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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뒤에도 일자리 없어 거리 헤매는 청년들... 씁쓸하다

[리뷰] 일하고 싶은 사람들, 영화 <구직자들> <스틸 플라워>

20.11.25 17:04최종업데이트20.11.2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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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구직자들> 스틸컷 ⓒ (주)이놀미디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분신 항거 한 22살 청년 전태일을 기억하는가. 그가 꿈꾸던 반백 년 후 미래, 근로기준법을 외치던 청년의 바람은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아직도 노동 생태계는 열악하고,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 걱정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을 다룬 영화 두 편을 보았다. 저예산 독립영화답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참신한 소재, 낯선 연출이 돋보인다. 두 영화에서 주인공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었다. 영화와 현실이 다르지 않아 내내 씁쓸하면서도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간절히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절실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노동의 가치는 꼭 돈으로만 환산되는 건 아님을 확인 했다. 일이 있다는 것, 내일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행복이지 않을까.
 
<구직자들> "나는 쓸모가있다"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미래
 
영화 <구직자들>은 2220년, 가장 행복했던 2020년을 그대로 복원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인간과 인공의 이야기다. 200년 뒤를 배경으로 하나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점을 들려준다. SF 장르에서 기대하는 현란한 CG는 없지만 구직을 희망하는 청년 세대의 인터뷰를 넣어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미래 사회에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사회, 정치, 일상의 문제점, 인간 본연의 철학적인 문제를 논한다. 삶과 죽음, 일과 미래, 꿈과 행복, 그리고 공존을 탐색하는 영화다.
 
편의점 1+1 이벤트 삼각김밥과 바나나우유로 급조된 둘은 함께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 진짜 인간(정경호)은 아픈 아이의 병원비를 위해 거리로 나왔다가 원본에게 버림받은 인공(강유석)을 만난다. 둘은 현재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나눈다. 인간과 인공의 대화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민과 다를 바 없어 씁쓸하다.

미래에도 여전히 인간의 삶은 녹록지 않고 더욱 팍팍해졌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200년간 유지되면서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고 부족한 노동력은 인공으로 채워졌다. 밀려난 인간이 거리에 일자리를 찾아 떠돈다.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해 이제 인공들과 경쟁해야만 한다. 인공은 일종의 복제인간이다. 1인당 1인공 서비스가 시행되었고, 원본 인간에게 보험처럼 적용된다.

충격적인 것은 장기 매매조차 넘쳐나는 인공으로 쓸모없어진 인간의 존재다. 인간이 스스로 쓸모를 증명해야 일할 수 있다. 물건처럼 나의 쓸모를 적극 어필해야 하는 아이러니. 실패에 최적화된 인간과 폐기처분 통보를 받은 인공이 서로의 쓸모를 찾는다.
 
​인공은 진짜 인간이 되기 위해 신분이 필요하고, 인간은 신분을 포기하면서까지 돈이 필요하다. 인간처럼 살고 싶은 인공은 인간 신분을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 아웃소싱을 면하지 못하는 삶을 벗어나고 싶다. 태어날 때부터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정규직인 인간을 항상 부러워한다. 누군가의 대타, 기계의 한낱 부속품이었던 정체성에서 벗어나 누구보다도 인간이 되고 싶다.
  

영화 <구직자들> 스틸컷 ⓒ (주)이놀미디어

 
<구직자들>은 오늘날의 여러 문제점이 미래에도 계속되고 있지 않겠냔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왜 절실하게 일자리를 원하면서도 행복하지 않겠냔 질문이 계속해서 맴돈다. 나아가 존재의 필요성까지 논의하게 만든다. 다소 무거운 주제이지만 한없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일하고 싶다는 의지는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고,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적 드문 골목길을 누비는 끊임없는 발걸음은 구직활동이 아닌 관계 맺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최근 전염병이 전 세계를 덮치자 우리는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차별과 배척, 각자도생이 아닌 함께라서 행복한 공존이 필요하다. 따라서 실패하더라도 격려해 주고,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끝이 되지 않기 위한 사회의 안전망도 필요하다. 좋은 세상은 혼자가 아닌 우리가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스틸 플라워> "일하고 싶어요" 외로움 속에 홀로 핀 꽃
  

