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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의 자격을 묻습니다

[정상호 교수의 시대 세대 공감] 개각 하마평에 오를 분들께

등록 2020.12.02 07:45수정 2020.12.0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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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총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유은혜 사회부총리 등 정부 부처 장관들이 지난 9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2회 국회 개회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왜 '장관학'(The Ministerial Studies)은 없을까? 

세상이 바뀌어서 그런지 대통령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고 다녔던 우리 또래들 중엔 서슬 퍼런 유신시절에도 장래희망란에 '대통령'이라고 당당히 적었던 철부지들이 제법 있었다. 시골 통영에서 부산으로 유학을 갔던 중3 소년이 하숙집 책상 위에다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는 글귀를 적고 일로매진해 결국 이 나라의 14대 대통령이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에게 대통령에 대한 포부는 결과적으로는 허세였지만 스스로는 호연지기라고 믿었다.

이제 모든 초·중·고 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는 문화·예술·스포츠 전문가나 교육 전문가 쪽 직군이 됐다.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이 나라의 국민들은 무소불위의 권력과 권한을 행사할 것으로 생각했던 대통령의 직위는 생각보다 고되고, 퇴직 이후의 삶을 보면서 보통 사람들보다 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그렇지만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서 대통령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코로나19 상황과 국격을 무너트린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서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대통령의 리더십과 자질을 꼼꼼하게 밝힌 책과 논문, 즉 '대통령학'(Presidential Studies)은 차고 넘친다. 대개의 줄거리는 성공한 대통령과 실패한 대통령을 판별하고, 탁월한 업적을 남겨 존경받는 대통령의 공통된 리더십과 자질을 찾아내 설명하는 것이다.

궁금한 점은 나라 발전을 위해 성공한 대통령과 좋은 시민(good citizens)에 대한 연구와 논의는 그렇게 많은데, 왜 정부와 내각의 주축인 장관의 리더십에 대한 이론적 연구나 시민사회의 공론화는 찾아보기 어렵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과 학계에서 다룬 '장관론'의 십중팔구는 서울대와 SKY 대학의 비중이 몇 퍼센트고, 영남과 호남의 비중이 얼마인지 등 능력과 무관한 출신 배경이 관심의 초점이었다. 역대 장관 중 누가 최고였는지를 조사한 과거 한 언론의 조사결과는 코미디에 가깝다. 왜냐하면 소수의 평가자(10명의 행정학 교수)와 대상(김영삼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까지 경제장관) 대부분이 특정 대학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연말과 연시를 앞두고 개각설이 나돈다. 유능한 장관은 성공한 정부와 대통령을 위한 필수요소다. 임명권자와 하마평에 오른 대상자들 그리고 논두렁의 기라도 받아 장관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평소에 생각해둔 '장관의 자격'을 제안하고 싶다. 물론, 여기에는 '참신하고 도덕적이며, 유능한' 같은 너무 당연해서 분별력이 없는 이야기들은 빠져 있다.

'대한민국 장관'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제언: 장관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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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모습. ⓒ 유성호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서 장관의 첫 번째 자격은 '준비된 장관'이다. 우리나라 장관의 재임 기간은 짧기로 소문이 나 있다. 1948년부터 2013년까지의 장관 95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관의 평균 재임 기간은 13.86개월이다. 장기 집권을 제 맘대로 했던 권위주의 정부를 빼고,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장관 평균 재임 기간은 10.4개월과 10.8개월로 채 1년이 안 된다(성시영, 2015, "장관의 재임기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한국행정학회보 제49권 제3호).

교육부장관을 두 차례 역임했던 안병영 장관의 회고에 따르면, 장관의 업무는 새벽에서 자정까지 살인적 일정으로 꽉 짜여 있다. 배우고 익히면 즐겁다(學而時習之 不亦說乎)는 논어(論語)의 경구는 우리나라의 장관직엔 맞지 않는 말이다. 학습 기간을 허용하지 않는 단임 대통령제는 배워서 알만한 때가 되면 장관을 교체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관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해당 부처의 핵심 현안과 대안, 그리고 말발이 쎈 이해집단(정책 고객)에 대한 식견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장관의 두 번째 자격은 마치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15대 입법과제'를 메모해 갖고 다녔던 것처럼, 자신이 장관이 되면 꼭 이루고 싶은 3대 정책을 미리 정리한 '출사표(出師表)'를 가슴에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출사표'는 아주 세세한 설계도가 아니라 든든한 터와 기둥이 있는 한 장 정도의 조감도나 청사진이면 족하다. 거기에는 제갈공명이 그랬던 것처럼 나라를 위한 철학과 소신 그리고 승리(정책)를 위한 인사와 전략의 대강이 담겨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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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은 지난 11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친인권적 보안처분제도 및 의무이행소송 도입 당정협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그래서 세 번째 자격이 관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선출직 대표가 직업 공무원을 지휘·감독하는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그렇지만 관료사회 전체를 적대시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포획돼서도 안 된다. 

관료조직은 본질적으로 악하거나 선하지도 않고, 유능하거나 무능하지도 않다. 다만 인간사가 그렇듯이 그들은 조직 자체의 이익과 논리를 따른다.

이를 입증할 증거는 공동체가 아니라 '조직을 사랑하고 충성'한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당당한 발언이다. 외부의 전문가가 어렵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서 장관이 된다한들 그가 새롭게 임명할 수 있는 자리는 5명 내외의 비서와 정책보좌관뿐이다. 설득이든 타협이든 아니면 개혁 드라이브이든, 구식 표현으로는 조직 장악력을, 세련된 요즘말로는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할 복안을 다듬어놔야 한다.

마지막 자격은 추진력이다. 20여 개 내외의 정부 부처 중 항상 언론에 오르내리는 장관은 서너 개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거론된 장관은 법무부,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정도다.

그렇다면, 나머지 부처들은 현안이나 굵직한 과제가 없었던 것일까? 솔직히 말해 추미애 장관과 김현미 장관이 언론에 도배되는 상황을 나머지 장관들과 그 부처의 공무원들은 내심 반길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불경기나 침체, 대형 참사나 재난 때문에 경제부처와 사회부처의 장관들의 임기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이다(성시영, 2015). 코로나19와 같은 비상 상황은 의전과 일상적 업무(routine)만 보면서 무사안일을 바라는 평범한 관료와 소심한 장관의 이해를 딱 맞아떨어지게 만들고 있다.

문 대통령이 안 보인다고요?

사람들은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끝 모를 갈등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안 보인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대통령만 있지 실세이든 관리형이든 장관들의 역할이 잘 안 보인다는 점이다. 임기 중반을 지나온 시점에서 부처별 핵심 국정과제의 완수를 위해 손 놓고 있지 말고 사고라도 치는 것이 대통령의 신임을 얻는 방법이다.

국민의 자격으로 당장 이번 개각의 하마평에 올라 있을 예비 장관이나 미래의 장관을 꿈꾸고 있을 여야 모두의 잠재적 후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안주머니에는 어떤 출사표가 들어 있나.
덧붙이는 글 이 칼럼을 쓴 정상호씨는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로 현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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