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북한전문기자의 조언 "'준비되지 않은 통일'을 준비해야"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695] 안정식 SBS 북한 전문 기자

등록 2020.11.30 16:42수정 2020.11.30 16:42
0
원고료로 응원

안정식 SBS 북한 전문 기자 ⓒ 안정식 제공


안정식 SBS 북한 전문 기자가 지난 10월 하순 <빗나간 기대>라는 책을 출간했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가장 좋은 방향은 남북 교류를 통해 통일되는 것이지만 북한 변화에 따라 급작스러운 통일이 될 수도 있고 우린 그걸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통일 후 제도들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책에 대한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서 지난 11월 27일 <빗나간 기대>의 저자인 안정식 기자를 전화로 연결해 보았다. 다음은 안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통일, 기대와 달리 갑작스럽게 이뤄질 수도" 

- 지난 10월 <빗나간 기대>라는 책을 출간하셨는데 소회가 어때요?

"이 책을 거의 4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서 썼는데요. 미진한 부분들이 있긴 합니다만, 어쨌든 오랜 기간의 노력을 결과물로 내서 일단락 지었다는 점에서 다소 홀가분한 면이 있습니다."

- 많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던데 의도하셨어요?

"초고를 쓰고 나서 원고를 다듬을 때 이 책의 주 독자층을 누구로 해야 될 것이냐는 부분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렇다면 읽기 쉽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책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이 교류 협력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하나가 되는 소프트랜딩 방식이 돼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소프트랜딩 통일을 기대한다고 정말 소프트랜딩 통일이 현실화 될 것이냐는 부분은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남북한의 상황을 볼 때 소프트랜딩 방식의 통일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겠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입니다.

남한의 경우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계속 대북정책이 널뛰기하듯 바뀌면서 정책의 일관성이라는 것이 지켜지지 않고요. 북한의 경우를 보면 워낙 세습 독재 체제가 강력해서 개혁개방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쉽지 않아요. 이런 점을 고려해본다면 우리가 원하는 소프트랜딩 통일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하드랜딩 방식의 통일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거고요."

- 부제가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통일'인가요?

"준비된 통일을 누구나 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준비되지 않은 통일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고, 그렇다면 준비되지 않은 통일이 다가왔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거기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자는 게 제가 책을 저술한 취지죠."

- 준비되지 않은 통일이라는 게 어떤 건가요?

"준비된 통일이라는 건 남북 정부가 대화와 협력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하나의 정부를 구성해 가서 통일의 충격에 대해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통일이겠죠. 하지만 이런 경로를 따라가지 못한 상태에서 김정은 체제가 갑자기 무너진다거나 또는 다른 돌발적인 상황에 의해서 예상치 않은 통일의 길이 열릴 경우에 대처해야 할 수 있는데요. 이런 것이 바로 준비되지 않은 통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러나 북한 정권이 무너진다고 해도 그게 꼭 통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도 있어요. 

"김일성 일가의 세습 권력이 무너진다고 반드시 통일로 갈 것이냐는 부분은 명확지 않아요. 그 당시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작용하겠죠. 하지만, 북한 체제가 상당히 돌발적인 상황으로 변화할 경우에는 통일의 창이 열리는 유동적인 국면에 접어들게 될 겁니다. 통일의 창이 열리게 되는 시기가 온다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그 기회를 잡아야겠죠."

- 하드랜딩은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됐을 때 통일비용이 많이 들지 않나요?

"독일도 생각보다 통일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사회복지 부문에 통일비용이 많이 들었죠. 남북한은 독일보다 경제 격차가 큰데, 독일처럼 합쳐진다면 통일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겁니다. 그래서 저는 통일 이후에도 남북한을 한시적으로 분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소프트랜딩 통일이 어려울 경우 하드랜딩 통일에서 인위적인 소프트랜딩 단계를 마련하는 것이죠."

- 그럼 왕래도 안 되나요?

