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홍세화가 '회의하는 자아'를 강조하는 이유

11년 만의 신작 '결 : 거칢에 대하여'을 읽고

등록 2020.11.25 09:16수정 2020.11.25 10:32
0
원고료로 응원
<결 : 거칢에 대하여>는 책 제목보다 저자 홍세화 이름이 먼저 눈에 띈다. 그는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로 망명, 2002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뒤 언론인, 작가, 진보신당 전 대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프랑스 망명 생활 중에 썼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로 유명하고 이후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생각의 좌표> 등 여러 책을 통하여 우리 시대에 뼈아프지만 유익한 질문을 명쾌하게 던져왔던 진보 지식인 중에 한 명이다. 
 

결 : 거칢에 대하여,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지난 2월 출간한 <결 : 거칢에 대하여>는 11년 만의 신작이다.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여러 굵직한 사건과 변화가 많았던 10년 동안의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어떤 평가와 비판 그리고 대안을 제시할지 무척 궁금했다. 시작부터 자유에 관한 저자의 통찰로 가득하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은 "오랜 투쟁과 희생이 시간을 거쳐 몸의 자유를, 종교,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쟁취"(60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를 가진 개인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눈에 보이지 않은 억압이 우리의 자유를 방해하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몸은 자유로운데 무엇이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말일까. 경쟁과 효율만이 강조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서민들은 경쟁에 밀리면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지만 욕망은 불안을 줄이는 열정으로 오해하고 경쟁은 자아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합당한 것이 되어 온전한 자유를 누리고 살지 못한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이다. 내가 기본자본이나 기본소득, 무상의료나 대학 무상교육, 공공임대주택 건설, 토지 보유세 강화 등의 정책 제안에 대해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 정책이라면서 지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거나 아예 관심조차 갖고 있지 않다면, 그런 생각을 내가 생각하고 있거나 아예 관심조차 갖고 있지 않다면, 그런 생각을 내가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물어야 한다고! 그 생각, 내가 갖고 태어났을까? 아니다. 그 생각, 내가 창조했나? 어림도 없다. 그렇다면 내 생각, 내가 선택했을까? 그럴 리 없다. 그 정책들이 실현된다면 나의 처지가 훨씬 좋아질 텐데 왜 내가 그 정책을 거부하는 생각을 선택하겠나?" (123쪽)

저자의 시의적절한 주장에 공감한다. 코로나 시대 이후 기본소득 관련 논의나 지금도 한창 진행중인 부동산 정책 등 여러 사안에 대하여 자신의 판단을 돌아보도록 만든다. 기본소득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사람도 있고 코로나 이후 가장 필요한 정책 중에 하나라며 반기는 사람도 있다. 여러 번 수정된 부동산 정책을 두고 혼란만 가중시킨다고 비판하거나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방향성은 잃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이에 자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 근거는 타당한지 따져보는가. 스스로 판단한 생각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여야 진영논리로 접근하거나 같은 입장만 강화시키는 채널만 보면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말대로 "사유의 세계를 활짝 열어둔 채 살려는 노력'(71쪽)을 해야 한다.

이렇듯 자신의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끊임없이 묻고 돌아보는 '회의하는 자아'를 강조하는 저자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까? 
 
"이렇게 나의 사유세계가 '80'의 서사 대신 '20'의 서사로 가득 차 있다면, 나는 '80'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같은 처지의 '80'에게 공감하거나 감정이입하지 못하고 '20'에게 공감하고 감정이입한다.(중략) 이것이 우리 현실이다. '20'에게 갑질을 당하기도 하는 '80'의 고통과 불행을 같은 처지의 '80'이 공감하고 감정이입하여 연대해야 하는데 그들은 서로 관심 자체가 없어서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것 말이다."(132-133쪽)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는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였고 엄마는 공장 직원이었다. 드라마 속 가족 모습을 볼 때마다 왜 우리 가족은 저렇게 살지 못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마당이 넓은 멋진 2층 집과 좋은 자동차, 항상 양복이나 예쁜 옷을 입고 큰 빌딩에 출근하는 주인공들 등 나의 삶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점점 머리가 굵어지면서 부모님의 직업과 삶을 무척 부끄러워했다. 나의 자존감은 바닥이었고 고생하며 자식을 키우시는 부모님을 수치스러워했다는 사실 때문에 자주 죄책감에 시달렸다. 동시에 늘 '20'의 삶을 부러워하고 소망하며 노력했고, 어머니,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무수히 다짐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저자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개념화한 '상징폭력'을 언급한다. 지배자는 여러가지 상징을 통해 피지배자로 하여금 사회적 위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써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복종을 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복종을 넘어 피지배자가 지배자들의 의식과 욕망을 자신도 모르게 자기 것, 자기 세계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지금 이 사회의 피지배자이며 지배자의 세계관을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며 그들의 욕망을 추구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일부 독자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게다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하며 오히려 '20'에 속한 사람들 입장에 서서 '80'의 사람들에게 '당신이 부족해서', '당신이 원래 80이기 때문에'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저자의 주장에 반발감이 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서문에서도 '거칠게' 적었다고 밝힌다. 

'20'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80'에 속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익숙해진 것들을 다시 '회의'하며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내 생각은 어디로부터 왔는지 따져봐야 한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여 연대'해야 한다. "나 혼자 노력한다고 달라질까'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자유인'이라면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간다"(179쪽)라고 외치며 그 길을 가야 한다.

하지만 내가 정말 자유인이라면 이런 주장도 하나의 제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부터라도 이 주장은 맞을까, 나는 왜 이 저자의 이야기가 불편할까, 나의 생각은 무엇일까,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할까 라며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돌아 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이 우리를 '회의하는 자아'로 도약하도록 한다면 자기 몫을 다한 것이다. 
#홍세화 #회의하는자아 #내생각은어디에서왔을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 읽고 토론하며 서평 쓰기를 즐겨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4. 4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5. 5 김종인 "윤 대통령 경제에 문외한...민생 파탄나면 정권은 붕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