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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불안한 이유... 결국 '존중 불안'을 없애야 해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694]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등록 2020.11.23 21:06수정 2020.11.2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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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 한겨레출판 제공

 
정조, 연산군 등 역사 인물부터 문재인, 박근혜, 안철수, 이재명 등 정계 인물까지 그들 고유의 심리를 분석해 화제를 모은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이 신간 <풍요중독사회>(한겨레출판)를 내놓았다. <풍요중독사회>는 끝이 없는 위계 속에서 불안을 방어하고,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려다 풍요중독자가 된 사람과 사회에 대한 비평서다. 책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18일 저자인 김태형 소장을 전화로 연결했다. 김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한국인의 불안... 돈으로 해결 안 된다"

- 지난 12일 신간 <풍요중독사회>를 낸 소감이 궁금합니다.
"계속 쓰고 싶었던 주제의 책이라서 좀 뿌듯하고요. 사람들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은 바람이 있는데 이번 책이 그런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람을 느낍니다. 인류, 특히 OECD에 가입된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경우 과거보다는 물질적으로 훨씬 더 풍요로워졌지 않습니까? 그런데 더 불안해지고 불행해졌단 말이에요. 이것을 많은 사람이 풍요의 역설 등으로 얘기하는 건데 <풍요중독사회>는 여기에 대한 심리학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한국 사람들이 모두가 지금 불안하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막연하게 불안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불안의 원인이 뭔지 정확하게 잘 몰라요. 그 불안을 돈으로 어떻게든 방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서 돈에 올인하거든요. 그럼에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고 더 불안해지죠. 또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경제성장에만 계속 관심들이 있지, 평등과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주목을 거의 못 하고 있어요. 저는 그런 것에 대해서 환기를 시키고 싶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흔히 가정의 화목을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부모가 싸우면 아이들한테 정신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사회가 화목하지 않을 때 사회구성원들한테 미치는 피해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고 있어요. 이번 책 통해서 사람들에게 그걸 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이런 불안이 어디에서 왔는가예요. 그러나 이런 것에 대해선 잘 모르죠. 그냥 막연하게  '내가 대학교에 못 가서 불안한 거 같아', '취직이 안 돼서 불안해' 등의 이유로 돌리지만 사실 뿌리를 파고 들어기면 그 불안의 근본적인 내용은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 책의 내용 중에 나는 400만 원 받고 다른 사람은 600만 원 받는 것과 나는 200만 원 받고 다른 사람은 100만 원 받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대부분 후자를 선택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게 연결되는 건가요?
"그렇죠. 조금 전 제가 말한 게 지금 말씀하신 거와 연결되는데요. 사실 생존 불안만 놓고 보면 생존에 유리하니까 첫 번째를 선택하는 게 맞거든요. 그런데 첫 번째를 선택할 경우, 나만 빼고 나머진 다 600이라면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내 입장에서도 열등감이나 수치감을 느끼겠죠.  

두 번째 상황은 돈이 적어서 생존 불안을 느낄 가능성은 더 높겠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한테 존중을 못 받을 가능성은 별로 없단 말이죠. 또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요. 그래서 돈이 좀 많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첫 번째 상황을 더 싫어한다는 거예요. 바로 사람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생존보다도 오히려 존중이라는 거죠. 쉽게 말해 사람들은 배고픔보다는 무시당하는 것을 더 견디기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 너무 사람들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건 아닐까요?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집단주의 심리 때문이라고 하면서 한국인의 집단주의 성향을 비판하는데요. 제가 볼 때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라면 그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죠. 오히려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남을 의식한다거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한테서 나쁜 평가를 받게 되고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서 그런 거예요. 상대방이 나를 좋게 보도록 만들기 위해서 자기를 위장하기도 하고 또는 겉치레로 명품을 사려는 식으로 나타나는 거죠. 저는 존중 불안이 사라진다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한국인의 집단주의 성향은 좋은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봐요."

- 그럼 존중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존 불안보다 존중 불안이 더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존중 불안부터 빨리 없애는 게 좋긴 한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한국 사회는 다층적 위계 사회란 말이에요. 40층에 사는 사람들은 30층 사람들이 자기만큼 위계가 올라오는 걸 싫어합니다. 밑의 사람들 위계가 올라온다는 것은 자기 위계가 떨어지는 걸 의미하잖아요.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차별을 받아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차별을 필요로 해요. 격차를 줄이자거나 위계를 없애자는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잘 협조를 안 합니다. 

한국 사회가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고 차별하고 무시하는 사회라서 일단 자기가 차지한 위계에서 더 위로 올라가는 데 관심이 있지, 다층적 위계 사회 자체를 타파하는 데에는 큰 관심을 못 가져요. 그래서 저는 우선 생존 불안부터 줄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왜냐면 내가 너무 팍팍하고 먹고살기가 힘든 상황에서 세상을 바꾸자거나 더 좋은 미래라는 얘기가 귀에 잘 안 들어와요. 오로지 내가 어떻게 위기 탈출을 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지죠. 생존 불안을 줄여줘야 사람들이 비로소 사회참여나 사회개혁에 관심을 가질 겁니다."

- 생존 불안이 심하면 사회참여나 사회개혁에 관심이 없다고 하셨는데 우리나라 역사에서 1970년, 1980년대에 우리나라는 가난했지만 민주화 운동을 했잖아요.
"그때도 생존 불안은 있었죠. 당시는 지금과 같은 다층적 위계 사회가 아니라 단순한 위계 사회였어요. 조선시대 같은 경우에는 양반, 평민, 천민의 위계가 있었거든요. 평민들은 양반들한테는 무시당했지만, 평민들끼리는 사이가 좋았어요. 