"남북한을 한시적으로 분리한다는 건 남북한 주민 간의 자유 왕래도 제한된다는 겁니다. 주민들이 마음대로 오가게 되면 분리가 될 수 없어요. 남북한 체제를 한시적으로 분리한다는 건 한시적으로 두 개의 시스템으로 가는 겁니다.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갔지만, 중국 사람들이 홍콩 갈 때 마음대로 못 가거든요. 허가를 받아야 갈 수 있단 말이죠. 남북한의 한시적 분리 기간에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왕래가 가능합니다."

- 그럼 통일했을 때 완전히 합쳐지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좀 다를 텐데요. 제가 중앙집권 국가형 통일과 함께 남북한의 한시적 분리를 얘기했잖아요. 그런 한시적인 분리를 해소하는 기간은 너무 길게 가져갈 수 없습니다. 남북한 통합의 속도를 높여 한시적인 분리 기간은 최소한으로 단축시켜야 합니다.

다만, 한시적인 분리가 종료되고 남북한 주민들의 자유 왕래가 이뤄지더라도 남북한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의 차이나 정서적인 갈등까지 해소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죠. 완벽한 의미의 통합이라는 것이 가능하려면 적어도 한 세대 내지 두 세대 이상 가야 될 거라고 봅니다."

"정치적인 통일을 무리 없이 이뤄내는 게 가장 중요"

 

<빗나간 기대? 책 표지 ⓒ 늘품플러스


- 책 초반에 어느 정부든 '내로남불'이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제가 소프트랜딩 방식 통일이 어렵겠다고 보는 이유 중 하나가 남한에서 대북정책 일관성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유가 뭐냐면 진보와 보수 세력이 적대적으로 분열돼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는 사실상의 적이잖아요. 상대방을 어떻게든 짓밟고 말살시켜야겠다는 정도까지 적대감이 높아져 있다 보니 어떤 사안에 대해 잘잘못을 제대로 따지는 게 아니라 내 편이냐 다른 편이냐에 따라 대응이 달라집니다. 진영 챙기기에 몰두하는 '내로남불'은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적대적인 분열이 높아진 상태에서 어느 한쪽이 정권을 잡으면 상대 정권이 행했던 정책을 180도 뒤집어버리죠. 대북정책은 특히 더 그렇고요. 대북정책이 정권마다 일관성이라는 걸 기대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니, 북한을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소프트랜딩 통일로 가는 게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 그게 꼭 우리나라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미국도 정권이 바뀌면 다 바꾸지 않나요?

"미국도 문제가 있으니 우리 문제도 어쩔 수 없다고 볼 수 없죠. 적대적인 정치적 분열의 문제를 어떻게든 완화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분열이 이렇게 심화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 책에서 크게 세 가지 정도를 지적했습니다. 분단과 권력구조, 인터넷 시스템 같은 것들입니다. 북한이 존재하는 한 이념 갈등은 피할 수 없고요.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가 분열을 심화시키는 측면이 있습니다. 끼리끼리 뭉치게 하는 인터넷 시스템도 분열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권력구조 부분에 대해서는 책 후반부에 약간 기술한 게 있는데요. 대통령제는 대통령 후보를 중심으로 뭉쳐진 캠프가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을 매번 하고 있거든요. 나의 주군이 이기면 전리품이 떨어지지만, 주군이 실패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캠프에 모여든 사람들도 사생결단의 싸움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내각제를 고려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물론 내각제도 여야간의 싸움이 있긴 합니다만, 선거가 대통령 후보라는 개인이 아니라 정당과 지역 후보자를 향해 치러지는 만큼 대립의 정도가 완화되는 점, 선거 때문에 캠프를 꾸릴 필요가 없어 전리품에 목을 매는 사람들의 사생결단 전투가 사라진단 점 등이 분열의 정도를 완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죠."

- 통일을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책을 보니 복잡하더라고요. 그중에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보세요?

