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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친구들은 왜 병원에 쉽게 가지 못할까

11월 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등록 2020.11.20 08:30수정 2020.11.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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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색이 담긴 깃발. ⓒ 위키커먼즈

 
얼마 전, 한 토크 자리에 패널로 참석했을 때, 사회자가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구조적, 제도적 차별에 대한 일화가 있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나는 지정성별 남성인 트랜스젠더로서 아래와 같이 내가 겪은 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몇 달 전 지인의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갔었다.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려는데 직원이 포인트 등록을 하겠냐고 했다. 보통은 귀찮아서 안 하지만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만 알려주면 바로 처리된다 해서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불러준 내용을 직원이 입력하더니 오류가 난다고 다시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해서 입력화면을 봤더니 성별란에 여성으로 체크를 해서 오류가 난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갑작스레 커밍아웃할 맘이 없던 나로서는 서둘러 등록 안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약간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계산을 마쳤다.

위 사연을 읽은 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큰 차별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원하던 물건을 샀고 직원이 내 정체성을 알거나 어떤 혐오 발언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트랜스젠더로서의 구조적, 제도적 차별을 묻는 말에 위 사연을 이야기한 것은, 등록되지 못하는, 있는 그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삶의 한 모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있는 그대로의 삶
 

얼마 전에는 11월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앞두고 트랜스젠더 패널들이 함께 죽음, 건강,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촬영했다. 그 자리에서 각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했을 때 나를 포함해 다들 전반적으로 좋지는 않았다. 다만 그보다 눈에 띈 부분은 공통적으로 병원에 잘 가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때 다시 생각해본 것이지만 나 역시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다행히 잔병치레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컨디션이 안 좋거나 부상을 입었다 해서 굳이 병원에 가지 않는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병원 카운터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적었을 때 간호사들이 놀라며 본인인지 묻거나, 의사가 차트만 보고 남성이라고 생각했다가 실제로 보고는 어딘가 우물쭈물 대하는, 이런 경험을 몇 차례하고 나서는 그렇게 된 것 같다.

이러한 경험들은 비단 백화점, 병원에서만 겪는 것은 아니다. 은행에 갈 때, 카드를 만들 때, 택시를 탈 때, 관공서에 갈 때, 일상의 거의 모든 법적 성별을 드러내는 상황 속에서 본인이 맞는지 재차 확인받거나 의혹의 눈초리를 받곤 한다. 한편으론 나 개인은 어쨌든 대응할 자원이 있기에 이런 일들을 겪는다고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이런 일들이 쌓이게 되면 점차 법적 성별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을 피하게 된다.

회피와 포기, 이게 실제로 트랜스젠더들이 살아가면서 많이 하는 일 중 하나일 것이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실태조사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는 일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한 트랜스젠더 60명 중 38명(63.3%)이 해당 업무를 포기했다.

이렇게 포기하는 것은 당사자로서는 당장은 어쩌면 마음 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되면 당연히 달가울 리 없다. 어디를 가도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고 살아가야 하니까. 사회적으로는 더 문제다. 이러한 포기는 트랜스젠더를 드러내지 못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트랜스젠더와 함께 살아간다는 인식이 생겨나지 않는다. 이는 결국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드는 차별을 고착화한다.

있는 그대로의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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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성전환 남성'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최근 숙명여대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합격 사실이 알려진 후 재학생들의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0.2.6 ⓒ 연합뉴스


앞서 이야기했듯이 11월 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다. 여러 정체성 집단을 기념하는 날은 여럿 있지만 트랜스젠더는 3월 31일 가시화의 날과 더불어 추모의 날이 존재한다. 이는 트랜스젠더들이 사회적 차별과 낙인 속에서 사회적 타살을 겪기에 만들어진 날이다.

이때가 되면 나 역시 곁에서 떠난 사람들을 추모한다. 모든 추모가 그리움과 슬픔을 가져오지만 그중 특히 아프게 기억되는 이가 한 명 있다. 그 친구의 경우 사망 당시 가족과 나를 포함한 지인 몇 명을 빼면 아무도 트랜스젠더인지를 모르는 이였다. 이를 알리고 싶지 않았던 가족들은 그 친구의 장례식을 그냥 법적성별에 따라, '시스젠더'로서 치렀다. 그렇게 하여 본인이 바라지 않았을 이름으로, 사진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추모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층 더 슬펐다.

그 모습은 나도 누구에게도 커밍아웃하지 못하던 때, 이따금 떠올리던 장면이었다. 만일 내가 이대로 떠난다면 나는 누구에게도 나 자신으로 인지되지 못한 채 아들로서, 남동생으로서, 남자인 친구로서 그렇게 갈 거라는 막막함이 들던 때가 있었다. 그런 감정들이 함께 섞여 그 친구를 보내는 길은 굉장히 힘들고 지금도 항상, 이맘때면 특히 더 그때의 기억과 경험들이 생각난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추모받지도 못하는, 이런 일들이 사회적 소수자이기에 응당 겪어야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지난 6월, 7년 만의 침묵을 깨고 국회에 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 법 발의 후 보수개신교를 비롯해 반성소수자 단체들은 주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빌미로 계속해서 혐오 선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 쏟아내는 거짓된 주장들을 보다 보면 이들은 정말 차별금지법을 대단한 법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들은 마치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기존의 성별체계가 다 무너지고 성소수자들이 당장 거리에서 활보하고 사회적 지위를 누릴 것처럼 이야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농담삼아 취미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라고 이야기하는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법 제정이 당장 세상을 바꿀 리 없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들은 존재한다. 성희롱이란 개념이 한국 사회에 알려지고 법체계에 포함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여러 성적인 괴롭힘 사건들을 마주한다. 법은 차별에 맞서는 시작은 될 수 있어도 종결은 될 수 없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세상은 반대 세력이 말하는 것처럼 천지가 개벽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차별이 드러나고 평등을 향한 투쟁이 지속하는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법 제정이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법의 제정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이름 지어지지 못했던 차별의 경험에 이름을 붙일 수 있고, 드러나지 못했던 소수자들의 존재를 법의 문언 아래 드러낼 수 있다. 성별정체성이 차별금지사유에 포함되고 이에 대한 정의 규정이 만들어지는 일은,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해오는 트랜스젠더의 삶을 지우고 이분법적 성별 체계에 안주하고 있던 사회를 일깨우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추모받는 그러한 변화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차별금지법이 이 사회에 필요한 이유이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지만 특히 올해는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 합격생을 통해 트랜스젠더 인권의 현실이 드러났던 해였다. 그러한 2020년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더는 아픈 추모가 없기를 바라며, 아직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머뭇대고 있는 정부와 국회에 한 마디를 건넨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트랜스젠더 혐오로 희생된 모든 이들을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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