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오만가지 번뇌, 이 다리 위에서 다 비워내자

[세상을 잇는 다리] 누각다리②, 순천 송광사 청량각과 우화각

등록 2020.11.18 08:56수정 2020.11.18 08:56
1
원고료로 응원
조계산(曹溪山) 동측에 선암사가 있다면, 서측에는 송광사(松廣寺)가 있다. 조계산 이름은 송광사에서 말미암았다. 선암사는 아직도 조계종(曹溪宗)과 태고종(太古宗)이 소유권을 다투고 있다. 선암사도 뛰어난 사찰이나, 조계산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승보(僧寶) 사찰 송광사
 

송광사로 드는 길 송광사로 드는 길이 평온하다. 거목의 소나무와 편백나무가 열주처럼 늘어서 있다. 이 길을 걷는 이들을 능히 위로하려는 마음이 엿보인다. ⓒ 이영천

 
보조국사 지눌이 타락한 불교를 개혁하고자 정혜결사(定慧結社) 운동을 조직하고 세운 절이 송광사다. 지눌 이후 송광사가 조계종 중흥도량이 되면서, 본래 송광산이던 산 이름도 조계산으로 바꿔 부른다. 이는 우리 불교의 큰 맥인 조계종이 이곳 송광사에서 태동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송광사에서 바라보는 서역으론 너른 주암호가 웅장하다.


1925년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50여 일 간 일정으로 지리산 일대를 둘러보고, '심춘순례(尋春巡禮)'라는 기행문을 남긴다. 말 그대로 순례 길에 나섰다. 경건한 마음으로 종교적으로 신령스런 곳을 찾아다닌 것이다. 그는 기행문 서문에 '우리 땅은 그 자체로 우리의 역사이고 철학이며, 시이고 정신이다'라고 기록한다. 그의 말년 친일로의 변절이 아쉬우나, 적확한 말임에는 틀림없다.

그도 조계산을 다녀간다. 선암사에서 굴목이재를 넘어 송광사에 들었다. 송광사에 든 기행문 제목을 '조선불교의 완성지인 송광사'라 짓는다. 그러면서 송광사를 '절집 중 맏형의 집에 드는 느낌'이라 표현한다. 그렇다. 송광사는 그런 곳이다. 삼보사찰(三寶寺刹, 불(佛), 법(法), 승(僧)의 보(寶)를 간직한 사찰. 불보-통도사, 법보-해인사) 중 승보에 해당한다. 수도정진에 있어, 불교적인 계율을 가장 잘 지켜내고 있는 도량이다. 고려 이후 16명의 고승(국사)를 배출한 사찰이기도 하다.

뛰어난 지혜의 공덕으로 이룬 청량각

송광사에 이르는 길을 주암호 쪽에서 잡는다. 최남선처럼 순례할 만큼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 보성강 물줄기를 막아 만든 주암호가 청청(靑靑)하기만 하다. 산문(山門)에 드는 낯선 객을 위로하려는 마음이 읽힌다.

호수가 가슴을 열어 짙푸르게 멍이 든 속내를 가감 없이 내보인다. 짙게 멍이 든 그 빛깔에 내가 다 부끄러워진다. 청량각에서 흘러내리는 청량한 송광천이 주암호로 든다. 바람은 맑고 달콤하다. 청량(淸凉)이란 말은 '뛰어난 지혜의 공덕'을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뜻한다 하니, 몇 겹으로 즐거운 일이다.
 

청량각 전경 다리를 극락교(極樂橋)라 하고 그 위 누각을 청량각이라 부른다. 무지개 위에 벽석을 올리고 정점에 멍엣돌을 걸었다. 멍엣돌에 귀틀돌을 걸어 누각 주초로 삼았다. 하부 궁륭에는 우직한 용이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누각은 주심포계로 정면 1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을 이고 있다. ⓒ 이영천

