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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쓰레기 주우러 나선 아이들이 거룩해 보인 이 장면

[필름사진 여행기] 8박9일 백패킹 세 번째 이야기, 매원2리 마을과의 교류

등록 2020.11.23 08:49수정 2020.11.2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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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사진은 필름을 이용하여 촬영하고 직접 스캔하였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괄호 안에 간단한 기종과 필름 종류를 기재하였습니다.[기자말]
- 이전 기사 '40명의 진지한 고딩들, 이런 모습 처음이었습니다'에서 이어집니다.

장호항에서 2박3일을 보낸 우리는 10월 31일 매원2리로 이동을 시작했다. 거리는 약 7km 정도. 애초 계획은 배낭을 매고 걷는 것이었다. 그런데 7월에 시행한 사전답사에서 그 이동 방법은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걸을 예정이었던 해파랑길 30코스는 대부분이 차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인도가 따로 없고 파란 선으로만 도보 및 자전거 주행 구간이 구분되어 있을 뿐이었다.

맨 몸으로 조심스레 걸어도 자동차가 실수하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더군다나 배낭을 메고 40명이 줄지어 걷는다면 곡선 구간이 많은 길에서 차가 선을 넘나들 때 무거운 짐과 함께 넘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걷기로 했던 길을 하릴없이 차로 왔다갔다 하면서 생각에 잠겨있을 때, 동행했던 한 교사의 입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레일바이크로 이동할까요?"

애초 레일바이크는 장호항에서 2박3일을 보내면서 레저 활동으로 체험하고자 했던 것이었는데 동선이 맞지 않아 포기한 터였다. 놀이기구로서가 아니라 이동수단으로서 이용하면, 이동도 안전하고 수월할 뿐더러 경치가 매우 좋은 레일바이크 탑승 체험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어서 안성맞춤이었다.

사전답사 후 바뀐 계획에 대해서 발표했더니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 고생 어린 경험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체험활동은 철저히 지양하고자 했다. 궁촌역에서 야영장까지는 안전한 해변길이라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사진 찍으랴 페달 밟으랴 (645N/Ektar100)페달 밟기조차 싫다고 하더니 막상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아이들 ⓒ 안사을

 
매원2리 이장님께 부탁하여 꽃집 용달차를 공수했고 배낭을 모두 실었다. 우리는 여유롭게 점심을 사먹고 삼척해양레일바이크 용화역으로 향했다. 주말 오후여서인지 차량은 모두 만차가 되었다. 발열체크를 하고 마스크를 쓴 채 레일바이크에 몸을 실었다. 

역시 그 유명세만큼이나 경치가 대단했다. 오른편에는 끊임없이 바다가 철썩거렸고 머리 위로는 멋들어진 소나무가 지나갔다. 터널 구간에서는 다양한 테마로 조성된 벽화와 조명이 어우러져서 눈길을 끌었다. 
 

레일바이크 뒤로 보이는 풍경 (645N/Ektar100)바다와 송림이 어우러진 레일바이크 풍경 ⓒ 안사을

   

선생님들과 (645N/Ektar100)두 선생님은 담임이 아닌데도 기행을 돕기 위해 나선 분들. 왼편 교사는 8박9일을 모두 동행해주었고, 오른편 교사는 완주에서 삼척까지 바이크로 오셔서 아이들에게 또다른 이벤트를 안겨주셨다. ⓒ 안사을

 
도착한 야영장은 바다와 송림이 어우러진 아늑한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은 풍경보다 먼저 샤워장과 화장실을 찾았다. 다행히 화장실은 기대 이상으로 깔끔했지만 샤워실은 한 번에 4명 밖에 씻을 수 없는 규모였고 둘 다 텐트에서 거리가 멀었다. 

장호비치캠핑장의 편의시설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불만을 터트렸다. 그래도 별 걱정은 되지 않았다. 이미 지난 2박3일 동안 아이들이 보여준 적응력은 이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매원2리 원평해수욕장의 바다 (645N/Ektar100)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흐려도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준다. ⓒ 안사을

 
해변 정화 봉사활동에서 발견한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

텐트 16개와 타프 6개를 치는 데에 걸린 시간은 불과 1시간 정도였다. 학교에서 연습하고 장호항에서 야영을 경험한 학생들에게 야영장비를 설치하는 일은 이제 일상과도 같았다. 덕분에 나는 상황실로 사용할 공간을 만드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전과 같게 입식 쉘터와 난로, 테이블과 조명 등을 설치하고 저녁식사를 마치니 어느덧 하루가 지났다. 통합기행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야영장의 밤 (645N/Ektar100)빨간 텐트는 학생 취침용, 앞의 쉘터는 상황실 및 의무실로 사용된 공간. 매일 밤 서너시간 동안 다음 날 계획에 대해 상세한 회의가 이루어졌다. ⓒ 안사을

 
매원2리에서의 둘째 날은 해변 정화 봉사활동이 계획되어있었다.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일정한 기준을 주고 시상을 할 것을 밝혔다. 부상은 식재료비 추가. 근처 편의점에서 5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를 사서 모둠별로 하나씩 돌렸다.

시상 기준은 '커다란 자재는 봉투에 넣지 않고 하나만 인정', '봉투 내에 페트병을 넣을 때는 압축해서', '쓰레기의 부피보다는 개수가 많을 것' 등이었다. 아이들은 모래사장과 솔밭, 마을 어귀를 돌며 부지런히 쓰레기를 주웠다.
 

