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과거사 덮고 한일 군사 동맹 요구?

후방기지인 일본을 방어하는 전쟁터라는 지정학적 불익을 극복해야

등록 2020.11.23 10:13수정 2020.11.2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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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당시 바이든 부통령이 군대위안부에 관한 한일 간의 타협을 중재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의 보도에 따르면 한일동맹을 갈구하는 바이든이 당선됨으로써 한국 정부가 바이든의 입장을 고려하여 한일관계를 개선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이 왜 한일 간의 화해와 군사동맹을 원하는지, 일본은 왜 역사적 과오에 대해 책임지지 않은 채 미국의 힘을 빌려 동아시아에서 패권 회복을 노리는지를 알려면 한미일의 역사를 되짚어 봐야 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한 이후 만주의 소련군과 일본의 미군이 조선반도에서 조우하였다. 양자 모두 남과 북에 완충지대(Buffer Zone)를 설치하였다. 미국은 일본열도를 소련과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막는 후방 병참기지로 설정하였다. 이는 미국 본토와 태평양 사이에는 제3국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태평양을 자신의 영해, 혹은 국경선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태평양을 지키려면 일본을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미국

반면 미국은 조선반도를 전방의 야전사령부, 즉 전투지역으로 설정하였다. 미국은 이러한 작전개념에 부합하도록 군사령부를 설치하였는데, 1947년부터 태평양 지역에서 소련과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하와이에 총사령부격인 태평양사령부, 도쿄에 병참사령부격인 극동사령부, 서울에 야전군사령부격인 미8군을 운영해왔다.

완충지대로서 조선반도의 역할은 미국이 소련이나 중국과 충돌하더라도 그 전쟁이 일본으로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1950년 코리아전쟁에서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중국군과 전쟁을 하였는데, 미국은 자신이 조선반도에서 물러나면 전략적 요충지인 일본이 직접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위협받을 것을 우려하였다.

중국과 소련 역시 미국이 조선반도를 통일할 경우 미국이 자신의 영토를 직접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결국 미국, 소련, 중국 모두 조선반도를 완충지역으로 놓고 싶었기 때문에 3년에 걸친 전쟁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경계선은 다시 원래의 38도선을 중심으로 설정되었다.

일본, 호주, 인도는 상위 동맹, 대만과 필리핀 및 남한은 하위 동맹

임진왜란 당시 일본과 명나라가 39도선 근처의 조선의 허리에서 전쟁을 교착상태로 유지한 것 역시 조선을 완충지역으로 삼은 것이다. 즉 역사적으로 해양세력이나 대륙세력이나 조선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소련과 중국의 남하를 막고자 인도, 호주, 일본을 아시아의 3대 주축동맹으로 삼고 있다. 일본과 호주는 이미 미국의 맹방이다.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인도 역시 최근 미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미국 역시 인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며 호주나 일본 수준으로 동맹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인도 - 필리핀 - 대만 - 일본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방어선에서 호주는 미국 본토에 버금가는 후방의 요충지이다.

주한미군은 북한 위협을 명분으로 중러봉쇄와 전 세계로 파견되는 신속기동군

일본은 극동의 동맹주축으로서 미국 - 일본 - 남한의 연결고리이다. 따라서 미국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한미일동맹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이승만 정권시절부터 한일동맹을 추진해왔으나 이승만이 거절해왔다.

박정희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여 한일관계를 정상화하였으나 지금까지도 한일관계는 과거사 문제로 인하여 미국이 원하는 군사적 동맹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부상 이후에도 한국을 여전히 완충국가 혹은 전진기지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과거 소련과 같은 강력한 경쟁자가 약해진 반면 중동과 같은 새로운 지역분쟁이 늘고 있어 미국은 극동의 미군을 일시적으로 분쟁 지역에 배치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주한미군의 기존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전 세계 어디에도 일시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신속기동군이라는 전략적 유연성을 새로운 역할로서 추가하였다.

미국 지배층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될 때까지 미국의 보호가 필요"

미국은 이러한 조선반도에 대한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국을 정치경제적으로 지배해왔다. 미국은 남한을 점령한 이후 친미독재정부를 지지하는 경성(硬性) 위성정치체제를 한국에 적용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친미 자유주의정부를 지지하는 연성(軟性) 위성정치체제로 전환하였다. 2차 대전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조선 사람은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하려면 미국의 후견 아래 민주주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신탁통치를 제기하였다.

영국의 <더 타임즈>가 1951년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차라리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낫다"고 지적하였듯이 이런 입장은 서구 연합국들의 입장이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워컴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인은 누가 지도자가 되도 쥐떼처럼 그를 따른다"고 밝혔는데 이런 발언도 같은 취지이다. 미국은 한국 사람이 민주주의를 시행하기에는 미개하다고 생각하여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과 같은 독재정치라도 미국의 이해만 보장되면 독재정부를 지지하였다.

