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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완치 후 4년 만에 다시 고3, 그가 깨달은 것

[인터뷰] 에세이 '생의 마침표에 천 일의 쉼표를 찍다,'를 쓴 이주완 작가

등록 2020.12.01 10:58수정 2020.12.0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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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시작한 지 20분이 채 안 되었는데, 이주완 작가는 나에게 '희망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느닷없는 질문이었다. 희망이 뭘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다보니 얼버무리게 됐다.

이주완 작가는 12월 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본다. 나이 23세. 인생의 '변수'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군대를 다녀오고도 남을 나이다. 이주완 작가는 인생의 느닷없는 불행 앞에서 '희망'의 의미를 찾아냈다고 말한다. 예기치 않은 희망, 예기치 못했던 불행. 그 둘은 같은 말일까 반대말일까. 이주완 작가를 지난 11월 21일 만났다.


이주완 작가는 고3이었던 2016년 3월, 백혈병 선고를 받았다. 1009일간의 투병 생활을 마치고 올해 8월 투병기를 담은 <생의 마침표에. 천일의 쉼표를 찍다,>라는 책을 냈다.

그리고 올해 고등학교 3학년에 복학했다. 자신보다 네 살 어린 후배들과 학교를 다녔다. 코로나19로 온전히 학교를 다니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건강히 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했다. <생의 마침표에. 천일의 쉼표를 찍다,> 이 책을 쓴 계기가 궁금했다.

나는 나만의 것이 아니에요
 

<생의 마침표에. 천 일의 쉼표를 찍다,>를 쓴 이주완 작가 ⓒ 안소민

  
"사실은 이유가 너무 많아요. 작년에 복학할 예정이었는데, 복학 신청 시기가 다가오면서 제 시간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어요. 복학하게 되면 예전처럼 쳇바퀴 도는 삶을 살 텐데 내 인생에 또 언제 이렇게 멈춤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했죠. 어느 날 침대에 누워있다가, 제가 겪은 일이 누구나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병을 이겨냈다는 의미를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저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치료를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제 몸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있어요. 저를 살린 이름 모를 사람들이 저를 도와줬어요. 빚을 지고 있어요. 감사함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썼어요."

 
"그렇게 나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한 자 한 자에 그동안의 내 하루하루를 꾹꾹 담아 적어 내려갔다. 그동안의 여정에서 내가 배웠던 모든 소중함을,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면서 느꼈던 모든 감사함을 아직 이토록 생생할 때 서둘러 적어 내려갔다...(중략)...불행처럼 찾아왔던 백혈병이었지만 그런 이유였다면, 죽음과도 같았던 시련과 고통 속에서 날 살게 했던 이 희망과 행복들을 모두에게 남겨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 일을 끝마쳐야만 그 모든 기억을 내 안에 담고도 19살의 나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들었던 펜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23살이 되어있었다." - 5p

이주완 작가는 투병생활 도중 간간이 써놓았던 메모들을 추리며 글을 썼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1년가량, '빚을 갚는 마음'이었다. 자신의 투병생활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 있다'라는 그 위대한 발견, 그것이 바로 작은 희망 아닐까.

"기자님은 희망이 뭐냐고 생각하세요? 저는 희망이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거라 생각했어요. 우리의 하루를 살게 해주는 모든 것들이 희망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책을 통해서 수많은 희망을 말하고 있지만, 어떤 게 희망이라고 얘기를 해드릴 수도 없고 해드리고 싶지도 않았어요. '희망이 뭐다'라고 알려주기보다는 이렇게 사는 제 모습을 보여주며 거기서 각자의 희망을 찾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큰 병을 앓고 난 후,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사려 깊음, 감사함. 23세라는 나이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이주완 작가는 어른스럽고 깊어 보였다. 투병생활을 거친 뒤, 얻고 난 깨달음이었을까?

"저는 아프기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아요. 사람들이 그런 말들을 많이 하잖아요. '하루를 소중하게 살아야 한다, 매 순간을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저는 그 이유가 뭔지 궁금했어요. 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야 하지? 그런데...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하루가 소중한 의미는... 그냥이에요. 하루가 소중한 이유는 (30초 정도 생각한 뒤) 하루가 소중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이건 이해시킬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간절함을 이기는 것은 없더라

2016년 3월, 병이 발병했을 무렵 이주완 작가는 고등학교 전교 학생회장이었다. 초등학교 때도 학생회장에 뽑혔다. 중학교 때는 학생회장 선거에서 떨어졌다. 낙마의 경험에서도 배운 건 있다.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이 아는 학생들이어서 선거운동에서 나태했다. 반면 경쟁 상대는 학생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때 깨달았다. '간절'이라는 두 글자의 힘을. 진심을 이기는 것은 없구나.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에서는 진심을 다해, 간절함을 다했고 그 결과 학생회장에 뽑혔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발병으로 휴학해야 했다. 정든 학교와 선생님, 친구들을 뒤로 한 병원생활. 무균의 병실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그때 그 친구들과는 지금도 만날까? 이주완 작가에게 인간관계에 대해 물었다.

