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6 12:56최종 업데이트 20.11.1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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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번 대선에서 기록적 투표율을 보였지만, 이는 깊어진 정치양극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11월 3일 꼭 투표하라고 촉구하는 홍보물이 공원 앞에 세워져 있다. ⓒ 강인규

 
펜실베이니아에서 조 바이든의 승리가 확실시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나는 펜실베이니아 주립공원을 거닐고 있었다. 그곳에서 바이든이 승리를 거머쥐면서 두 가지 사실이 분명해졌다. 하나는 대선이 끝났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백악관에 머잖아 새 주인이 들어설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별로 뚜렷해 보이는 게 없었다.

한국 언론은 재빠르게 미국 유권자들이 '화해의 바이든'에 표를 던졌다거나, '포용의 리더십을 택했다'는 표제를 단 기사들을 쏟아냈다. 선거를 판가름한 펜실베이니아에 살고 있지만, 나는 이 평가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이 주가 바이든의 손을 들어줄 당시, 두 후보의 득표차는 0.5% 포인트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표가 시작된 후, 펜실베이니아는 한동안 옅은 분홍으로 표시되다가, 막판에 옅은 하늘색으로 바뀌며 결국 '승자'의 정당을 상징하는 짙은 파란 색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이 짙푸른 색은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승리 선언' 후 일주일이 다 돼 가던 11월 13일에도 펜실베이니아는 여전히 개표 중이었는데, 99.2%가 완료된 상황에서 두 후보의 득표차는 고작 6만 표에 머물렀다.

따라서 유권자의 선택을 색으로 표시한다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만 파랑에 가까운) 보라색이어야 정확할 것이다. 여기에 지도를 펴놓고 지역별로 투표결과를 채색해 보면 상황은 더 미묘해진다. 드문드문 자리 잡은 도시지역 대여섯 군데와 대형 주립대가 위치한 대학촌 한 곳을 제외하면 온통 붉은 색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확실한 파랑'은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 두 곳 뿐이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지에 실린 펜실베이니아주의 지역별 개표결과. 파란 색이 민주당이고 붉은 색이 공화당이며, 색의 강도는 득표율을 나타낸다. 일부 도시 지역을 제외하고는 공화당 지지도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인콰이어러

 
상황은 미시간과 위스콘신도 마찬가지였다. 펜실베이니아를 포함한 이 세 주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켜온, 이른바 '푸른 장벽 주(Blue Wall states)' 3총사로,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로 돌아섰다가 이번에 가까스로 바이든에게 위태로운 승리를 안겼다. 미국인들은 정말 '화해'와 '포용'을 선택했을까?

기이한 승리와 패배

펜실베이니아의 표가 확정되기 전까지 바이든은 264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상태였다. 양쪽 후보 중 270석을 확보하는 이가 선거에서 이기게 되는데, 바이든은 6석을 추가하기만 하면 됐다. (미국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직선제 거부한 미국은 정치 후진국일까 http://bit.ly/cNq5vA" 참고)

214석을 얻은 채 뒤쫓던 트럼프는 56석이 더 필요했지만, 펜실베이니아에서 20석을 확보하면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었다. 둘은 애리조나,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접전을 벌였는데, 이곳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남부 지역으로, 2016년에 트럼프를 선택했던 곳이다(노스캐롤라이나는 결국 트럼프를 택했다).

이 남부 세 주를 손에 넣고, 펜실베이니아까지 거머쥐면 27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다시 4년을 집권할 수 있게 될 터였다. 개표 초반부터 트럼프는 앞의 세 주는 물론, 펜실베이니아에서도 선두를 지키며 민주당 지지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결국 바이든이 이 동부의 주와 서부의 네바다를 손에 넣으며 승리를 확정지었지만, 그 이후 벌어진 상황은 코로나 사태만큼이나 초현실적이었다.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바이든이 앞서가기 시작하자 '개표를 멈춰라!', '사기극을 멈춰라!'는 트윗을 날렸다. 하지만 미 동부 시간으로 6일 오후 바이든의 승리가 확정되자, 트윗을 멈추고 긴 침묵에 빠져들었다. 많은 이들이 '드디어 패배를 인정한 모양이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할 때쯤, 트럼프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내가 이겼다, 큰 차이로!"(동부시간 기준 7일 10시36분)
 

펜실베이니아 개표 결과로 승패가 분명해졌음에도 트럼프는 "내가 크게 이겠다"고 주장했다. ⓒ 트위터

 
바이든의 당선 이후 공화당 지도부나 내각이 보인 태도는 트럼프에 동조하거나 아예 입을 닫는 것이었다. 트럼프야 이제 떠날 사람이니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고 해도, 계속 유권자의 표를 빌어야 할 정치인들이 어떻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정말 미국인들이 '바이든 리더십'을 선택했다면 말이다.

