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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후 '고맙다'는 연락... 72세에도 취재하는 이유죠"

[인터뷰] 72세 크리에이터, KTV 방송 시민기자 한영학

등록 2020.11.25 15:19수정 2020.11.2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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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학(72)씨는 'KTV 국민리포트'를 기획·취재하는 5년 차 시민기자다. 그가 카메라를 든 지는 50년이 넘었다. 은퇴 이전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일했다. 야생화, 시골 풍경 등을 시간차를 두고 관찰하며 촬영했다.


그는 촬영이 좋았다. 고소공포증이 있어도, 설악산에 핀 꽃을 찍으려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내려갈 땐 몇 시간이 걸렸다. 다리가 떨리고 식은땀이 났지만, 잘 찍고 싶다는 욕심에 힘든 줄을 몰랐다. 사진작가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아들이 독립해 결혼할 때까지 지원할 수 있었다.

은퇴하니 시간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사회에 봉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젊었을 땐 생업에 쫓겨 남을 돕지 못했다. 지금껏 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온 만큼,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다.

촬영이라는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시민기자 일을 하게 됐다. 평생 사진작가로 일하다 은퇴했는데 다시 카메라를 잡은 한영학 시민기자를 지난 7일 직접 만났다. 그에게 '시민기자'라는 일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는 직업 기자들이 놓치는 '틈새'를 찾죠"
 

지난 11월 7일 서울시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한영학씨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권보경

 
"시민기자는 직업 기자들이 지나치는 틈새를 찾아 보도합니다. 그들이 바빠서 자세히 취재하지 않는 부분을 다뤄요. 예를 들어 볼게요. 전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가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축제라는 걸 취재했어요. '김치 담그기' 체험에 즐겁게 참여하는 외국인들이 많았거든요. 현장 인터뷰도 많이 했죠.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라는 프로그램 있잖아요. 시민기자의 성격과 비슷한 프로그램이에요. 시민기자들은 우리 이웃이 사는 이야기를 많이 다뤄요. 그런 이야기를 담은 2분 30초~3분 정도의 영상을 만드는 거예요. 우리는 섭외, 취재, 촬영, 편집, 기사 작성, 나레이션 녹음을 해요."



직업기자들이 놓치는 시민들의 일상을 취재한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미 방송국에서는 보통 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시민기자는 찾을 수 있지만 직업기자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뭔지, 다시 물어보았다.

"언론사 기자들은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를 보도해도, '김치 담그기' 체험에 참여하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사실은 발견하지 못해요. 축제 현장에 방문해 자세히 살필 시간이 없거든요. 구청 홍보실에서 보도자료와 사진을 받아 기사를 쓰죠. 언론사 기자들이 채우지 못하는 빈틈을 시민기자들이 채우는 거예요."
 

‘분단의 상징 독개다리…DMZ 대표 관광지로 인기’ 영상에서 리포팅을 하는 한영학 국민기자 [출처=KTV] http://www.ktv.go.kr/content/view?content_id=539319 ⓒ KTV

 
보도자료를 가지고 기사를 쓰는 직업 기자와 다르게 현장에 방문해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화면에 담는다고 말하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물론 직업 기자도 현장취재를 하지만 주로 시민들의 관심사에 집중하기 때문에, 기업과 관공서의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발로 뛰는 기자'라는 말이 그에게 어울리는 것 같다.

그의 나이는 72세다. 몇 분 안되는 TV 리포트라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가 시민기자로 일하는 5년 동안 그가 만든 리포트는 40여 편이 넘는다.

"KTV 국민리포트는 KTV 채널에서 평일 오후 12시에 방송됩니다. 하루는 재방송이고요. 하루엔 리포트 4~6편 정도 전파를 타고, 일주일로 치면 20편 정도죠. 취재해서 리포트 최종본을 넘기면 보통 2주 안에는 방송돼요. '창덕궁 단풍 행사'같이 시의성이 중요한 소재는 긴급 편성되고요."

긴급 취재도 한다니 기동력도 필요한 일이다. 그는 어떻게 이 힘든 일을 하는 것일까? 대답 대신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띄며 말했다.

"리포트들이 내 자식같이 느껴지고, 애착이 가요."

자신의 기사를 위해 하는 노력이야 직업 기자들도 비슷하겠지만 '자식 같다'는 표현은 시민기자만의 자긍심이다. 그는 자신의 리포트 한 편 한 편이 의미 있는 기억이라고 한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리포트는 2015년 10월에 만든 '청산도 느림의 길... 가을빛으로 물들다'라고 말했다.
 

