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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시어머니에게 가르쳐주고 싶지 않은 한국어

케이팝 팬부터 한국인 가족을 둔 사람들까지 제네바 한국어반에서 만난 다양한 학생들

등록 2020.12.05 16:17수정 2020.12.0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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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맡은 제네바시민대학의 한국어반에는 대학(원)생, 주부, 화이트칼라 노동자 등도 있지만, 블루칼라 노동자들, 무직 상태인 사람들도 있다. 봉제공장에 다니는 학생, 공항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학생, 20대 초반의 싱글맘인 학생.

한국이라면 굉장히 삶이 빠듯하여 일과 재충전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 계층의 사람들도 시민대학의 강의를 들으러 온다. 예컨대 한국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취미로 그리스어를 배우러 다닐 만한 여유가 있을까?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스위스에서는 생계, 진학, 취직, 승진 등과 무관한 한국어를 취미로 배우러 올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 블루칼라 노동자도 돈을 모아 꿈에 그리던 한국에 몇 주, 길면 몇 달 동안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제네바 깡똥(canton, 주州)의 최저임금은 현재 시간당 23스위스프랑, 한국 돈 2만9000원 정도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에서 평가절하되어 있는 노동의 가치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 Pixabay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한국인의 성명임이 분명한 이름이 등록되어 있길래, 대체 왜 한국어 입문 수업을 들으러 올까 궁금했다. 한 프랑스인 친구가 아마 한국 출신 입양인일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아, 그런 경우가 있겠구나.

한국 출신 입양인들의 역사는 벌써 65년이나 되었고, 그 인원은 약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 시기는 그렇다 치고,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국제 원조를 받는 나라(受援國)에서 주는 나라(供與國)로 변신한 뒤로도 여전히 해외로 입양을 보내고 있다. 심지어 출생아가 부족하다고 걱정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한 어린이가 입양된 후에는 한국어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희미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을까?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3~8세에 프랑스어를 쓰는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 출신 성인들은 한국어를 완전히 잊었다고 한다.

그들의 뇌에는 한국어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만 8세까지 한국어를 쓴 경우에도 무의식적이나 간접적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한국어를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들은 프랑스어는 완벽하게 구사한다.

한국인 이름을 가진 학생도 이런 경우였을까? 하지만 이 학생은 등록만 하고 수업을 한 번도 나오지 않아 결국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첫 수업시간

"제 이름은 나희예요.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 저는 한의사예요"라고 자기 소개 시범을 보여준 뒤, 각자 자기 소개를 해보라고 했더니 첫 학생이 "저는 한의사예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서 "뭐! 말도 안 돼!!" 하고 버럭 소리쳤더니, 당황한 학생이 "제 이름은 아니사예요"라고 다시 말한다.

아. 민망하여라.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거기! 이름이 뭔가!"라는 추궁에 주인공이 "채송압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죄송하다는 말 말고, 이름 말하라고 이름!"라는 고함이 되돌아온 상황과 비슷하다.

나란히 앉은 두 학생, 사라(Sara)랑 사라(Sarah). 짝을 지어 대화한 다음, 서로를 소개하라고 했더니, 이 두 사라가 이렇게 말했다.

사라 : 이 친구는 사라예요. 사라는 내일 오전에 공부를 하고 오후에 도서관에서 일할 거예요.
사라 : 이 친구는 사라예요. 사라는 내일 오전에 공부를 하고 오후에 도서관에서 일할 거예요.

 
"아니! 그냥 반복하면 어떻게 해요. 짝꿍에 대해서 잘 알아보고 제대로 다시 소개해 봐요!"


그랬더니 진짜란다. 학교도 같고 전공도 같고 수업도 다 같이 다니고 취미도 같고 알바도 같고 이렇게 거의 모든 일정을 같이 소화하면서 이렇게 지낸지 몇 년 된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어 수업에도 같이 앉아 있다. 이름 칸에 홍길동 써서 나무랐는데 이름이 정말 홍길동인 상황이랄까.

학생들 중에는 케이팝 팬들이 가장 많다. 그중에서도 아미(방탄소년단 팬)가 압도적으로 많다. '쩔어'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면서 직업 이름을 하나씩 가르쳐주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노래를 들을 때마다 수업 시간에 교재로 쓸 만한 쉬운 가사가 있나 열심히 들여다보는데, 안타깝게도 시적이고 압축적인 가사가 많아 우리 학생들 수준에는 너무 어려워서 그다지 활용은 못 하고 있다.