침묵하는 공화당이 믿는 것

현재까지 공화당의 거물급 인사 중에서 바이든에게 의례적 축하 인사라도 한 이는 부시 전 대통령, 미트 롬니 의원, 리사 머카우스키 의원, 그리고 곧 퇴임할 윌 허드 정도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이전부터 트럼프와 설전을 주고 받은 이력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부시는 지난 5월 '코로나 사태를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는데, 자극 받은 트럼프는 이렇게 트윗으로 응수했다. "좋은 말씀 하셨는데, (트럼프 자신이 당한) 탄핵 사기극 때에는 그 '정치화' 어쩌고 하는 이야기 안 하고 어디 숨어 계셨나." 이후 부시의 측근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안 찍겠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크게 놀랄 일이 아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롬니와의 악연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시작됐다. 그는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는 것을 대놓고 반대하면서, 그를 '허풍쟁이'에,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최근에는 개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투표했는데, 트럼프는 안 찍었다"고 공언하더니, 급기야 트럼프를 일컬어 "공화당의 900파운드짜리 고릴라"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바이든 당선을 인정하지 않은 채 "합법적 표는 끝까지 세되, 불법적 표를 세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선거부정' 주장에 힘을 실은 꼴이다.

조시 홀리 상원의원 역시 "대통령은 언론이 뽑는 게 아니라 국민이 뽑는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당선자는 합법적인 개표가 끝나고, 재검표를 하고, 부정투표 혐의를 조사한 뒤에야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바이든은 아직 합법적 당선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난 10일에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기자로부터 "권력 이양이 늦어지면 국가안보에 문제가 생기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호언했다.

"곧 트럼프 2기로 순조롭게 권력이 이양될 것이다."
 

11월 10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권력이양 지연 우려에 대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권력은 트럼프 2기로 순조롭게 이양될 것"이라며 "우리는 준비가 돼 있다"고 답변했다. ⓒ CNN

 
같은 날 트럼프는 다시 트윗에 "국민들은 이 조작된 선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바이든이 유권자의 선택을 믿듯, 트럼프를 비롯한 다수 공화당 의원들이 믿는 것도 유권자들이다. 바이든은 기록적인 표를 얻었지만, 트럼프 역시 4년 전보다 수백 만 표를 더 얻었다.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인데, 양쪽 지지세력 모두 대폭 늘었다는 것은 미국 내의 정치양극화가 얼마나 깊은 상태인지를 보여준다.

게다가 트럼프는 심각한 방역실패, 극단적 사회 분열, 아연할 인종주의와 여성혐오 행태를 반복한 뒤에도 이런 성적을 거뒀다.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민주당 지지자 집앞이 홍보물로 도배돼 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은 이 지지 표시는 트럼프 정부에 대한 깊은 환멸을 보여준다. 펜실베이니아에서 트럼프 지지 현수막은 훨씬 드물었으나, 선거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 강인규

 
두개의 좌절과 분노

개표가 시작되자 유수언론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미 '바이든 유력', '압승예상'을 점쳤던 언론이니, 자신들의 예측과 시시각각 전개되는 개표상황을 비교하면서 생생한 보도를 쏟아낼 법한데, 상황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투표가 끝난 후 시민들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당시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머리에 걸린 기사의 표제다. 그걸 누가 모른단 말인가? 학교신문 기자도 쓰지 않을 뻔한 제목의 기사는 몇 시간이 지나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투표 결과는 언론의 예측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자들도 지켜보는 것 이외에 딱히 할 말이 없었을 터이다.

알맹이 없는 기사 몇 개가 느리게 지나간 뒤, 흥미로운 기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것도 기자 아닌 독자들이 보내온 글들이었다. 한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민주당 지지자들로 보였는데, 대개 이런 한탄을 담고 있었다.
 
