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수능 치른 학생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

[전대원의 교육이야기] 우리는 수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등록 2020.12.03 13:58수정 2020.12.03 13:58
2
원고료로 응원
a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예비 소집일인 2일 오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대전시교육청에서 수험생들이 수험표를 받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며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수능 당일에 나갈 기고문을 어떤 내용으로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수능 한파'라는 단어로 기사 검색을 해보았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11월에 시행되던 수능 시험이 12월로 연기됐다. 수능 연기 소식을 듣자마자 올해는 진짜로 수능 한파가 오겠다고 생각했다. 일기예보에서 오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되자 S일보는 '올해도 수능 한파'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고, H일보는 '올해 더 매서운 수능 한파'라고 제목을 달았다.

개인적으로 매년 수능 한파라는 기사가 나오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올해와 같은 겨울 수능은 특별한 케이스이고, 대부분은 늦가을인 11월에 치러지는 수능에서 '한파'라는 말은 낯설 수밖에 없다. 계절적으로 한파가 오는 시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올해는 수능 한파 없다'는 내용의 기사가 매년 잊지 않고 찾아왔다. 마치 매년 수능 한파가 왔던 것처럼 신문들이 관행적으로 기사를 썼지만, 오랫동안 고등학교 교사로서 수능을 지켜본 결과 최근에는 수능 한파를 겪어본 기억 자체가 거의 없다. 기후적으로 한반도의 날씨가 따뜻해진데다가, 시기도 11월로 당겨져서 한파가 올 가능성 자체가 별로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년에 다시 정상적으로 11월 수능이 치러지고 평균 기온 정도의 날씨를 보인다면, 아마도 '올해는 수능 한파 없어'라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의 기사가 나올 것이다. 그러면 필자는 또 빙그레 웃으며 '여전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a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고등학교에 마련된 수능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11월 수능은 억지

12월 입시 때, 언론에서는 굳이 한겨울에 시험을 치르게 해야 하냐는 비판이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 그래서 시험이 11월로 당겨진 것일 수도 있지만, 교육과정 상으로 보면 11월 시험은 억지인 측면이 있다. 11월이면 1년의 교육과정이 아직 채 끝나지 않은 시점이다. 만약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밟는다고 가정하면 수능 시험의 출제 범위는 고등학교 교육과정 전 범위로 해서는 안 된다. 물론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수능 일정에 맞춰 진도를 끝내기는 하지만, 교육과정은 1년 동안 마치게 구성하면서 실제로는 그 이전에 끝내도록 하는 기묘한 체계일 수밖에 없다.

수능이 끝나면 '수능 한파'처럼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언론의 레퍼토리가 수능 이후 교육과정 파행 운운하는 기사다. 작게는 고등학교 3년, 길게는 학교 교육 12년 기간을 오직 이 하루만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온 사회가 학생들을 몰아세워 왔는데, 과연 수능이 끝나고 다음 날부터 학생들이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와서 자리에 바르게 앉아 수업을 들을 것이란 상상이 가능한지 묻고 싶을 때가 많다. 상상 속에서 그리는 그림으로나 가능한 것이고, 아마도 그런 비난을 하는 당사자들도 그렇게 학교생활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학교에선 무엇보다 더 가르칠 게 없다. 이미 파행적으로 10월 이전에 모든 진도를 끝내야 한다. 만약 수능 전날까지 진도를 나가고, 수능 끝나고 공부할 분량을 남겨두었다가는 사달이 날 일이다. 교육과정이 끝난 학교에서 학생들이 기대할 남은 역할이란 게 과연 있을까?

대책이랍시고 나온 것이 수능 이후에 학교에 나와야 할 날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11월 초까지 당겨졌던 수능 일자가 11월 중순 이후로 미뤄진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되도록 늦게 시험을 쳐서 수능 이후의 등교 일정을 줄이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래도 수능 이후에 학교에 나오는 날이 많아서 파행 수업 어쩌고 하는 비판이 계속되자, 수능 후 등교일수를 더 줄이는 방편으로 여름방학을 축소하였다. 한 달은 확보되던 여름방학이 학교에 따라서는 보름도 안 되게 줄인 경우도 속출하였는데, 그게 모두 수능 이후 학교 일정을 줄이려는 고육책이었다. 덕분에 학생들은 한여름에 학교에 나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수업을 들어야 했다.

