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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반트반하' 명소

등산이 힘들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 옥천 등주봉 둘레길

등록 2020.12.05 14:27수정 2020.12.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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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주봉 전망대 ⓒ 월간 옥이네

 
'궁극의 걷기 여행코스'라 불리는 대청호 오백리길은 대전 신탄진에서 출발해 충북 옥천과 보은, 청원까지 연결된다. 광활하고 긴 거리만큼 총 21개 구간에 달하는 코스가 있지만, 그중 등주봉(둔주봉)을 둘러싼 금강 강변을 걸을 수 있도록 조성된 13구간은 안남면사무소에서 출발해 안내면 현리 신촌교까지 약 13Km, 6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긴 코스다.

등주봉 일대는 산행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반 트레킹, 반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명소로 이름을 알린 지 오래. 등주봉 정상을 향해 오르는 등산로와 강변을 따라 걷는 둘레길을 동시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번 호에서는 금강 강변을 따라 약 2시간가량 원만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등주봉 둘레길을 소개한다. 햇볕 아래 반짝이는 아름다운 윤슬을 감상하며 걸어보자. 마을을 열고 둘레길을 걷다 보면 자연 풍경이 속삭이는 삶의 의미를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등주봉 들머리, 안남면사무소

차를 이용해 둘레길이 시작되는 독락정 바로 앞까지 들어갈 수 있지만, 안남면사무소 앞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둘레길에 진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관광버스가 주차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마련된 면사무소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곳곳에 설치된 탐방안내도와 팻말을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둘레길 진입이 가능하다. 풍경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30분 정도 소요된다.

면사무소 앞 넓은 잔디광장과 마을의 역사가 담긴 조형물을 시작으로 알록달록 단란함이 느껴지는 안남초등학교를 지나면 농촌 마을을 품은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안남초등학교 사거리에 있는 안내 팻말을 따라 비들목재를 향해 걸으면, 옥천 9경 중 제 1경으로 꼽히는 '역 한반도 지형'을 감상할 수 있는 등주봉 등산로 진입이 가능하다.

안남초등학교 앞을 지나 둘레길을 향해 걷는 길 위에서 성큼 다가온 새 계절을 만끽할 수 있다. 추수를 마친 까까머리 들녘과 푸른 하늘을 간질이는 갈대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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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마을정자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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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쌓인 콩더미 ⓒ 월간 옥이네

 
마을을 둘러싼 산을 바라보며 금강을 향해 걸어가는 길은 채도가 낮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길 위에 줄 맞춰선 마른 콩들이 정취를 더하고 지붕 낮은 집 마당에서 들려오는 닭 우는 소리, 풍성한 배추밭, 마을 곳곳에 풍기는 고소한 냄새는 살아본 적 없는 작은 마을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다.


마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연주 2리 주민들의 사랑방인 독락정 마을회관이 나타난다. 마을회관 앞에는 마을 사람이 모여 소일을 하고,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커다란 정자 두 채가 있다. 두 정자 사이로 웅장한 느티나무가 긴 팔다리를 뻗어 마을을 지킨다.

서서히 물가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낚시를 하기 위해,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차량과 텐트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고기 굽는 사람들의 높은 웃음소리와 고기 냄새를 맡은 고양이가 짝을 지어 정자를 어슬렁거리는 깜찍한 모습도 눈에 담을 수 있다.

둘레길의 시작, 독락정

길이 난 곳을 따라 걷다 보면 둘레길의 시작을 알리는 독락정에 올라 숨을 고를 수 있다. 언뜻 닮은 한옥 두 채가 비슷한 위치에 자리해 있지만 마을에 가까운 곳이 영모사, 대청호와 더 가까운 곳이 독락정이다.

독락정은 1630년 절충장군 충주부사를 지낸 주몽득이 처음 세운 정자로 사뭇 고독하게 느껴지는 그 이름과 달리 선비들이 모여 금강을 바라보며 담론을 즐겼던 곳이다. 훗날 몇 차례 보수돼 서당으로 사용됐다. 돌담을 따라 독락정에 올라, 탁 트인 금강을 바라보면 이곳에 정자를 세운 선조들의 심미안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영모사는 초계 주씨의 사당으로 알려져 있다. 독락정과 달리 문이 잠겨있어 내부를 둘러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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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정에서 본 금강 ⓒ 월간 옥이네

 
독락정 아래로 물이 비쳐 보이는 뜰과 기다란 갈대, 몇 척의 낡은 배와 낚시꾼의 진중한 모습도 볼 수 있다. 푸른 금강을 향해 낚싯대를 드리우는 강태공 주변으로 이곳의 옛 모습이 선명하게 비쳐 보일 듯 잔물결이 깨끗하게 반짝인다. 독락정을 알리는 팻말을 지나, 낙엽이 흩날리는 흙길 위에 올라서면 이제부터는 저마다의 속도로 등주봉 둘레길을 즐기면 된다.

앞으로 등주봉 둘레길의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는 둘레길 조성사업, 자전거 도로 개설 등 안남면 주민 사이에서 이곳의 활용방안이 계속해서 논의되기 때문이다. 이곳의 훌륭한 풍광을 관광자원으로 삼아 효율성을 살리고,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구역을 데크길로 조성하자는 등 주민들의 의미있는 제안이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세종에서 둘레길을 찾았다는 김지우씨는 "등산로에 비해 표지판이 적고, 앉아서 풍경을 보며 쉬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벤치가 적은 것이 아쉬웠다. 휴식하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면 더 유명해질 것 같다"며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어 지금은 지금대로 좋다"고 말했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강을 곁에 두고 걸을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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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등주봉 둘레길 ⓒ 월간 옥이네

 
대부분의 방문객은 면사무소에 차를 대고 한반도 전망대를 거쳐 등주봉 정상에 닿는다. 이후 고성 혹은 피실 방향으로 하산해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둘레길을 밟게 된다. 하지만 느긋하게 걸으며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스며들고 싶은 이들에게는 둘레길은 훌륭한 명소가 된다.

대전에서 둘레길을 찾은 방문객 이정미씨는 "텐트와 간단한 낚싯대를 챙겨 오빠네 가족과 함께 종종 이곳에 온다. 특히 사람이 적은 평일이 고요한 편이라 평일에 더 자주 방문하고 있다"며 "등산이 힘든 사람들에게 둘레길을 추천한다. 이곳의 매력은 각자 가고 싶은 만큼 걸어갔다가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 풍경은 어디에서 감상하든 아름다워서 얼마나 멀리까지 걸어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둘레길의 매력을 설명했다.

이정미씨의 일행 심영훈씨 역시 "때로 등산은 힘들고, 나무로 가득 찬 주변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탁 트인 강변을 걸으면 쌓였던 걱정거리도 사라진다"며 이곳을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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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등주봉 둘레길 풍경 ⓒ 월간 옥이네

 
독락정에서 시작해 약 30분 정도 걸으면 고성, 조금 더 걸으면 피실과 금정골까지 이어진다. 장마철에는 꽤 긴 이 구간이 물에 잠겨 둘레길을 걷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곳이 가을 이후에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다.

카메라를 가져다 대는 곳마다 훌륭한 사진이 탄생할 테지만, 사진 생각을 잠시 접고 풍경을 마음에 담으며 걸어보자. 이렇게 가까이, 이토록 아름답게 반짝이는 강을 곁에 두고 걸어볼 기회가 흔치 않다.

월간 옥이네 2020년 11월호(통권 41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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