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가족은 피보다 같이 있는 시간" 사유리가 던진 질문

[주장] '생활동반자법' 논의 수준에서 끝냈던 정치권, 진일보해야

등록 2020.11.22 15:43수정 2020.11.22 15:45
2
원고료로 응원

사유리는 최근 아빠 없이 엄마가 되었다. ⓒ 방송인 사유리 SNS

 
사유리씨의 소식이 알려진 후 '비혼 출산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하냐?'는 게 이슈가 됐지만, 그녀의 출산은 '불법' 혹은 '법적 공백'이라는 논쟁을 떠나 전통적인 가족제도에 대한 물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유리씨가 생각하는 가족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그녀는 지난 17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족관을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동양 나라는 피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저는 강아지를 정말 사랑하는데 강아지랑 저랑 피가 흐르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거 상관없이 무조건 사랑하잖아요. 이처럼 가족은 피보다 같이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제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저는 같이 있는 시간, 같이 보내는 시간이 (있으면) 가족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생각하는 가족이란 결혼을 통해 구성되거나 피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조건적인 사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있으면 '가족'이라 말했다.

가족의 의미
 

드라마 '모던패밀리' ⓒ ABC

 
예전에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미국 드라마를 봤다. 미국의 현대 가족제도를 그린 '모던 패밀리'(Modern Family)란 드라마인데, 한 세대 가족이 주인공이다. 이 집의 가정 어른인 할아버지(제이 프리쳇 역)에겐 가정을 꾸린 딸(클레어 던피 역)과 아들(미첼 프리쳇 역)이 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딸뻘인 콜롬비아 여성과 결혼해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있고, 글로리아와 전 남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있다. 이렇게 넷이 한 가족이다. 클레어 던피는 보통남자와 결혼해 딸 둘과 아들 한 명이 있고, 미첼 프리쳇은 동성커플이며 딸을 입양해 키운다.

다문화 가정, 한참 어린 와이프, 아빠가 다른 형제, 동성커플, 입양까지 말 그대로 미국의 '현대 가족'을 그린 드라마다. 우리에겐 다분히 이상해 보이는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법만 가족 구성원이다. 물론 이 같은 가족 구성원이 우리나라에도 생기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유리씨의 말처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생긴다면 '가족'이라 불리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이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가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생길 수 있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바로 동거제도다. 올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민 59.7%는 '동거할 수 있다'라고 응답했다. 또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응답도 30.7%나 됐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20대 중 74%는 '동거할 수 있다'라고 응답했다. 

동거뿐만 아니라 최근 내 주변엔 친구들끼리 사는 친구들이 꽤 늘었다. 모르는 사람과 셰어하우스에 함께 사는 친구들도 제법 늘었다. 노인층에서도 최근 노년을 함께 보내기 위해 동거하는 비율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동거인을 가족의 범주 안에 넣지 않고 있다. 응급한 수술이 필요할 때 동거인이 수술동의서를 쓸 수 없고, 건강보험 피부양자로도 등록할 수가 없다. 함께 사는 동거인이 출산해도 출산휴가를 인정받을 수가 없다. 결혼한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혈연이나 결혼 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 보살피며 살기로 법적으로 약정하면 가족에 준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생활동반자법'을 진선미(새정치민주연합)의원이 논의하였으나 발의되지 못했다. '생활동반자법'이 자칫 동성결혼의 법제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해외에는 '생활동반자법'과 비슷한 법률 구조를 갖춘 나라들이 있다. 프랑스 '팍스(PACS)'가 대표적이다. 프랑스에서는 두 성인이 이 제도를 통해 결혼한 부부와 유사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또 이 두 성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역시 결혼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받을 수 있는 모든 권리가 보장된다. 

이 법이 제정됨으로써 위급한 상황인 동거인에게 수술동의서를 써주고, 동거인의 출산에 기꺼이 휴가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다. 결혼제도 하에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많은 사람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동성혼의 인정 없이는 새로운 가족관계도 생겨날 수가 없다. 이번 비혼 출산만 봐도 복지부는 "비혼 여성의 출산을 강제할 법 조항은 없다"고 얘기했다. 달리 얘기하면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 동성커플이 비혼 출산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사유리씨의 출산에 여야 정치인들이 법과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원장은 "제도 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에서도 검토하겠다"고 했으며,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민주당은 우리 사회에 공존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존중하고 법과 제도에 담아내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사유리씨의 SNS에 "그 어떤 모습보다 아름다워요"라고 댓글을 남겼으며, 정의당 배복주 부대표도 "현재의 가족제도, 우리나라의 낮은 인식과 법과 제도, 한국사회의 총체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과거 '생활동반자법'을 논의 단계에서 끝냈던 민주당이,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새로운 가족제도를 꾸려나갈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저 사유리씨의 소식에 '있어 보이기 위한 답'을 한 것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블로그 '2030정치레이블 신세대(NewG)'에도 게제되어 있습니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AD

AD

인기기사

  1. 1 [전문] "존재감 없음"... "검찰 대응 수월"... '판사 불법사찰' 문건 공개
  2. 2 윤석열 총장의 위기, 자업자득이다
  3. 3 노골적 감찰 불응, 윤석열 발등 찍을라
  4. 4 대검 감찰부, '판사 불법사찰' 의혹 대검 압수수색
  5. 5 현직 판사 "검찰총장이 국민 아닌 조직에 충성... 판사들은 바보인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