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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노후 대책까지 생각한 부모님의 특별한 귀농

직장 때문에 시작된 군산 살이... 부모님이 사실 터를 구했습니다

등록 2020.11.22 18:20수정 2020.11.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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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이삿날, 몹시 추웠다. 군산, 여기는 대체 사람 사는 곳 맞단 말인가. 사실 지도에 있는지도 몰랐던 도시. 회사가 이전한 곳은 군산시 바닷가에 비응항 부근 산업단지였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란 말을 알겠다. 보이는 사람은 죄다 패딩이라 마치 타이어 광고 캐릭터들이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내륙에서는 그렇게 포동포동 패딩을 입지 않았다. 그 겨울 옷으로는 당최 이 바닷바람을 배겨낼 수는 없다.


직장이 군산으로 이전한다는 결정이 났을 때, 나에게 유일한 고민은 연로한 부모님과 멀어지는 것이었다. 군산으로 가면 족히 두 시간 거리라 평소에 드나들거나 할 수는 없으니 이걸 어쩐다?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우리 걱정 말고 회사 따라가. 그게 맞는겨. 우리도 그 덕에 군산이란 데 구경도 가고 않겄냐." 나의 망설이는 고민을 아빠는 한 방에 날려주었다.

직장 때문에 이주해 온 군산

그렇게 마음의 부담을 덜고 이사는 했으나, 여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고독한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외로움이 탱자나무 울타리가 되어 날 가두었다. '내가 조정에 뭔 죄를 짓고 여기에 위리안치되었단 말인고.' 쓸데없는 상념의 나날들이었다. 귀양지를 이탈하여 친구를 만나고 복귀하는 이중생활을 주말마다 얼마간 했더랬다. 사상 최고의 주유비를 소비하며 경차가 낼 수 있는 최대치 마력을 뽑아내며 한반도의 아우토반을 달렸다.
 

군산의 봄 산책 좋아하는 나에게 군산은 무릉도원이다. ⓒ 황승희

 
짧지 않은 고속도로는 달리는 음악감상실이었고 각종 인문학 강연을 섭렵하는 강의실이었다. 또한 그 주행 시간은 상상의 시간이었다. 경차라서 일치감치 육중함을 장착하지 못하였기에, 에어가 차면 꼭 떠버릴 것만 같아 유리문을 내리지 못하는 엉뚱한 상상. 대형차가 굉음을 내며 스쳐가기라도 하면 나방이 불에 뛰어들 듯 내 경차가 그 속도에 훅 빨려가는 위험한 상상을 했었다.

타이어 두르듯 한 외투로 다 다시 사 입어야 했던 겨울을 그렇게 보내고 꽃피는 봄을 거쳐 계절들을 살아보니 여기만 한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유붕이 자원방래니 불역열호아'라 했지. 점점 나의 장거리 외출이 줄어드니 입대한 친구 면회 오듯 고향 친구들이 삼삼오오 찾아 내려오곤 했다.
 

군산 픙경 군산은 공원과 호수가 탁월하다. ⓒ 황승희

 
난 완벽한 현지 가이드가 되고 싶었다. 가볼 만한 곳을 거리별로 일정별로 계절별로 맛집별로 코스를 패키지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군산이다. 역사적인 현장은 이야기도 알아둬야 한다. 내 친구들은 잘 적응한 나를 보는게 흐뭇했고 하나같이 군산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올라갈 수 있었다.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나처럼 산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군산은 무릉도원이다. 산, 바다, 강을 곁에 두었으며 공원과 호수가 탁월하며 음식이 맛있다. 알맞게 전원적이고 적당히 도시적이다. 취미와 문화생활의 본거지로 안성마춤이다. 터 놓고 지낼 친구들까지 생겼으니 그리하여 나는 결심했다. 내 남은 생은 여기서 살리다.
 

군산의 오성산 패러글라이딩 군산은 취미와 문화생활의 본거지로 안성마춤이다 ⓒ 황승희

 
엄마 아빠는 딸 보러 군산을 몇 번 다녀가시더니 대번에 "군산 좋구나" 하셨다. "잘 됐네. 엄마 아빠도 내려오시는 거 어때요?" 바로 튀어나온 이 말이 특별한 귀농의 마중물이 될 줄이야.


