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한 달에 7일만 일할 것' 일용직의 암묵적 규칙

[쿠팡 일용직 노동, 2년의 경험 ④] 권리를 포기하는 악순환

등록 2020.12.04 19:09수정 2020.12.04 19:09
0
원고료로 응원
a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쿠팡 고양 물류센터. ⓒ 연합뉴스

 
좋은 아르바이트의 기준은 무엇일까? 높은 시급, 쉬운 일, 알바생 괴롭히는 사용자가 없는 곳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다. 이러한 기준들은 괜찮은 기준들이고, 실제로 나도 아르바이트를 고를 때 위에 열거한 조건들을 고려해보고는 한다. 

최근에는 이런 조건들에 다른 조건을 하나 더 추가하고 있다. 바로 '노동법 준수 여부'다. 사실 일이 어렵고 최저임금만 받는다고 하더라도, 노동법을 제대로 지키는 사업장이라면 아르바이트할 때 걱정할 요소가 확 줄어든다. 적어도 내가 지금 일하는 곳에서 내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터에서의 노동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노동법이 내가 일할 때 잘 와닿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그동안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왔지만, 쿠팡에서 근로계약서에 처음 사인을 했다. 

처음 쓴 근로계약서

내 추천을 받아서 쿠팡에 입사한 친구도 근로계약서를 그때 처음 본다고 말했다. 나도 이전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근로계약을 체결해서, 근로계약 자체는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근로계약서의 실물을 본 것은 최초였다.

편의점 사장님은 내게 잘 대해줘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부럽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편의점이 망해서 알바를 그만둘 때도 나는 근로계약서의 원본을 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법과 정치를 배우면서 '근로계약서를 쓰세요'라고 배웠지만, 막상 실물은 보기 힘든 것이었다. 물론 내게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에게 편의점 사장님은 한없이 높은 위치에 있는 고용주였다.


곧 매번 출근할 때마다 일용직 근로계약서에 사인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렇지만, 근로계약서는 볼 때마다 신기했다. '몇 시간부터 몇 시간까지 일한다'라고 적힌 문구들은 그 자체로 별것 아니었지만 내게 뭔가 주장할 권리가 있다는 기분이 들어 웃음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1개월 7일 원칙

"상현이 내일 출근할 수 있니?"
"저 내일 월 8일째라서요. 못 나와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계약직 노동자들이 퍽 아쉬워하며 이해해준다. 사실 나는 내일도 출근할 수 있는 사람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물류창고에 나올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다.

주말마다 출근하면서 알바 혹은 투잡을 뛰는 사람들에게는 한동안 그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1개월에 8일을 넘지 말 것. 

이러한 규칙이 만들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4대 보험료 때문이었다. 월 60시간 이상 일하면 4대 보험 전액을 징수하는데, 이것이 꽤 부담이었다. 일급이 6만 원이라고 하면 약 3만 원 정도가 4대 보험료로 징수됐다.

일급의 반이 날아가는 상황을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초단시간 근로자 기준에 맞추는 것이었다. 쿠팡 물류창고의 공식적인 노동시간은 일 8시간이니 한 달에 7번이면 56시간. 이렇게 하면 월 60시간을 넘기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나와 같이 방학을 제외한 시기에 주말에만 나오는 학생들이나 투잡족들은 1달에 7일만 출근해 일하고는 했다. 돈이 아까운 것도 있었지만, 평일에는 하던 일을 하고 주말에는 쿠팡 일을 하는 패턴 중 쉬는 날이 하루 정도는 필요한 상황이었다.

즉, 1개월 7일 원칙은 이들이 돈을 아끼는 동시에 한 달에 몇 안 되는 소중한 휴식 시간을 위해 세워진 것이다. 