남한, 반공국가로 미국의 후원을 받았으나, 경제적 독립은 정치적 독립을 자극

글라이스틴 미국 대사가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에 따르면 글라이스틴 대사는 "12.12사태가 미국의 기본적인 이해관계를 변화시키지 않았으며, 현 상황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미국 없이 발전할 수 없음을 알고 있어 미국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그는 "미국이 움직여도 욕을 먹고 움직이지 않아도 욕을 먹는다"면서 미국의 대응전략에 대해 "최근 사태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되 (쿠데타를 부정하고) 이전 상태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 정도로만 관심을 포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소련이 붕괴한 1991년까지 한국을 반공과시(Show Window) 국가로 육성하였다. 미국은 한국에서 공산주의의 성장을 막고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과시하여 제3세계에게 한국모델을 부각시키고자 한국의 경제를 대만과 마찬가지로 전폭적으로 지원하였다.

민주화와 국방력 및 국민의식 발전으로 미국의 역할이 의문시

1970년 이후 한국의 국민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학생운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반미운동이 확산되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면서 국내외 압력에 직면한 군부는 더 이상 강압통치를 유지할 수 없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미국 역시 반미혁명을 두려워하여 더 이상의 군부통치를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미국의 어두운 역할이 밝혀지자, 높은 교육 수준의 한국인들은 미국에 대해 좀더 냉철하게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한국인들은 북과 비교할 수 없는 국방예산, 높은 과학기술 등 전반적으로 남한의 국력이 북한의 국력을 능가하면서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서도 점차 의문을 갖게 되었다. 현재 핵무기를 제외한다면 재래식 무기에선 북에 밀린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김대중 정부 이후 자율성이 높아졌으나 미국식 신자유주의 체제가 구조화

1991년 소련이 붕괴된 이후 반공과시정책의 필요성이 줄어들자 미국은 한국을 미국식 경제체제로 전환하기 위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한국에 강요하였다. 세계화 정책은 소련이 붕괴된 직후 1992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시절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납치사건 구명과정, 미국 망명 과정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민주주의 지도자로 인정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 등 정치적 독립을 달성하였으나 IMF 당시 미국의 요구대로 신자유주의 체제를 본격적으로 구조화시켰다. 

민주화 이전에는 미국의 적극적인 조치로서 남한에 미국식 체제가 외부에서 도입되었다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재벌 견제를 명분으로 하는 주주자본주의 확장 등 미국식 체제가 자발적으로 구조화되었다.

한미일 군사동맹과 경제공동체 완성으로 영원한 미국의 초소로 전락 될 수 있어

미국식 기독교의 확장과 기독교의 친미세력화, 로스쿨 도입과 대학등록금 및 국가장학금 등 미국식 교육체제, 학문에서 유럽파의 몰락과 미국파의 득세 등에서 보듯이 사회 전반에서 미국식 체제가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문화민족으로서의 전통과 스크린 쿼터제나 케이 팝(K-POP)에서 보듯이 문화예술인의 노력으로 인해 미국식 문화만큼은 아직 정착하지 못하였다. 미국의 한반도 전략은 남한 스스로 미국화된 사회로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영원한 동북아의 초소'가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한일  관계를 개선하여 한일 간의 군사동맹과 경제동맹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 및 일본과 각각 군사동맹을 맺고 있으나 한일 간의 반목으로 인해 한미일의 군사관계는 협력관계에서 동맹관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한일관계 개선을 강조할 바이든, 한국은 자주적 관점 필요

미국은 2000년대 이후 중국 경제가 부상한 이후에는 한국이 중국경제에 편입되는 것을 차단하고 중국의 경제권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을 아시아의 친미 경제공동체에 편입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주도하였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을 식물인간화 시킨 반면, 중국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주도적으로 출범시켰다.

미국이 아시아의 경제공동체 경쟁에서 중국에 완전히 패배한 셈이므로 바이든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에게 미국 주도의 아시아 경제공동체로 재편입할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한일 간의 역사적 문제를 빨리 타결하여 한일 간의 경제적 협력뿐만 아니라 군사정치적 협력도 강화하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군대위안부 합의의 유효성을 재확인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문재인 정부에게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미국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책임을 묻어두고 한일 간의 화해를 강요하고 나아가 한일 간의 군사동맹을 추진하는 것은 우리의 국민의식과 다르다.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군을 한반도에 다시 끌어들인다는 것에 동의할 국민은 거의 없다. 

더구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에 동의하고 한국군과 일본군이 미국 주도의 사령부에 배치되어 함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는 군사훈련을 한다는 것은 더욱 동의될 수 없다. 

바이든 당선자로선 군대위안부 합의를 원래대로 복원하고 그것을 전제로 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영구화시키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다. 따라서 남북관계에서 미국의 협조가 필요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정서와 달리 한일 관계에서 미국의 요구에 순응할 것인가는 바이든 시대의 한미관계에서 첫 시험대가 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뒤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등을 저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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