엄마 아빠는 밥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자식 신세 안 져야, 하고 뒷방 늙은이로 주저앉는 건 할 게 못 된다 여기신다. 얼마 전부터는 호젓하니 염소나 닭을 먹이며 텃밭 농사 할 손바닥만 한 땅 하나 있었음 했다. 집 앞마당 손톱만 한 텃밭은 성에 안 찼다.

지금 연세에도 꿈이 있다니. 또래 친구들 부모님에 비하면 정말로 내가 두 손 모아 감사한 일이다. 그걸 내가 해드리면 내 부모님의 여생으로 여기 군산도 괜찮겠다 싶었다. 난 비혼주의자로 살면서부터 언젠가는 부모님을 케어해야지 했었다. 그때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사실 답은 내 마음에 있었다. 부모님이 더욱더 그리워진다.

딸인 나보다 아들의 든든함을 어찌 모르랴. 다만 아들네의 대도시 생활이 당신들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걸 내 아는 바, 이 현실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오빠. 엄마 아빠 아직 건강하시지만 연세도 있고, 내가 여기에 자리 마련해서 근처에서 같이 지낼게."
"그러니까 여든에 머더러 평생 살던 곳을 떠나 굳이 이사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노인네 고생만 하지. 거기는 형제, 이웃, 친구도 없는데 엄마 아빠 심심해서 못써."


오빠의 의견까지 잘 들었다. 설득은 필요가 없었다. 늙음이란 관념이다. 언제부터 노인이라 할 수 있는가. 노인이냐 아니냐는 연금 탈 때 말고 사실 의미가 없다. 오늘 할 수 있는 것, 내일 하고 싶은 것이 있냐 없냐가 중요할 뿐. 우리 아빠는 진정한 프런티어이다. '엄마 아빠의 특별한 귀농'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직장 12년 다니며 모은 돈으로 땅을 사기로 했다.

아빠의 귀농에는 더 큰 계획이 있었다

아뿔싸.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아빠가 생각한 손바닥만 한 땅에는 집터와 텃밭, 비닐하우스, 염소 울타리, 원두막, 거기다 주차장까지 다 들어가야 했다. 이건 교회만 없지 중세의 장원이 아닌가. 진정 손톱과 손바닥의 차이를 실감했다.
 

군산의 바다 군산은 알맞게 전원적이고 적당히 도시적이다. ⓒ 황승희

 
좌우지간 셋이 머리 맞대어 견적과 예산과 여러 조건 설정을 하였다. 그리하여 대략 8개월에 걸쳐 40여 군데의 땅을 보러 다닌 결과, 나와 20분 거리에 적당한 땅을 살 수 있었다. 마트에서 햇반이나 사던 내가 땅을 다 사다니. 뭔가 대단한 거를 이루어낸 거 같다. 안 될 것도 같았지만 달려드니 또 되는 게 신기했다. 말로만 듣던 생산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가 된 것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투쟁의 대상이 된 것이니 기분이 묘하다.

좌우지간, 이젠 부모님 주택을 팔아 그림 같은 집을 지을 것이다. 엄마 아빠의 소중한 꿈을 내가 이루어 드린 것 같아 뿌듯했다. 이제 여기에다 뭘 하시던 바라는 대로 실컷 하시면 난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다. 군산으로 내려올 결심을 하고 아빠는 오빠에게 따로 한 말이 있다는 것을.

"너는 가족이 있고 잘 벌어먹고 살지만 네 동생은 혼자서 저렇게 자주 아프고 하니 나랑 네 엄마가 내려가서 뭐라도 해줄 수 있는 건 해줄라 헌다. 내 비록 늙었어도 부모로서 저 혼자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편한 길이 뭔지를 가서 해놔야 하지 않겄냐."

아빠는 계획이 다 있었다. 텃밭이 다가 아니었다. '텃밭을 가장한 과년한 딸 노후대책 만들어 놓기'인 것이다. 대체 부모님 마음의 깊이와 넓이는 어디까지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측정기로도 잴 수 없다. 더욱이 내 소양으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도다. '제가 부모님 모시고 살려고요.' 사람들은 열이면 열 '효녀네' 하며 나를 칭찬했다. 칭찬받으니 좋기만 했던 나는 참으로 철부지였다.

겨울이 오고 있다. 낮이 짧아진다. 더 안아드려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군산 #귀농 #고향 #노후대책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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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두 마리 고양이 집사입니다. 오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부모님과 밭농사일을 하고 글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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