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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직무정지'에서 양승태가 떠오른 이유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검찰의 오래된 '사찰' 사례... 관행에 익숙해졌던 건 아닐까

등록 2020.11.27 17:24수정 2020.11.2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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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직무 배제 징계를 청구한 다음 날인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2020.11.25 ⓒ 연합뉴스

 
지난 24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청구 및 직무집행 정지명령의 근거로 제시한 것 중 하나가 '주요 사건 재판부 판사들에 대한 불법사찰'이다.

이 발표에 대해 윤석열 총장은 "위법·부당한 처분, 끝까지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반발한 뒤 변호인 이완규 변호사를 통해 문건을 공개하는 등 실제 대응에 나섰다. 이 변호사가 26일 공개한 문건인 '주요 특수·공안 사건 재판부 분석'에 따르면, 일견 소소해 보이는 내용들도 있다. 

하지만 판사의 정치적 성향을 가늠케 하는 부분도 보인다. 진보적 학술단체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 표시한 부분, 주요 시국사건 판결이력 등이 그렇다. 예컨대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를 요구한 시위대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실, 운동권 전력 탓에 군무원시험 합격이 취소된 수험생 손을 들어준 사실 등이다. "세월호 생존자 및 가족에 대한 국가의 국가배상책임을 2차 책임까지 인정"이란 부분도 있다. 참사 뿐 아니라 참사 뒤 상황에 대한 국가책임까지 인정한 판사라는 점을 체크해둔 것이다.

약점이 될 만한 사항도 눈에 띈다. "행정처 16년도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 포함"이라고 하면서 "휴일 당직 전날 술을 마시고 다음날 늦게 일어나 당직 법관으로서 영장심문기일에 불출석, 언론에서 보도"라고 써넣은 부분도 있다. 이 외에도 '술을 마시고 늦게 일어나', '당황하는 듯한 기색', '소극적인 태도', '존재감 없음', '검찰 대응 수월', '법정 멘트들도 미리 신경 써서 준비한 느낌' 같은 대목들도 있다.

울산시장 선거 사건이나 조국 사건을 배정받은 검사들이 담당 판사의 특성을 체크할 순 있다. 변호사들도 그 정도 일은 한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담당 검사가 아닌 다른 검사가, 그것도 검찰총장이 개입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26일자 페이스북 글에서 판사 출신인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문건 작성에 관여한 검사를 두고 한 말이다.

"해당 검사는 관련 사건 공판에 관여한 검사도 아니고 대검 공판송무부 소속 검사도 아닙니다.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입니다. 그의 직무는 '수사정보 수집, 관리 등'입니다. '여론이나 주변 분위기에 영향 많이 받는다는 평' (중략)... 이것이 수사정보와 무슨 관련이 있겠습니까."

그는 "사법농단에서 양승태 행정처 판사사찰이 문제가 된 이유도. 그것이 인사업무와 무관한 기조실에서 권한 없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검찰 측을 비판했다.


대검은 본디 정보 수집을 조직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다. 대검뿐 아니라 대법원도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은 그런 일을 조직적으로 벌였고, 한국 사회는 이런 행위를 '사법농단'이라고 부른다. 사법기관인 대법원뿐 아니라 준사법기관인 대검도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그와 유사해 보이는 사안이 윤석열 대검찰청에서 벌어진 것이다.

사법농단을 잊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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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은 2019년 11월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양승태 사법농단을 부분적으로 연상시키는 이번 사건에 대해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25일 브리핑을 통해 "사법농단과 국정농단의 수사를 이끌었던 검찰총장이 오히려 불법사찰을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불법사찰을 범죄로 보지 않는 대검의 인식은 과거 독재정권의 검찰과 다를 바 없다"라고 비판했다. 25일 법원이 수사정보정책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준 것 또한 이번 사건 관련 판사들의 인식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심각히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의심스러운 일이 21세기 대검찰청에서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은 검찰의 '불법사찰'이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사안은 윤석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검찰개혁의 과제가 돼야 마땅하다. 그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라고 본다.

한국인들은 '관계기관 대책회의' 혹은 '관계장관 회의' 같은 표현에 익숙하다. 검찰이 경찰이나 정보기관 등과 함께 민주화운동 같은 시국사건에 대처할 때 자주 등장했던 회의체다. 그러나 과거 이런 기구는 독재정권이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는 수단으로 활용된 적도 있다.

그런 기구의 일원으로 검찰이 참여한 역사가 짧지 않기 때문에, 과거엔 검찰이 검찰인지 정보기관인지 헷갈릴 때가 적지 않았다. 검찰이 범죄 혐의자를 기소하고 공판을 유지하고 기소 및 공판 유지에 필요한 범위에서 수사권을 행사하는 수준을 넘어, 경찰이나 정보기관처럼 광범위한 수사를 벌이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의 수사와 무관한 사찰을 벌이는 일까지도 횡행했다.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다는 점은 독재정권 시절의 신문보도들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 시절에는 검찰의 '불법사찰'을 자연스럽게 보도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유구한 '사찰'의 역사 

일례로,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대한 저항이 격렬해서 박정희 정권이 학생 시위를 탄압하고자 '관계장관 회의'를 개최한 1965년에도 그런 보도가 나왔다. 신직수 검찰총장이 대학가 사찰을 위한 관계장관 회의에 참석하고 부하 검사들에게 사찰을 지시했다.

