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6 19:58최종 업데이트 23.04.0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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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정의당 대표 ⓒ 유성호

 
[지난 기사] 김종철 "진보정당의 집권, 도둑처럼 다가올 수 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답은 머뭇거림이 없었다. 진보정치에 대한 고민부터, 자신이 펼쳐낼 진보세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 많은 돈을 어디서 마련하나', '실현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과 반응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미 자신만의 계산이 선 듯했다. 진보진영 내부에서의 치열한 토론도 마다 않는다. '진보의 금기를 깨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 전 국민 기본소득에 대해 정의당은 부정적인 것 같은데요.

"그렇죠.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전 국민에게 1인당 매월 10만 원씩 주자는 것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려워요. 1년 예산만 60조 원 가까이 들어가는데, 이 돈으로 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잖아요. 직장인뿐 아니라 자영업자 모두가 소득고용보험을 가입하는데 7조 원 정도면 돼요. 무상교육을 대학까지 확대할 수도 있고요. 노인기초연금을 지금보다 10만 원 더 올릴수도 있죠. 지금 건강보험에서 병원비를 내주지만, 병상수당은 없죠."

- 그 정도 예산이면 차라리 다른 용도로 쓰자?

"이미 알려지기도 했지만, 기본소득보다는 기초자산을 만들어주자는 것이죠. 심상정 전 대표가 제안했던 것은 청년기초자산제인데, 1인당 20세 때 3000만 원씩 주자는 거예요. 일종의 기본자산인데, 제도는 단순해요. 재정 계산만 하면 되는데, 저는 좀 다르게 설계를 해봤으면 하는 생각도 해요."

- 어떤 설계요?

"현금성 기본자산을 인생에 딱 한 번만 주고 '알아서 해봐라'는 것으로 과연 자산 불평등이 줄어들거나 해소될까 하는 생각이 들죠. 한 번에 3000만 원 받아놓고, 자신의 빚을 갚는데 써버리거나... 그래서 3000만 원을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나눠서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25살 때 사회 첫발을 시작할 때, 35살 때 가정을 꾸려나가거나 할 때, 그리고 45살 때 또 다른 인생 계획이 필요할 때 등..."

- 생애주기별로 자산을 만들어주자?

"그런 셈이죠. 인생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자산이 모자라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25살, 35살, 45살 때까지 세 번 정도 도움을 드리고, 55살 때는 그동안 벌어놓은 것과 자녀들도 사회에 나가게 되면 좀 낫겠죠. 그리고 65살 때는 연금으로 가고..."

"기본소득 동의 못해… 생애주기별로 어려울 때 기초자산 만들어주자"
 

김종철 “진보정당의 집권, 도둑처럼 다가올수 있다” ⓒ 유성호

 
김종철 대표는 아직 정의당 차원에서 공식화된 공약은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금액이나 재정은 설계하기 나름"이라면서 "생애 주기별로 (기본 자산은) 구원투수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지난 총선 때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두고, 야당과 보수진영에선 돈 주고 표를 샀다는 비판도 나왔다'고 말하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그는 "한국사회의 자산불평등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인 데다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며 "이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세금으로 격차를 메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답을 내놓는다.

"만약, 현재 20살 청년에게 3000만 원씩 주면 약 18조 원 정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인구가 점점 줄고 있으니, 필요한 예산 규모는 작아질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저소득층이나 서민들도 세금을 같이 내자는 보편 증세를 통해서 재원을 마련하고요. 또 상속세 전체를 사회상속이란 명목으로, 이 부분에 넣으면 어떨까 하고요. 물론 상속세를 기본자산 재원으로 쓰게 되면, 다른 돈으로 그 부분을 메워야 하는데... 처음에 증세가 쉽지 않으면, 확장 재정을 통해서 당분간 정부가 해줘야 한다고 봐요."

- 과거에 북유럽 복지국가 취재 때, 우리로 따지면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자신의 소득에 대해 적은 액수라도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모습이 떠오르네요.

"스웨덴은 아마 그 학생들도 30%의 세금을 낼 거예요. 그렇게 세금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있으니까요. 다시 생각해보니까, 지금 여당인 민주당의 모습이 매우 실망스러울수 밖에 없어요. 복지를 이야기하면서, 세법 개정한 것을 보면..."

- 최고세율 올렸다는 이야기인가요?

"(정부와 여당은) 최고 소득세율을 42%에서 45%로 올렸는데, 연 10억 원 이상 소득에 대해서만 해당해요. 그러면서 스웨덴 최고 소득세율과 비슷하다고 하죠. 스웨덴이 얼마 전 최소 소득세율 57%에서 52%로 낮췄는데요. 우리나라 최고 소득세율이 45%, 지방세까지 포함하면 49%라고 하면서 (스웨덴과) 비슷하다고..."

- 그런데요?