저는 1970~1980년대의 한국이 조선 시대와 유사한, 상대적 의미에서의 가난하지만, 화목한 사회라고 보거든요. '응답하라 1988'에서 볼 수 있듯이 마을 사람들이 집주인이건 세 들어 사는 사람이건 돈 갖고 무시하지 않고 형제처럼 지냈잖아요. 생존 불안이 있긴 있었지만, 극심하게 느껴지지 않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 사이가 엄청 안 좋다면, 나 혼자서 세상과 맞서 싸우면서 내 생존을 책임져야 돼요. 그러면 생존 불안이 더 심하게 느껴지겠죠. 지금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너무 안 좋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서 더 풍요로운데도 불구하고 생존 불안도 과거에 비해서 낫다고 볼 수 없고, 존중 불안은 과거에 비해서 엄청나게 심해졌죠."

"기본소득, 조직 민주주의 실현 위해 필요"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 한겨레출판 제공

 
-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절벽 아래에 구급차를 대기시키거나 절벽 중간에 안전망을 설치하거나, 절벽 끝에 차단막을 설치하는 데에만 주력해왔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절벽으로 몰려가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제언하셨는데 구체적인 방안이 있을까요?
"저는 책에서 일단 사회개혁의 출발점으로서 기본소득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다음에 조직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이 민주주의가 미완성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우리 손으로 뽑을 수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완성된 게 아니거든요. 내가 일상적으로 몸을 담고 있고 일을 하는 조직의 주인이 되어야죠. 그러려면 조직 민주주의가 실현돼야 합니다. 그런데 이 조직 민주주의의 실현도 기본소득제하고 연동이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여러 조직에서 갑질이 심하고 위계에 의한 성희롱 같은 것도 굉장하잖아요. 이것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제일 큰 스트레스거든요. 그러면 왜  사람들이 갑질을 당하거나 위계에 의한 성희롱 같은 걸 당해도 저항을 못 하는 걸까요? 생존 불안 때문이에요. 저항하면 불이익을 받거나 잘려서 먹고 살길이 막막하단 말이죠. 내부 고발자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죠. 만일 기본소득제가 실시되면 그것이 사람들에게 불의에 저항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가 생존의 권리를 뒷받침해줄 때 비로소 현실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분단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것도 우리가 주력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평화 체제로 전환되어야 비생산적인 분야인 군사비 같은 데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요. 분단 체제가 지속되면 한국 사회는 색깔론 같은 구시대적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국민들한테 제일 유리한 정책이 뭐냐를 기준에 놓고 정책을 결정해야 되는데 평화 체제로 전환되지 않고 분단 체제가 지속되면 이게 사회주의적인지 아닌지, 색깔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로 판단하면서 미래로 나가는 걸 저해하게 됩니다. 저는 한국 사람들이 과감하게 사회개혁으로 나아가려면 분단 체제가 해체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 조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것, 즉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는 것이 조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해요. 덴마크 같은 나라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세계 1위인 동시에 직장 만족도도 세계 1위거든요. 이게 왜 가능하냐면 거기는 직장에서 잘리거나 직장을 그만둬도 직장에서 받던 월급의 약 90%를 2년간 주잖아요. 그래서 기업주가 경영에 어려움이 생겨서 6명을 해고해야 해서 직원들한테 '6명을 지금 잘라야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뭐라 안 해요. 그냥 '알겠습니다' 하고 나가요. 나가도 안 죽으니까요. 동시에 덴마크에서는 회사 내에서 갑질 같은 걸 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갑질을 하면 사람들이 나갈 거란 말이에요, 나가도 안 죽으니까요. 회사도 그걸 아니까 자발적으로 민주화시키게 되어 있어요."

- 그래서 선생님은 사회주의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저는 사회주의적인 방향으로 사회를 개혁해나가는 것이 옳다고 보고 책에서도 마지막에 그 얘기를 했습니다. 왜 그러냐면 자본주의 제도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생존을 개인이 책임지는 사회거든요. 그렇게 되면 그 사회는 화목할 수가 없어요.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만약 가정에서 개인의 생존을 개인이 책임진다면 아빠는 돈 잘 버니까 아무 문제 없죠. 하지만 돈을 못 버는 아이나 노인들은 돈을 못 버니까 집에서 맨날 굶겠죠. 그런 가정이 화목할 수는 없을 것 아닙니까. 사회도 똑같아요. 그래서 개인의 생존을 개인에게 떠맡기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생존을 공동체나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사실 사회주의 요소거든요. 북유럽은 사회주의를 어느 정도 도입한 거죠.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적인 삶의 방식과 생산방식을 고수하면 환경파괴 때문에라도 인류가 생존 불가능해질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적인 생산방식과 삶의 방식을 바꾸려면 당연히 사회주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물론 책에서도 얘기했지만, 과거의 실패한 소련식 사회주의를 하자는 게 아니죠. 새로운 의미에서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정말 올바르고 건강한 사회주의를 꿈꾸자는 거죠.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많은 이들이 경고하는 것처럼 인류가 22세기를 맞이하지 못하게 될 수 있어요. 기후 변화라든지 환경파괴 때문에요."

- 이 책을 쓰면서 느낀 점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책을 쓰기 전부터도 한국 사회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자각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멸망해가고 있는 느낌, 무너져내리는 느낌까지 들었고, 빨리 세상을 바꾸지 못하면 사람들의 정신과 삶, 나아가 사회가 엉망진창이 돼서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까지 하게 됐거든요. 이 책이 사람들한테 조금이라도 '아! 우리가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지금과는 다르게 살 수 있고 그런 사회로 갈 수 있겠다'라는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거 같습니다."
 

<풍요중독사회>의 책표지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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