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70여 년의 한, 4·3특별법 개정 통해 풀어 달라"

[현장] 국회 앞에서 40일 넘게 하고 있는 1인 시위자들의 외침

등록 2020.12.04 14:30수정 2020.12.04 14:34
0
원고료로 응원
12월이 되자 국회 정문 앞에도 추위가 엄습했다. 1인 시위자들은 몸을 움츠리면서도 피켓을 더 강하게 쥐었다. 

적게는 두 명, 많게는 30여 명이 각자의 요구 사항을 들고 7주째 1인 시위를 하는 것이다. 여든이 넘은 고령의 어르신부터 2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제주4·3특별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개정해 달라'는 것.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가족이거나 4·3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시민들이다. 어릴 적 가족과 동네 사람들의 야만적인 폭력을 당한 사람도 있고,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도 있고, 가족이 산으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연좌제'라는 반봉건적이고 반인권적인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다. 
 

국회 앞 1인 시위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정기국회내에 통과 시켜 달라며 국회 정문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문재헌씨 ⓒ 박진우

 
1940년생으로 구좌읍 세화리가 고향인 문재헌(72)씨는 어머니가 무장대(입산자들)에 의해 희생된 유가족이다.

문씨의 어머니는 외가가 군인과 경찰들에게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친정집으로 달려가다 무장대에 의해 희생당했다.
  
공권력인 군인과 산에 있는 무장대에 의해 가족이 희생된 문씨는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사람의 명예를 회복 시켜 달라"며 시간이 날 때마다 국회 앞에 나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국회 앞 1인시위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정기국회내에 통과 시켜 달라며 국회 정문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강혜명씨 ⓒ 박진우

 
성악가 강혜명(43)씨는 증조부가 입산자들에 의해 희생된 유가족이다. 여순10·19항쟁과 제주4·3의 소설 <순이삼춘>을 소리극인 오페라로 만들어 세상에 알리고 있다. 

강씨는 "희생자 신고를 하고 싶어도 법률상 피해 신고 기간이 정해져 있어 기회를 놓치거나 신고 접수 사실을 알지 못하는 희생자들이 많이 있다"며 "특히 일본이나 제주 밖의 유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신고 기간을 자유롭게 하는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며 피해자들의 아픔을 보듬고 나누는 것이 소중한 것임을 강조했다. 
     

국회 앞 1인시위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정기국회내에 통과 시켜 달라며 국회 정문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현승인씨와 양소희씨 ⓒ 박진우

 
문화기획자인 현승은(52)씨와 국회에서 일하는 양소희(24)씨도 유가족이다. 현씨는 4·3항쟁 50주년시 범국민위원회 활동 당시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지다' 전국 순회 전을 기획하여 4·3의 진실을 밝히기 애썼던 활동가다.

양씨의 아버지는 4·3항쟁 70주년 당시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무처장을 맡아 전국을 다녔으며, 현재는 점심시간마다 짬을 내어 국회 앞에서 주장문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현씨와 양씨는 "70년의 한을 풀기 위해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매일 세상을 떠나고 있다"며 한시라도 빨리 4·3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1인 시위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정기국회내에 통과 시켜 달라며 국회 정문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김애자씨 ⓒ 박진우

   
젊은시절 제주4·3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한 <제민일보> 기자였던 김애자(55세)씨는 "야만의 역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진실을 밝혀야 한다. 특히 불법 군사재판으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의 명예회복은 4·3특별법에서 일괄 의제처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며 "수형희생자들을 얽매고 있는 범죄자라는 주홍글씨도 일괄 삭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1인 시위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정기국회내에 통과 시켜 달라며 국회 정문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허상수씨 ⓒ 박진우

 
제주4·3학살의 주범이 미국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연구하는 허상수(65)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 공동회장은 지난 10월 20일부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허상수 회장은 "불행했던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 많은 나라가 전환비용을 부담해 온 게 사실"이라며 보상금 지급에 난색을 표하는 관료들에 일침을 가했다.

이어 "두 분의 대통령이 네 번씩이나 사과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선언한 마당에 "이제는 기획재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행기 정의 확립에 나서야 한다"고 정부의 대승적 조치를 주문하였다.   
 

국회 1인 시위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정기국회내에 통과 시켜 달라며 국회 정문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윤상희씨 ⓒ 박진우


  
광목에 손수 바느질로 한 글자씩 새겨 만든 주장문을 들고 나타난 윤상희(52)씨는 생명운동가다.

그는 "과거 잘못된 교과서와 반공사상으로 4·3의 희생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고통을 주었다. 제주4·3이 인권과 평화로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4·3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국회에서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국회 1인 시위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정기국회내에 통과 시켜 달라며 국회 정문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백경진씨 ⓒ 박진우




학창시절 학생운동을 한 백경진(67)씨는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상임이사로 4·3을 알리는 늦깎이 활동가다.

그는 "4·3당시 핏덩어리로 살아남은 많은 아기가 빨갱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3자의 호적으로 옮겨 살아왔다. 이들의 부모와 조상을 찾아 주려면 가족관계등록부를 바꿔야 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법원에서 소송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무리다"라면서 "4·3특별법을 통해 일괄 처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1인 시위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정기국회내에 통과 시켜 달라며 국회 정문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유가족과 시민 ⓒ 박진우

 
국회 앞에서 4·3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는 사람들은 많을 땐 30여 명이 모이기도 한다. 이들은 국회 앞에서 국회의원과 국회 보좌진을 상대로 제주에서 가지고 온 노란 귤도 나누어 주고, 4·3특별법 개정 필요성을 담은 전단도 나눠주며 4·3특별법 개정을 처리해달라며 호소한다.  

이들의 정성에 70여 년의 추운 겨울이 멈추어지고 봄이 오길 기대해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제주 4·3항쟁 제70주년 추념식장에서 제주4·3에 봄이 오고 있음을 선언했다. 2021년 새해에는 제주에 진짜 봄바람이 불었으면 한다. 
#1인시위 #유가족 #국회 #4.3특별법 #4.3범국민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