"(목소리를 높이며) 정작 스웨덴은 연 9200만 원 소득부터 세금 52%를 내요. 어마어마하죠. 우리나라는 연 소득 10억 원부터 45%를 내요. 대충 소득세율 숫자로만 비슷하다는 식으로, 국민들이 오해를 하게 되죠. 저는 (정부와 여당이) 솔직하지 않다고 봐요. 생색내기죠. 우리도 뭔가를 했다는 식으로 말이죠."

김 대표는 '솔직하자'고 했다. 또 복지국가로 가자고 했으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보편적인 증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세금에 대한 그의 생각은 분명했다. 정당 입장에서 단순히 표만 생각한다면, '세금 다 깎아주고, 일부 고소득층에게만 세금 물리겠다고 하면 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딱 잘라 말한다.

"저는 기본적으로 세금은 사회 환원적 성격이 있어서 누구나 같이 부담해야 계속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상위 1%가 내는 세금이 소득세의 40%, 10%가 내는 세금이 전체 78%를 차지해요. 만약 계속 부유층에게만 세금을 더 내라고 한다고 해서, 1%가 (세금) 50%를 내고, 10%가 (세금) 90%를 내게 한다면, 좀 웃기잖아요. 세금 액수도 많이 걷히지 않고요."

- 우리의 경우 어떤 계층이든 세금 저항이 큰데요.

"(세금의) 사회연대 성격을 좀 더 강조하는 거죠. (국민들에게) 사회 연대에 더 참여해달라고…. 소득 불평등·양극화가 더 심각해지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들 스스로 좀 더 내자는 거죠. 저소득층도 같이 (세금을) 부담하자고 할테니, 고소득층에게도 명예롭게 참여해달라고 해야죠."

"농민들 1인당 연 500만원씩 주자, 그냥 질러대는 이야기 아냐"

- 국민들에게 와 닿기가 쉽지 않을것 같습니다.

"(잠시 고민을 한 듯)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요. 그러면 반대로 (국민들에게) 물어 봐야죠. 정말 이대로 갈 것인가? 청년들은 계속 힘들고, 노인 중엔 계속 폐지 줍는 분들 나타나고,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저렇게 살아야 하고... 이건 아니잖아요."

보편적인 증세뿐 아니다. 공무원과 교직원이 받는 연금도 개혁하자고 한다. 연금문제도 세금 만큼 뜨거운 감자다. 게다가 정의당의 주요 지지기반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다. 김 대표의 말대로 연금통합 등의 개혁이 이뤄지면, 당장 이들 조합원이 퇴직 이후 받을 퇴직금액이 영향을 받는다. 연금 통합 이슈를 꺼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는 "연금 개혁과 함께 중요하게 가야 할 조건이 공무원·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농촌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의 접근방식은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이다. 과거 정권마다 내놨던 균형발전은 되레 농촌과 지방의 소외로 이어졌다. 반대로 수도권 과밀화와 집중화에 따른 국가차원의 낭비와 사회적 비용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의 문제의식은 정부가 관성적으로 지급하고 있는 '농민수당'에 있다. 단지 농민이 어려우니까 수당을 주자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대신 농민에게 공적인 임무를 부여하고, 그에 따른 금액을 주자는 것이다. 

- 국토관리자라고 이름을 붙이셨던데요. 좀 생소하기도 하고요.

"아직은 그럴 수 있는데요. 지금처럼 수도권 집중현상을 해결하지 않으면 농촌은 폐허가 될 거예요. 과연 그런 지방이나 국토를 원하는 거냐. 젊은 사람 등 누구도 당장 내려가서 살려고 하지 않죠. 국토를 지키고, 농업도 살리면서 일하는 분들에게 공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수당을 지급하자는 거예요."

- 수당이라고 하면 얼마나요?

"(곧장) 저는 농민 1인당 연 500만 원은 드려도 좋다고 생각해요. 농촌도 2인 가구가 많으니까, 보통 가구당 연 1000만 원 정도를 수당으로 드리는 거죠. 이를 통해서 귀향·귀촌을 장려하고요. 이미 디지털화된 장년 세대들이 지방으로 내려갈 수도 있구요. 청년 세대들이 농촌 개혁을 선도한다면서 갈 수도 있고요. 스위스의 경우, 농민소득의 80%가 정부 지원이라고 해요. 스위스 농민들은 자신들의 촌락을 잘 가꿔야 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합니다."  

- 1인당 연 500만원...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만만치 않겠는데요.

"사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시·군·구 예산이 정말 많아요. 괜히 사람도 오지 않는 이상한 박물관 만들어놓고 예산낭비하지 말고 농민들에게 직접 지원하자는 거예요."

- 지자체 예산 낭비는 여전하죠. 자치단체장의 선거와도 연결돼 있으니까요.

"제가 사는 서울 동작구 1년 예산이 6400억 원이예요. 인구 40만 명인데요. 그런데 전북 진안군 인구가 2만3000명인데, 예산이 4600억 원이예요. 충북 제천시는 인구 13만 명인데 예산 1조4000억 원이에요. 그냥 단순하게 진안군 예산이면 주민 1인당에게 2000만 원씩 줄 수도 있어요.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 (1인당) 1000만 원씩 줘도 돼요. 그리고 다 농민이 아니잖아요. (농민) 1인당 500만 원이라는 것은 그냥 질러대는 이야기가 아니예요."

