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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품된 상자에서 나온 똥기저귀...쿠팡에도 사람이 있다

[쿠팡 일용직 노동, 2년의 경험 ②] "여기 말고 갈 곳 없다"는 노동자와 너무 쉬운 반품 정책

등록 2020.11.20 20:18수정 2020.11.2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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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료사진. ⓒ SBS

  
한때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손님이 그렇게 많은 지역은 아니어서 계산대는 한가한 편이었다. 대신, 소위 말하는 '진상' 손님이 유독 많은 시간대에 일을 해서 꼴사나운 일을 많이 겪었다. 

술에 취해 반말하는 손님은 기본이었고, 엄연히 파는 종이컵을 공짜로 달라는 손님도 있었다. 그래도 바닥에 토부터 하고 보는 손님들보다는 참을 만했다.

하도 시달려서 그럴까? 쿠팡 물류창고 일용직 노동에 들어간 처음에는 손님을 상대해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물류창고 내에서는 하라는 대로 몸만 움직이면 되니까. 간혹 내게 좋지 못한 소리를 하는 관리자가 있기는 했지만,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보다는 훨씬 할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비록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안해져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었다. 덕분에 쿠팡 물류창고를 다니던 초기에는 인상이 많이 밝아졌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새로운 유형의 진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신문지 뭉치 속 담배꽁초

물론 나는 여전히 그리고 쿠팡 물류창고에서 나올 때까지도 손님과 직접 대면한 적이 없었다. 간혹 같이 일한 노동자가 자신이 반품한 물건이 우리 창고로 와서 농담 소재가 된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반품된 물건에 있었다. 나는 주로 반품 영역에서 일했는데, 사람들은 다양한 사유로 물건을 쿠팡에 다시 돌려보냈다. 반품되는 물건 종류도 각양각색이었다. 나는 면봉부터 컴퓨터까지 각종 물건을 분류하고 정리해야만 했다. 


대다수 상품은 작업하는데 아무런 흠이 없었다. 무거운 물건이면 여럿이 들면 되었고, 잘못 분류되면 관리자에게 말하기만 하면 내 임무는 끝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물건들이 간혹 있었다. 어떤 날은 상자 겉면에 붙어있던 송장에 '화장품'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상자 안에 화장품이 들어가 있겠거니 하면서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포장이 허술한 상자가 여러 공정을 거치면서 결국 뜯어지게 되었는데, 안에 들어있던 것은 화장품이 아니라 신문지 뭉치였다.

신문지 뭉치 안에는 담배꽁초가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한동안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무슨 일인가 하고 내게 다가왔다. 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문제의 신문지 뭉치를 보여주자, 그도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거 사실 되게 많이 나오니까, 이 신문지는 그냥 버리고 관리자에게 말하면 될 거야."

그러고서 그는 다시 자기 할 일을 하러 빠르게 움직였다. 나도 곧 정신 차리고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날 나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갑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이 보낸 쓰레기를 볼 수 있었다. 굽다 만 소고기를 본 적도 있었고, 육아용품 반품이라고 처리하려고 했더니 실제로는 똥기저귀인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욕이 절로 나왔지만, 점차 무뎌지면서 알아서 버리고 관리자에게 보고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모욕당하고 있다는 기분은 떨쳐내기 어려웠다. 나 자신이 쓰레기통이 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쓰레기도 아니고, 그저 착실하게 돈을 벌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물류창고 노동자였을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런 노동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과 관계없다는 이유로, 물류창고 노동자들을 쓰레기통으로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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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터미널 택배분류 작업장에서 택배기사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보통 물류창고에서 일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육체적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실제로 내가 쿠팡에서 주기적으로 일용직 노동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몸도 힘들 텐데 대단하다"나 "몸조심해라" 정도였다. 

물론 실제로 물류창고 일에서 가장 고통받는 것은 사람의 신체다. 그러나 반품되는 쓰레기들 같은 것들이 마음을 역시 짓누른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는 내가 일을 하면서 들리지 않게 욕을 읊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놀란 적도 있었다.