봉사활동 중 (MZ-S/C200)가장 많은 곳을 돌며 쓰레기를 주웠던 모둠 ⓒ 안사을

 
30여 분이 흘렀을까. 예상을 벗어난 아이들의 행동이 시작됐다. 시상 기준을 충족하면서 봉투를 채우던 학생들은 언젠가부터 기준과 상관없는 커다란 폐자재들을 가지고 오기 시작했다. 스티로폼 부표에서부터 시작하여 냉장고 문까지 다양한 쓰레기들이었다.

"얘들아. 이런 거는 개수 산정에서 빠지는 거 알지?"
"알아요. 쌤. 그런데 안 가져올 수가 없었어요. 저기 가면 진짜 엄청 많아요. 어떡해요."
"거북이가 불쌍해요. 아 진짜 왜 이렇게 사람들이 나쁘죠?"
"상 안 받아도 돼요. 도와주세요. 100리터짜리 봉투 좀 더 많이 사다주시면 안 되나요?"

 

해변의 커다란 쓰레기들 (휴대폰)멀리에서 저런 쓰레기들을 부지런히 가져다 모았다. ⓒ 안사을

   

쓰레기 수확의 현장 (MZ-S/C200)쓰레기를 주워가면서 환하게 웃는 아이 ⓒ 안사을

 
다시 생각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광경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다. 상금을 포기하고 자연을 위해 땀을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거룩하게 보였다. 그동안 학교에서 꾸준히 해왔던 기후위기 환경교육이 영향을 주었을까? 누가 요즘 아이들을 바라보며 혀를 찰 것인가. 자연에 대해 순수한 측은지심을 갖는 모습을 본 뒤 다시 생각하시라!

쓰레기의 우열을 가릴 수가 없어서 각 모둠별로 사진을 찍은 뒤 온라인 투표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순위를 가렸다. 사실상 순위의 판별을 포기한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었고 모두가 1등이었다. 학생들의 선한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칭찬과 격려를 해주면서 오전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해변미니체육대회

오후에는 원래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교류하는 행사가 계획되어 있었으나 코로나19를 고려하여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말벗 되어드리기' 등의 봉사활동을 취소했다. 대신 아이들에게 미니체육대회 종목을 생각해 낼 것을 주문했다.

학생들은 오전에 주운 쓰레기에서 500ml짜리 페트병을 십여 개 꺼내고 스티로폼 구에 구멍을 뚫더니 간이 볼링장을 만들어냈다. 모둠별로 4차례 공을 던지고 쓰러트린 개수를 세서 순위를 매겼다. 마침 맞바람이 불어 스티로폼 공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였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우스운 광경은 쓰러진 페트병 수보다 웃다 쓰러진 사람의 수가 더 많을 정도였다.
 

해변 간이 볼링장 (휴대폰)그나마 가장 잘 던져진 볼 ⓒ 안사을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닭싸움에서 있었다. 학생 전원이 동시에 진행한 닭싸움이었다. 누가 봐도 우승할 것 같은 학생이 있었고 이변은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학생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한 다리를 들고 나머지 발로 모래판 위에 위태롭게 섰다.

1대1 경기가 아니다보니 가만히 서 있는 무리도 있었고 괜히 한 무리로 뛰어가 세 마리의 닭을 죽이고 자신도 장렬이 산화하는 우스운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강력한 우승 후보 학생은 주변에 네 명이 에워싸서 공격을 하는데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런데 우승은 다른 학생에게 돌아갔다.

시쳇말로 얍삽이 전법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적절한 시간에 아이들에게, 10초 안에 움직이지 않으면 실격이라고 주문했다. 그 순간 모든 학생들이 최선을 다해 싸우기 시작했는데, 양OO 학생이 싸움을 피해 이쪽 모서리에서 저쪽 모서리로 뛰어갔고 처절한 싸움에서 모두가 쓰러진 뒤에 그가 우승자가 되었던 것이다.

평소 그 학생의 성향과 태도 및 인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치사한 방법으로 이겼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고 여길 것이다. 양OO 학생은 평화를 사랑하고 항상 맡은 자리에서 성실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상징적인 행위예술을 보는 듯했다. 모두가 싸우고 경쟁하는 이 사회에서 굳이 싸우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만으로 삶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그런 내용으로 말이다. 입시위주의 경쟁 교육에서 대안을 찾고자 하는 우리학교 교육활동 속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닭싸움장으로 달려 들어가 양OO 학생을 어깨 위로 올려 목마를 태우고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양OO 학생 옆에 있었던 이OO 학생은 모든 기행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뒤 이 싸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OO이는 굳이 건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른 무리로 가서 닭싸움을 했죠."

양 학생이 평소 보여주었던 독야청청한 모습을 알고 있었던 이 학생이 양 학생의 방식과 선택을 존중해준 모습이었다. 나는 이 학생에게, 너 또한 훌륭하다는 칭찬을 해주었다.

이틀 밤과 3일 낮이 훌쩍 지나갔고 우리는 이제 11km를 걸어 맹방해수욕장으로 이동할 날을 맞이했다. 역시 시간 안에 깔끔하게 배낭을 다 꾸려서 정확한 시간에 출발했다. 안전과 풍경 감상을 위해 배낭은 얼마간 걸은 후 화물차에 실었다. 장호비치캠핑장보다 투박하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 안에서 겪은 일들은 오히려 보석처럼 빛났다. 
 

떠나는 뒷모습 (645N/Ektar100) 정들었던 바다와 송림을 떠났다. ⓒ 안사을

  

이동중 (645N/Ektar100) 육교를 올라갈 때 여학생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게 옷을 더 빼라니까. ⓒ 안사을

 
* 매원2리에서 맹방리로의 트래킹, 맹방리에서 동해역으로의 이동 미션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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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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