"발이 넓다는 말이 있죠. 우리는 인간관계가 넓어야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인간관계는 공부하는 거랑 똑같다고 생각해요. 공부는 끝이 없잖아요. 하면 할수록 끝이 없죠. 학문도 그럴진대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얼마나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대해야겠어요. 인간관계가 넓으면 (물론 제가 부족할 수 있지만) 책만 잔뜩 쌓아놓고 읽지 않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고 싶어요. 발이 넓은 사람보다는 깊은 인간관계를 맺고 싶어요."
 

1009일의 백혈병 투병기인 <삶의 마침표에. 천 일의 쉼표를 찍다,> ⓒ 레드우드


4년 만에 돌아온 학교... 그러나 기다리는 건

이주완 작가가 병원생활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왔지만, 세상은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바짝 얼어붙었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숨을 쉬는 존재끼리는 일정 거리를 두어야 했다. 올해 유난히 힘겨운 수험생활을 해야 했던 고3과 재수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자신보다 네 살 어린 동생들이자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당장은 안 좋았던 경험이, 기억이 될 수 있어요. 세상에 의미 없는 시간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당장은 불행하고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시간의 의미를 찾지 못한 거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나중에 가면 그때 그 경험 해보길 잘했다, 그런 때가 올 거예요.

지금 당장 이 시간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힘들기만 하다면, 잠시 그 경험을 가지고만 있어도... 공부하면서 지금 당장 안 풀렸던 게 나중에 가면 풀릴 때 있잖아요. 나중에 삶의 연륜이 쌓이고 경험 쌓이다 보면 지금이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알게 될 거예요."


올 한해를 돌아보면 다사다난.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그래프를 그려왔다. 이주완 작가는 올 한해 언제 가장 기쁘고 힘들었을까. 그 순간들을 꼽아본다면 어느 풍경일까.

"(30초 정도 생각한 뒤) 하루하루가 가장 기뻤던 것 같아요. 내가 다시 내일을 꿈꿀 수 있다는 게, 하루하루가 기뻤어요. 가장 기뻤던 하루를 꼽으라고 하면 제 하루하루들에게 실례인 거 같아요. 어떻게 얻은 하루하룬데... 슬펐던 때 역시... 같은 이유로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얻은 소중한 '하루하루'인가

시험을 앞둔 수험생으로서 입장도 궁금했다. 여백이 생겨버린 학업,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초긍정, 단단한 멘탈의 이주완 작가라도 살짝 마음이 흔들렸을 것 같기도 하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저도 대학수학능력이 처음이라서요 (웃음) 19살 때부터 시험을 봤더라면 지금 5수예요. 어떻게 될지 저도 모르겠어요.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요. 어쩌면 내년에 다시 이 공부를 하고 있을지 몰라요."

이주완 작가의 책 표지에는 달팽이가 그려있다. 온몸을 비비며 느리게 기어가는 달팽이를 바라보는 한 남자. 그 달팽이는 어쩌면 이주완 작가가 아닐까. 더디지만 꾸준히 가다 보면 어느새 저 멀리 나아가는 달팽이.

그래서일까. 이주완 작가는 대입 합격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그에겐 더 큰 목표라는 게 있다. 그곳을 향해 좀 더 단단하고 천천히, 생각하며 나아가는 작가의 모습이 겹쳐진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1분 1초가 아까울 텐데 시간을 내줘 고맙다고 하자 이주완 작가는 "1분 1초가 아깝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우리는 왜 공부할까요? 당연히 행복해지기 위해서 공부하죠. 하지만 공부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졸업하고 대학만 가면 행복해질 것 같지만, 그때 가면 또 다른 고민이 있죠. 행복해지기 위해 살지 말고, 지금 그냥 행복하세요. 다음 행복을 위해 또 참고 견디잖아요. 행복해지기 위해 살면 행복해질 수 없어요.

제가 병원에 있을 때, 그 순간들을 건강해지기 위해서 견뎌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더라면 정말 많이 힘들었을 거 같아요. 남들이 보기에 매 순간이 힘들어 보였지만 저 나름대로 행복했다는 느낀 순간들이 너무 많아요."


인터뷰를 마무리하자니, 인터뷰 초반 이주완 작가가 건넨 예기치 않은 질문이 떠오른다. 희망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어쩌면 희망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는 건지도 모른다. 불행 또한 마찬가지.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2020년 풍경을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리하여 희망과 불행은 어쩌면 동의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생의 마침표에. 천 일의 쉼표를 찍다,

이주완 (지은이),
레드우드, 2020


#생의 마침표에. 천 일의 쉼표를 찍다, #백혈병 투병기 #이주완 작가 #코로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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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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