‘청산도 느림의 길...가을빛으로 물들다’ 영상의 일부 [출처=KTV] http://www.ktv.go.kr/content/view?content_id=513401 ⓒ KTV

 
"청산도는 전남 완도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는 작은 섬이에요. '서편제'라는 영화를 통해 유명해졌죠. 봄에 유채꽃이 핀 풍경이 정말 아름다워서요. '청산도=봄'이라는 공식이 있었어요. 그런데, 청산도는 가을에 코스모스가 펴도 매우 아름다워요. 청산도의 가을 풍경을 취재하고, 보도했죠.

방송이 나가고 며칠 후에 청산도 주민들에게 전화가 왔어요. 관광객이 늘어난 것 같다고, 취재해줘서 고맙다더라고요. 완도 군청을 방문해 군수님도 인터뷰했는데, 청산도에 관심 가져줘서 감사하다고 했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 행복해요. 고생했던 게 싹 잊히죠."


독자가 알아주는 기사를 쓰는 게 기자의 맛 아닐까? 그 또한 독자의 애정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고 했다.

그렇다고 감동만 쫓는 시민기자는 아니다. 사진작가 출신인 만큼, 그의 리포트에선 다채로운 화면들이 눈에 띈다. 특히 2019년 7월에 방송된 '고기 잡고 카누 타고... 장호 어촌 체험 마을 인기'가 그렇다.

그는 직접 카누를 타며 건너편 카누에 탄 사람들을 촬영했다. 공중에서 강에서 노는 사람들과 맑은 물 아래로 들여다보이는 강바닥까지 찍었다. 드론 같은 장비를 사용했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리포트를 만드는 데 문제 없어요"
 

‘고기 잡고 카누 타고...장호 어촌 체험 마을 인기’ 영상의 일부 [출처=KTV] https://www.youtube.com/watch?v=jekZvAwhPVo ⓒ KTV

 
"장호항에 있는 다리 위에서 배가 지나다니는 걸 찍은 거예요. 이런 부감촬영(위에서 내려다보는 촬영)은 어렵지 않아요. 전 현장에서 꼭 영상을 찍기에 좋은 위치를 찾아요. 주로 시설물이나 건물을 살피죠. 자리를 잡고 다양한 각도로 영상을 찍어요. 이렇게 찍어야 화면마다 느낌이 다르거든요. 나중에 편집하기에도 좋고요. 저는 작은 캠코더를 쓰지만, 스마트폰으로도 부감촬영을 할 수 있어요. 셀카봉을 이용해서 위에서 찍으면 돼요."

드론을 쓰지 않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을 잡아 오는 그의 열의는 편집으로 이어졌다. 훌륭한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에게 장비 탓은 없다.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리포트를 만드는 데 문제 없어요. 리포트는 편집할 때도 화려한 효과가 필요하지 않아요. 영상을 이어 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시중에 파워디렉터, 무비메이커 같은 초보자들이 무료로 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활용해도 충분해요."

72세가 아닌 27살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전체 화면이 필요하면 높은 곳에 올라가면 되고 특수 효과를 사용하는 화면보다 담백하게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화면 구성이면 뉴스 전달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말은 뉴스 보도의 핵심을 짚는 것 같았다. 화려한 화면보다는 좋은 기획에 신경 쓰는 시민기자 한영학. 그는 취재 과정에서 직업 기자보다 더한 감동을 뉴스에 담는다.

'도라산역 통일플랫폼... 통일을 염원하며'에선 독일의 요아힘 가우크 전 대통령과 통일을 염원하는 실향민들을 화면에 담았다. 추석을 맞아 여의도 개발 때문에 폭파한 밤섬의 원주민들이 작아진 밤섬에 방문하는 모습은 또 하나의 실향민의 모습이었다. 그는 밤섬을 방문한 시민들을 '설레는 귀향... 고향 찾은 한강 밤섬 실향민' 리포트에 담았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취재해서 만든 리포트는 설움과 회한의 마음을 담고 있다.

나이가 무색하게, 왕성한 활동을 이어온 현업 기자 한영학. 어떻게 하면 그처럼 방송 시민기자가 될 수 있을까? 그가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KTV 국민리포트'에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시민기자 대부분이 나처럼 1인 크리에이터지만, 2~3명이 모여 일하기도 해요. 방송국에서 함께 활동할 사람을 찾을 수 있어요. 'KTV 국민리포트' 측에서 타이틀과 자막, 배경음악 첨부 등을 도와줘요. 편집위원님께서 기사 첨삭도 해주고요. 기사의 요점을 정리해주고, 내가 쓴 표현을 정돈해주시죠. 시민기자로서 취재하는 건 일반 유튜버가 취재하는 것보다 편해요. 시민기자는 소속된 기관이 있어서 공문도 보낼 수 있고, 취재 협조를 받을 수 있거든요."

