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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가..." 전태일 50주기에 울려 퍼진 경비원의 다짐

[하성태의 사이드뷰] 전태일 50주기 특집 KBS <다큐인사이트> '너는 나다'

20.11.13 18:41최종업데이트20.11.1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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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 인사이트> '너는 나다'의 한 장면 ⓒ KBS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평화시장의 참혹한 실태를 노동청과 대통령에게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몽둥이질과 해고 통고였다. 어디에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1970년 11월 13일, 나는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태우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 나약한 나를 바친다. 나를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들 곁으로."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부른 하림의 내레이션이 이어졌다. 전태일의 일기였다. 그 위로 '그때 그 시절' 청계천과 고 전태일 열사의 생전 모습이 교차됐다. 이렇게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12일 방송된 KBS1 <다큐인사이트-너는 나다>(<너는 나다>)는 안치환의 노래 <그런 길은 없소>로 문을 열었다. 시작은 뭉클했지만 예상 가능했다. 파격은 그 다음이었다.

"너무나도 훌쩍 커버린 지금 우리네 아버지/ 무엇이 이들의 영혼을 분노하게 했는지 /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저 홀로 속상할 뿐이지 / 인간으로서 요구할 수 있는 최소의 요구 / 자식부모남편이길 버리고 죽음으로 맞선 이들에겐 너무도 절실했던 바람 / 하지만 무자비한 구타와 연행으로 사태를 수습한 / 나라에 대한 집단 비판 / 현실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져 몸에 불 지른 전태일의 추락 / 나는 말하네 늙은 지식인들이 하지 못한 / 많은 것들을 이들은 몸으로 실천했음을"

래퍼 치타가 재해석한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는 감동적이었다. 직설화법의 미학, 그 매력을 한껏 살린 치타의 랩이 가미된 '2020년의 민중가요'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었다. 치타는 평화시장 바로 옆 청계천 복판에서 우리시대의 '전태일'과 문화예술인으로서의 '나'를 동일시하고 있었다. 바로 이렇게.

"이제는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판단할 차례 / 70,80년대 빈곤한 내 부모 살아온 시대 / 그때의 저항과 투쟁 모든 게 나와 비례할 순 없지만 / 길바닥에 자빠져 누운 시대가 돼가는 2000년대 마지막 꼬리를 잡고 / 억압된 모든 자유와 속박의 고리를 끊고 /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는 예술인으로 태어날 수 있는 나 / 진짜 한국인."

올 한해 진행되고 출간된 <전태일 50주기 공동 출판 프로젝트>에서 제목을 가져온 <너는 나다>는 이렇게 '어제의 전태일'을 '오늘의 전태일'들과 이어주고, 자연스레 이들과의 연대를, 한편으로 노래를 통한 위로를 보내려는 시도였다. 그 시도는 비단 청년 세대 노동자들의 현재를 비추는데 국한되지 않았다. 또 하림, 안치환, 양희은, 치타의 목소리를 통한 위로는 분명 상투성을 뛰어 넘는 노래의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느 경비 노동자의 눈물

"죄가 있다면 나이 먹은 죄... 6.25 전쟁 전후 세대로 태어나서 나름대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인공이라고 자부하고 살았습니다, 이때까지. 우리는 진짜 나이 먹은 아버지들이에요."

1948년생인, 전태일 열사와 동년배일 어느 경비 노동자가 눈물을 떨궜다. 그리고 주로 자영업자였고, 택시 운전도 했고, 중장비 일을 하며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도 갔다 왔다는 또 다른 노동자 전춘원씨는 "이런 일 저런 일 두서없이 많이"하다 현재 아파트 경비 노동자로 일하는 중이다.

그는 경비업무에 포함되지 않는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마치 영화 <기생충> 속 지하 공간을 연상시키는 공간, 돌아다니던 쥐가 빼곰히 쳐다본다는 그런 공간에서 휴식을 취했다. 전씨는 노후보장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씨는 아파트 세입자에게 연신 "이해해 달라"고 고개를 숙였다. 쓰레기 배출 일을 지키지 않은 세입자에게 "불편해도 이해해 달라"며 다음에 버릴 것을 부탁했지만, 이내 욕설이 돌아왔다. 그 남성 세입자는 "다른 사람도 다 버리지 않았냐"라면서, "여기까지 왔다가 어떻게 그냥 가느냐"면서, 고함을 쳤고, 욕설을 했다. "죄가 있다면 나이 먹은 죄"라던 경비 노동자의 한탄이 절감되는 장면이었다.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어쩔 수 없다며 속만 태우던 그때, 나는 경비원 법을 알게 됐다. 그 이후 나는 시간만 되면 경비원 법을 읽고 또 읽었다. 뭉쳐서 싸우면 큰 힘을 낼 수 있다.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동료들이 불의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며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서글프게 이제껏 찍소리 한 번 내지 못했다."

