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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수상한 기자의 소망 "문 대통령 퇴임 전 하루 남기고파"

[인터뷰] 강형원 <로이터통신> 전 사진기자

등록 2020.11.25 15:00수정 2020.11.2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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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잡이는 총탄을 쏘지만 나는 사진을 찍는다. (The gunner shot the bullet, I shot the picture)"

2005년 보도사진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한 AP통신 안야 니드링하우스가 남긴 말이다. 그는 2014년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48살 나이로 피격돼 숨졌다.

사진기자는 현장을 기록한다. 이 때문에 '목숨을 담보'로 한다. 그래서 그들이 찍은 사진은 역사가 된다. 퓰리처상은 기자라면 누구나 꿈꾼다. 하지만 꿈꾼다고 되는 건 아니다. 아득한 곳에 오르기까지는 숱한 눈물과 땀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강형원(57) 기자도 그중 한 명이다. <LA타임스>에서 시작해 <AP통신> <로이터통신> 기자로 활동한 강형원은 포토 저널리스트다. 그는 33년 기자 생활 동안 숱한 이력을 썼다. 백악관 출입, LA폭동, 9.11테러, 이라크 전쟁, 북한 기근, 한국 민주화 운동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퓰리처상은 두 차례 수상했다. LA폭동, 클린턴 대통령 탄핵과 르윈스키 스캔들 보도였다.

그는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강형원이라는 이름을 지켰다. 지난 2019년 9월 퇴직 후 지금은 사진으로 한국 문화유산을 영어권에 알리는 'Visual History of Korea'에 주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퇴임 전에 '대통령의 하루'를 기록하고 싶다는 그를 지난 20일 여의도에 한 카페에서 만났다.

LA폭동 때 찍은 사진, 가장 기억에 남아
  

지난 20일 강형원 전 <로이터통신> 사진기자(오른쪽)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임병식

 
- 언제 미국으로 건너갔나?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1975년에 미국 LA로 이민 갔다. 지금은 워싱턴 DC 버지니아에서 한국인 아내, 아들 셋과 살고 있다. 한국을 떠날 때 아버님께서 <명심보감>을 주셨는데, 유교 문화의 사회적 질서와 위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김대중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강대인 박사가 작은아버지다."

- 어린 시절 추억이 있다면?
"어른들이 내게 많은 사랑을 베풀었다. 항상 자존감이 충만해 무엇을 해도 어디를 가도 두려움이 없었다. 태어난 고향마을은 고인돌, 전봉준 장군 생가와 가까웠다. 이곳을 무대로 놀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집안에는 책이 많았다. 아버님은 자주 책을 사 왔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키우는 데 원동력이 됐다."


- 기자직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고등학교 시절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 당시 사진을 잘 찍었다는 선생님 칭찬이 동기가 됐다. UCLA를 졸업 후 <LA타임스>에서 인턴 기자로 첫발을 디뎠다. 1987년 한국에 파견돼 6.29항쟁, 첫 대통령 직선제, 노동조합 합법화, 노사 분규 등 한국 민주화 현장을 취재했다. <AP통신>으로 옮겨 1988년 서울올림픽을 취재하기도 했다."
  

LA폭동 당시 성난 불길이 번지는 가게 앞에서 양동이로 물을 끼얹고 있는 LA주민. ⓒ 강형원

 

LA폭동 당시 한인 교포들은 총을 들고 스스로를 지켰다. ⓒ 강형원

  
- 퓰리처상은 어떤 내용으로 받았나?
"1993년 LA폭동을 취재한 공로로 수상했다. 당시 한인들이 총을 들고 폭도들에 맞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유일한 기자라서 주목받았다. <LA타임스> 내부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두 번째 퓰리처상은 1999년 <AP통신>으로 옮긴 뒤 받았다. 클린턴 대통령 탄핵과 르윈스키 스캔들 보도였다.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취재한 것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 19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 현장을 취재하는 건 어렵지 않았나?
"폭동 취재 경험이 있는 기자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화염병에 쉽게 불이 붙지 않는 옷, 편안한 신발, 시위대에 표적이 되지 않도록 한군데 오래 머물지 않을 것 등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시위대와 진압 경찰은 서로 적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청색 재킷을 입었는데 경찰로 오해받아 시위대로부터 맞기도 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을 꼽는다면?
"'어느 손가락이 아프지 않느냐'는 질문과 같다. (웃음) 그래도 한 장만 고르라면 LA폭동 때 찍은 사진이다. 거대한 불길 앞에서 양동이로 물을 끼얹는 모습이다. 끝내 포기하지 않는 강한 인간 의지를 보았다. 인간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앞으로 나아간다."
   