"남북의 달라진 점들을 통합하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만,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남북 간의 정치적인 통일을 무리 없이 이뤄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대외적으로 보면, 주변국들이 통일에 호의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의 간섭에서 벗어나 통일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고요. 대내적으로 보면, 남북 간 혹은 남한 내부에서 통일의 방식 등을 둘러싸고 갖가지 이견이 불거질 수 있는데 이러한 이견을 극복하고 정치적인 통일체를 대내외적으로 확고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 통일을 어떤 형태로 할 건지도 문제 같아요. 국가연합이나 연방제도 있죠. 기자님은 어떤 방식이 좋다고 보세요?

"통일의 형태, 통일방식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기술했는데요. 우리의 기존 통일방안을 보면 '남북연합'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남북의 분단이 오래된 만큼, 과도적 통일체제인 남북연합을 거쳐 통일로 간다는 것이죠. 남북연합은 국가연합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 제가 이번에 책을 쓰면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가 남북한의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제가 얻은 결론은 국가연합이나 연방제는 남북한 현실에서 맞지 않다는 겁니다."

- 이유가 있을까요?

"국가연합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유럽연합인데요. 유럽연합의 구성국은 지금 27개국입니다. 유럽연합의 주요 의사결정은 이사회와 유럽의회에서 이뤄지는데, 이사회와 유럽의회에서는 국력이 큰 나라들이 좀 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로 돼 있습니다. 독일과 몰타의 GDP가 270배 차이가 나는데, 독일과 몰타가 똑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독일 국민들이 납득하기 힘들겠죠. 즉, 국가연합이라도 국력이 커서 재정부담 많이 하는 나라들이 의결권에서도 좀 더 많은 몫을 차지하는 것이고, 여러 나라가 모여있다 보니 이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북이 국가연합을 이루면 모든 것이 일대일의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제력의 격차로 거의 모든 재정부담은 남한이 다 져야 하는데, 의결권에서는 북한이 동등하게 50%의 지분을 갖고 북한의 의중이 상당히 반영돼야 하는 상황. 초기에는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남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일대일의 결합은 둘 사이에 분란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재정부담과 의결권의 부조화, 중재자 없는 일대일의 결합, 오랜 기간 계속돼 온 대결의 관습 등을 고려해볼 때 남북 국가연합이 제대로 작동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 그럼 연방제는 어때요?

"연방제도 국가연합 논의와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남북 연방은 구성국이 단 2개로 이뤄지는 연방인데 모든 것이 일대일로 구색맞추기가 되면서 비효율성과 함께 남한 출신, 북한 출신 간 대립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그럼 아예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는 게 낫다고 보세요?

"그렇습니다. 남북의 통일은 결국 단일 중앙집권 국가 체제로 가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봅니다. 분단 상태가 오래됐기 때문에 국가연합이나 연방국가 형태를 고려하는 사람이 많은데, 남북 국가연합이나 남북 연방은 통합을 증진시키기보다 갈등을 심화시켜 결국은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하나의 중앙정부가 설립돼서 남북이 일대일로 치고받을 수 있는 상황을 없애버리고, 남북한의 통합작업과 북한 지역 개발작업을 중앙정부가 총괄적으로 해나가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봅니다."

- 방송 개방에 대한 부분도 있죠. 남한 방송을 북한에 틀어줘야 통일에 도움 되지만 김정은 정권이 허용 안 할 거라는 부분이 있는데 거꾸로 북한방송 남한에 나오게 하는 게 가능할까요?

"북한 방송의 남한 개방 부분은 보수적인 쪽에서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도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할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남한 방송을 북한에 개방하고 북한 방송을 남한에 개방했을 때 훨씬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건 북한 주민들입니다. 북한이 만약 남한 방송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우리는 전폭적으로 북한방송 개방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성숙도로 볼 때 북한 방송 개방된다고 해서 남한 주민들이 북한 선전·선동에 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은 과도한 걱정이라고 봅니다."

- 통일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 내부의 적대적인 분열을 완화시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통일이 가능한 역사적인 시기가 왔을 때 내부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못 죽여서 안달인 상황이면 외세가 개입해서 주변국 마음대로 한반도 상황을 요리하는 해방 이후의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안정식 #빗나간 기대 #통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