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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국회로 간 대학원생③] 대학 내 성폭력은 성차별적 대학 구조의 문제다

등록 2020.11.22 11:39수정 2020.11.2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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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률이 70%를 상회한 지 20년 된 한국에서 대학은 선택보다 의무에 가까운 경험이다. 대학원 진학률 역시 높아지면서 현재 약 32만 명 대학원생의 절반이 여성이다. 고등교육에서 여학생의 양적 증가는 성평등의 지표로 여겨진다. 여학생들의 뛰어난 학업성취도와 능력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다. 그렇다면 더 이상 대학에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1997년 발간된 한 책은 저 물음을 제목 삼아 여학생들의 대학 경험을 다뤘다. 법대나 이공계열에 진학하자 "법대가 망할 징조다"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항공공주, 금속공주"로 취급받는 것, "누가 너에게 박사학위를 줄 줄 아느냐"라며 여자 대학원생들을 상습적으로 협박하고 추행하던 남성 교수의 추태는 여학생들이 만난 대학의 현실이었다. 저자들은 대학이 표방하는 "합리와 이성의 상징" 속에 이러한 문제가 은폐되거나 은밀히 진행된다고 지적했다. 여학생들은 이 '숨겨진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을 통해 점차 '풀이 죽고' 대학에서 사라지거나 작아진다. 23년 전 모습이기만 할까.

2018년 미투 운동과 함께 대학 곳곳에서도 성폭력 피해 경험이 발화되었다. 대학 미투 사건으로 보도된 대학·학과 수만 30곳 이상에 달한다. 남성 교강사들의 가해 행위뿐 아니라 남학생들의 집단화된 여학생 품평문화나 단톡방 성희롱, 대학별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여성혐오적 문화도 드러났다. 

23년 전 여학생들 연대모임에서 발간한 자료집 제목처럼 "대학=성폭력 박물관, 없는 것이 없다!" 같은 상황이다. 나 역시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10년 넘게 대학에 다니며 여러 상황을 목격하거나 겪었다. 특히 2017~2018년, 학과 교수의 성희롱·갑질 사건에 대응하는 대학원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대학 성폭력 문제의 지속에 '대학'이 기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대학원의 조교 노동과 성희롱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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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서울대 서문과 A교수 강제추행 건 1차 공판 기자화견. ⓒ 유현미



많은 사람이 성폭력을 성범죄라 칭하며 가해자 처벌을 외친다. 그러나 성폭력의 범죄성을 강조할수록 개인의 심리적 이상이나 일탈 행동 이상으로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지기도 한다. 최근 교수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수많은 알파벳 교수들의 '악행'이 드러났지만, 알파벳만 바뀐 행태가 계속될 수 있는 대학 특유의 구조에 대해서는 여전히 더 많은 이야기와 분석이 필요하다. 나는 대학원을 조직하는 성차별적 연구·노동 환경이 성폭력을 지속시키는 기제임을 말하고자 한다.

1993년 서울대 S교수 사건은 한국 사회에 '성희롱(Sexual Harassment)' 개념을 도입시키고 대응체계를 법제화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대학 성폭력에 대한 학생사회의 조직적인 대응, 즉 대학 반성폭력 운동의 기폭제이기도 했다. 

자연대 실험실 기기 담당 조교였던 여성에게 남성 정교수 S는 기기 교육을 빙자한 신체접촉을 일삼았다. 둘만의 '입방식(일종의 연구실 환영회)'이나 산책을 제안하며 사적 접근도 시도했다. 조교가 이를 거부하자 S교수는 학과 관행과 구두로 약속된 조교 재임용을 거부했다. 조교는 처음에 학과와 대학 본부에 호소하다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하자 대자보로 사건을 공론화했고, 교수는 조교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한다. 조교는 이에 맞서 공동대책위와 함께 사건을 '성희롱'으로 규정하며 국가, 대학, 교수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한다. 

이 사건은 당시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으며 3심까지 가서 교수의 배상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국가와 대학의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고, 학생들의 수업 거부 운동에도 불구하고 교수는 대학에서 징계받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변호한 책을 내기도 했고, 임기를 채워 정년퇴직했다.

이 사건은 성폭력을 강간 중심으로 사고하던 사회 인식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기기 담당 조교직이 타대 출신 여성으로만 모집, 채용되었고, 형식상 계약과 무관하게 실제 업무나 근무조건이 담당 교수 개인의 자의적 지시와 결정 속에 맡겨져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전임 조교들과 다른 여성 대학원생도 유사한 방식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지 않다. 

남학생과 남교수가 다수인 실험실에서 기기 조작 업무는 그들을 보조하고 보좌하는 일로서 언제든지 교체 가능한 노동으로 위치 지어졌고, 여성의 일로 할당되었다. 인적 지지망이 약해 고립되기 쉬운 타대 출신의 일로도 배치되어 문제가 생겨도 피해자를 그만두게 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반복되었음에도 침묵될 수 있었던 이유다. 특히 S교수는 실험에 중요하고 비싼 기기를 도입한 자로서 학과에서 인정받고 있었고, 지도제자들도 이를 이용하고 있었기에 교수를 옹호했다. 