이어진 하림의 내레이션은 이랬다. 마치 '청년 전태일'로 빙의, 오늘, 여기의 노동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연출 기법이었다. 그 다짐 그대로, 전씨는 현재 '경비업법'을 공부 중이었다. '경비업법'에서 공동주택 경비원들이 제외된 현실을 감안, 국회가 경비원들의 처우 개선을 담은 법 개정에 나서도록 추동하기 위해 스스로 법을 공부 중인 것이다. 50년 전, 미싱사 전태일, 청계피복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공부했던 것처럼.

그런 전씨와 경비 노동자들에게 제작진이 헌정한 노래가 가수 양희은이 부른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였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정호승 시인의 시에 양희은의 진한 목소리가 더해진 곡이었다.

19살 노동자의 현재와 미래
 

KBS <다큐 인사이트> '너는 나다'의 한 장면 ⓒ KBS

 
"저뿐만 아니고 저 이후 특성화고 졸업생들도 그렇고 다른 대학생들, 청년 노동자들이 만나게 될 노동환경에서, 그런 부조리를 경험하게 될 거예요. 분명히. 폭언이나 시선 이런 거에 대해서. 그런 순간이 몇 번 있었어요. 일을 하면서 일이 힘든 건 당연한데, 내가 지금 여기에서 뭐하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지? 이렇게 대우받으면서 일하고 있다고? 그런 경험이 좀 있었죠."

경북기계공고를 졸업한 22살 이학선씨는 프레스 금형 기계의 라인을 깔아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대학을 가지 않은 그는 현재 스물 두 살이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일찍 취업전선에 뛰어든 이들은 열아홉 살 때부터 노동자로서의 삶을 경험한다. 남들보다 일찍 생활인으로서 자리를 잡는 이들은 자부심도 느끼지만 그와 더불어 어떤 사회적 차별에 직면해야 한다고 했다.

"안쓰러운 것도 있죠. 안쓰럽지.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그런데 그걸 잘 적응해 나가는 거 보면 믿음직하고. 속상할 때는 아이가 현장실습 나가서 다쳐오는 것은 잘 경험해 보지 못했는데, 마음의 상처.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이가 힘들어 할 때 속상하더라고요."

경험이 적어 영혼도 더 맑을 젊은, 어린 노동자들을 한국사회는 어떻게 취급하는가. 이렇게 경북기계공고 하미희 교사는 '사람과의 관계'라고 표현했지만, 더 정확히는 고졸이라 나이가 어릴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겪는 물리적, 금전적 차별이리라.

현재 취업 중인 경북기계고등학교 3학년 1반 한승완 학생이 바로 그런 젊고, 어린 노동자였다. 일을 시작하며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는 한승완 학생은 그러나 노동의 소중함과 노동자로서의 존엄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고 했다.

"자기 손으로 세상을 반짝반짝하게 빛나게 하고 싶다"는 한승완 학생의 미래 또한 반짝반짝 빛날 수 있을까. 한국사회는 이미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한 이 열아홉 살 소년을 앞으로도 지켜줄 수 있을까. 제작진이 한승완 학생에게 헌정한 곡은 안치환의 <떨림>이었다.

"니가 힘들고 외로울 때 언제는 날 불러줘, 삶이 무겁고 허전할 때 언제든지 날 불러줘/ 니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의 하루가 얼마나 빛나고 있는지 / 내가 말해줄게 보여줄게 지금의 너의 모습을 / 스무 살의 젊음은 가고, 눈가에 주름도 늘어가지만 / 아직 가슴엔 떨림이 있어. 떨리는 가슴이 있어 / 빛나는 하루를 살자, 빛나는 오늘을 살자."

