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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지로 쓰러진 엄마 "무서워서 못 만지겠다"는 딸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패러메딕입니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간절해지는 사소한 일상들

등록 2020.12.11 12:57수정 2020.12.1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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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캐나다 온타리오 주 시골마을에서 패러메딕(응급구조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911 현장에서 만나고 겪는 이 곳의 삶,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기자말]
"엘리자베스 여왕 사진이... 하나, 둘, 셋... 저것까지 네 개..."
"유니온 잭(영국 국기)이 하나, 둘... 세 개..."


태엽을 감아 돌아가는 낡은 시계의 톱니바퀴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파트 거실을 가득 채운 왕실 관련 사진, 책 그리고 왕실 문양이 새겨진 찻잔을 세고 있었다. 이 곳을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관리하던 분은 지금 사망한 채 자기 방 침대 위에 누워 있고, 그녀의 딸은 발코니에서 담배를 입에 문 채 울면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 어머니와 통화를 했던 딸은 직접 전할 물건이 있어 그녀의 집을 찾았다가 침대 위에 가지런히 누운 채 숨져 있는 어머니를 발견하고 말았다. 딸은 911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으나 어머니를 바닥으로 내려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라는 지령실(Dispatcher)의 지시를 거부했다. "무서워서 못 만지겠어요!" 그녀가 울면서 한 말이다.

죽은 어머니의 손도 잡아주지 않은 딸
 

딸은 911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으나 어머니를 바닥으로 내려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라는 지령실(Dispatcher)의 지시를 거부했다. ⓒ Pixabay

 
출동 콜을 받고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턱과 손이 부드럽게 열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시강(Rigor mortis, 사후경직)이 형성되는 중임을 알 수 있었지만 이제껏 내가 만져본 시신 중에 그나마 온기가 남아서 불과 얼마 전까지 살아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잘 덮어드리고 방을 나와서 무전으로 경찰에 검시관(Coroner)과 함께 와줄 것을 요청했다.


경찰을 기다리며 집안을 둘러보는데 발코니에서 딸이 울며 어디론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사실 아까 그녀가 했던 그 말 "무서워서 못 만지겠어요!" 때문에 마음이 영 불편했다. 그녀는 아예 방 안으로 들어와 어머니를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시체잖아요." 그녀가 정색을 하며 한 말이다.

내가 불편했던 것은... 심폐소생술로 어떻게든 다시 살려볼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뿐만 아니라, 이유가 어찌되었든 부모고, 엄마인데... 남이 아니잖나. 쉽게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 중요한 것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 같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딸은 여전히 발코니에서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피며 욕이 섞인 말을 전화기에 쏟아붓고 있었다. 나는 당장 "이리 와"라며 그의 손을 채어 잡고 방으로 이끌고 가서 "당신 엄마의 체온이야. 더 식기 전에 손이라도 잡아드려. 그 따뜻함을 기억하면서 당신의 남은 인생을 잘 살아. 그게 이 분이 아직까지 식지 않은 이유고 당신 어머니가 당신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일 거야"라고 말하고 싶은 상상을 했다. 상상만.

소심한 나는 그저 그 딸이 안타깝고, 섭섭하고, 미운 마음에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아마 그녀 역시 갑자기 닥쳐온 슬픔과 충격에 워낙 경황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단장된 장례식용 시신 말고 날 것 그대로의 시신을 보면 제 부모라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여태 만져본 시신 중에 가장 따뜻한 시신이다보니 그런 상상을 했나보다. 그냥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경찰이 도착했고 현장을 인계하는 중에도 딸은 바깥에서 여전히 그러고 있었다.

위급한 순간, 아내와 전화통화를 하고 싶다던 남편
 

몇 분 후 환자 맥박은 분당 34회까지 떨어졌으며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아예 잡히지 않았다. ⓒ Pixabay

 
그날 오후 4륜 바이크를 고치던 50대 남성이 극심한 흉부 통증을 호소했다. 현장에서 심전도를 해봤더니 II, III, 그리고 aVF에 선명하게 찍히는 심근경색. 온 몸으로 피를 보내는 좌심실 쪽 관상동맥에 혈류공급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혈류를 통해 근육으로 산소가 전달되지 않으면 근육 세포는 죽어가고 근육은 손상을 입거나 괴사하게 된다. 이 환자의 심장 근육에 시작된 손상을 멈추지 못하면 이 환자는 곧 사망하게 될 것이다.

혈관 안에서 혈소판이 서로 들러붙지 않도록 아스피린을 투여했다. 심정지 상황에서 바로 쇼크를 주기 위해 환자 가슴에 제세동 패드를 붙이고 가장 가까운 심장전문병원인 오타와 심장센터(Ottawa Heart Institute)로 달려갔다.

오타와 심장센터로 막 출발했을 때만 해도 환자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상태가 괜찮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아내 말을 잘 들어야 오래 산댔는데 내가 그렇네".

그러다가 우리 관할구역인 렌프루 카운티(Renfrew County)를 벗어나 오타와에 접어들 때쯤부터 환자가 식은 땀을 흘리며 구토를 한다. 다시 찍어 본 심전도에서는 II, III, aVF에서 ST 상승이 아까보다 더 심해졌다. 심장근육의 손상이 좀전보다 더 심해졌다는 뜻.