 
잠깐 걸음에 청량각이 밝은 얼굴로 웃고 있다. 아래로는 송광천 맑은 물이 흐른다. 그 위에 다리를 놓았다. 속계와 불계를 가르는 경계다. 돌로 만든 무지개다. 약 300년(1730년) 전에 지은 다리가 자꾸 부서져, 두 번(1921년, 1972년)이나 고쳤다 하니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옛 돌에, 하얀 얼굴의 새 돌이 서로를 잘 붙들고 있다. 다리를 극락교(極樂橋)라 하였으니, 정녕 극락에 이르는 길이란 말인가? 한 번의 건넘으로 이를 수 있는 극락이 과연 존재할까? 혹여 그런 극락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무지개 위에 벽석을 올리고 정점에 멍엣돌을 걸었다. 멍엣돌에 귀틀돌을 걸어 누각 주초(주춧돌)로 삼았다. 다리 하부 궁륭에는 우직한 용이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청량각 청룡과 황룡 우물천장을 만들어 연꽃이 새겨진 화판을 두고, 양 끝 다리 위를 들고 나는 방향으론 청룡과 황룡 두 마리 용이 보인다. 한옥 충량(衝樑)을 절묘하게 활용한 모습이 이채롭다. 빛 바랜 단청에선 세월의 흔적이 묵직하다. ⓒ 이영천

 
그리고 다리 위에 누각을 얹었다. 귀틀돌 위에 둥근 주춧돌을 놓고 거기에 기둥을 세웠다. 주심포계로 정면 1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을 이고 있다. 우물천장을 만들어 연꽃이 새겨진 화판을 두었다. 우물천장 양 끝 다리 위를 들고 나는 방향으론, 몸통이 있는 두 마리 용을 모셨다. 청룡과 황룡이다. 한옥 충량(衝樑, 한쪽 끝은 기둥머리에 짜이고 다른 쪽 끝은 들보의 중간에 걸친 보)을 절묘하게 활용하였다.

단청은 화려하나 시간의 흔적이 역력하다. 억겁의 시간 동안 이 길을 지나간 중생의 허물을 두 마리 용이 다 받아 안았으니, 그 고단함이 변색된 단청에 그대로 전해져 온다. 단청 색깔만큼이나 나이 든 무지개누각다리가 날렵하고도 중후하다. 나이 든 지혜로운 처사를 송광사 초입에서 만난 기분이다. 아둔한 궁리(窮理)가 절로 지혜로워지는 느낌이다.

해탈한 석수

청량각 지나 일주문으로 가는 길은 고즈넉하다. 맑은 바람이 가슴을 어루만진다. 어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불국토에 이르는 평온한 길이다. 양 옆으로 거목의 소나무와 편백나무가 열주처럼 늘어서 있다. 속세의 번뇌를 같이 짊어지고 가려는 듯, 일제히 얼굴을 길을 향해 내밀고 있다. 사나워진 마음으로 이 길을 걷는 이라면 능히 충분한 위로가 될 듯하다.

산사로 오르며 숲 사이 언뜻언뜻 보이는 길이, 앞으로 살아내야 할 시간마냥 아련하기만 하다. 오르는 길에선 뒤돌아 봐도 도무지 아무것도 뵈지 않는다. 지나온 길에서 얻은 번뇌의 무게에 짓눌린 탓인가?

문과 개울을 몇 번이나 지나고 건너서야, 이고 진 번뇌가 마음의 눈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가벼움이고 자유로움이다. 뒤돌아 볼 줄 아는 마음 속 눈길이 겨우 생겨난 느낌이다. 해탈의 경지에 비로소 가까이 다가선 것일까? 오르며 보이지 않았던 길이, 내려가는 걸음엔 또렷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작은 깨달음이다.
 

송광사 일주문 송광사로 드는 산문(山門) 중 첫번째 문이다. 화려한 다포가 번뇌를 안고 산문에 드는 중생을 위로한다. ⓒ 이영천

 
다포(기둥머리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에 빈틈없이 짜 올린 공포)가 화려한 일주문이 송광사로 드는 중생을 맞이한다. 문의 화려함이 번잡한 마음을 다소 누그러뜨려 준다. 세속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어내고, 한마음으로 진리의 세계에 귀의하라 손짓한다. 번뇌를 버리고 가벼운 마음과 수행하는 자세로, 해탈의 자유를 맛보라 권유한다.
 

해탈한 모습의 석수 일주문 계단 양옆 소맷돌에 있는 석수다. 앞발을 들어 턱을 괴고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얼굴을 분간하기 어려우나, 그 표정만은 무척 깊어 보인다. 해탈이다. ⓒ 이영천

 
일주문 계단 양옆 소맷돌에, 앞발을 들어 턱을 괴고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 두 석수(石獸)의 모습이 무상하다. 사자인지 원숭이인지, 분간이 안 되는 얼굴이다. 억겁의 시간 안에, 스스로 얼굴을 가두고 지워버렸다. 하지만 표정은 무척이나 깊어 보인다. 심오한 깨달음과 끝없는 공허의 경계에 서 있는 얼굴이다. 속인이 함부로 범접할 수 있는 표정이 아니다. 해탈이다.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자유로움
 

