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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너가 침략 원흉들 질타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 / 6회] 나철은 외부대신 박제순에게 "목이 잘리더라도 협약에 동의하지 말라"는 전문을 보내는 한편

등록 2020.11.24 19:50수정 2020.11.2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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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기와 국망기에 온몸을 바쳐 구국과 독립을 위해 나섰는데,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국민에게 잊혀진다면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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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암 나철선생 홍암 나철선생 ⓒ 김성철

 
'포츠머스조약'의 주요한 대목은, 일본이 대한제국에서 정치ㆍ경제ㆍ군사 등에 관한 특수 이권을 가짐을 인정하고, 일본의 필요에 의해 대한제국의 지도ㆍ보호ㆍ감리 등이 행해질 때 일본은 러시아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다. 여순을 포함한 요동반도와 대만, 그리고 사할린의 남쪽 절반에 대한 지배권을 일본이 갖고, 또 만주에서 러일 양국은 동등한 상업상의 권한을 도모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국제적으로 지위가 크게 격상되었다. 반면에 동북아시아를 지배하려던 꿈이 좌절된 러시아는 팽창의 방향을 바꾸어 터키의 발칸반도 지역으로 돌리게 되었다. 

러일전쟁은 특히 태평양지역뿐 아니라 유럽의 세력 균형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의 대외정책이 국수주의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써 일본이 명실상부하게 아시아의 패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외세끼리 이 땅에서 전쟁을 벌이고, 국토가 저들 멋대로 흥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데도 강 건너 불구경하 듯 처분만 바라고 있다가 일본에게 개문납적(開門納賊)의 주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나철은 이기ㆍ오기호 등과 상의하고 여비를 모아 1905년 음력 5월 12일 일본으로 건너갔다. 어떤 방식으로 도일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당시는 민간 선박의 왕래가 잦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때 선견지명이 있으신 대종사(나철)께서는 무엇보다도 일본으로 하여금 자기들이 스스로 양언(揚言)한 대한제국의 완전독립을 위하여 싸운다는 대러 선전포고의 구실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대한 독립이 완전 유지되겠다는 생각으로 1905년 6월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주석 1)

민간인의 신분으로 동지 오기호와 일본에 가서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위하여 한ㆍ일ㆍ청 삼국이 상호 친선동맹을 맺고 또 한국에 대하여 선린의 우의로써 부조하라"는 의견서를 일본 정부 각 대신들에게 전달하고, 요로를 역방하면서 일본 정계의 여론을 환기하는 한편 그 반응과 금후의 정세를 밀찰하였다. (주석 2)


나철의 한ㆍ일ㆍ청 삼국의 친선동맹을 통한 '동양평화론'은 5년 뒤 안중근이 뤼순감옥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으로 집대성되었다. 나철과 오기호가 일본에서 민간외교 활동을 벌일 때 일본 정부가 이토 히로부미를 전권대사로 임명하여 조선에 파견, 이른바 신협약(을사늑약)을 체결케 한다는 소식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철은 외부대신 박제순에게 "목이 잘리더라도 협약에 동의하지 말라"는 전문을 보내는 한편 1905년 10월 「일황에게 올린 글」을 작성, 우편으로 송달하였다. 을사늑약 직전의 일이다. (원문은 한문)

일황에게 올린 글

최근 신문 보도에 의하면, 러일전쟁이 끝나면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한다는 소문인데, 이런 엉뚱한 이야기는 절대 일황의 본의가 아닌 줄로 압니다. 왜냐하면 지난 1904년 청일전쟁 때 폐하께서는 "조선은 엄연한 독립국인데 청나라가 마치 속국인 것처럼 한국의 내정을 간섭하므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다"고 하였습니다.

금번 러일전쟁에 있어서도 한국의 안전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싸운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두 전쟁을 정의의 전쟁, 즉 의전(義戰)으로 칭송하고 있습니다.

속담에 '여항의 필부도 거짓말을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한 나라의 군주가 거짓말을 하여서야 되겠습니까. 폐하께서는 등극하신 지 불과 38년 만에 나라를 부강하게 하여 동양의 패주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세상에서 믿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우리 한국이 독립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함께 의지하여 살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한국만의 행복이 아니요 또한 귀국의 행복이며 세상 모두의 다행이라 할 것입니다. (주석 3)


나철은 오기호와 함께 일황에 이어 이토 히로부미에게도 한국 침략의 야욕을 멈출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었다. 일본 신문에 그가 곧 한국에 특파된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1905년 11월이다. 더욱 강경한 내용의 공개서한이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우리가 듣건대 각하가 특파대사로 한국에 파견된다고 하니 슬프다! 우리 한국은 망하는 것이다. 대저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귀국과 가까이 근접해 있고, 더욱 불행한 것은 각하와 만난 것이다. 생각하건대 각하는 겉으로 한국을 유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내심으로는 한국을 집어삼키려는 꾀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를 스스로 멸망케 하고 서서히 일어나서 거두는 것을 명색의 상책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주석 4)


주석
1> 『대종교 중광 60년사』, 8~9쪽, 대종교총본사, 1995.
2> 앞의 책, 9쪽. 
3> 앞의 책, 23~24쪽 
4> 앞의 책, 26~2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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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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