파란색 물결. 조 바이든의 압승. 선거가 끝나고 나서 곧 깨닫게 된 현실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토록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내 동료 시민들이 그의 거짓, 그의 허풍, 그의 바이러스 대처 실패, 그의 반대자들을 향한 공격, 그의 폭력적 행태가 용서할 만하거나, 심지어 존경스럽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가치, 도덕, 이상, 이웃에 대한 존경은 무가치한 폐물로 전락한 것일까?

그 뒤 내 시선이 멈춘 글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서두에는 앞의 독자와 마찬가지로, 언론의 잘못된 예측을 비판한 뒤 치열하게 경합하는 투표 결과를 언급했지만, 그 뒤에 쏟아낸 좌절과 분노는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4년 전에 시작한 포퓰리즘(대중주의) 운동이 부패한 정치권에 의해 좌절되어서는 안 된다. 정보를 독점한 언론이 아무리 상황을 왜곡한다 해도 이 도도한 흐름을 멈출 수는 없다. 좌파가 그 결과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몸부림치겠지만, 이 혁명은 앞으로도 4년 내내 계속될 것이다.
 

트럼프의 예상치 않은 선전은 보수지역이 아니라, 뉴욕과 같은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도 드러났다. "뉴요커들이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2016년보다 더 많은 표를 던졌다"고 보도한 <월스트리트>지 인터넷판. ⓒ WSJ

 
'꿈'과 '희망'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

2008년 오바마는 대선에 도전하며 '꿈'과 '희망'을 말했다. 그는 분명히 역사적인 대통령이었고 매력적인 인물이었으나,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데 실패했다. 금융위기 경제를 물려받기는 했지만, 저소득층의 삶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오바마 8년간의 소득증가율은 정체되거나 매우 느려, 부시나 트럼프 때보다도 낮았다.

야심차게 추진한 의료보험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공화당의 집요한 방해가 주원인이기는 했지만, 애초에 목표로 했던 전 국민 의료보험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지 못했고, 어정쩡한 타협으로 누더기 제도를 남겼다. 그의 재임 기간에 대학생들의 등록금 빚 역시 가파르게 올랐다.

대외적으로는, 전 세계 정상을 대상으로 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대대적 감청 사실이 드러났고, 전시 아닌 평시에도 드론을 동원한 폭격이 일상화됐다. 오바마는 스스로 변화의 바람을 불러오지 못했을 뿐 아니라, 후임으로 개혁과 거리가 먼 인물인 힐러리 클린턴을 지원했다.
 

부시, 오바마, 트럼프 집권 기간의 시급 증가율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오바마 재임기가 가장 낮게 나타났으며, 금융위기 이후 급락한 임금을 거의 회복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임기를 끝냈다. ⓒ WP

 
일자리를 두 개, 세 개 뛰어도 삶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 사람들에게 '희망', '꿈', '공존', '다양성' 같은 수식어를 내세운 정치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뿐이다. 기성정치는 곧 위선의 동의어가 됐고, 오바마가 남긴 자리는 트럼프의 '꾸미지 않은 분노'에 대한 공감으로 채워졌다. 양쪽 누구도 현실을 개혁할 수 없다면, '혐오의 카타르시스'라도 누릴 수 있게 해 줄 후보가 경쟁력을 얻기 마련이다.

트럼프의 집권은 불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두려운 결과는 트럼프를 대체한 바이든이 '기성정치인'의 한계를 되풀이할 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트럼프에게 아직 충분한 기회를 주지 못했다고 믿는 지지자들이 4년 뒤 그를 다시 뽑거나, 그보다 더한 인물을 백악관에 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빗나간 예측 결과가 보여주었듯, 정교한 여론조사조차 '숨은 트럼프 지지자'의 존재와 위력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자신의 정치 성향을 그토록 깊이 감춘다는 사실은, '트럼피들' 스스로 자신들의 정치적 선택이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일 터이다. 그들 다수는 부도덕해서라기 보다, 도덕적으로 상쇄하거나 위로 받을 수 없을 만큼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탓에 또다시 트럼프를 선택했다.

미국의 현 상황은 근본적 개혁의 열매 없는 '진보'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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