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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에서 풀려나 기인에게 단군관련책 받아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 / 13회] 대종교가 중광되는 계기가 된 사건들

등록 2020.12.01 17:28수정 2020.12.0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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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기와 국망기에 온몸을 바쳐 구국과 독립을 위해 나섰는데,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국민에게 잊혀진다면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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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암 나철선생 홍암 나철선생 ⓒ 김성철

 
을사육적의 척살을 주도했던 나철은 전남 신안군 지도읍에 소재한 외딴섬 지도(智島)에 10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다.

그나마 유배형에 그치게 된 것은 나라의 주권을 팔아넘긴 매국적들에 대한 백성들의 증오심이 하늘을 뚫었기 때문이었다. 사형이라도 집행하면 민심이 어떻게 변할지 두려웠을 것이다.

나철과 그의 동지들은 1907년 7월 12일 유배지로 떠났다. 그런데 12월 7일 고종황제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황제의 특사권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고종은 자신의 뜻과는 달리 간신들이 이토에게 5조약을 넘겨 준 것에 분개하고, 우국지사들의 행동을 평가하면서 특사권을 행사한 것이다. 

5개월 여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나라의 사정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고종은 1907년 6월 헤이그에서 열리는 국제평화회의에 이상설ㆍ이준ㆍ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했으나 일제와 그 동조국가들의 반대로 회의장에 참석이 불허되었다. 

일제는 특사 파견을 빌미삼아 고종의 양위를 강요하고 7월 20일 순종이 즉위하였다. 이에 앞서 이완용 내각이 구성되었고 이들은 더욱 친일매국 행위에 앞장섰다. 서울 시민 200여 명이 고종의 양위에 반대하여 시위를 벌이고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의 집에 불을 질렀다. 

정미7조약으로 불리는 한일신협약에 이어 신문 사전검열 등을 규정한 신문지법, 항일운동의 탄압을 목적으로 보안법제정 그리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버팀목이던 군대해산 조칙이 내렸다. 7월 31일이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국군의 작전지휘권이 외국인 손으로 넘어갔다. 

한국군 대대장 박승환이 군대해산에 반대하여 자결하면서 일부 군인들이 봉기, 일본군과 충돌하여 몇 10명이 사망했으나 주력 부대는 시외로 빠져 이후 의병에 참가하였다. 

나철은 여러 날 생각 끝에 오기호의 제안으로 다시 일본으로 가서 외교담판을 벌이기로 했다. 1908년 11월 두 사람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네 번째의 도일이다. 내외 정세로 보아 부질없는 일이겠지만, 마지막으로 일본인들의 양심을 믿어보기로 하였다. 

도쿄의 강호지구(江戶芝區) 청광관(淸光館)이라는 여관에 머물렀다. 1908년 12월 5일(음 11월 12일) 아침, 한 노인이 옆방에서 나와 나철에게 말했다. 

나의 이름은 두일백(杜一白)이요, 호는 미도(彌島)라 하는데, 나이는 69세요. 앞서 당신이 서울에서 만난 백전도사(伯佺道士)와는 동문인데, 다른 32명의 도사들과 함께 백봉신사(白峯神師)에게 사사하고 있소. 

그런데 지난 갑진년 10월 초삼일 백두산 회합에서 일심계(一心戒)를 같이 받고 단군교 포명서를 발행하였으니 당신의 금후 사명은 이 포명서를 널리 홍보하는 일이요. 

그는 아주 일방적으로 명령하듯 말하더니 자리를 떠났다. 노인이 나간 자리에 보니 『단군교포명서(檀君敎布明書)』라는 책과 『고본신가집(古本神歌集)』, 『입교절차서(入敎節次書)』 등 여러 책이 놓여 있었다. (주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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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대종교 3대종사 묘소. 왼쪽부터 서일, 나철, 김교헌 대종사 ⓒ 조종안

 
인용문 중에 "앞서 당신이 서울에서 만난 백전도사"라는 대목은 설명이 필요하다.

나철이 1차 방일에서 돌아와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1906년 초) 갑자기 백발노인이 나타나 "그대가 나인영이 아닌가" 묻고는, 자기의 본명은 백전(伯佺), 호는 두암(頭岩), 나이 90세로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것은 백두산에 계신 우리 선생님 백봉신형(白峯神兄)의 명을 받아 이것을 전하러 왔다"면서 보자기 하나를 쥐어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보자기를 풀어보니 두 권의 책, 『삼일신고(三一神誥)』와 『신사기(神事記)』였다. 난생 처음보는 책이었다. (주석 2)


나철은 3년 만에 다시 일본에 나타난 신비한 인물로부터 이상한 책을 받고 밤을 세워 읽었다. 그리고 의문에 쌓였다. 서울역과 도쿄 여관에 나타난 노인이 백봉신형에게 사사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백봉신형(白峯神兄)은 누구일까.

"백두산에서 10년간 하늘에 기도 끝에 한배님의 부름을 받으시고 돌상지 속에서 『삼일신고』를 얻으신 경위와 이것과 함께 지성의 서원으로 이루어진 신화의 은총" (주석 3) 이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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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초상화가 채용신이 그린 단군. ⓒ wiki commons

 
나철은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국운의 회복은 어느 애국 정객 몇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전 민족이 거족적으로 일치 단결하여 생명의 근본인 단군 대황조를 지성으로 숭봉하고 그 교화의 대은(大恩) 아래 신화(神化)의 대력(大力)을 얻어야 가능한 일이다." (주석 4)

이로써 대종교가 중광되는 계기가 되었다.


주석
1> 『대종교 중광 60년사』, 77~78쪽.
2> 앞과 같음.
3> 앞의 책, 104쪽.
4> 앞의 책, 10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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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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