평생 미국 이름을 갖지 않은 이유
 

부시 대통령 내외와 함께 기념 촬영 ⓒ 강형원

   
- 백악관 출입 기자 시절 특별한 경험은?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당해 청문회에 선 클린턴 대통령을 취재한 것이다. 곤혹스러운 표정을 잡아냈다. 또 부시 대통령 당선 당시 백악관에서 정권 교체 과정을 기록했다. 부시 대통령 취임식 전날 사진도 내가 찍었다."

- 테러와 펜타곤 공습 현장을 취재했다는데.
"당시 미 국방부 청사인 펜타콘도 공습받았는데 가장 먼저 도착해 피폭 현장을 포착했다. 9.11테러는 예측할 수 없는 형태의 전쟁이었다. 한 번도 침략당하지 않았다는 신화가 무너졌다. 이후 부시 행정부가 주도한 이라크 전쟁 준비 과정부터 모든 과정을 사진에 담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부시 대통령 안내를 받으며 ⓒ 강형원

 
- 역대 한국 대통령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죠?
"취임 후 백악관을 찾은 한국 대통령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노태우 대통령부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까지 한국 대통령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누구보다 경쟁력이 있었다. <로이터통신> 한국 관련 아카이브에서 오류를 바로잡는 일도 했다."
  
-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주류사회에 편입하는 건 어렵지 않았나?
"어느 사회나 주류사회 언어와 문화가 있다. 이들이 구사하는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게 중요하다. 중고교 시절 Busing Program(버스통학)을 제공하는 학교에 다녔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주류사회에 편입,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한인들도 주류 언어와 문화를 익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 미국 시민권자인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간직했다.
"평생 미국 이름을 갖지 않았다. 바이라인에 'Hyungwon Kang'을 고집했다. 유색 인종으로서 마음고생을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덧붙여 부족한 부분은 동료들과 협업하면서 좋은 성과를 냈다. LA타임스에서 퓰리처상 수상은 혼자 잘해서 받은 게 아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솔직함이다. 거짓말하지 않고 인정하는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
  
- 북한 현지 취재를 다녀온 기자로서 남북관계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북한은 핵무기를 완성하면서 중국, 러시아 영향권에서 독립됐다. 현지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 대부분 중국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남북은 문화적, 언어적, 경제적 동질성을 지속적으로 발전 시켜 나가는 게 중요하다. 일정한 시간에 매일 TV뉴스 프로그램을 교환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서로 이해하는 데 좋은 수단이다. 또 유엔평화유지군에 남북한 병사들이 함께 복무하는 방안도 있다. 국방비 절감과 함께 긴장 완화, 국제사회에서 위상 제고를 기대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 출범... 방위비 인상 요구 백지화 끌어내야
 

북한 현지 취재 당시 만난 북한군 병사 ⓒ 강형원

   
-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한미동맹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방위비 부담금 인상 요구를 백지화하고, 새로운 협상을 요구해야 한다. 또 정상적인 관계에서 외교를 풀어나가야 한다. 주변국들과 우호적인 관계도 유지해야 한다. G7+1,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 가입 노력도 필요하다."

- 지금 하는 'Visual History of Korea'는 어떤 작업인가?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빛나는 나라다. 그런데 영어권에 한국은 일본 식민지배와 2차 대전 후 독립한 국가 정도에 머물러 있다. 그 이전 찬란한 역사에 대한 인식은 없다. 왕족과 귀족이 지배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1987년 이후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실현한 나라다. 이런 사실을 영어권 언론에 알리고 이민 세대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한 작업이다. 한국 문화유산을 사진 기록물로 남겨 그들이 한국을 섣불리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 끝으로 한국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은 대학생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살아가면서 직장은 여러 번 바뀐다. 직장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 보수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수는 노동의 결과물일 뿐이다. 중요한 건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가족과도 좋은 추억을 쌓아라."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입니다. 참고로 강형원 기자는 https://www.kang.org/korea를 통해 더 자세히 만날 수 있습니다.
#퓰리처상 #르윈스키 스캔들 #9.11테러 #LA폭동 #AP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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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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