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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1년... 저도 이런 '수험생 부모'는 처음이었습니다

고3 딸아이 학부모로 희비가 교차했던 시간들... 노력했던 모두가, 찬란한 결과를 얻길

등록 2020.12.03 09:33수정 2020.12.0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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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열린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12월 3일이 올까 싶었는데 와버렸다. 올 초만 해도,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잘 치러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 그날이 오고 말았다. 고3 딸아이는 며칠 전까지도 '수능이 연기된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또 한 번 수능이 연기될 수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는 학생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잘했든 못했든, 열심히 했든 안 했든, 이제 결전의 날이 됐다. 길면서도 짧은 1년이었다. 수험생 부모는 처음이라, 뭘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모르는 얼떨떨한 상황에서 2020년 올 한 해를 맞았다.

코로나로 등교가 연기되는 초유의 상황에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나는 어정쩡한 말로 격려했다. '너만 힘든 게 아니고 힘든 건 다 마찬가지', '지금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라는 애매한 말뿐이었다. 어쩌면 나한테 하는 얘기였는지도 모른다.

만나는 사람마다 '올해 고3들은 어떡해요. 수능 볼 수나 있겠어요? 딸이 힘들겠어요. 많이 힘들어하죠?'라며 위로와 염려를 보내주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알아서 잘하겠죠', '본인만 힘든 것도 아닌데요'라며 꽤나 쿨한 척(?) 넘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힘들어도 알아서 잘해나가겠지', '괜찮을 거야...' 라는 믿음이 내심이 있었다.

집안에서 자가격리를 하듯, 두문불출하며 공부하는 딸 아이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했다. 공부 자체도 힘들었겠지만 무엇보다 불안한 마음을 다잡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온라인 수업 기간을 잘 넘겼다.

'멘붕'이 뭔지 실감한 순간 


"이거 실화냐??"

약 두 달간의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겨우 5월 등교 수업을 시작했을 때였다. 딸 아이는 학교를 나가며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공부하며 학교 생활에도 즐거움을 찾는 듯했다. 아슬아슬하지만 그래도 제자리를 조금씩 찾아간다고 느낄 무렵이었다.

1학기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다. 5월 어느 날 오전, 동료들끼리 있는 단톡방에 누군가 속보를 올렸다. 전주 시내 한 고등학교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뉴스. 딸 아이 학교였다. 게다가 같은 고3.

그야말로 '멘붕'이 뭔지 제대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딸아이가 자주 쓰는 말, '이거 실화냐?'를 내가 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까지도 딸아이와 시험을 잘 보라고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딸아이는 모르는 듯했다. 시험 중이니 담임선생님은 전화를 받을 것 같지 않아서 학교 행정실로 전화를 해보니 학교는 그야말로 난리 북새통이었다. 아직 확진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며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날 딸아이의 학교 학생과 교직원 전원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저녁 무렵, 딸아이는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며 마음이 모두 너덜너덜해 있었다. 신세 한탄(?)을 하며 한바탕 눈이 붓도록 울었다.

딸 아이의 변신(?)이 시작된 건 그다음 날부터. 갑자기 옛날 드라마를 찾아보고 유튜브를 섭렵하며 종일 누워서 깔깔거렸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저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갑자기 태평해져서 늘어진 딸아이를 보며 나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쯤 돼서는 나도 '이게 뭔가' 싶었다. 그리고 갑자기 화가 났다.

마스크 안 쓰는 사람, 집회에 나가는 사람, 식당에 모여있는 사람들, 차량으로 빼곡한 도로, 뉴스 속에 비친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면 원망스러웠다. 자기 자식이 고3이라면 저러지 않을 거라며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딱히 그들만의 잘못이 아닌 건만 이런 상황 자체가 원망스러웠다. 누구한테 이 화풀이를 해야 될 지 몰랐다. 그래도 당사자만큼 힘들고 원망스러울까 싶어서 나는 그냥 화를 속으로 삭여야 했다.

쿨한 엄마에서 심드렁한 엄마로 
 

딸 아이의 메모 ⓒ 안소민

 
그때쯤 되어서는 딸 아이를 위로하는 주변 격려의 말에도 일일이 대꾸하기 귀찮아지고 심드렁해졌다. 누가 물어보면 '될 대로 되겠죠 뭐'라며 귀찮은 듯 넘겼다. 사람들은 '쿨한 엄마'라고 했지만 쿨한 게 아니라 그냥 정말 될 대로 되라, 하지만 제발 건강하게만 시험을 보게 해달라는 심정이었다.

'저주받은 2002년생'이라며 신세 한탄을 하던 딸 아이는 입시원서를 쓰고 난 후 마음이 조금 정리된 듯했다. 얼마 전에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도 불쌍하지만 그래도 2020년에 대학교에 들어간 선배들이 더 안쓰러워. 우리는 그냥 공부만 하면 되지만, 선배들은 대학 생활도 제대로 못 누렸잖아".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이제는 딸아이나 나나,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조금 생긴 걸까.

딸 아이는 시험 보기 나흘 전, 고등학교 1학년 선생님에게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지금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셔서 볼 수 없는데, 선생님은 제자들의 시험을 잊지 않으시고, 당시 1학년 반 제자들 모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준 것이었다.

딸아이가 유독 따르고 좋아했던 선생님이어서 딸아이는 선생님 문자를 보고 왈칵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선생님, 가족, 친구, 친척들에게도. 심지어는 내가 다니는 직장의 동료들도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이렇게 너를 응원하는 사람이 많으니 잘 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진심으로 격려해주었다. 이번에는 어정쩡하지 않게, 정말 진심으로.

여기까지 무사히 와줘서 고맙다

건강하게 여기까지 왔으면 그걸로 됐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시험을 잘 보고 못 보고는 이제 어찌할 수 없는 일. 건강히 무사하게 고사장으로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수능을 위해 정말 노심초사 애를 쓴 방역당국, 교육부, 학교 선생님들 그 외에 보이지 않은 곳에서 도움을 준 정말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올해는 유난히 준비할 것도 많고 점검해야 할 것도 많은 수능이었을 것이다. 매해 그랬지만 올해는 유독 전 국민의 힘을 '영끌'해서 치른 시험이 될지 모른다. 그 많은 구성원 중 어느 한 쪽에서라도 삐긋하고 문제가 생겼으면 어려워졌을지도 모른다. 12월 3일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 모두 찬란한 2021년을 맞았으면 좋겠다.
#대학수학능력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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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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