몇 분 후 환자 맥박은 분당 34회까지 떨어졌으며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아예 잡히지 않았다. 관상동맥이 막히면서 발생한 좌심실의 괴사 때문에 심장이 제대로 뛰지 못한 탓일 것이다.

'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여기서 이러면 안 되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환자가 물었다.

"내가 지금 안 좋아지는 거 맞지?"
"네, 그런 것 같네요."
"심폐소생술인지 뭔지, 그거 하지 말아줘."
"심폐소생 포기각서(DNR: Do Not Resuscitate) 안 갖고 계시니까 심장이 멈추면 저는 일단 심폐소생술을 해야 해요."
"와이프하고 얘기를 해야 해. 와이프하고 얘기하고 싶어."
"지금... (순간 짜증이 좀 났다.) 그거 논의할 때는 아니고요, 다음에 만들어 놓으세요(나도 참... '다음에' 만들어 놓으랬다, '다음'에. 다음이 없어야 좋은 건데)."
"아니, 와이프 목소리 듣고 싶다고."


이 와중에 내 못난 영어가 또 말썽이다. 수능 영어 듣기평가를 보면 과연 나는 몇 문제나 맞힐 수 있을까 생각하며 최악을 대비했다. 바로 삽관하고 인공호흡할 수 있도록 앰부백(BVM)과 아이젤(I-Gel)을 꺼내 산소통과 연결해놨고, 아직은 의식이 있는 환자의 코로 산소를 공급하면서 시속 135 Km로 운전 중이던 파트너 K에게 말했다.

"K, 우리 조금만 더 빨리 달려볼까? 이 환자 곧 심정지 올 것 같아."

그리고 환자에게 말했다.

"병원 도착할 때까지만 버텼다가 아내 분 직접 뵙고 말씀하세요."

그 사이 II, III, aVF의 ST는 더 올라갔다. 제길, 좀 전보다 더 나빠져버렸어.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급격히 나빠지는 경우는 아직 못 봤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애타게 기도하는 사이 차로 꽉 막힌 길을 잘 헤치고 달리던 차가 417번 고속도로 위에서 딱 멈춰섰다.

나는 아직도 우리 앞을 막고 있던 흰색 트럭과 그 트럭 앞으로 뻥 뚫린 길을 생생히 기억한다. 정말 가끔씩 그렇게 작정하고 안 비켜주는 차들이 있는데, 그런 날은 쌍욕 터지는 날이다.

"(우리말로) 저 &;@#는 뭐야!!!!!"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딱 그 마음이야."


파트너 K가 말했다. 다시 까무룩 의식을 잃어가는 환자를 소리쳐 깨우니 눈 뜨자마자 다시 아내를 찾는다.

"와이프하고 얘기하고 싶어."
"병원 다 왔어요. 5분만 더 가면 돼요. 딱 5분만. 5분만 버텼다가 직접 하시라고요."


사실 그렇게 말하는 나 역시 그 때까지 이 환자의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저 5분 안에는 병원에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K가 사고를 각오하고 핸들을 꺾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오랫동안 더, 그 길 위에서 천금 같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암튼 그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심장센터에 도착했고, 병원 도착 전에 미리 무전으로 통보를 했던 터라서 의료진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를 옮기면서 의료진들과 장비로 발 디딜 틈 없는 그 공간에서 모두가 다 한꺼번에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환자에 대한 경과보고를 하고 추가 질문에 답변을 하는 것으로 환자 인계를 마쳤다. K와 나는 진이 빠져서 병원 계단에 한동안 걸터 앉아 멍하니 있었다. 

"우리, 뭘 좀 먹을까?"

서울이었다면 퇴근하고 공평동 꼼장어집에서 소주라도 한 잔 했겠지만 아쉬운 대로 달달한 팀호튼 커피에 도너츠 하나씩 씹으며 베이스로 돌아왔다.

삶의 끝에 다다르면 간절해지는 사소한 일상

오타와(Ottawa)에서 내가 일하는 렌프루 카운티(Renfrew County)로 돌아오는 길은 서쪽으로 향한 길이다. 붉은 노을이 서쪽으로 뻗은 그 길을 살포시 덮고 있었다. 오늘 만났던 환자들 생각이 났다.

방금 그 심근경색 환자는 아내에게 무슨 말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 부부는 살아서 만나 서로를 꼭 안아 주었을 것이며, 그들에게 일어났던 그 위태롭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누군가에게 감사했을 것이고, 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게 참 별 게 아닌데... 우리가 매일처럼 식구들과 가족들과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는 그런 사소한 일상인데 신기하게도 그 사소한 일상은 삶의 끝에 다다르면 죽기 전 마쳐야 하는 신성한 의식이 되고 만다.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서로를 안은 품에서 올라오는 살냄새를, 대화에서 전해지는 안온함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더 절실히 간구하는 것은 그것이 죽기 전 치러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절차라서가 아니라, 바로 그런 일상의 사소함이야말로 우리 삶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록 바쁘고 정신없이 살며 그 사소함을 잊고 사는 듯하지만, 그들의 삶을 행복하게 해준 것이 무엇임을 은연중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음이 다가왔음을 깨닫는 순간 그 사소함을 애타고 간절하게 불러보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 딸이 어머니 손조차 잡기를 한사코 거부했던 것이 유독 나에게 불편하게 느껴졌던 이유를 굳이 찾으라면 아마 그래서 그랬을 거라고, 변명처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캐나다 #패러메딕 #PARAMEDIC #911 #심근경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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