나는 일급의 반이라도 돈을 받는 게 어디냐면서 매 주말을 꽉 채워서 나갔지만, 곧 그만두었다. 쉬는 날이 사라지다 보니 신경이 예민해지고 우울증만 깊어졌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내가 다니던 쿠팡 물류창고에서 주휴수당 산정 방식을 주 단위가 아니라 일 단위로 바꾸면서 해결되었다. 주5일을 채우지 않아도 월 며칠만 근무해도 적은 돈이지만 주휴수당이 나오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4대 보험료가 공제되는 것으로 바뀌어서 일급이 깎이는 부담은 없어졌다.

부담만 되고 혜택은 없는?
 
a

경기도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모습. ⓒ 연합뉴스

 
주말에 시간을 내어 쿠팡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투잡을 뛰는 노동자들은 다들 일급이 줄어들어 4대 보험 징수를 피했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다. 근본적으로 4대 보험에 대해 불신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주제로 동료 노동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은 대체로 4대 보험이란 필요하다는 데는 견해를 같이했다. 하지만 지금 4대 보험을 믿기 어렵다고도 밝혔다. 

"지금 당장 부담만 되고 나중에 혜택은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한 노동자가 내게 말했다. 

보험이란 장래 일어날 사건을 대비해서 현재의 돈 일부를 내는 상품을 말한다. 그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4대 보험이 일급만 차감시키고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불신이 많았다. 

내가 낸 보험료로 적당한 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 일하다가 다쳤을 때 산재를 신청했는데 나중에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지 등등. 보험을 불신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에게 일급의 반을 떼어가는 보험을 거부한다고 누가 이들을 탓할 수 있을까? 어떤 종류의 노동이든 사회보험 아래에서 보장받을 수 있게 해야 하지만, 이런 맹점들이 있다.

권리에 무뎌지는 사람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에 무뎌지게 된다. 분명히 있는 권리지만, 여러 상황을 이유로 포기하게 되거나 주장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그런 권리를 행사하면 '사치'라고 하거나 이상하게 보는 경우도 있다.

내가 쿠팡을 떠날 시기의 이야기다. 쿠팡 측에서는 2년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퇴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퇴직금 요건도 충족돼 소액이지만 돈을 받고 물류창고에서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당시 쿠팡 물류창고 일용직으로 다닌 지 2년이 넘던 시기였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좋지 않았던 시기였다. 퇴직금을 받고 조금 쉬기로 했다. 그래서 같이 일하던 노동자들에게 아쉽지만 떠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내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내가 "퇴직금도 받게 되었다"라고 하자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일용직 알바에 불과했던 내가 퇴직금을 받게 되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알바가 무슨 퇴직금을 받아?"

하지만 아르바이트생도 조건만 맞으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나도 조건에 해당돼 당당히 퇴직금 신청을 하고, 소액이나마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권리였고, 아무도 제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 많아서 저런 질문이 나왔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나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제야 그는 상황을 이해해주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투였다.

그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필시 그 사람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사회의 일반적인 반응이기도 하니까. 오히려 그 노동자는 그 반응에 충실하게 나한테 반문했을 뿐이다.

나는 생활이 팍팍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사치라고 여기게 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하나하나 포기하다가 점점 자신의 권리에 무뎌지는 상황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노동자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그들 자신도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생활이 어려운데 뭔가 더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상황은 계속 빙빙 돈다. 포기하고 무뎌진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비난의 화살은 그들에게 돌려야 할 것이 아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사회가 가능할까? 이들의 부담을 경감시키면서 권리를 행사하게 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급의 반이나 깎이는 보험료로 고생하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당연하게 여기고 행사했으면 좋겠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잡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런 사회가 오기를 희망한다.

열심히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편의를 봐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노동을 한다. 하루하고 말 거라고, 쉬운 일이라고 무시할 그 무언가는 아니다.

여러 사람의 무시 속에서, 그리고 스스로가 권리를 포기하는 악순환 속에서 이들은 오늘도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간다. 이런 이들을 위한 사회일수록 더 성숙할 것이다. 4대 보험료를 두려워하던 일용직 노동자들을 배려하는 사회일수록 우리의 노동 존중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동 #쿠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2. 2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5. 5 총선 참패에도 용산 옹호하는 국힘... "철부지 정치초년생의 대권놀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