꿀팁이다. 결국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같이 하는 일이고 기자의 신분도 보장받을 수 있다니. 그는 누구나 신청해서 시민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제가 활동하는 'KTV 국민리포트'의 경우 매년 12월쯤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기자단을 모집해요. 대학생, 주부(55세 이하), 시니어(55세 이상), 전문직 기자(전현직 법조인 등), 청소년 기자, 다문화 기자(국내 거주 외국인, 결혼 이민자)로 나누어 선발하니 지원해 의지를 보여주면 됩니다."
 

이제 시민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한테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닐까?

"TV에 나온다고 하면 대단해 보이고, 난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촬영, 편집도 처음엔 어렵지만, 도움을 받아 가며 하면 늘어요. 잘하는 기자가 만든 리포트 영상을 많이 보면 돼요. 이 장면은 다른 각도로 찍으면 좋겠다, 기사 표현을 다르게 해보고 싶다… 고민하다 보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깁니다. 누구나 시민기자 활동을 충분히 해낼 수 있어요."
 

용기를 가지고 세상에 도전하는 72세 시민기자 한영학. 그는 내 칭찬에도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친구들도 아직 세상 속에서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 5월 '시니어클럽 손끝공방'을 취재했다. 카네이션을 만드는 어르신 작업장이었다. 그곳에선 할머니들이 소일하며 용돈을 벌었다. 그들은 '내가 만든 카네이션이 좋은 의미로 쓰일 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리포트가 방송되고 할머니들로부터 잘 봤다, 고맙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보람을 느껴 행복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웃었다.

그는 그보다 40살이 넘게 어린 나에게도, 그와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또한 그가 보도한 영상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
 
한영학 기자가 예비 시민기자들에게 권하는 취재요령

1. 취재 소재 찾기
 
그는 신문을 꼼꼼히 살핀다. 특히 사진과 짧은 설명이 덧붙은 사진캡션을 눈여겨본다. 괜찮은 소재라는 생각이 들면 현장을 직접 방문해 취재한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온 것보다 자세히 조명한다.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덧붙인다.
 
2. 인터뷰 요령
 
그는 인터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리포트는 기자의 생각과 지향점이 분명한 영상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담지 않으면 자칫 기자의 의견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인터뷰로 타인의 의견까지 넣어야 보편적인 현상을 다룬 취재가 된다.
 
중요한 인터뷰어는 어떻게 섭외하나요?
"현장 취재를 가기 전 섭외해야 해요. 행사 주관처에 연락하면 섭외할 수 있어요. 구청이나 시청의 경우엔 공보관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취재 내용을 설명하면 돼요. 인터뷰가 가능한 사람을 섭외해달라 요청하면 도움을 줍니다."
 
현장 인터뷰는 어떻게 하나요?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해달라고 하세요. 주로 가족,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요. 내 경험상, 말을 걸면 혼자 있는 이들보다 잘 응해줘요. 처음부터 카메라를 들이대면 부담스러워해요. 카메라를 끄고 친절하게 말을 걸어 보세요. 놀러 오셨는지. 자주 이곳에 오시는지 같은 자연스러운 질문을 건네보세요. 대화를 이어가다 인터뷰 얘기를 꺼내면 돼요. '시민기자인데요, 저와 나누신 말씀을 10초 정도 짧게 카메라 앞에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하고 정중히 물어보세요. 처음엔 사양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럴 땐 인터뷰가 간단하고, 쉽다고 말하며 인터뷰에 대한 장벽을 낮춰 주세요."
 
인터뷰이가 인터뷰를 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요?
"매끄럽게 말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서서 요점을 잡아주세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이러한 방향이죠?' 하고 정리해주면 돼요. 방송 시간은 제한되어 있으니 한두 문장으로 짧게 정리해주세요. 그러면 10초 길이의 영상에 내가 하고 싶은 말과 그 사람의 의견이 모두 들어가요. 인터뷰하는 비법이에요."
 
3. 기사 작성법
 
그는 "기사는 읽는 이가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전문용어는 쉽게 풀어서 써 주는 식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지 말고 변주하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가 보기 좋았다'는 표현을 이미 사용했다면 '아름다웠다'라고 바꾸는 식이다.
#시민기자 #KTV #국민리포트 #한영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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