이쯤에서 그냥 학교에 나오지 않게 하면 될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법정 수업 일수라는 것이 있다. 올해 1학기에 등교 개학이 늦춰지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법정 수업 일수를 채울 수 있냐는 것이었다. 천재지변에 의한 재량권을 이용하여 법정 수업 일수를 감축하고 여름 방학을 축소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학생들 수업권도 있기 때문에 학교 나오는 날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특별한 재난이 없다면 함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a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인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고등학교에 마련된 수능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입실 전 자신의 시험실을 확인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올해 수능은 유례없는 연기 사태 속에서 치러진다. 우리는 이미 3년 전 포항 지진을 통해 일시에 보는 시험의 취약성을 여실히 경험한 바 있다. 한날한시에 시험을 본다는 건 여러 취약점을 내포한다. 수능 시험이 끝나면 갖가지 사건 사고를 보도하지만, 50만 명이 보는 시험이 이 정도로 관리되는 건 대단한 일이다. 얼마 전 미국 대선이 있었는데, 현직 대통령이 이런저런 꼬투리를 제기하는 걸 보면서 한국의 선거 시스템이 얼마나 완벽에 가깝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전국적인 관리 시스템에 특화된 나라이긴 한데, 아마 입시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수능 같은 시스템도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수능시험이 끝나면 으레 교육과정평가원장의 인터뷰가 나온다. 난이도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별한 것이 있을 수가 없다. 난이도는 무조건 예년의 평균에 맞추게 되어 있다. 가끔 물수능이니 불수능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데, 그건 출제자들이 그만큼 문제 난이도를 조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 뿐, 어떤 출제진의 의도성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올해 초부터 고3 재학생들을 위하여 문제를 쉽게 출제해야 되는 거 아니냔 이야기가 나왔는데, 상대평가 9등급제 시험에서 애초에 되지도 않을 이야기였다. 이미 수능은 상위권 수험생들의 변별을 위한 시험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수능 문제의 체감 난이도는 상위권 수험생을 가르는 한 두 문제의 킬러문항이 좌우하고, 이를 쉽게 내면 1등급이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이미 지난 칼럼에서 설명한 바 있다.

수험생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

명절에 '취직했냐?' '결혼은 언제 하냐?' 같은 소리 하지 않기 운동이 펼쳐진 지 오래건만, 수험생에게 시험 잘 봤냐는 질문 하지 말자는 운동은 아직 잘 안 보인다. 그냥 수고했다고만 하고 결과는 묻지 않는 것이 좋다. 입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승자보다 패자가 많은 게임일 수밖에 없다. 구조적으로 이렇다면 시험 잘 보았냐는 물음은 염장 지르는 질문이 될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높다. 취업이나 결혼보다 성공확률이 낮은 게임이라면 더욱 삼가야 할 질문이라는 걸 깨달을 것이다.

더 크게 보면 수능에 응시하지 않는 고3 학생도 많다. 애초에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특성화 고등학교 재학생도 있고, 인문계 재학생이라 해도 대학 진학을 수능 트랙으로 가지 않는 학생, 입시 경쟁에서 일찌감치 낙오된 학생들도 적지 않다. 누구에게는 부담스런 관심이 또 누구에게는 그런 관심이라도 갖고 싶다는 박탈의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올해 수능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지원자 50만 명 선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올해 수능 응시생은 49만 3천명 선으로 역대 최저다. 당분간 오르고 내림이 있겠지만 학령 인구감소로 이 추세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한동안 수시가 확대되어 수능의 중요성이 떨어져 왔지만, 기성세대의 학력고사에 대한 추억과 맞물려 온 사회가 1년에 한 번씩 치르는 통과의례처럼 인식된 측면이 있다.

올해는 수능 수험표 할인 같은 이벤트는 없어야 할 것으로 본다. 해방감을 만끽하고픈 수험생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코로나19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능이 모든 나라가 함께 하는 의례였기에 이런 풍습도 있는 거겠지만, 명절에도 고향 내려가지 않기 운동을 펼쳤듯이 올해는 그래야 할 것이다.
 
a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 당일인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고등학교에 마련된 수능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어떤 형태가 되었든 한날한시의 시험으로 모든 걸 결판낸다는 식의 교육 경쟁 구조는 지양되어야 한다. 혹자는 이게 가장 공정하다고 이야기하지만, 5지선다는 우연이 많이 좌우하는 시험이고, 우연은 현대 사회에서 공정함의 상징이 될 수 없다.

필자가 늘 강조하는 건 20세기에 겪은 교육과 21세기 대한민국 교육은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 대한민국과 선진국 대한민국이라는 토대가 다르고, 지식사회의 토양이 전혀 다르게 형성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수능을 치르지 않기로 결정하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예비 사회 초년생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 함께 하는 의례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관심 자원에서 소외될 그 어떤 이유도 없다. 수능 날 수능을 치르지 않는 고3 학생들의 밝은 미래와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성원한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총장, 이게 다 쇼였나
  2. 2 공교롭고도 낯뜨거운 '윤석열 단독'
  3. 3 연금에 적금 깨고 빚내서 주식했습니다, 결과는요
  4. 4 박근혜 탄핵 후에도, 매년 100억 받으며 돈 쌓는 이 재단
  5. 5 로고만 싹 잘라내고... '상습 표절' 손씨, 오마이뉴스 사진도 도용
연도별 콘텐츠 보기