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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에선 모두가 "사원님"이지만, 명절 선물은 다르다

[쿠팡 일용직 노동, 2년의 경험 ③] 고용 형태는 달라도 같은 일을 하건만

등록 2020.11.27 10:32수정 2020.11.2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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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여기!"


거칠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창고 안을 휘젓는다. 쿠팡 물류창고에 들어온 첫날. 처음 일을 시작한 나는 이곳저곳 불러 다니며 일을 배운다. 엄연히 나에게도 '김상현'이라고 하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석 자가 있었지만, 항의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 또래의 일용직 노동자들도 그렇게 불리니 '그런가 보다' 하고 참았다.

힘들게 일을 마치고 퇴근 서명만 남은 상황. 관리자가 마지막으로 노동자 전체를 불러 모은다. 그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지만, 내 귀에는 대부분 들어오지 않았다. 몸이 지친 것도 있거니와, 첫날이라 그런지 모르는 이야기 투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마디는 명백히 들렸다.

"일용직 사원님들한테 반말하지 마세요. '사원님'이라고 똑같이 하세요."

그 한 마디 만큼은 명확히 들렸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똑같이 호칭하라'고? 내 귀를 의심했다. 이런 것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 주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구나. 나는 순간적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이후 나에 대한 명칭은 '야!'에서 '사원님!'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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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쿠팡 물류센터. ⓒ 연합뉴스

친해진 노동자들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이 나를 '사원님'이라고 정중하게 불렀다. 나도 자연스럽게 다른 노동자들을 '사원님'이라고 불렀다. 나이 상관없이 쿠팡 물류창고에서 노동자들은 서로를 '사원님'이라고 부르고 존대를 했다. 나는 이런 문화가 퍽 좋았다. 서로 존중한다는 느낌이 확연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를 거스르는 사람은 계속해서 있었다. 나이 많은 계약직 노동자들이 나이 어린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야!", "알바!"라고 하는 일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관리자는 조회 때마다 항상 "제발 일용직 노동자한테 반말하지 마세요, 사원님들"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수급이 중요한 쿠팡 물류창고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반말하거나 횡포를 부려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안 좋은 평이 올라온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쓰는 듯했다. 하루하고 더는 오지 않을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다고 하지만 떠난 이들의 의견은 의외로 중요했다.

덕분에 내가 쿠팡 일용직 노동을 그만두었을 즈음에는 '서로에게 반말하지 않습니다'라는 캠페인 포스터가 붙여지기도 했다. 이런 노력이 꽤나 효과가 있었는지 주변에서 점점 젊은 일용직 노동자를 하대해서 부르는 문화는 사라져갔다.

친구가 겪은 이야기

그렇게 '사원님'이라는 호칭에 나름 만족하며 살아가던 중이었다. 친한 친구가 자기도 쿠팡 일용직 노동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었다. 덕분에 몇 번 그와 나는 같은 창고로 출근하게 되었다. 파트는 달랐다. 나는 반품 파트였고 그는 출고 파트였다.

그가 물류창고에서 일한 첫날, 나는 소감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울분을 터뜨렸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는 자신이 당한 일을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우선 창고에서 그를 "야!"라고 부르는 것은 기본이었다고 한다. 또한, 처음 근무에 투입되어 일도 미숙한 사람인 것을 뻔히 알면서 일을 못 한다고 대놓고 욕을 했다고 내게 말했다.

유독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만 그런다고 말한 그는 그 모든 상황에 질렸는지 몇 번 더 창고에서 뛰다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나는 같이 욕해주거나 위로하는 것 빼고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상처와 6만 원 정도의 최저임금뿐이었다. 

나는 정규직을 본 적이 없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2019년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노동자 중 36.4% 정도의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이 통계대로라면 대한민국 노동자 10명 중 3.6명은 비정규직이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즉, 이제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은 낯선 것이 아닌 흔한 것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간다. 나와 내 또래들도 대부분 아르바이트라는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으로 살면서 처음 자기 힘으로 돈을 번다. 대다수의 사람이 정규직을 원하지만, 시작은 비정규직 노동부터다.