해요체로 된 문장만 가르치는 단계라서 다른 종결어미로 된 문장은 교재로서 탈락이다. 그 대신 학생들이 가사에 대해 질문하면, 다른 곡과 연결된 숨은 의미, 멤버들의 성격 등까지 아미로서 입체적인 지식을 활용해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아내가 한국인인 남편들도 종종 있고(아내에게 배우기는 어려운가보다- 역시 가족에게 가르치는 것이 제일 어려움), 외할머니가 한국 사람인데 영상통화할 때 조금이라도 대화를 하고 싶어서 온 젊은 학생도 있다.

외할머니가 부산 출신이라길래 이 학생을 위해서는 특별히 부산 사투리도 가르친다. '메이야, 밥 잘 묵고 다니나? 여긴 언제 오노?' 표준어만 가르쳐서는 외할머니와 대화하고 싶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자메이카 출신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영국에서 일했던 학생과 이야기할 때 영어가 쏙쏙 잘 들려서 '어머낫! 내 듣기 실력이 갑자기 엄청 향상되었나 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메이카 영어는 전세계인들로부터 듣기 좋은 발음이라고 인정받는 거로 유명했다. 친구에게 한국어로 편지를 쓰라고 했더니 아래 사진에 나오는 이런 사연을 공유해주었다.
 

한국어로 친구에게 쓴 편지 40년 만에 sns로 찾게 된 친구에게 한국어 학생이 쓴 편지. (문법과 맞춤법은 내가 교정해주었다.) ⓒ 김나희


스위스 시어머니에게 알려준 우리 자장가 

한국인 며느리와 대화하고 싶어서 온 스위스 할머니도 있다. 배우려는 사연 자체로도 감동적인데, 매번 수업 들으러 거의 왕복 네 시간을 쓰셔서 나도 정신을 가다듬게 된다.

한국-스위스 국적인 손녀를 종종 보시기 때문에, 이분을 위해서는 한국어로 된 아기 자장가를 가르쳐드렸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만 무한 반복하면 되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그것도 어려우면 '자장 자장'만 반복해도 된다.

한국인 며느리를 부르는 호칭에 대해 알려주려다가, 멈칫 했다. 며느리 호칭은 애 낳기 전에는 '아가'였다가 애 낳고 나면 '에미야' '어멈아'가 된다. 애 낳기 전에는 성인 취급을 하지 않고, 애 낳고 나서는 엄마의 정체성에 묶어 두겠다는 뜻이 호칭에 담겨 있다.

게다가 '아가' '에미야' '어멈아'에 이어지는 대사란 대체로 이런 것이다.

- 아가, 좋은 소식은 없니?
- 에미야, 국이 짜다.
- 어멈아, 아범 얼굴이 요새 많이 상했더구나.
- 어멈아, 아범 아침은 차려주고 다니니?


저런 문장을 내 학생에게 가르쳐준다고 상상해보았다. 학생이 집에서 며느리에게 '에미야, 국이 짜다. 물 좀 다오'를 시전하면, 며느리는 '으아악!! 난 분명히 스위스에 시집왔는데, 왜 존재하지도 않는 한국 시어머니의 환청이 들리지?!!'라고 기함을 하겠지. 이런 짓궂은 생각을 잠깐 한 뒤, 그냥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의 며느리 호칭은 학생에게 언급도 하지 않기로 했다.

(프랑스어로는 시어머니, 장모, 계모는 belle-mère(=예쁜 엄마)라고 부르고, 시아버지, 장인, 계부는 beau-père(=예쁜 아빠)라고 부른다. 며느리, 자녀의 동거 애인, 의붓딸은 belle-fille(=예쁜 딸)라고 하며, 사위, 자녀의 동거 애인, 의붓아들은 beau-fils(=예쁜 아들)라고 부른다.

제네바는 겨울에 해가 매우 짧아 어둑어둑하고 습하여 추적추적 비가 많이 내리는데, 눈이 올 정도까지 온도가 떨어지는 일은 드물다. 눈이 내리는 날 수업하러 갔더니 학생이 예쁜 말을 칠판에 적어놓았다.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말이다.
 

학생이 칠판에 써놓은 말 드물게 제네바에 눈이 오던 날, 수업을 갔더니 칠판에 이런 반가운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 김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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