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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아이들이 있던 그 차에, 불길이 치솟았다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패러메딕입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사고 현장... 나의 일, 나의 몫

등록 2020.11.20 08:45수정 2020.11.2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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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현재 캐나다 온타리오 주 시골마을에서 패러메딕(응급구조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911 현장에서 만나고 겪는 이 곳의 삶,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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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몰던 차가 사고가 났다. ⓒ pixabay

 
늦은 밤 14살 아이가 제 아버지의 차를 훔쳐 동네를 돌며 자기 친구들을 하나씩 차에 태웠다. 그렇게 모인 네 명의 아이들은 그들만의 신나는 야간 드라이브를 즐겼으리라. 그러다가 (예상했듯) 운전 미숙으로 전봇대를 들이받고 길 옆 도랑으로 빠지면서 전복되었다.

최초 이걸 누가 어떻게 발견하고 신고했는지는 아직까지 알지 못한다. 어쨌든 911로 신고는 들어왔고 우리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으로 달려가면서 내가 짚어야 할 것들을 하나씩 꼽아봤다.

얼마나 빨리 달렸을까?
안전벨트는 했을까?
밖으로 튕겨져 나간 아이들이 있을까?
에어백은 터졌나?
애들이 마약이나 음주를 했을까?
앰뷸런스가 몇 대가 더 필요할까?
항공 이송을 하게 되면 어디에 헬기가 내려야 하나?

그러다가 문득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열넷 밖에 안된 어린 녀석들이 밤에 자라는 잠은 안 자고...'

상태가 괜찮으면 혼을 내주리라 생각하며 현장에 다가갈 때쯤 불 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시골길 한가운데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파트너와 나는 동시에 탄식하듯 말했다. "오, 하느님..."

그 때였다. 지령실에서 망설이는 말투로 전하는 현장 업데이트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아이들이 아직 차 안에 있는지 확인이 안 되고 있는데... 차에 불이 붙었답니다..."

어떡하지? 이게 아닌데!
어떡하지? 이게 아닌데!!!
어떡하지? 이게 아닌데!!!!

대부분은 경찰과 소방대가 사고 현장에 먼저 도착하는데 그날따라 우리가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정말 그날따라 무슨 이유에서인지 경찰과 소방대는 꽤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 모르긴 해도 제 시간에 나타나기는 했을 것이다. 다만 그 시간이 우리에게는 영겁처럼 느껴졌을 뿐이겠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바라보는 수밖엔 

뒤집힌 사고 차량이 내뿜는 불길은 건물 2층 높이까지 치솟았고 제대로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맹렬했다. 규정상 나와 내 파트너의 안전에 위해가 되는 요소에는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다가가서는 안 되지만 나와 파트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고 차량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사람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애들 어디 있어??"
"애들 보여??"

파트너와 나는 서로 답을 할 수 없는 질문만 공허하게 주고받을 뿐이었다. 저기 저, 차 안 불길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저 검은 것이 아이들인가? 나와 파트너는 무력하게 멍하니 서서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뭘 어떻게, 혹은 다르게 했더라면 좀 더 현장에 일찍 올 수 있었을까? 불에 다가가서 나라도 화상을 당하거나 다치면 좀 덜 미안해질까? 그러면 나중에 내가 죽어서 면죄부 한쪽 귀퉁이라도 잡고 변명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이 정신없이 내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때 지령실로부터 무전이 들어왔다. 들뜬 목소리였다.

"아이들 위치 확인했습니다!!"
"현재 경찰이 보호 중이고 큰 이상 없어 보인다고 합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서 나뭇가지라도 잡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 주저 앉을 뻔했다.

사고 차량에 맨 마지막에 올라탔던 아이만이 사고 당시 유일하게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 아이 역시 부모님 몰래 나오느라 잠옷 바지 차림에 신발도 못 신었는데, 그 맨발로 차 유리창을 깨고 기절한 다른 친구들을 깨워서 데리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아이 넷이 꼼짝없이 차에 갇혀 불에 타죽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차를 빠져나온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혼이 날까 두려워서 다시 마을로 돌아가다가 경찰에게 딱 걸려서 전원 일망타진 되었던 것.