김미숙 대표와 고 이소선 여사
 

KBS <다큐 인사이트> '너는 나다'의 한 장면 ⓒ KBS


"본인들은 자식이 죽으면 그렇게 취급할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난 내 자식이에요. 당신들 자식 아니라고 재판에 와서 아무 혐의 없다고 얘기해요? 돈만 있으면 다에요?"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사)김용균재단 대표가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절규하고 있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로 일하다 안타깝게 숨진 '청년' 김용균씨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첫 재판이 있던 지난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저는 용균이가 든 피켓이 숙제라고 생각하고, 저를 통해서 용균이가 들었던 피켓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미숙 대표의 다짐은 이랬다. 이어 제작진은 "어머니는 나를 이해해줬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의 인생을 대신 살고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어쩔 수 없이, 평생 '노동자들의 어머니'로서 노동현장과 시위현장을 지켰던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죽음으로써 희생하나 굶어서 희생하나 내쫓겨서 희생하나, 결국은 하나에요. 희생당한다는 거. 그걸 멈추고 바꿔야 돼고. 저는 자식을 잃었어요. 겁날 게 없어요. 더 이상 제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겁이 않나요. 그건 자식을 먼저 보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이스타항공 노조의 단식투쟁 현장에 들러 연대의 의지를 다진 김미숙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어 하림의 <그 쇳물 쓰지 마라>를 헌정한 제작진은 아니나 다를까 이소선 여사를 길어 올렸다. "어머니는 죽어가던 나와의 약속을 평생 지켰다",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가 되어주신 나의 어머니"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평생 노동운동에 투신한 이소선 여사의 생전 모습과 육성이 이어졌다.

전태일 열사가 떠난 직후, 마흔 살에 노동운동에 뛰어든 고 이소선 여사.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이 여사의 육성에 이어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의 가사가 겹쳐졌다. 그 위로 '삼성 백혈병' 노동자였던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규씨와 택배노동자 등의 얼굴이 비춰졌다. 그리하여 <너는 나다>는 하림의 <어느날>이란 곡을 헌정하며 아래 내레이션으로 끝을 맺었다. 

"어느 날, 당신이 지쳐 쓰러지더라도 혼자는 아닐 것이다. 그 곁에 분명 보이지 않게 함께하는 이들이 있기에. 너는 나다."

전태일의 훈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오늘

<너는 나다>는 분명 공영방송으로서 '전태일 50주기'의 현재적 의미를 조명하는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 또 노래로써 '오늘의 전태일'들을 위무하고 어떤 희망을 전하고자 하는 제작진의 진심이나 김미숙 대표를 '오늘날의 이소선 여사'로 연결지은 대목 역시 공감을 자아낼 만 했다.

<너는 나다>가 방송된 당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은 고 전태일 열사에게 무궁화장 훈장을 추서했다(관련 기사 : <전태일 50주기... 지상파 방송들의 '위선'이 안타깝다> http://omn.kr/1qgf3). 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 역시 존재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전태일들'이라 불리는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를 어떻게 바라 봤을까. 같은 날 tbs <정준희의 해시태그>에 출연한 시민단체 '손잡고'의 한 활동가는 이런 반응을 전했다.

"전태일이라는 존재 자체가 현재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정신적인 상징을 넘어서서 (노동자들의) 자존심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중략) 전태일 열사는 여전히 상징성이 크다. 하지만 최근 일부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50주기를 맞아 전태일 열사에게 훈장을 준다는 소식이었다. 왜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절규하는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으면서, 전태일에게 훈장을 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지금의 노동 상황도 달라지도록 정부가 노력하면서 훈장을 주는 것이 맞다."

<너는 나다> 제작진은 물론 언론과 방송을 포함 '지금의 노동 상황'에 주목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곱씹어야 할 현실이라고 할까. '전태일 50주기'에 예상 가능한 '동어반복'에서 탈피, 새로운 시선을 추구한 <너는 나다>가 우회했거나 채 다 못다룬 지점이기도 했고.     

그럼에도, <너는 나다>가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꼭 한 번 되새길 만한 대한민국 노동현장의 바뀌지 않는 이면과 아픈 현실을 성실하게 담아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기업들의 입장을 고려하겠다는 듯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를 머뭇거리고 있는 정부여당 고위 관계자들에게, '다시보기'를 통해서라도 필히 시청하시라 독려하는 바다.  

KBS <다큐 인사이트> '너는 나다'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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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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