1965년 8월 28일 치 <경향신문> '배후 주모자 사찰을 강화' 기사에는 "연 3일째 열린 정(일권) 총리 주재의 이날 관계장관회의에는 김 국방, 양 내무, 민 법무, 권 문교, 홍 공보장관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신 검찰총장 등이 참석했다"고 한 뒤 이 회의 결과로 일어난 일을 이렇게 보도했다.

"검찰은 학생 데모를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로 사회 저명인사 중 35명(교수 13명, 종교인 10명, 문인 5명, 언론인 7명)의 동태를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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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8월 28일자 <경향신문>. 그러나 검찰이 이들의 동태를 감시하는 것은 특정 사건 수사의 범위를 넘어선, 불법 사찰의 성격이 강했다.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만약, 저명인사 35명이 배후조종했다는 혐의가 뚜렷했다면 검찰은 당장 그들을 체포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태를 감시하라'고 한 것은 혐의를 얼른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태를 감시하는 것은, 특정 사건 수사의 범위를 넘어서는 불법사찰의 성격이 강했다.

이런 사찰을 경찰이나 정보부뿐 아니라 검찰에서도 수행했다. 관계장관회의에서 '오더'를 받아온 검찰총장이 사찰 업무를 하급 기관에 분배했던 것이다. 이런 불법사찰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도될 수 있었던 것은 사찰이 그 시절에 공공연했기 때문이다.  

그 같은 불법사찰은 재야나 학생운동권뿐 아니라 출판사들을 향해서도 벌어졌다. 1988년 10월 12일 치 <한겨레> 기사 '실체 드러난 출판계 관계기관대책회의'는 검찰이 청와대·안기부·보안사 등과 함께 관계기관대책회의를 구성해 출판계 사찰을 벌인 역사를 정리해 보도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정보기관들과 협업해 불법적 사찰을 벌이다 보니, 정보기관 사찰 탓에 벌어진 일로 인해 김기춘 검찰총장이 긴급대응에 나서는 일도 있었다. 윤석열 총장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1년 전인 1990년이다.

독일 통일 다음 날인 그해 10월 4일에도,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 민간인 사찰을 폭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자 10월 6일 치 <한겨레> 기사 '정권 도덕성 타락 규탄'에 따르면, 김기춘 검찰총장은 정례 간부회의에서 "수사계획서 등 내부 자료가 유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고 지시했다. 불법사찰 폭로의 불똥이 검찰에 튀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이다. 치안본부 역시 이날 긴급참모회의를 갖고 정보 관계 문서의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검찰의 불법사찰은 근절되지 않았다. 지난 1999년에는 운동권 출신 회사원을 10년간 불법사찰한 죄로 검찰이 그에게 위자료 200만 원을 물어주는 일까지 있었다. 1999년 6월 12일 치 <매일경제> 기사 '시위 전력 민간인 사찰, 검찰에 위자료 지급 판결'은 "시위에 참가해 구속 전력이 있는 직장인 동향을 법률적 근거 없이 수년간 감시해온 국가에 대해 위자료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면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사기관은 범죄 예방 차원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재범 가능성이 없는데도 시위 전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률적 근거도 없이 장기간 사찰을 한 것은 위법'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검찰은 아주 오래전부터 '불법사찰'을 자행해온 역사가 있다. 과거 6월항쟁이 벌어진 지 30년이 지나고, 촛불혁명이 일어난 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검찰이 외부 기관들을 상대로 사찰을 벌이고, 또 그것이 불법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은 관행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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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0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울산시장 선거 사건이나 조국 사건의 재판부에 대한 검찰의 사찰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위의 1999년 판결에 언급된 것처럼 해당 판사들이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거나 상당한 재범 가능성이 있었어야 한다.

만약 그런 가능성이 없는데도 해당 사건과 무관한 대검찰청 검사들이 조직적으로 판사 사찰을 벌였다는 사실이 판명된다면, 검찰개혁은 아직도 멀었다고 판단 가능하다. 동시에, 윤석열 검찰총장이 시대착오적인 인식을 갖고 있을 가능성도 주목된다.

지금까지 확인된 일만으로도 윤석열 총장은 비판받을 소지가 크다고 본다. 국가기관의 불법사찰은 절대 안 된다며 용기를 내 폭로에 나섰던 윤석양 이병의 정신을, 지금의 윤석열 총장은 되새겨야 할 것이다.  
#윤석열 #추미애 #판사 불법사찰 #검찰개혁 #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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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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