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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대 할머니가 손주며느리에게 '꼭 해라' 당부한 것

[중년대비 행동요령] 미루지 말고, 지금 행복할 것

등록 2020.11.27 16:56수정 2020.11.2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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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e)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20대에서 40대 초반 사이에 가장 낮은 행복감을 느끼며, 그 이후로 나이를 먹어갈수록 삶에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여성은 만 55세를 기점으로 점점 더 행복해지며,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행복의 절정을 느낀다.  -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메리 파이퍼, 11쪽
 
브루킹스 연구소는 미국 내 영향력이 가장 큰 사회과학 연구소다. 1916년에 설립되어 연구원만 300명이 넘는 공신력 있는 연구소에서 말하기를, 여성은 55세를 기점으로 점점 더 행복해진다고? 야호~!


갑자기 기운이 났다.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니겠지 싶어 차분히 다시 한번 읽었다. 연구 결과는 '나이를 먹어갈수록'이 아닌 '삶에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드는 마음
 

당장 내일 일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오늘을 감사하며 살 수밖에. ⓒ Pixabay


나 역시 나이가 들수록 매일매일에 감사하는 마음이 커진다. 좋은 일이 항상 좋은 일은 아니며, 나쁜 일이 매번 나쁜 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세월을 통해 경험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만난 친구의 이야기에서도 그랬다.

친구는 대기업 주재원으로 발령 난 남편을 따라 홍콩에 오래 살았다. 6년 전 남편의 회사가 갑자기 파산해, 한국에 돌아와야 했다. 남편의 취업, 아이의 전학, 집 구하기 등 들이닥친 문제로 힘들었던 친구는 홍콩에서 계속 안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최근 홍콩에 남은 지인들과 통화하면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그들은 홍콩송환법 반대 시위 이후, 사회 경제 전반이 불안정하고 힘들다며 하소연했다. 몇 년 전 한국에 들어가 다시 자리 잡은 내 친구를 부러워했다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또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겠어?" 친구는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며 희미하게 웃었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내일 일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오늘을 감사하며 살 수밖에. 사람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의 시점을 과거나 미래가 아닌 바로 오늘에 맞추고,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찾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W.B.Yeats)도 나이 오십 이르러 일상에서 삶의 행복을 찾았다고 전한다.
 
나의 쉰 번째 해가 다가왔다 지나가고,
외톨이인 나는,
북적이는 런던의 어느 찻집에 앉아 있었다.
대리석 탁자 위엔
펼쳐진 책과 빈 잔 하나.
가게와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내 몸이 달아올랐다.
이십여 분은 족히 되었으리라,
행복감에 흠뻑 젖어든 나머지 나는
축복받은 느낌이었고 그래서 축복할 수 있었다.
 
예이츠가 쉰 번째 생일을 맞은 나에게 보내온 생일 카드 같았다. 1865년생인 예이츠가 오십 세가 된 해는 1915년 즈음이겠지. 100년 전 런던의 카페 풍경은 내가 시 속으로 들어간 듯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서울의 한 작은 카페와 닮았다.

예이츠는 읽을 책 한 권, 맛있는 커피 한 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거리 풍경, 그리고 그 속에서 오롯이 나를 마주해 행복을 느낀다. 내 마음이 충만하기에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곁을 내줄 수 있다.

지난 주말, 생신을 맞으신 남편의 외할머니를 뵙고 왔다. 거실에 걸린 옛날 사진을 둘러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 칠순 잔치 사진부터 제가 있네요, 이때 막 결혼했을 때인데.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제가 벌써 오십이에요."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그렇지. 나도 앞의 숫자가 바뀌니까 마음이 좀 그래." 올해 아흔, 80대에서 90대로 바뀌는 할머니 앞에서 나이 타령이라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 아니 공자 앞에서 문자 쓰기였다.

할머니는 손주 며느리인 나를 볼 때마다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아라" 하고 당부한다. 가만히 말씀을 들어보면 세계 일주 여행같이 거창하고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평소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라는 뜻이다.

남이 기대하는 것,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하는 것,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는 것. 그것은 결국 '가장 나답게 해주는 것'일 테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글을 씁니다
 

시인 예이츠(W.B.Yeats)도 나이 오십 이르러 일상에서 삶의 행복을 찾았다고 전한다. ⓒ Pixabay

 
지금 나에게는 '글쓰기'가 아닐까. 누가 쓰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나는 글을 쓰고 싶다. 가족 안에서 관심과 간섭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내가 겪은 뜻밖의 친절과 난데없는 무례함,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전해 듣는 넓은 세상 소식들, 그리고 좋은 책들과 영화가 주는 자극은 마음의 심지에 불을 댕긴다.

내 굳은 머리와 산란한 마음을 녹인다. 며칠씩 고민하며 사유의 틀을 짜고 촛농을 굳혀 나만의 글을 쓴다. 비로소 내가 살아 숨 쉬는 '고유한 존재'임을 느낄 때 나는 행복하다.

신기하게도 글을 쓸수록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의 기쁨과 감동 때로는 분노와 흥분을 글로 쓰면, 한 김 식으면서 침착해진다. '행복과 불운은 같은 썰매를 타고 온다'는 러시아 속담처럼 모든 일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함께 있으니, 동전을 뒤집어보듯 면밀히 살펴본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평면적이었던 상황을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힘이 생긴다. 나와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다. 유아독존에서 벗어나면 감사할 조건들이 넘쳐난다. 글로 쓴 나의 반성과 다짐을 곱씹으며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것. 그렇게 남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

오십, 지금 내 인생의 타임라인은 '글쓰기'다. 내 인생 행복의 절정을 향해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중년 #글쓰기 #중년대비 행동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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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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