영화 <스틸 플라워> 스틸컷 ⓒ 인디스토리

 
한 여성이 겨울 바다에서 캐리어를 끌고 빙빙 돈다. 헐떡이는 숨소리, 긴 머리, 버거워 보이는 캐리어를 들고 어딘가를 바쁘게 걸어간다. 그 와중에 바삐 쫓는 것은 구인광고다. 가장 먼저 세탁소의 구인 광고를 보고 들어간다. 다림질하는 주인에게 개미 소리로 이야기한다. 일자리를 찾아왔다는 말을 꺼내지만 쳐다보지도 않는 주인. 젊은 사람이 힘든 일을 할 수 있겠냐는 말만 무심하게 건넨다.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듣지 않는 눈치다. 주인은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두고 가면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여성은 펜을 들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도망치듯 세탁소를 빠져나온다. 전화번호와 주소로 자신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후 카메라는 시종일관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가고 먼발치에서 가만히 지켜만 본다. 대사도 없이 진행되는 형태가 묘한 끌림을 유발한다. 대체 무슨 일로 거리에 내몰린 걸까. 그리고 필사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운 겨울 밥 사 먹을 돈이 없어 손님이 먹다 남긴 빈대떡을 몰래 담아 온다. 정처 없이 빈집을 찾아 헤매다가 적당한 곳에 작은 몸을 들인다. 매우 익숙한 습관 같다. 차분히 초를 켜고 아까 가져온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그리고 다음 날도 일을 찾아 거리를 떠돈다. 대체 '왜'라는 물음을 연신 떨쳐버릴 수가 없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굳이 '왜'라는 질문은 잊어버린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동화된다.

삶이 아주 버거워 보인다. 그리고 무척 외로워 보인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철저히 혼자다. 돈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말하지만 부정한 방법은 택하지 않는다. 오로지 몸을 써 일하고 싶다는 말로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한다. 일자리를 절실하게 구하는 외침은 살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비록 가진 것은 캐리어와 백팩뿐이지만 윤리적이고 정당하다. 갖은 멸시와 환멸, 동정으로 짓밟지만 질긴 생명력으로 오뚝이처럼 일어난다. 그런 여성에게 작은 꿈이 생겼다. 바로 '탭댄스'다.
  

영화 <스틸 플라워> 스틸컷 ⓒ 인디스토리

 
영화 <스틸 플라워>는 <들꽃>, <재꽃>을 만든 박석영 감독의 꽃 시리즈 중 두 번째이자, 정하담 배우의 단독 주연작이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정하담 배우가 영화를 꽉 채우고 있다. <들꽃>에서 보여준 거리의 아이 중 한 사람의 이야기를 떼어온 것만 같다. 몇 마디 대사 없이도 무표정한 얼굴에서 피어나는 복잡성이 자석처럼 이끌린다.

연일 휘청거리며 걷는 투박하고 무거운 발걸음이 탭댄스를 만나 한결 가벼워진다. 어렵게 번 돈으로 탭슈즈를 신고, 제멋대로 스텝을 밟는다. 그동안 꽉 막혀 있던 숨통이 저절로 트이며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그토록 일하고 싶었던 이유가 생존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탭댄스)기쁨으로 전환된다. 나에게도 그녀의 탭슈즈 같은 게 있을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따닥따닥" 걸을 때마다 경쾌한 소리를 내는 신발은 여전히 여기서 숨 쉬고 있다는 작은 목소리 처럼 들린다.
 
여성은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난 죄로 사는 삶이 너무 지쳤었다. 하지만 이제 탭슈즈를 신고 깊고 푸른 달밤에 혼자 스텝을 밟고 또 밟을 것이다. 다시 캐리어를 끌고 빈집과 일자리를 찾아 거리로 나오겠지만 음지에서도 조용히 핀 잡초처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것이다. 모진 생명력과 삶의 의지를 온몸으로 전달받는 이미지의 잔상이 크다. 캐릭터의 대사가 거의 없지만 천 마디 말보다 온몸으로 보여주는 삶의 질곡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노동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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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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