당신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누군가 쓰레기를 던진다고 생각해보라. 물론 치워야 하는 사람은 당신이다. 당신은 누가 이 쓰레기를 버렸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빨리 쓰레기를 처리해야 한다. 나와 같이 반품된 물건을 처리하던 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을 자주 마주쳐야만 했다.

너무 쉬운 반품 정책

도대체 반품된 물건에서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저 몇 사람의 악의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지만, 문제는 관대한 쿠팡의 반품 정책에 있다.

쿠팡에서 구매한 물건은 반품이 쉬운 편에 속한다. 단순 변심의 경우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쿠팡에서 마련한 구독형 서비스 '로켓 와우'에 가입한 경우라면 30일 이내 무료 반품을 할 수 있다.  

예전에 로켓 와우를 무료 체험할 기회가 있었는데, 물건을 하나 잘못 사서 반품을 신청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쿠팡 택배 노동자가 와서 물건을 가져가더니 바로 환불처리가 완료되었다. 너무 간단하게 진행된 탓에 오히려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었다.

이처럼 반품이 간단한 상황이다 보니 반품 작업하는 물류창고에는 매일 상당한 분량의 물건이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구매자의 손을 떠난 물건이 자기 스스로 처리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반품된 물건은 여러 차례 분류와 검수를 거친다. 그렇게 분류된 물품은 할인된 물건으로 다시 쿠팡 사이트에 등장하거나, 폐기 수순에 들어간다. 물건이 처리되는 과정은 간단하지만, 물건을 이리저리 옮겨야 하기에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쿠팡의 규모가 커질수록 덩달아 반품 규모는 커져만 갔다. 초기에 "이 정도면 신기록이네!" 하면서 감탄했던 물건의 규모가 퇴사할 시기에는 평균 정도의 분량이 되어버릴 정도였다.

분명 쿠팡의 반품 정책은 소비자에게는 편리하지만, 이를 위해 물류창고에는 항상 많은 노동자가 투입되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이들은 쉬운 반품에 딸려온 쓰레기들도 같이 치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여러 차례 쓰레기를 발견하고 처리하면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불쾌한 감정이 가슴 속에 남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또한 늘 바쁘게 돌아가는 물류창고에서는 항상 큰 소리가 들리다 보니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결국 퇴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차라리 때려치우고 싶지는 않으세요?"

언젠가 나는 옆에서 같이 일하던 노동자에게 물었다. 그가 또 다른 쓰레기를 발견하고 이후에 계속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여기 말고 갈 곳이 없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 누군가에게 쿠팡 물류창고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직장이었다. 여름에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진하게 맡으면서도, 허술하게 포장된 상자 사이로 흘러나온 깨진 유리 조각에 베이면서도, 신문지 뭉치 속 담배꽁초를 치우면서도, 그곳에 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절로 고개를 숙였고, 나는 그 뒤로 다시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물류창고에도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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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부천 물류센터.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하나의 물건이 우리의 집으로 오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하늘에서 갑자기 물건이 '뚝' 하고 떨어져서 택배 노동자가 그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창고에 물건을 갖다 놓고, 다른 사람을 그걸 분류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분류된 물건을 고객에게 배송한다. 

쿠팡 물류창고의 경우 이를 위해 매일 일용직을 창고마다 수백 명씩 모집한다. 그렇게 모인 노동자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보낸 물건 뒤에 붙어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돌려보낼 물건을 처리할 사람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자신이 반품하는 물건에 쓰레기를 넣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 치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쓰레기 반품도 가능한 것이다. 택배 노동자가 반품 물건에 딸린 쓰레기를 나르고, 물류창고에서 이를 몇 차례나 확인하고 나서야 반품된 쓰레기는 자신이 본래 있어야 할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된다.

혹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동안 그렇게 해왔다면, 앞으로는 그만두시기를 강력히 요청한다. 가뜩이나 매일매일 힘든 육체노동을 버티며 살아가는 물류창고 노동자들인데, 그런 감정 소모까지 하라는 것은 너무 억울한 처사이지 않는가.
#노동 #쿠팡 #일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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