아이들은 약간의 찰과상만 입었을 뿐, 별다른 외상 소견은 찾을 수 없었다. 혹시 모를 골절이나 내부 출혈의 가능성 때문에 네 명 모두 병원으로 이송하긴 했지만... 고마웠다, 다들 살아줘서.

크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차만 한 대 작살났을 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밤은 다시 어둠으로 돌아갔고 또 한 번 고요해졌다. 하지만 베이스로 돌아와 소파에 몸을 웅크려 뉘이고 나서도 요동친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나는 한참을 뒤척였다.

만에 하나라도 불길에 휩싸인 그 차 안에 아이들이 그대로 갇혀 있었다면, 혹은 앞으로도 그런 경우를 또 맞닥뜨리게 된다면... 답 대신 한숨만 나오는 질문을 무한 반복하다가 까무룩 잠이 든 것 같다.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 

현장으로 가면서 늘 상상한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그 상황에서 환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막힘 없이 수행하도록 공부했고 훈련 받았다. 하지만 현장의 모습은 나의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그 이상의 상황들과, 그 이상의 사연들과, 그 이상의 주인공으로 가득하다.

사실 그럴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할 수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하는 것. 할 수 없는 것에는 깔끔하게 돌아서야 한다. 생각만큼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그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 다다음 날이었나? 인천에서 라면을 끓이다가 불이나 화상을 입었다고 알려진 형제의 뉴스가 전해진 바로 그 날, 공교롭게도 나 역시 전신 25~30%에 걸쳐 2도와 3도 화상을 입은 12살 아이를 환자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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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보일러가 뿜어내는 충격과 화염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 튕겨 나갔다. ⓒ pixabay

 
이곳 시골에는 대형 아웃도어 보일러(Outdoor wood furnace)를 많이 쓴다. 일반 가정 난로보다 몇 배는 큰 규모. 보통 나무나 석탄으로 불을 지피고 물을 끓여서 그걸 가정용 온수나 집 난방에 사용한다.

그게 활활 타오르고 있을 때 아이가 몇 겹으로 잠금장치가 된 보일러의 문을 열었고 갑자기 많은 양의 산소가 그 안으로 유입되면서 화염의 역류 현상(Backdraft)이 발생했다. 아이는 보일러가 뿜어내는 충격과 화염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 튕겨 나갔다.

불이 직접 닿은 복부와 사타구니에는 3도 화상에 피부는 무너져 내렸다. 2도 화상을 입은 부분에서는 크고 작은 물집들이 잔뜩 올라와 덮고 있었다. 구글에서 화상 사진을 검색해보면 대충 어떤 외상이 나오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표현하기 힘든 것은 환자의 살이 익으면서 올라오는 냄새다. 환자가 어린아이라면 고통에 몸부림치는 신음소리까지 섞여 최악의 앙상블이 만들어진다.

현장에서 환자의 엄마가 침착하게 대처를 참 잘 해주셨다.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젖은 수건으로 열을 잘 식혀 놓았고 환자를 잘 다독여 주셨다. 이제 우리가 화상환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체온 유지, 정맥로를 통한 수액 투여, 감염 예방, 딱 세 가지뿐이다.

손가락이 서로 붙지 않도록 열 손가락을 쫙 편 채 누워 있던 아이는 조금씩 떨기 시작했다. 얼른 3도 화상에는 마른 드레싱을, 2도 화상에는 생리식염수로 적신 드레싱을 헐겁게 감겼다. 그리고 화상용 처치상자(Burn kit)에 들어 있는 화상환자용 담요로 말아서 화상센터로 '날아가듯' 달려갔다.

나는 며칠 전 마음에 예방주사를 한 방 맞았던 직후라서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할 수 없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애썼다.

아이는 몸에 지워지지 않는 화상자국을 안고 평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아이의 화상 흉터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에 놓여 있다. 새 살이 돋아날 수 있을지는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아이 본인의 몫일 것이다. 마치 내 마음에도 새 살이 돋아나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내 몫인 것처럼.

할 수 있는 것만 제대로 하고 살아도 잘 사는 거... 그게 맞는 거라고, 내가 맞는 거라고 누군가 옆에서 계속 얘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캐나다 #패러메딕 #PARAMEDIC #911 #응급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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