"공수처 출범, 시간 끌면 결단 내릴 것"
 

김종철 정의당 대표 ⓒ 유성호

 
김종철 대표는 분명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그냥 질러대는 이야기' 표현에서 느낄수 있었다. 이는 노회찬-심상정으로 상징되는 정의당에서 '김종철의 색깔'을 분명하게 입히고 있는 것이다. 진보의 금기에 도전하는 것도, 주요 정책 이슈에 대한 그의 고민과 대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아직 미완성이지만 말이다.

정치 현안에 대한 그의 생각도 궁금했다. 라임-옵티머스를 둘러싼 정치권 논쟁과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갈등까지…. 기자와 정책을 두고 이야기를 나눌 때와 달리, "가급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뿐더러 논평하는 것조차도 싫다"고 했다.

-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갈등을 보는 국민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죠.

"빨리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해서 이런 논란이 그만됐으면 좋겠어요. 마치 전 국민을 '추미애냐, 윤석열이냐'는 식으로 갈라놓고 있는데... 라임-옵티머스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사모펀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금융당국이 제대로 했는지 등의 문제가 떠오르는 게 아니라, 희대의 사기 피의자가 갑자기 공익제보자로 둔갑했다가, 또 검찰개혁의 투사가 되는 현실을 부끄러워 해야죠. 국민이 뭐라고 하겠어요."

- 공수처 출범과 처장 후보 선출을 두고 말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국민의힘에서 계속 출범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면 (정치권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봐요."

- 결단이라고 하면?

"사실 공수처법은 고 노회찬 의원이 2016년에 처음으로 입법한 거예요. 노 의원 스스로 검찰이 어떤 조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에게도 반드시 처리해야 할 명분이 있는 법이에요. 그런 면에서 공수처 출범을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고 간다면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결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중요하다. 이번 국회에서 정의당 당론으로 내놓은 '1호 법안'이다.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고,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3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최대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물론 재계에선 크게 반대하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에서 법 제정에 공감을 나타내면서, 어느 때보다 국회 통과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여당인 민주당의 미온적인 태도가 못내 불편하다.

"민주당 일부에선 법 제정보다는 기존 산업안전법만 슬쩍 개정하겠다는 목소리가 있어요.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책임자만 처벌한다고 하는데, 진짜 현실 안주라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잘못되면) 대표이사가 처벌받는다고 해야죠. 그렇게 해야 대표가 책임을 갖고 일을 하지 않겠어요?. 지난 20대 국회에선 잘 안됐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통과시켜야죠."

민주당도 여론을 의식한 듯, 박주민 의원(서울 은평갑)이 별도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대체로 정의당과 유사하지만, 양형이나 사업장 적용 시기 등에 차이가 좀 있다"고 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을 일정기간 유예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역시 재해현장 대부분이 소규모 사업장이라는 점에서, 법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 대표는 "생명의 문제를 두고 돈 문제로 접근하지 않기를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촉구한다"고 했다. 

- 공수처부터 재해기업처벌법 등 쉬운 일이 하나도 없네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죠. '정의당 지지율이 올라야 바뀐다'고요. 정당들은 상대 정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이 가장 큰 압박이예요. 국민의힘 지지율이 올라가면 민주당은 더 보수화돼요. 정의당 지지율이 올라야 민주당도 좀 더 진보적이 될 거예요."

- 과거 한때 민노당 지지율이 높았던 때가 있었죠.

"지난 2004년 총선 직후에 (민노당의) 지지율이 21%였죠. 또 가슴 아픈 일이지만, 노회찬 의원 돌아가셨을때도 15% 정도 나왔죠. 추모의 의미가 강했죠. 이후 총선 때 9.7%에서 계속 떨어졌고, 가장 낮았을때 3~4%, 요즘에는 5~6% 정도인데 앞으로 올라야죠."

그는 자신의 당 대표 임기동안 두 자릿수 지지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와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1시간 30분을 훌쩍 넘겼다. 이날 하루동안 언론사 네 곳과 인터뷰가 잡혀 있었다. 계속 붙잡고 있을 순 없었다. 최근 읽고 있는 책을 물었다. 그는 '베이비 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는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도시계획학자인 마강래 교수가 올해 초 내놓은 책이다. 청년 실업과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담고 있다. 

그는 책을 통해서 국토균형발전 등 인상깊은 대목이 많았다고 했다. 전국 시도당 위원장과 토론도 할 계획이다. 또 연금개혁 등 사회복지 문제를 두고 전문가와 함께 공부도 계속한다. 그는 이미 20년 넘은 진보정치인이다. 그 말대로 진보정당의 집권, 더 이상 꿈만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준비를 한다. 집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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