쿠팡 물류창고에도 비정규직이 넘쳐난다. 우선 나는 일용직 노동자로서 비정규직 생활을 해왔다. 매일매일 노동을 신청하고 근로계약서를 새로 썼다. 옆에서 일하는 동료 노동자들은 계약직 노동자였다. 일용직 노동으로 일을 시작했다가 계약직 노동자로 전환한 사례가 대다수다.

그들은 몇 차례 계약을 갱신하다가 무기계약직이 되기도 하지만, 그전에는 계약 갱신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그래서 계약 갱신 시점이 되면 창고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삭막해지고는 한다. 

그럼 쿠팡 물류창고에는 정규직이 어디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나는 가끔 본사에서 내려와 감독하는 직원을 빼면 정규직이라고 할 만한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물류창고에서 물건을 나르고 정리하는 사람은 모두 다 계약직이었다.

왜 그의 손에는 명절 선물이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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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모습. ⓒ 연합뉴스

 
일용직 노동자는 물류창고에서 '하루 오고 말 사람' 아니면 '언제 가도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인식된다. 실제로 당일치기 노동만 하고 영영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꼭 그런 사람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용직으로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중에는 대다수의 계약직보다 많이 다닌 사람들도 있다. 고용 형태만 일용직이지 실질적으로는 주5일 출근하는 계약직 사원과 다름없는 사람들.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라고 하지만, 역시 숙련된 사람들이 없으면 창고는 돌아가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장기적으로 나오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소중해진다.

쿠팡 물류창고에서도 이를 아는 것인지 1회 이상 나온 일용직 노동자들을 출근 신청에서 우대해주려는 경향이 있었다.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 쿠팡 측에서는 훨씬 더 이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주 5일을 꼬박꼬박 나오고 열심히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의 중요성이야 더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고용 형태는 일용직이다. 같은 일을 해도 일일 임금부터 계약직과 차이가 난다. 일용직은 항상 최저임금을 받았다. 가끔 창고에 사람이 없거나 물건이 너무 많을 때는 일일 임금에 얼마를 더 얹어줘 계약직들의 부러움을 사고는 했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명절 시기 나는 계약직 노동자들이 퇴근할 때 명절 선물을 들고 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주5일 꼬박꼬박 나오고 열심히 일하던 어느 일용직 노동자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는 잠깐 나오고 마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닌데 이런 면에서 다르게 대우받는가 싶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노동, 다른 고용 형태

물론 일용직도 일용직 나름의 장점은 있다. 쿠팡 물류창고의 경우 아직 일용직 노동자를 많이 필요로 하므로 자신이 원하는 날에 출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계약직을 하고 싶어도 여러 사정 때문에 일용직을 선택한 사람들의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또 간헐적으로만 나오거나 하루 나오고 마는 사람들까지 동등하게 대우해 줘야 하느냐는 물음이 생길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손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 입장에서는 어떨까. 하루만 일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그는 다른 형태로 고용된 노동자들과 동등한 노동자다.

같은 일을 하고, 다른 노동자들과 동일하게 '사원님'으로 불린다. 하지만 임금이 다르다. '하루 일하고 말 사람'이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같이 일하는 사람'이여야 하는 게 아닐까?

같은 비정규직 사이에서도 이렇게 급을 나누고 익숙해지니까 서로에 대한 존중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나는 다시 나를 향해 "야!"라고 소리쳤던 어느 노동자를 생각한다. 그도 필시 정규직 노동자는 아니었다. 나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하지만 그는 나를 하대했고, 나는 그가 나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와 그는 하는 일이 같았다. 다르게 대우받고, 서로의 위계를 나눌 필요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를 상하로 구분 지었고, 기분 나쁜 일만 겪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현재 쿠팡 물류창고를 떠난 상태다. 하지만 지금도 이런 현상은 너무 흔하게 일어난다.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일을 하는 데도 차별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정규직 중에서도 더 해고당하기 쉽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한국 사회는 고용 형태가 어떤 위계를 형성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쿠팡에서 적어도 호칭 상으로는 모두가 '사원님'이었던 것처럼, 실제 노동 현장에서 우리는 모두 '노동자'일 뿐이지 어떤 위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우리는 그저 다 같은 노동자일 뿐이다. 일하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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