - 종혁

규정 없이도 잘만 굴러가는 비결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고, 비슷하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고, 또 새로운 모임도 만들 수 있는 곳.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목화장터 '밴드'에 가입하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단, 그러기로 마음먹었다면 적어도 알림음은 진동으로 설정해놓기를 권한다. 지역 내 다양한 소모임 소식부터 지자체 게시판에나 올라올 법한 각종 고시공고에 이런저런 지원사업과 일자리에 관한 깨알 같은 정보까지, 하루에도 수십 개나 되는 글들이 쉬지 않고 올라오니 말이다. 물건을 거저 주겠다는 사람, 자기 집이나 가게에 놀러 오라는 사람은 왜 또 그리 많은 것인지.

"목화장이 생기면서 주민들 스스로 하는 소모임이 많아진 게 가장 눈에 띄는 변화예요. 그전에는 모임이라고 해야 초중학교 동창회 정도고 사실상 술 마시는 게 전부였는데, 지금은 같이 모여 바느질하고 그림 그리고 천연염색 배우고 하는 게 자연스러워졌죠." - 은영 

"밴드에 무료 나눔 하겠다는 분들이 진짜 많아요. 저도 몇 달 전에 3톤 정도 크기의 물통을 공짜로 받았어요. 예전에 고양이도 한 마리 받았는데 분양해주신 분이 고양이에게 필요한 물건까지 바리바리 싸주시더라고요. 저도 그렇지만 다들 목화장을 통해 만난 사람에게는 하나라도 더 주려는 거 같아요.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서로 신뢰한다는 느낌도 들고요." - 재영

목화장터가 이렇게 끈끈하면서도 역동적으로 굴러가게 된 비결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보통 운영 주체가 정한 규칙이 무엇인지, 어떤 방침을 내세우고 있는지를 묻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런 건 없다"고 한다. 오죽하면 운영자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의 모든 것을 참가자들의 자율적인 선택과 협력에 맡기고 있다고.  

"처음부터 목화장은 운영자 없는 장터를 표방했어요. 지금도 청년기획팀이 운영자로서 하는 일은 사전에 날씨예보 보고 공지 올리는 정도?(웃음) 물론 최소한의 기준은 있죠. 공산품을 떼다 팔지는 말자, 가능하면 일회용품은 자제하자. 이것도 의무는 아니고 자제를 부탁하는 정도인데, 때가 되면 자연히 그런 분위기로 흘러가더라고요." - 종혁

무엇이든 가능하니 뭐라도 해볼까
 

장이 열리는 원지소공원 한켠에 마련된 어린이 놀이터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이처럼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 상호 존중과 신뢰로 유지되는 목화장터는 세 사람의 표현에 의하면 "누가 뭘 해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을", "원하는 건 뭐든지 시도해봐도 괜찮을" 곳이다. 그래서 이 청년들은 과연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장터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가 바뀔 수 있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작년에는 장터에서 머그컵 대여를 하니까 사람들이 일회용 쓰는 것을 스스로 자제하더라고요. 올해 중단됐는데 내년에는 녹색당을 꼬시든 청년기획팀이 나서든, 다시 머그컵 대여를 해볼까 해요." - 은영

"저는 몸으로 때우는 게 장터에서 내가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년에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원으로 목화장 내 놀이터 만드는 일을 맡았고 올해도 계속하고 있어요. 나무로 구름사다리나 바이킹 같은 기구를 만들어서 놀이터에 갖다 놓으면 아이들이 얼마나 신나게 달라붙어 노는지 몰라요. 그 모습을 보는 게 좋고, 또 이걸 계기로 친구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죠. 무엇보다 저는 아이들이 즐겁지 않은 장터는 상상이 잘 안 돼요." - 재영

사실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으로 인해 모든 게 쉽지 않았다. 장터를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심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소진이 컸다는 건 과장이 아니다. 이런 어려움을 대변하듯 종혁이 말한다. 

"목화장에 젊은 층이 좀 더 찾아주길 바라죠. 귀농귀촌자뿐 아니라 선주민과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고요. 그러려면 놀이터를 시도했듯 뭔가 새로운 일을 벌여야 하는데... 아직은 나부터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 종혁

하필이면 운영을 맡은 첫해에 손발이 묶여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뭘 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초조함은 없다. 오히려 그들은 "일단 장터 음악부터 우리 취향으로 바꾸자"는 농담 아닌 농담을 웃으며 주고받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

코로나보다 더한 게 와도 목화장터 사람들은 계속 연결되리라는 것을, 청년기획팀의 진심 또한 그 안에서 천천히 꽃으로 피어나리란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여하튼 곧 있을 100회 장터에서는 꼭 음악을 바꿔보시길. 목화장터를 새로 맡은 '젊은 피'들의 음악 취향은 어떠한지 확인하러, 그날은 특별히 귀를 쫑긋 세우고 나가봐야겠다. 

글 | 자야
사진 | 임현택
기획/진행 | 누리

Author 자야
새벽 요가, 산책길의 노래, 지치지 않을 정도의 텃밭일, 마음과 마음의 이어짐, 용기 있고 다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것을 좋아하는 함양 주민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홈페이지와 아름다운재단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목화장터 #플리마켓 #산청군 신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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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권 지역에 필요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과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공동운영하며,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의 시민사회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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