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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는 '김철수', 상추는 '김영희'... 이런 마트에 가봤습니다

[새둥지 자취생 일기 ⑦] 나의 로컬푸드(Local Food) 체험기

등록 2020.11.17 10:47수정 2020.11.1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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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 ⓒ 정누리


자취를 하니 식비 나가는 것이 제일 무섭다. 해먹기 귀찮다고 배달음식만 먹으면 2~3만 원씩 쑥쑥 빠지는 것은 물론이요 일회용 쓰레기가 한가득이다. 그래서 요리를 시작하니 재료 사는 것도 쉽지 않다. 버터만 10가지 종류가 넘는데 거기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예전에 어머니는 장을 볼 때 항상 뒷면의 원산지 표기를 들여다보았다. 브라질이든, 중국이든, 어디서 온지가 그렇게 중요하나. 뱃속에 들어가면 다 소화되고 마는 것을. 엄마가 너무 까다롭다 생각했던 나는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도 인터넷에서 가장 싼 냉동 야채 믹스를 구입했다. 그러고는 약 이틀 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특별한 알레르기도 없는 난데, 희한하게도 그 야채 믹스를 끊으니 두드러기가 사라졌다.

그제야 원산지 표기를 들여다봤다. 미국에서 오긴 왔는데, 뭘 어떻게 재배해서 가공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렇게나 만든 걸 먹으면 정말 몸이 아무렇게 된다. 호되게 당한 이후로 나의 장바구니가 바뀌기 시작했다. 

백화점과 시장의 장점만 섞어놓은 것 같은 '이곳'
 

로컬푸드 ⓒ 정누리

 
그즈음 우연하게 로컬푸드(Local food) 매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각 지역에서 재배된 지역농산물들을 그 지역 내에서 판매한다고 한다. 생산지 수확물이 소비자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일반 유통기간이 평균 3~6일인데, 로컬푸드는 평균 0.5~1일이 걸린다. 유통과정이 단축되었으니 보다 싸고, 신선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로컬푸드 매장은 농협에서 운영하는 것과 지역 농민들이 자체적으로 법인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는 듯한데 내가 간 곳은 후자였다. 들어가자마자 날 당황스럽게 한 것은 상품마다 생산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애장품에 본인 이름을 각인하듯 토마토에 '김철수', 상추에 '김영희'가 적혀 있는데, 대면해본 적도 없는 분들이 내 앞에서 그 채소를 팔고 있는 느낌이었다.

병원이나 미용실을 지나가면서, '자기 이름을 걸고 낸 가게는 믿을 만하다'라고 말했던 어머니의 말씀이 왜 그 순간 머리를 스쳤는지 모르겠다. 토마토와 마늘을 좀 샀더니 이벤트라며 6000원짜리 쿠폰을 주셨다.


옆에서는 마켓 직원이 떡볶이와 순대를 만들고 계셨다. 방금 받은 쿠폰으로 살 수 있단다. 호기심에 먹어봤다. 양념이 제대로 스며든 쌀떡 맛이 참 좋았다. 이것도 지역에서 나온 식재료로 만든 것일까. 백화점 못지않은 깔끔한 인테리어에, 묘하게 구수한 정이 녹아 있는 곳. 시장과 대형마트를 섞어 놓은 것 같은 특이한 플랫폼이었다.
 

마켓경기의 경기食 구운감자 ⓒ 정누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은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활발해졌다. 학교 급식 등으로 빠졌어야 할 농·축산물 판로가 막히자, 지자체가 나선 것이다. 나 또한 올 초에는 강원도 농수특산물 진품센터에서 감자 10kg를 5000원에 구입했고, 우리 시에서 개최한 코로나 피해농가 먹거리 장터에서 삼겹살을 값싸게 구매했다.

최근에는 경기도농식품 유통진흥원에서 운영하는 '마켓경기'에서 돼지고기 사태와 구운 감자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 불행이라 해야 할지, 행운이라 해야 할지. 코로나로 인해 나의 자취방 냉장고는 값싸고 질 좋은 식재료들로 가득 찼다.

'먹거리 신뢰도 제고', '중소농 새로운 판로 제공' 등의 사회적 가치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로 인해 조금씩 실현되고 있는 듯하다.

먼 곳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모르는 곳보다는 아는 곳에서
 

스튜 ⓒ 정누리

 
어젯밤은 로컬푸드 매장에서 산 토마토와 마늘을 넣어 스튜를 만들었다. 알알이 동그란 토마토가 국물에 잘 스며들어 맛이 깊고 편안하다. 토마토를 키운 농부의 정성이 한 숟가락 들어가고, 배고픈 자취생의 노력이 한 숟가락 들어가니 맛이 있을 수 밖에.

아직도 가끔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대형마트나 인터넷을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씩 먼 곳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모르는 곳보다는 아는 곳에서 흙의 숨결을 가까이 맡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내가 담은 장바구니가 곧 나의 입이니까 말이다. 문득 오늘 아침에 먹은 으깬 감자와 우유가 생각난다. 오늘 내 밥상의 거리는 농가와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자취생 #로컬푸드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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