결국 성적 괴롭힘은 남성 교수 1인의 통제를 중심으로 연구 작업과 자원 배분이 이뤄지던 대학원 랩 구조, 그 속에서 여성의 일이 배치된 방식을 통해 지속될 수 있었다. 교수의 재량으로 정상화된 방식이었기에 국가와 대학의 관리 책임도 면책될 수 있었다.

성평등이 대학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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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7일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과 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전국대학생 집회 사진.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


그때와 다르게 지금 대학에는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규정이나 성희롱·성폭력 상담소, 성평등센터, 인권센터 등 전담기구가 존재한다.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여성단체 등 대학 외부에도 고충을 호소하거나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제도들과 기구들이 존재한다. 성폭력이 교수의 인사나 학생의 학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위가 아니었던 1990년대에 비해 신고되거나 인정되면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으로 점차 자리 잡고도 있다. 모두 학생들과 피해자들의 지난한 목소리 내기와 운동의 성과다.

그러나 신고나 문제제기의 문턱에 진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대학원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발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도교수가 장학금 선정부터 학위 수여, 추천서 작성까지 대학원생의 일상과 생계, 진로에 전권을 발휘할 수 있게 관행화된 대학원 지도-교육 관계의 비합리성이 있다. 

그래서 많은 대학원생의 성폭력 피해가 논문심사나 지도, 학회 참석 등 연구 진행을 명목으로 이뤄진 장면에서 발생한다. 지도교수의 성폭력으로 지도교수 변경을 하려 했더니 지도교수의 확인도장을 받아야 했던 상황의 난감함을 말하던 피해자가 있었다. 교수의 성폭력과 갑질을 신고했더니 연구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다른 학생들이 지도받을 수 없어서 학생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던 피해자도 있었다. 스스로와 타인의 학업에 불이익이 간다면, 과연 누가 쉽게 성폭력을 문제 삼을 수 있을까.

우리는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를 중심으로 사고하지만, 조직 내 성차별 문제로서 '성희롱'이 가지는 특성은 바로 피해자가 동등한 조직 구성원으로 누려야 할 권리나 조건들이 박탈된다는 데 있다. 대학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배우고 연구하고 일할 권리, 학계에서의 진로를 설계하고 쌓아갈 가능성 말이다. 사건 공론화 이후, 성폭력 피해자로서 지지받고 제도적 지원도 받을 수 있었지만, 누구도 자신의 학업 진행에 대해 물어봐주지 않았다고, 공부를 함께할 동료들은 없었다는 어떤 피해자의 말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많은 여학생이 피해를 겪거나 목격하면서 학계와 학문에 대한 열의와 애착을 상실한다. 'Harass(괴롭히다)'의 어원이 뜻하듯, 여기가 지긋지긋해진다. 그것은 다시 여성들의 학문적 능력 부족과 야망 없음으로 해석되어 경쟁-평가 체제로 서열화된 현 대학 구조에 부적합한 존재들로 규정하는 인식으로 굳어진다. "일은 여자가, 교수는 남자가." 어떤 좌담회에서 만난 한 대학원생이 한 말이다. 대학원을 굴리는 숱한 노동을 하지만, 학문적으로 인정받거나 보상받지 못하는 여성 대학원생의 현실을 간파한 표현이다. 떠나거나 작아지거나, 그 많던 여학생들이 지금도 만나는 갈림길이다.

2019년 공론화된 서울대 서문과 A교수 사건은 이런 학계의 성차별적 문화가 성폭력과 갑질, 연구비 횡령 및 연구윤리 위반이라는 대학 비리 종합세트를 어떻게 낳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술어술문학과'로 남성 교수들의 유흥과 안위를 위한 장으로 학과가 조직되면서, 그에 순응하는 남성 조교들과 강사들이 동원되며, "남편이 돈을 버는 여자 강사를 (수업에서) 제외"하는 행태들이 시도되었다. 남성 교수의 연구 실적을 위해 여성 대학원생이 해외 학회 참석과 논문 작성을 강요당하다 성추행 피해까지 입는 상황도 목도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봉건적 가부장성과 신자유주의 대학 체제가 배타적이지 않음을 확인한다.

이러한 교수의 자의적 권력을 견제하는 대책으로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및 대학원생들은 대학 인권센터의 내실화 및 권한 강화, 징계위에의 학생 참여 등을 입법하려 노력하고 있다. 더 나아가 노동자로서의 권리 인정, 양육과 병립 가능한 대학원생 교육·연구 환경 조성을 통해 임신하고 출산할 수 있는 몸, 기르고 돌보는 활동이 배제되지 않는 대학을 꿈꾼다. 대학을 성평등하게 만드는 조직화된 목소리와 제도만이 성폭력을 근절시키고 대학 민주주의를 완성시킬 것이다. 대학 성폭력은 대학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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