연못에 비친 우화각 다리 아래 연못에 비친 누각다리가 수면에서 경계를 이룬다. 무지개는 무게를 덜어내어 둥글어 졌고, 누각은 하늘과 물의 무게를 가벼이 떠받치고 있다. 물과 만나는 선이 위 아래를 둘로 가른다. 회전체로 소실점이 없다. 무한 원점이다. ⓒ 이영천

 
일주문을 벗어나 조금 더 걸으니 우화각(羽化閣)이 마중 나온다. 청량각과 형제임이 분명하다. 무지개다리 위에 우아한 누각을 얹었다. 무지개 정점 쐐기돌을 멍엣돌 삼아 걸었다. 그 높이로 간격을 두어 멍엣돌 몇 개를 배치하고, 굵고 넓은 귀틀돌을 결구시켰다. 특히 가운데 귀틀돌을 밖으로 툭 튀어 나오게 하여, 안정감을 더하였다.

무지개 옆으로 벽석을 놓아 다리를 완성시켰다. 상판 바닥은 회반죽에 둥근 돌을 징검다리처럼 바닥에 깔았다. 다리 이름이 능허교(凌虛橋, 또는 삼청교(三淸橋))다. 모든 것을 능히 비워두라는 말이다. 그래야 자유로워진다. 궁륭엔 용이 머리를 내밀고 여의주가 아닌 엽전을 긴 끈에 매달아 물고 있다.

송광사는 가람배치도 자유롭다. 일직선 통상적인 배치가 아니다. 소실점 없는 우화각을 닮아 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자유를 추구했다. 또한 송광사에는 돌탑도, 석등도, 심지어 은은하게 울리는 풍경(風磬)소리 조차 들을 수 없다. 풍수지리와 수양정진을 위한 장치라고 하나, 모든 것을 비워내어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는 자유의 정신이라 생각된다.

하늘로 날아오르려면 우화해야 한다. 우화등선(羽化登仙)이다. 나비는 번데기가 변태하여 성충이 되어야 하고, 성충이 껍데기를 벗어야만 날개가 돋아난다. 그래야 날 수 있다. 생각과 육신의 자유를 드디어 얻게 된다. 신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속세의 번뇌는 충분히 벗어던질 수 있으리라. 우화각은 이 길을 걷는 모든 중생이 우화등선하길 바라는 마음의 현시다. 우화각 다리 위에선 비워내야만 한다. 그래야 어디든 자유로이 날 수 있다.
 

우화각 전경 임경당과 침계루가 우화각 무게를 거들어 떠안고 있다. 정면 1칸에 측면 4칸이다. 들어서는 곳은 팔작지붕이고, 사찰에 맞닿는 곳은 맞배지붕이다. 넓은 귀틀돌 위에 주춧돌을 놓았다. 거기에 기둥을 세우고 누각을 얹었다. ⓒ 이영천

 
임경당 든든한 돌기둥과 침계루 굵은 나무기둥이, 우화각 무게를 거들어 떠안고 있다. 정면 1칸에 측면 4칸이다. 들어서는 곳은 팔작지붕이고, 사찰에 맞닿는 곳은 맞배지붕이다. 넓은 귀틀돌 위에 주춧돌을 놓았다. 거기에 기둥을 세우고 누각을 얹었다.

다리 아래 연못에 비친 누각다리는 합해진 둘이며, 분리된 하나다. 무지개는 무게를 덜어내어 둥글어 졌고, 누각은 하늘과 물의 무게를 가벼이 떠받치고 있다. 물과 만나는 선이 경계이다. 위와 아래를 둘로 가르며, 아래 위를 하나로 접합시킨다. 회전체다. 따라서 소실점이 없다. 하늘과 물에 비친 우화각 소실점은, 수면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흩어지고 또 한곳으로 모아 들인다. 무한(無限) 원점(原點)이다. 우주의 궁구(窮究,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게 연구함)가 이 풍경 안에 모두 담겨있다.

우화각 길과 문을 지나면 드디어 선계(仙界)와 불계(佛界)의 세상에 든다. 번뇌하고 신음하는 모든 중생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준다. 깃털처럼 가볍게 훨훨 날아가라 손짓한다. 살아가는 일은 무지개 위에 앉아 낡은 껍데기를 벗어던져 버리고, 나비처럼 가벼이 날아가는 꿈을 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도 때론 그렇게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송광사_청량각 #송광사_우화각 #최남선_심춘순례 #승보사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